북한의 미래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by 夷山 posted Sep 16, 2005
북한은 어떻게 될 것인가? 북한의 미래에 대한 낙관과 비관이 극과 극을 이루며 쏟아지고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북한의 미래는 김정일 정권과 체제의 미래를 의미하는 것이며, 북한이라는 국가의 소멸이나 꼭 통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김정일 체제가 붕괴되었는데도 그것이 한반도 통일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다음 두 가지 문제 때문일 것이다. 하나는, 한반도 문제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국제세력을 어떻게 설득하고 그들의 지분을 보장해줄 것인가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북한 동포들이 남한과의 통일을 기꺼이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결국 두 문제 모두의 해결책은 남북교류ㆍ협력과 연결된다. 우선 교류ㆍ협력은 남북한 쌍방간의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하다. 경제적 교류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쌍방간의 신뢰 조성이다. 바로 ‘사람의 통일’이 진정한 통일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어느 국가도 상호간 교류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체제 통합을, 그것도 평화적으로 성공시킨 예가 없다. 이에 비해, 교류가 있는 가운데 국가간 통합을 이뤘던 경우는 허다하게 볼 수 있다.

‘사람의 통일’이 진정한 통일이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고려의 후삼국 통일이 그것이다. 신라는 후백제와의 전쟁으로 경주가 유린되고 나라의 존망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신라 경순왕은 고려 왕건에게 나라를 바쳤다. 왕건은 신라의 왕족과 귀족들을 예로써 대접했다. 전쟁으로 피해가 막심한 신라에게 식량과 물자를 지원했음은 물론이다. 이후 후백제의 견훤이 부자간의 왕위쟁탈전에서 패배하여 왕건에게 도피해 왔을 때 왕건은 견훤을 깍듯이 대했다. 이로 인해 왕건은 후백제 백성들의 인심을 얻었으며, 나아가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삼국시대의 몰락이 그것이다. 신라는 백제를 점령하고 고구려의 일부를 차지하였으나 곧이어 옛 고구려의 땅에 고구려 장군 출신의 대조영이 유민을 이끌고 발해를 세웠다. 통일이라기보다는 남북조가 출현한 것이다. 그럼에도 후대신라는 발해와의 교류를 중단했다. 이로 인해 발해가 멸망했을 때 후대신라는 발해에 대한 기득권은 물론이고 만주 일대의 옛 고구려 영토까지 잃어버리게 되었다. 상호 교류가 없는 장기간의 단절이 문화의 단절과 공동체의식의 소멸, 민족의식의 소멸 등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 역사에서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는 북한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그리고 통일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그 해답을 미리 준비해둬야 한다. 지금 북한의 미래에 대해 이런저런 주장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항이 있다. 요컨대, 북한 체제의 붕괴는 우리가 언제쯤 붕괴돼 달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북한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북한의 내부사정 때문이지, 외부의 주문사항에 따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동ㆍ서독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서독의 정보관련 책임자도 1989년 당시 독일이 그렇게 급속하게 통일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동ㆍ서독이 근 4반세기에 걸쳐 많은 대화와 교류를 했음에도 서독은 동독의 붕괴를 지연시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예상조차 못했다. 구소련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과연 구소련 붕괴 1년 전에 소련의 붕괴를 예상한 소련 전문가들이 과연 얼마나 있었던가? 또 어느 누가 소련의 붕괴를 지연시킬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예에서 보듯, 지금 우리에겐 북한 김정일 체제의 붕괴가 빨라야 좋다는 둥, 아니면 늦게 와야 유리하다는 둥 하는 것은 별로 영양가 없는 논란이다. 문제는 남북한간 교류가 없는 상태에서 북한에 갑자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돌출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북한이 한국에게 사전 통고를 할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처럼 상호 교류도 없는 상태에서 한국이 북한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 북한에서 대남 사상교육을 받은 북한동포들이 선뜻 남한을 조국으로 선택할까? 더구나 김정일 체제가 붕괴했을 때 그 뒤를 맡을 가능성이 높은 북한 군부가 남한 당국에 손짓을 보낼까? 오히려 중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까? 우리 정책결정자들의 치밀한 판단과 대비가 필요하다.

포용의 대북관리 서둘러야

물론 북한의 체제도 중요하고 통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에 살고 있는 동포들이 굶주림과 탄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우리가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통일을 국토를 넓히기 위한 부동산 투자로 인식해서는 안된다. 진정으로 북한에 살고 있는 동포 형제들을 도울 수 있고 더불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통일문제를 다뤄야 한다. 바로 사람의 통일을 지향하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영항력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북경에서는 6자회담이 재개되고 있다. 그러나 북핵문제가 당장 해결되기는 힘들 것 같다. 북핵문제 해결이 지지부진하다고 우리는 북한과의 교류ㆍ협력을 거부하고만 있어야 하는가? 물론 그래서는 안된다.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하여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북한체제의 속성상 분리 대응하기가 어려운 것 또한 현실이다. 오히려 지금으로선 북한 내부 못지않게 중국의 대북한 선점권 강화가 더 걱정이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적극적으로 감안한 전략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 점에서 민간부문과 국제사회를 적극 활용하여 북한을 시장경제체제로 전환시키는 전략이 대단히 중요하다. 여기서 우리 정부나 정치권은 남북문제를 국내정략용으로 이용하려 해서는 안된다. 특히 정부는 국제세력의 지나친 이기심을 견제하면서 우리의 민간부문이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한편, 확보된 교류·협력의 성과를 제도화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정보화 시대에는 더 이상 비밀이나 꼼수는 통하지 않는다. 이제 오픈(Open)된 무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북한의 선의를 기대하거나 아니면 북한 탓으로 돌리는 식으로는 한반도의 평화적인 통일을 만들어낼 수가 없다. 이제 ‘평화지키기’(Peace-Keeping)를 넘어 ‘평화만들기’(Peace-Making)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평화만들기'에는 북한에 대한 포용의 관리가 포함돼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남북한 교류ㆍ협력의 양과 질의 업그레이드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