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 19일, 제4차 6자회담에서 6개항의 공동성명이 전격 도출됐다. 북한의 핵개발포기와 NPT복귀를 골자로 하는 이번 공동성명은 합의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예상 속에 타결되었기에 더 큰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공동성명의 타결을 애타게 기다렸던 우리 정부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선물이 되었으며, 우리 국민들 또한 이번 합의로 ‘당분간은’ 안도감과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북한과의 협상이 언제나 그렇듯이 지금부터가 새로운 시작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실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합의문 자체는 한갓 종잇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번 공동성명도 사실은 특별할 게 없다. 실천으로 현실화되기에는 엄청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반면, 합의를 깰 수 있는 카드는 도처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회담 참가국 누구도 회담 결렬의 책임을 떠안지 않겠다는 눈물겨운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 시점에선 공동성명 도출에 대한 지나친 흥분도 의도적 폄훼도 삼가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합의된 내용을 차분히 복기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공동성명이 한반도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의 구상에 맞게 특히 ‘효율적’으로 실천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실천 의지 찾을 수 없는 공동성명
이번 공동성명의 내용 중에는 특별한 주의를 가지고 살펴봐야 할 몇 가지 지점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 이번 합의의 긍정적인 의미와 더불어 문제점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먼저 공동성명의 가장 핵심적인 조항인 제1항을 살펴보자. 크게 세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는데 첫째, 북한의 NPT와 IAEA의 안전조치 복귀가 ‘조속한 시일’ 내에 이루어진다는 공약이 그것이다. 이것은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한다는 '적절한 시기'와 대비할 경우 선후문제가 나올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북한 외무성이 공동성명 발표 다음 날인 9월 20일 '先경수로 제공, 後 NPT 복귀'를 주장해 공동성명의 의미를 무색케 했다. 이에 비해 나머지 5국 모두는 NPT 복귀 후 경수로 제공 원칙을 확인했다.
둘째, 1992년 「한반도 非핵화 남북공동선언」의 준수ㆍ이행을 못박고 있다. 비핵화 공동선언 제2항은 “남과 북은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한다,” 제3항은 “핵 재처리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이번 공동성명으로 남과 북이 핵주권을 영구히 포기해야 한다는 확대 해석도 가능해진다.
그럴 경우, 이 조항은 우리의 에너지 안맙?매우 심각한 영향을 주게 된다. 현재 전체 전력의 약 40%를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는 남한은 앞으로 핵연료 확보에서 핵 재처리에 이르는 일련의 ‘핵연료 주기’를 완성할 수 없어 외국에 핵연료를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북한의 군사용 핵문제 해결이 절박해서 그랬다지만, 우리 또한 농축과 재처리시설을 보유할 수 없다는 것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이번에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을 미래의 권리로나마 살려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형편이다.
셋째,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 존중 및 적절한 시기에 對북한 경수로 제공 문제 논의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적절한 시기’라는 시간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경수로 ‘제공’ 논의다. 4차회담에서 북한이 줄곧 요구한 것은 평화적 핵 이용권이고, 이에 따라 경수로를 보유할 수 있는 권리였다. 그런데 공동성명에선 경수로 ‘제공’을 논의한다고 되어 있다. 이는 곧, 적절한 시기가 되면 북한이 ‘스스로’ 경수로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누군가가 건설해준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게 되면 남한이 지난 7월 12일 ‘중대제안’에서 경수로 폐기를 조건으로 제시한 대북 송전 200만㎾는 자칫 경수로 건설 지연에 따른 ‘손실 보상분’으로 둔갑할 우려가 있다. 이는 북한이 줄곧 미국에게 요구해오던 것이다.

다음으로, 2항에는 우리로선 당연하지만 그동안 북한이 참석한 회담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문구가 들어가 있다. “국제연합헌장의 목적과 원칙 및 국제관계에서 인정된 규범을 준수할 것을 약속”한 것이다. 인권이나 환경, 미사일 문제와 같이 북한의 아킬레스를 건드리는 고리가 마련돼 있다. 향후 필요에 따라선 북한이든 미국이든 이 조항에 의거하여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합의를 깰 수도 있다.
제3항에서 주목되는 것은 5개국이 북한에 에너지 지원을 제공할 ‘용의’를 표명한 것이다. 그야말로 ‘용의’의 표명이지, 지원을 약속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5개국에게 제공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한국의 ‘중대제안’에 따른 200만㎾의 대북 송전만 공약으로 남은 것이다. 자칫 대북 송전이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 남북경협 차원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물론 한국의 노력 여하에 따라 주변국의 에너지 지원을 끌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의 대북 송전만 확실하다는 것이다. ‘중대제안’에는 북핵 폐기가 ‘합의’될 경우 전기를 제공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북핵 폐기가 ‘검증’되지 않아도 이번 합의만으로 대북 송전을 위한 건설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한국만 이번 공동성명의 실천력을 보이게 돼 있을 뿐, 나머지 국가들은 ‘말로만’ 한 약속에 불과하다.
제4항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은 어찌보면 이번 합의와는 별도의 아젠다(議題)라 할 수 있다. 북핵문제가 쉽게 풀려가지 않을 때 북한을 묶어 둘 또 하나의 회담틀을 마련한 것이다.
제네바합의 전철 되밟지 말아야
결론적으로, 이번 공동성명은 원칙의 나열일 뿐, 실천을 위한 시간표와 로드맵이 없다. 앞으로 이것을 완비할 때 공동성명은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만 몰두하기에는 미ㆍ일ㆍ중ㆍ러에겐 더욱 시급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단지 이 시점에서 3년을 끌어온 회담을 일단 봉합하는 데 이번 합의의 의미를 찾을 것 같다. 그러면서 대화국면의 소강상태만 유지되면, 사태가 더 악화되지만 않으면 된다는 입장일 것이다.
이번 공동성명은 1994년 제네바합의보다 못하다. 먼저, 회담 당사국들이 합의의 이행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 둘째 과도기의 비용을 전적으로 남한이 뒤집어쓴 점. 셋째 북한을 빌미로 실제 한국의 핵 주권까지 규제할 명분을 얻었다는 점. 넷째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지위가 약해지는 경향을 내포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베이징의 입김도 커지고 워싱턴의 압력도 커진다는 점에서 제네바합의와 차이가 없다. 반면, 실질적인 로드맵조차 준비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남북 공히 겪고 있는 리더십의 약화로 실질적인 ‘공조에 의한 체제전환’ 가능성이 줄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후퇴한 측면도 있다.
결국 이번 4차회담의 공동성명은 북핵문제를 현 상태에서 묶어두되 북핵문제가 다시 전면에 등장할 ‘필요가 있는’ 시기까지만 한국이 북한을 맡아주는 격이 되어 버렸다. 냉혹한 동아시아 질서 속에 갇혀 버린 한반도 문제의 본질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공동성명을 계기로 봇물 터지듯 진전될 남북경협과 대북송전, 평화체제논의를 통해서 한국은 무엇을 얻어내고 만들 수 있을까. 지난 2000년 6.15 선언 이후의 시기보다 실속 있는 진전을 이루어내기 위해서, 2002년의 악몽을 또다시 재현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뭔가 다른 각오와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나 북한과의 협상이 언제나 그렇듯이 지금부터가 새로운 시작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실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합의문 자체는 한갓 종잇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번 공동성명도 사실은 특별할 게 없다. 실천으로 현실화되기에는 엄청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반면, 합의를 깰 수 있는 카드는 도처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회담 참가국 누구도 회담 결렬의 책임을 떠안지 않겠다는 눈물겨운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 시점에선 공동성명 도출에 대한 지나친 흥분도 의도적 폄훼도 삼가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합의된 내용을 차분히 복기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공동성명이 한반도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의 구상에 맞게 특히 ‘효율적’으로 실천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실천 의지 찾을 수 없는 공동성명
이번 공동성명의 내용 중에는 특별한 주의를 가지고 살펴봐야 할 몇 가지 지점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 이번 합의의 긍정적인 의미와 더불어 문제점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먼저 공동성명의 가장 핵심적인 조항인 제1항을 살펴보자. 크게 세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는데 첫째, 북한의 NPT와 IAEA의 안전조치 복귀가 ‘조속한 시일’ 내에 이루어진다는 공약이 그것이다. 이것은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한다는 '적절한 시기'와 대비할 경우 선후문제가 나올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북한 외무성이 공동성명 발표 다음 날인 9월 20일 '先경수로 제공, 後 NPT 복귀'를 주장해 공동성명의 의미를 무색케 했다. 이에 비해 나머지 5국 모두는 NPT 복귀 후 경수로 제공 원칙을 확인했다.
둘째, 1992년 「한반도 非핵화 남북공동선언」의 준수ㆍ이행을 못박고 있다. 비핵화 공동선언 제2항은 “남과 북은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한다,” 제3항은 “핵 재처리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이번 공동성명으로 남과 북이 핵주권을 영구히 포기해야 한다는 확대 해석도 가능해진다.
그럴 경우, 이 조항은 우리의 에너지 안맙?매우 심각한 영향을 주게 된다. 현재 전체 전력의 약 40%를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는 남한은 앞으로 핵연료 확보에서 핵 재처리에 이르는 일련의 ‘핵연료 주기’를 완성할 수 없어 외국에 핵연료를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북한의 군사용 핵문제 해결이 절박해서 그랬다지만, 우리 또한 농축과 재처리시설을 보유할 수 없다는 것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이번에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을 미래의 권리로나마 살려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형편이다.
셋째,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 존중 및 적절한 시기에 對북한 경수로 제공 문제 논의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적절한 시기’라는 시간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경수로 ‘제공’ 논의다. 4차회담에서 북한이 줄곧 요구한 것은 평화적 핵 이용권이고, 이에 따라 경수로를 보유할 수 있는 권리였다. 그런데 공동성명에선 경수로 ‘제공’을 논의한다고 되어 있다. 이는 곧, 적절한 시기가 되면 북한이 ‘스스로’ 경수로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누군가가 건설해준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게 되면 남한이 지난 7월 12일 ‘중대제안’에서 경수로 폐기를 조건으로 제시한 대북 송전 200만㎾는 자칫 경수로 건설 지연에 따른 ‘손실 보상분’으로 둔갑할 우려가 있다. 이는 북한이 줄곧 미국에게 요구해오던 것이다.

다음으로, 2항에는 우리로선 당연하지만 그동안 북한이 참석한 회담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문구가 들어가 있다. “국제연합헌장의 목적과 원칙 및 국제관계에서 인정된 규범을 준수할 것을 약속”한 것이다. 인권이나 환경, 미사일 문제와 같이 북한의 아킬레스를 건드리는 고리가 마련돼 있다. 향후 필요에 따라선 북한이든 미국이든 이 조항에 의거하여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합의를 깰 수도 있다.
제3항에서 주목되는 것은 5개국이 북한에 에너지 지원을 제공할 ‘용의’를 표명한 것이다. 그야말로 ‘용의’의 표명이지, 지원을 약속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5개국에게 제공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한국의 ‘중대제안’에 따른 200만㎾의 대북 송전만 공약으로 남은 것이다. 자칫 대북 송전이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 남북경협 차원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물론 한국의 노력 여하에 따라 주변국의 에너지 지원을 끌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의 대북 송전만 확실하다는 것이다. ‘중대제안’에는 북핵 폐기가 ‘합의’될 경우 전기를 제공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북핵 폐기가 ‘검증’되지 않아도 이번 합의만으로 대북 송전을 위한 건설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한국만 이번 공동성명의 실천력을 보이게 돼 있을 뿐, 나머지 국가들은 ‘말로만’ 한 약속에 불과하다.
제4항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은 어찌보면 이번 합의와는 별도의 아젠다(議題)라 할 수 있다. 북핵문제가 쉽게 풀려가지 않을 때 북한을 묶어 둘 또 하나의 회담틀을 마련한 것이다.
제네바합의 전철 되밟지 말아야
결론적으로, 이번 공동성명은 원칙의 나열일 뿐, 실천을 위한 시간표와 로드맵이 없다. 앞으로 이것을 완비할 때 공동성명은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만 몰두하기에는 미ㆍ일ㆍ중ㆍ러에겐 더욱 시급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단지 이 시점에서 3년을 끌어온 회담을 일단 봉합하는 데 이번 합의의 의미를 찾을 것 같다. 그러면서 대화국면의 소강상태만 유지되면, 사태가 더 악화되지만 않으면 된다는 입장일 것이다.
이번 공동성명은 1994년 제네바합의보다 못하다. 먼저, 회담 당사국들이 합의의 이행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 둘째 과도기의 비용을 전적으로 남한이 뒤집어쓴 점. 셋째 북한을 빌미로 실제 한국의 핵 주권까지 규제할 명분을 얻었다는 점. 넷째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지위가 약해지는 경향을 내포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베이징의 입김도 커지고 워싱턴의 압력도 커진다는 점에서 제네바합의와 차이가 없다. 반면, 실질적인 로드맵조차 준비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남북 공히 겪고 있는 리더십의 약화로 실질적인 ‘공조에 의한 체제전환’ 가능성이 줄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후퇴한 측면도 있다.
결국 이번 4차회담의 공동성명은 북핵문제를 현 상태에서 묶어두되 북핵문제가 다시 전면에 등장할 ‘필요가 있는’ 시기까지만 한국이 북한을 맡아주는 격이 되어 버렸다. 냉혹한 동아시아 질서 속에 갇혀 버린 한반도 문제의 본질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공동성명을 계기로 봇물 터지듯 진전될 남북경협과 대북송전, 평화체제논의를 통해서 한국은 무엇을 얻어내고 만들 수 있을까. 지난 2000년 6.15 선언 이후의 시기보다 실속 있는 진전을 이루어내기 위해서, 2002년의 악몽을 또다시 재현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뭔가 다른 각오와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