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이 결여된 ‘동반성장을 위한 새로운 비전과 전략’

by 최배근 posted Mar 06, 2006
지난 2월 13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극찬해 세인의 관심을 불러 모은 <동반성장을 위한 새로운 비전과 전략>이라는 보고서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국민경제자문회의 이름으로 지난 1월 대통령께 보고된 이 보고서는 전문이 4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보고서로서 “일반국민들에게도 소개할 필요가 있다”는 대통령의 지시로 국민경제자문회의 사이트에 접속하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 동안 한국개발연구원(KDI)·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산업연구원(KIET) 등 10개 국책연구원장들이 분야별 전문가 14명, 토론에 참여한 전문가 74명 등 총 100여명의 전문가들이 함께 연구 집필한 종합 전략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대통령의 극찬 때문만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방향을 정리한 것이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기도 하다.

문제제기의 적절성을 둘러싼 논란

이처럼 관련분야의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한 덕택으로 이 보고서의 내용에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점과 해결책들이 제시되고 있다. 보고서는 제목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의 문제의 핵심을 ‘양극화’에서 찾고 있다. 이는 현 정부의 문제인식을 반영시킨 냄새가 짙다. 양극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의 최우선 해결과제로 대통령에 의해 제기된 주제로 노무현 대통령은 올해 신년연설에서도 다시 ‘양극화’를 화두로 던졌고 남은 임기 2년의 국정운영 우선순위에 양극화와 한미FTA 체결에 두겠다고 밝힌 바가 있다. 반면, 이러한 문제 제기는 많은 전문가들, 특히 주류경제학을 신봉하는 전문가들로 대부분 구성된 국책연구원의 평소 입장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부 및 여당은 소득·고용·기업·교육·지역발전 등에 있어 잘 나가는 계층과 못 나가는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면서 중간계층이 사라지고 사회가 소수의 상류층과 다수의 하류층으로 이분화 되는 ‘양극화 현상’을 강조한다. 반면, 그 반대의 입장에서는 최근 나빠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중산층이 65~70%에 이를 정도로 우리나라는 소득수준에 비해 분배구조가 여전히 양호한 나라일 뿐 아니라 심화된 빈부격차는 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그 책임이 있고 ‘양극화’는 빈부격차를 과장하고 계층간 갈등을 조장하는 선동적 용어로 극소수의 잘 나가는 계층과 대다수 못사는 계층으로 사회를 이분화하고, 후자의 어려움이 전자에 의해 유발된 것처럼 보이게 하여 선거에서 바람몰이를 하려는 정략적 의도로 의심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양극화에 대한 인식의 차이도 존재한다. 한쪽에서는 ‘양극화’는 정의도 애매하고 이를 강조하는 현 정부의 경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프로그램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이념 논쟁으로 우리 사회를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최근 소득분배 양상을 보면 하위 20% 빈곤층의 소득점유율이 외환위기 이후 낮아졌지만, 상위 20% 부유층의 소득점유율도 2002년부터는 감소하는 추세라는 점에서, 즉 ‘빈익빈 부익부’가 아니라 ‘빈익빈’의 현상만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양극화가 아니라 신빈곤층의 증가라는 것이다. 양자의 격차가 벌어졌지만, 이 또한 양극화라기보다는 신빈곤층화 현상이 심화된 결과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경우 빈곤층의 확대의 원인을 장기적인 경제침체와 성장동력의 급격한 하락에 따른 일자리 소멸과 중산층의 붕괴 및 빈곤층으로의 전락으로 보고 있고, 따라서 해결책 역시 경기회복과 경제성장을 통해서 좋고 안정된 일자리와 소득을 창출해야 하고 이를 위해 기업규제를 제거하고 투자를 활성화하는 게 급선무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경우 97년 위기 전후로 우리 사회에서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사이 소득격차가 증가했고, 특히 저소득층 내에서도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이 다양하게 구분되던 예전과 달리, 저소득층 구성원간 소득 격차가 갈수록 줄어들고 동질화되면서 전체 인구가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두 집단으로 수렴되는, 문자 그대로 양극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저소득집단 내 소득격차가 줄어든 결과는 확연한 통계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양자 사이에 공통된 인식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양자는 그것이 양극화 심화이든 소득분배의 악화이든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노동에 따른 임금이나 사업소득 보다는 고소득층의 부동산임대소득과 주식배당소득 등 비근로소득의 급격한 증가가 저소득층과의 소득격차를 확대하고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편에서는 자산의 불평등이 최근 더 나빠진 것은 강도 높은 부동산정책이나 교육평준화 등 잘못된 정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바라보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이익과 손실이 공유되지 못하는 불공정게임인 성장제일주의나 세계화가 가져오는 ‘고용 없는 성장’ 및 비정규직의 증가 등 고용의 질의 악화를 고려하지 않는 개방 제일주의에서 찾고 있다. 예를 들어 97년 위기 이후 인플레이션, 부실기업 처리, 공적 자금투입에서 보듯이 지금까지 경제성장 과정의 비용손실의 처리는 선성장 후분배 논리의 미명아래서 국민들의 몫이었고, 500만~800만 명으로 추계되는 비정규직의 규모에서 보듯이 98년 위기 이후 고용의 질은 크게 악화되었다.

문제의 해결책은 교육, 그러나 철학은 빈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미 ‘양극화’ 문제는 사회적 이슈로 던져졌다. "국민들의 안정된 삶, 지속적인 성장, 사회 통합을 위해 양극화 해소에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노 대통령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대부분 동의한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주요한 해결책이 교육이라는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보고서 역시 환경의 변화 및 현 단계 한국경제의 문제에 대응 방안으로 교육(‘지식-혁신 강국’의 지향)을 제일의 과제로 삼고 있다. 예를 들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의 창출, 국민의 고용가능성을 높이는 ‘적극적 의미의 사회안전망의 구축’,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고용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등을 추진하기 위해 교육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삼고 있다.

그러나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은 일관성이 없고 혼란스럽다. 보고서의 지적대로 “현재의 교육체제가 과거 산업사회에서 형성된 것으로 지식기반사회․세계화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 양성에는 미흡하다”는데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지만, 보고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장원리가 작동하는 교육시장의 구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산업사회와 시장원리가 일란성 쌍둥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사실 시장원리에 기반을 둔 산업사회조차 교육은 시장원리로 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시장과 네트워크 등 다양한 기제가 작동하는 지식기반사회의 교육시스템을 시장원리로 구축하겠다는 것은 천박한 시장만능주의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시장과 정부의 역할 분담도 강조하고 있고, 경제는 기업 주도로 하고 정부의 자원을 교육에 투입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사실 대량생산시스템에 기초한 산업사회의 교육의 문제는, 특히 압축성장을 한 사회일수록 중앙정부 중심의 공교육시스템이라는 점에 있다. 그런데 지식기반사회․세계화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 양성, 그리고 창의성과 특성화를 위해서는 학교와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는 공교육시스템이 더욱 효과적이다.

진부하면서도 시각의 차이를 해소시키지 못한 보고서

보고서는 우리 경제의 문제 중 하나로 ‘세계화의 진전’이라는 대외환경의 변화를 지적하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用세계화’ 전략, 즉 ‘사회안전망을 갖춘 글로벌 강국’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세계화를 세계무역기구(WTO) 출범과 함께 빈부격차, 양극화, 고용 악화 등의 주범으로 비난하고 있다. 세계화와 양극화 해소를 동시에 이루기 위해서는 적어도 계층간 및 부문간 대타협이 전제가 되지 않고서는 실행가능성이 염려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세계화로 인한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 양극화의 대표적 그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게다가 세계화와 시장개방을 통해 얻은 자원에 대한 평가방식도 논란거리다. 개방에 따른 이익과 손실에 대해 전문가들이 계량화를 시도하지만 최근의 스크린쿼터의 축소를 둘러싼 견해의 차이에서 보듯이 정확한 계량화는 어려운 일이다. 이익과 피해에 대해 적어도 이해관계자간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데 이는 정치적 리더십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밖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격차가 확대되는 추세 속에서 양자간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중소기업의 혁신역량 강화 및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혁신형 중소기업의 육성정책 추진이 미흡하다는 지적 등은 너무 진부하다. 어느 옛날부터 해왔던 소리인가. 마지막으로 보고서에 등장한 ‘10년 내 국민소득 3만 달러 달성’의 비전도 정치적 구호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보고서를 작성한 전문가들은 환율의 하락이나 인구감소 추세 속에서 그 수치가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최배근 운영위원장(건국대 경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