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이니셔티브와 기로에 선 서울

by 조민 posted Apr 21, 2006

북핵문제의 해결 전망이 뚜렷하지 않은 가운데 북한과 중국의 밀착으로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북한뿐이 아니다. 한ㆍ미관계가 시험대에 오른 상황에 비해 한ㆍ중 관계는 우호적인 분위기가 연출되면서 한반도가 중국의 영향권 아래 급속도로 빠져 들어가는 모습이다.

지난 15일 중국의 차오강촨(曹剛川) 국방부장(장관)이 한국을 방문했다. 차오 부장은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북한을 방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조명록 군 총정치국장,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등을 만난 바 있다. 차오 부장의 한국 방문은 한ㆍ중 ‘군사 교류’에 시동을 거는 것으로 17일 열린 한ㆍ중 국방장관 회담에서는 서해상의 우발 사태에 대비한 해ㆍ공군 간 핫라인 설치를 논의했다. 반면 2005년 10월 한ㆍ미연례안보협의회 참석차 방한한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2박3일 동안 숙소인 호텔 앞 등에서 반미 시위를 당했다. 차오 부장의 방한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변화하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 ; 결일(結日)-연한(聯韓)-견중(牽中)-변북(變北)  

부시 대통령은 지난 3월 미국의 글로벌 국가안보전략을 담은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를 통해 미국 안보전략의 기본방향과 실천 과제들을 밝혔다. 총 49쪽의 보고서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면서 강한 불만을 표출했는데 러시아에 대해서는 민주적 자유 가치관 훼손을 비난했고, 중국에 대해서는 정치자유화 없이는 경제자유화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정치자유화를 촉구하는 동시에 환율문제를 비롯한 시장경제 개혁을 요구했다. 또 국제사회의 주요 일원으로서 중국의 책임있는 행동을 촉구했다.

이와 함께 백악관은 동맹과 ‘변환외교’(transformational diplomacy)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집권 1기의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이 어느 정도 수정될 수 있음을 시사하였다. 이는 ‘9.11’ 이후 전 세계를 상대로 한 테러와의 전쟁, 석유자원 고갈에 따른 에너지 확보경쟁, 군사력 강화 등 열강들 사이의  21세기 신패권 각축전 속에서 미국의 세계전략의 불가피한 변화를 말해주는 것으로 주목된다.

한편, NSS 발표를 통해 미 행정부는 핵문제와 그 이외의 북ㆍ미 양자 현안을 병행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였는데 북한의 위폐와 마약 불법거래, 미사일 위협 등의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따른 국가적, 경제적 안보를 지키는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대북정책의 변화는 최근 북ㆍ중간 경제밀착의 가속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은 북ㆍ중간 경제교류 강화가 북한의 개방을 유도해 북핵문제의 해결로 전개되기 보다는 현재의 ‘불법적인 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판단할 것이다. 또 북한이 중국에 예속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동북아 전략구도의 변화를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미ㆍ일간 공고한 결합과 함께 한국과의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중국을 견제하는 한편 북한의 변화를 추구하려 한다. 이러한 미국의 동북아 구상은 ‘결일(結日)-연한(聯韓)-견중(牽中)-변북(變北)’ 전략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 그들과 함께 하는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중국 측으로 기울어질 것인가 하는 데에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즉, 미국은 한국의 선택 방향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양국 간 공통의 인식기반이 확립되지 못한 상태로 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일본과의 FTA(자유무역협정)체결을 뒤로 미룬 채, 한국과의 FTA체결에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 역시 한국을 미국의 동북아 전략구도에 묶어두기 위한 의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자주국가’ 한국은 더 이상 한국이 ‘과거의 한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미국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처럼 미국의 동북아 전략 구도는 한국의 선택 방향에 의해 시험받고 있으며, 한국의 협력 없이는 관철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바로 여기에 미국의 딜레마가 엿보인다. 한국 역시 미국의 딜레마를 즐길 수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니다.  



중국의 대(對)한반도 전략 ; 변방의 안정 및 서울 · 평양 등거리 조정

중국은 지난해 10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의 평양 방문을 통해 북한의 정치적 후견자로서의 위상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은 한ㆍ중 수교 이래 비대칭적이었던 대한반도정책의 변화를 통해 북한의 존재 가치를 재확인하는 한편,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의 한반도 북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차단하는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북한 끌어안기’ 정책은 중국의 동북3성 개발전략과 연동된 변방 안정화 정책에서 비롯된다. 2005년 6월 발표된 ‘동북지역 대외개방 가속화 방침’ 문건(36호 문건)은 동북진흥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선언문이었다. 중국의 동북3성은 20세기 초 근대화시기에 중화학공업 중심 지역이었으나 개혁개방의 우선순위에 밀려 상대적으로 낙후한 지역이 되고 말았다. 이로써 중국의 지역 개발 형태는 1세대(동북)-2세대(남부·동부 연안)-3세대(서부)를 거쳐 다시 동북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안정적인 경제발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주변지역이 안정되어야 하며, ‘36호 문건’에서 밝혔듯이, 이를 위해서는 국경을 접한 국가들과의 경제교류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서 ‘동북진흥 프로젝트’의 일환이자, 변방 안정 차원에서도 북한과의 경제교류 문제가 급부상하게 되었다.

중국과 북한과의 밀착관계에 대해 국제위기그룹(ICG)의 최근 보고서(“중국과 북한: 영원한 동지인가?”)에 의하면 중국의 대북정책 우선순위는 다음과 같다. ① 한반도 전쟁발발로 인한 경제적 손상 방지 ② 미국의 통일한국 지배 방지 ③ 북한의 개발 계획에의 편입을 통한 동북3성의 경제적 안전 확보 ④ 대북원조의 무역과 투자로의 대체 ⑤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여 자국과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의 신뢰 획득 ⑥ 두 개의 한국의 현상태 유지를 통한 양국에 대한 영향력 확보 및 대만문제에 관해 미국에 대한 지렛대로 북한 활용 ⑦ 북한 핵무장으로 인한 일본과 대만의 핵무장 유도 상황 회피 등이다.

이 보고서는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중국 스스로 인정하는 것보다는 크고 외부에서 믿는 것보다는 작다고 하면서, 평양과 서울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위협하거나 한반도에 불안정을 야기한다고 믿어지는 어떠한 정책도 승인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약화되는 서울의 위상과 역할

이처럼 서울과 워싱턴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져 가는데 비해, 평양과 서울에 대한 베이징의 영향력은 크게 증대되고 있다. 북한은 중국의 대북지원정책에 편승하여 대중(對中) 경쟁심을 유발시키면서 남한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 할 것이며, 미국은 대북압박을 통해 동북아에서 헤게모니의 회복을 추구하지만 남한의 협조 없이는 뚜렷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난처한 국면에 처했다. 문제는 이 와중에 서울의 위상과 역할이 명확히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장 변화하는 한ㆍ미동맹의 성격을 새롭게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한ㆍ미동맹은 우선 군사동맹으로, 이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lobal Posture Review: GPR)의 일환으로 주한미군 감축 및 재배치에 따른 한ㆍ미간 이견이 드러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동맹의 보다 근본적인 성격으로 과거 냉전시대와는 달리 동맹의 조건인 공동의 적(敵) 또는 공동의 위협에 대한 한ㆍ미간 공통인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로 여기에서 양국 간 균열점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21세기의 경쟁국가로 보고 특히, 군사전략상 가상적국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더욱이 북한은 ‘불법국가’로서 미국 안보에 위협적인 국가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과 달리 중국을 가상적국으로 여기지 않으며 특히, 북한은 민족 중심적 입장에서 평화와 번영의 동반자로 인식하고 있다. 이처럼 공동의 적, 공동의 위협실체에 대한 한ㆍ미 간 인식 차이가 동맹의 성격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미국은 군사동맹 성격의 확인보다, “누가 친구이며, 누가 적인가”, “한국의 궁극적 선택 방향은 어느 쪽인가?”에 대한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주한미군의 위상변화에 대한 이해의 불일치와 갈등보다는, 바로 한ㆍ미 동맹의 근본적인 성격 문제가 시험받고 있는 것이다. 미ㆍ일 FTA를 뒤로한 채 한ㆍ미 FTA를 먼저 강요하는 까닭 역시 한국을 미국과의 경제적 유대로 굳건히 묶어두기 위한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반도는 미국의 세계전략 구도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과 미국과의 동맹 문제는 양국 간 21세기 미래가치에 합의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한국(한국 정부)은 통일을 비롯한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뚜렷한 입장이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엉거주춤한 입장은 대내외적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전략적 판단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조민 운영위원(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