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의 대중(對中) 경제의존도 급증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필자가 2004년 4월(한겨레21 2004년 4월 507호 ‘지구촌경제’ 칼럼 “김정일위원장 방중(訪中)의 정치경제학” 참조)에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의 급증에 대한 우려를 처음으로 제기한 이래 북한과 중국이 더욱 밀착되면서 일부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 혹은 ‘위성국가’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일부 북한 전문가들이 이를 지나친 기우(杞憂)로 비판하면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증가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북중 관계 밀착화를 확대해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내세우는 주요 근거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이라는 현실 아래에서 북한과 중국 간의 경제협력 강화는 북한의 불가피한 선택으로 양국의 경제관계는 정치적 의도라기보다는 중국의 고성장에 따른 자연스런 영향력 확대 과정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즉 북한의 대중국 의존 심화 현상은 중국 상품의 가격경쟁력, 북한 원자재에 대한 수요 급증, 지리적 인접성 등에서 기인하고 있으며, 특히 고도 경제성장에 따른 동북3성 개발이 본격화하고 있기에 이 같은 이점들을 배경으로 북중 경제관계는 더 긴밀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 북중간의 경제관계의 확대는 북한의 개혁·개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로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즉 이들은 대외의존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체제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나아가 이들은 북중 경제관계의 확대로 인해 미국의 대북 경제봉쇄와 같은 억압책은 중국이 동참하지 않는 한 실효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한 의존도만 더 높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며 최근 미국의 금융제재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미국이 예상하는 것보다 작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북중 경제관계의 확대 및 심화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중국 투자기업들이 북한의 시장경제 확산의 주체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갑작스런 북한 경제와 북한 체제의 붕괴가 우리에게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점에서 북한과 중국의 경제협력 확대는 북한경제 회복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남북경협의 확대가 제한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북중 경제협력의 확대는 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긍정적 효과들은 한국과 중국이 북한의 안정적인 체제 전환과 경제성장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고 있는 결과라 할 수 있다.
경제회생인가? 중국으로의 편입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대중 경제의존도의 심화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점들이 있다. 무엇보다 한국은행의 추정에 따르면 북한경제는 사회주의권의 붕괴 영향을 받기 시작한 90년 무렵부터 경제가 후퇴하여 98년까지 마이너스(-) 성장이 계속되었다. 예를 들어, 북한의 총무역액은 90년 41억8천3백만 달러에서 98년에는 16억6천4백만 달러, 즉 90년 무역액의 약 40%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후퇴하였다. 그 결과 GNP 역시 90년 232억 달러에서 98년에는 126억 달러, 즉 90년의 54% 수준으로 후퇴하였다. 그러나 북한경제는 99년부터 후퇴가 중단되고 더딘 속도지만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주지하듯이 98년 2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발표, 그 해 6월과 11월 각각 정주영 명예회장의 소몰이 방북과 금강산관광 첫 출항 등 남북관계가 급진전되고 이에 따른 대외환경의 커다란 개선이 한 몫을 하였다.

그러나 2004년 북중 교역액만은 90년 수준(4억8천3백만 달러)의 약 3배로 크게 증가하였다.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북중무역의 증가는 2000년 이후 북한 GNP를 연평균 3.5% 포인트 이상 증가시켰고 이는 이 기간의 북한의 연평균 GNP 성장률 2.1%보다 1.4% 높은 것으로 북중 무역의 증가가 없었다면 2000년 이후 북한경제가 다시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북핵위기가 장기화되면서 지난해부터 다시 북한이 1990년대 중반 겪었던 최악의 식량난을 다시 겪을지도 모른다는 국제사회의 경고가 나오고 있고, 북한이 식량난 해결을 위해 국가 총동원령을 내릴 정도로 북한경제는 취약한 실정이다. 이는 아직 북한의 경제가 1990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중 무역이 북한경제에서 얼마나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 북중 무역이 중국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미미한 정도다. 2004년 기준으로 북중 무역액이 북한 총무역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9%나 차지하는 반면, 중국 전체 무역액(1조2,882억 달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1%에 불과하다. 중국의 의지에 따라서는 북한경제가 얼마든지 순식간에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이다.
동북진흥은 ‘윈-윈’전략이 아니다
그나마 현재 북중 경제교역의 내용을 보면 어패류나 의류 등 보세무역의 대상인 소비재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철강, 광, 광물성연료, 아연과 알루미늄 등 비철금속들, 가공하지 않은 원목 등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최근의 중국의 투자는 혜산청년동광, 무산철광산, 용등탄광 등 북한의 지하자원에 집중되고 있다. 북중간 비대칭적 경제구조 속에서 이를 ‘윈-윈’ 전략이라 할 수 있는가? 전 세계가 자원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자원의 안정적 확보가 절대과제로 된 중국의 입장에서는 실리까지 챙기고 있다. 또한, 북중간 경제관계의 확대가 북한의 개방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도 불분명하다. 북중 교역의 급증에도 불구하고 2004년 북한경제의 무역의존도는 17%로서 1990년의 18%에도 못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해 말부터 북한이 1990년대 중반부터 사실상 붕괴된 식량배급제를 재가동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을 정도로 체제 개혁에 소극적이다.
마지막으로, 북한경제가 동북3성에 대한 무역의존도(2004년 기준 동북3성과의 무역규모는 72%)가 큰 이유는 경제적 요인들(지리적 인접성이나 세제감면 혜택 등)에서 비롯하는 것이기에 이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으로 전락할 일부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너무 순진하다. 2002년 9월 북한의 신의주 특별행정구 발표와 중국의 양빈장관 구속 사태를 잊었는가? 필자가 오래 전에 지적했듯이 이는 중국의 동북3성 개발(동북공정)과 연계되지 않는, 즉 독립적인 북한의 개방과 개발 전략을 용납할 수 없다는 중국의 입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주지하듯이, 중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현재 중국의 유력한 차세대 지도자로 꼽히고 있는 보시라이(薄熙來ㆍ55) 상무부장이 랴오닝(遼寧)성장 시절(2001년~2004년 2월)에 신의주와 단둥을 묶는 ‘조-중 경제특구’를 추진하였다. 중국은 서부개발 다음으로 동북지역개발을 주요 역점 사업으로 삼고 있다. 2002년 11월 28일자 ‘홍콩경제일보’의 지적을 들지 않더라도 중국이 양빈을 구속한 것은 북한에 대한 공식적인 불만을 표시한 것이었다. 중국이 북한에 식량 및 원료 등을 원조해준 것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중대 문제에 관해 중국과 협의한다는 조건이 전제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해부터 중국이 홍콩ㆍ상하이에 이어 랴오닝성의 선양과 다롄에 금융ㆍ물류허브 건설 등 대규모 프로젝트를 착수한 것도 동북3성 지역의 인구 3억~4억 규모의 시장을 직접 겨냥한 것이며 아울러 북한의 신의주 개발 등 북한의 개방에 대응한 사전포석의 성격이 짙다.
현재 북한경제와 동북3성과의 교역관계의 중심이 되는 곳은 단둥이다. 단둥은 북중간 거래가 가장 활발한 지역으로 북중 무역의 50% 이상이 이곳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더욱이 단둥시가 북한과의 경제협력 강화를 위해 북중 압록강 대교 건설, 경의선 철도 중 북한 철도구간에 대한 중국의 원조프로젝트 추진, 대동항 확장과 북중해상운송로 재개설, 대북 자유무역지대 설립 등에 대한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배경과 구조를 이해할 때 연초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이후 흘러나오는 ‘신의주 특구 재추진’설도 최소한 양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북중 경제관계 밀착화의 현실이다.
실종된 서울의 리더십과 아시아네트워크
북중 경제관계의 심화를 긍정적으로 보는 주장들이 (미국의 한반도정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북중관계의 확대가 미국의 대북경제봉쇄에 대한 부정적 효과에 기초한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한반도문제에 대한 이해관계에서 미국과 중국은 칼라만 다를 뿐이지 결코 본질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앞문으로 호랑이를 내쫓고 뒷문으로 늑대를 불러들이는 우(愚)를 우리는 19세기말부터 수차례에 경험하였다. 필자가 일찍부터 북핵문제는 핵문제 이후의 북한문제와 분리하여 사고할 수 없음을 주장한 바가 있다. 최근의 북핵문제를 보면 이미 북한문제와 같이 가고 있음이 확인된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두개의 코리아를 통합시켜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는 반면, 주변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이해와 충돌되는 한 한반도 및 동북아 질서의 변화를 수용할 없는 입장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 당사국들의 협조는 물론이고 양보를 끌어낼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우리는 주변 이해당사국들의 양보를 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교섭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우리는 주변 4강 어느 국가에도 우리의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우리의 대중국 교섭력이 확보되지 않는 상황이 중국의 대북 경제진출 확대를 우려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필자가 오래 전부터 주장했듯이, 우리의 시야를 한반도 주변의 4강 외교에서 ‘인도 등 서남아시아-중앙아시아-중동-아세안-오세아니아’ 등을 잇는 ‘아시아네트워크’ 구축과 리더십의 발휘로 확대시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시아네트워크’ 리더십만이 한반도 평화와 민족통합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아펙(APEC)과 아셈(ASEM)의 협력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최배근 운영위원장(건국대 민족통일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