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리 용의 神話는 끝났는가

by 夷山 posted Oct 26, 2005
1970년대와 80년대에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폴 등 아시아의 4대 신흥공업국가를 일컬어 닉스(NICs, Newly Industrializing Countries. NICs는 대만과 홍콩이 국가가 아니라는 중국 입장 때문에 1988년 NIES(Newly Industrializing Economies, 신흥공업지역)로 명칭이 바뀌었다)라고 했다. 속칭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고도 했다. 이들 네 마리 용은 국제사회에서 모범적인 경제발전국가로 칭송이 자자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의 발전이 상징적이었다.

닉스의 뒤를 이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등 아세안(ASEAN) 국가들이 눈부신 경제발전의 바톤을 이어받았다. 그 뒤를 1978년 이후 개혁ㆍ개방에 적극 나선 중국이 따라가는 패턴이었다. 요컨대, 일본이 앞장서 인도하고 닉스-아세안-중국이 뒤를 잇는 흡사 기러기가 날아가는 대형(雁行模型, flying geese model)을 형성하여 동아시아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견인한 것이다. 그러던 동아시아 국가들이 1990년대 후반 아시아를 휩쓴 금융위기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특히 한국의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30년간의 산업화 성과가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이에 비해 말레이시아, 홍콩, 싱가폴, 대만, 중국 등은 심각한 타격을 받긴 했지만 위기에서 용케 살아남았다. 생존 이유야 여러 가지이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화교자본과 중국시장의 위력이 아니었나 싶다.

1980년대의 닉스처럼 1990년대 말부터 브릭스(BRICs)가 급부상하고 있다. 브릭스는 브라질ㆍ러시아ㆍ인도ㆍ중국 등 경제성장의 속도와 성장 가능성이 큰 신흥경제 4국을 일컫는 말로, 2003년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골드먼삭스’의 보고서에서 처음 등장했다. 브릭스는 현재 세계 각국의 수출 확대와 자원 확보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빠르게 자리잡아가고 있다.

글로벌 경제전쟁과 BRICs

브릭스는 향후 수 십 년간 가장 역동적인 성장지역인 동시에 세계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될 전망이다. 브릭스 4개국 GDP의 합계는 세계 총생산의 8%에 불과하지만 인구는 27억 명으로 세계 인구의 43%를 차지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전망에 따르면, 브릭스 4개국 중 중국ㆍ인도ㆍ브라질ㆍ러시아 순으로 과거의 경제적 위상을 되찾아 2040년에는 이들 4개국이 기존의 G7 국가들을 제치고 세계 6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한다는 것이다.

브릭스는 세계경제의 블록화 과정에서 새로운 경제권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주변시장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아울러 브릭스 지역은 에너지와 광물자원의 세계적 부존지역으로 전략자원 확보에 있어서도 요충지다. 2003년을 기준으로 세계 석유의 9.5%가 브릭스 지역에 매장돼 있고 16%가 브릭스에서 생산되고 있다. 또 세계 석탄생산의 45.4%, 세계 철광석 매장량의 39.6%를 브릭스가 차지하고 있다. 이밖에도 곡물ㆍ쌀ㆍ밀ㆍ두류 생산은 물론 커피ㆍ오렌지ㆍ원당 등 농작물 생산에서도 브릭스 국가들이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개별 국가별 가치를 보면, 브라질은 남미공동시장인 인구 2억의 메르코수르(MERCOSUR, 브라질ㆍ아르헨티나ㆍ우루과이ㆍ파라과이)를 주도하고 있다. 브라질은 남미 10개국과 인접한 전략적 요충지로서 안데스공동체와 자유무역지대(FTA)를 체결하여 남미지역 경제권의 중심국가로 부상 중이다.

CIS(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경제권의 중심 국가인 러시아 역시 유럽경제권과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1억 5천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다. 또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의 26.7%, 천연가스 생산의 22.1%를 차지하고 있는 에너지 자원의 보고다. 21세기 에너지 안보시대에 러시아産 에너지 자원에 대한 미ㆍ중ㆍ일ㆍ유럽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의 러브콜은 더욱 가열될 것이다.

11억 명의 인구를 가진 인도는 벵골만과 남아시아 지역 국가를 어우르는 大서남아 경제권을 형성함으로써 동아시아와 연결하려는 FTA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오랜 기간 저성장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과거 인도경제를 빗대어 ‘힌두성장률(Hindu rate of growth)’로 표현했다. 그러나 이 말은 옛말이 돼 버렸다. 인도는 1991년 사회주의 노선을 버리고 적극적인 대외개방 및 개혁정책을 선언한 이래 연평균 5.5%의 고도성장을 지속해왔다. 마침내 2003년 12월에는 외환보유고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대로 가면 2030년경 인도는 일본을 추월하고 2050년경에는 유럽의 비중과 비슷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금 당장 그리고 미래에도 지속적인 주목을 받을 곳은 중국이다. 중국의 경제 잠재력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우선 13억의 인구대국이다. 중국 자체가 안고 있는 경제적 이점은 무궁무진하다. 중국은 아세안과 FTA를 체결하고 한ㆍ중ㆍ일 3국간 자유무역협정을 주도함으로써 동아시아 경제권을 구축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다. 현재 예상으로는, 중국이 2020년경 일본을 앞서기 시작하여 2040년경이면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세계 GDP의 20%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브릭스가 21세기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35년 뒤인 2040년 경 세계의 경제지도는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오는 2040년 세계 GDP에서 아시아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42%로 북미(23%)나 유럽(16%)을 크게 앞지를 것이다. 바야흐로 아시아 경제의 중심이 일본에서 24억 인구의 ‘친디아(Chindia, 중국+인도)’로 바뀌고, 중국과 인도가 아시아 국가들의 급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전망된다.

외경대동의 시대정신 되살려야

이에 따라 세계 경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떨어질 것이다. 한국의 비중은 지난 2003년 1.7%에서 2030년 2.3%까지 상승한 뒤 내리막을 타면서 2040년 2.0%, 2050년에는 1.7%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이제 한국 경제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친디아의 틈바구니에 끼여 주변국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다.

세계경제의 흐름에 비춰 볼 때, 지금 우리는 브릭스를 최우선 경제 파트너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브릭스는 현재 우리나라 수출의 22.7%를 차지하고 있으며, 무역수지 흑자의 90%를, 해외투자(건수 기준)의 49.2%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 브릭스를 거론하지 않고는 한국경제를 논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여,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덫에 빠져 있어서는 안된다. 세계는 미래를 향해 성큼성큼 달리고 있는데, 우리는 과거에 발목 잡혀 쓸데없는 일에 국가적 자원과 국민적 에너지를 소비하며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지금 세계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는 국가들은 2020년경을 1차 도약이 완성되는 시점으로 삼고 미래전략에 맞춰 나라를 개조하는 작업에 열심이다. 이에 비해 우리는 급속한 고령사회 진입과 출산율 저하라는 암울한 2020년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정치권은 소모적인 정쟁에 휩싸여 미래를 준비하지, 아니 애써 ‘바라보지' 않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더 싸우고 편을 가르고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는 사이 밖과는 경쟁ㆍ협력하고 안으로는 단결하는 ‘외경대동(外競大同)’의 시대를 만들 수 있는 기회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