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시계와 세계사 흐름의 불일치

by KG posted Apr 21, 2006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말 그대로 ‘복잡계’라 할 수 있다. 흔히 복잡계는 수많은 구성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 구성요소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다양한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시스템 혹은 세계로 이해하는 반면, 복잡계를 이해하는데 기존의 지식들은 근본적인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한미간 FTA 추진과 관련하여 어느 연구원의 분석결과가 논란의 중심에 있는데 현재의 경제이론들은 현재의 복잡한 국제상거래(와 그 효과)를 분석하기에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즉 전문가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과 한계에 대해 좀더 솔직하지 못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양분시키는데 일조를 하게 된다.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들은 대개가 우리만의 고립된 이슈들이 아닌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고령화와 저출산율, 청년층실업과 고용의 불안정, 지구온난화와 에너지 문제 등 어느 하나 만만한 주제가 아니다. 복잡계에서는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새로운 질서가 ‘창발(emergency)’되는 점에 주목하듯이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슈들은 하나하나가 새로운 질서를 조직해내는 동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반복되는 에너지 소모적 갈등

그런데 우리 사회를 양분시키고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경우들은 대개가 20세기 서구 사회가 경험 속에서 축적한 보수와 진보의 기준으로 해석하는데서 비롯하는 것들이다. 서구 사회의 보수와 진보가 2차 대전 이후, 여기에 동의를 하기 싫다면, 최소한 1960년대 이후 방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그 낡은 구분에 우리의 소중한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있는 것이다. 세계 전체를 보더라도 어느 사회는 사회의 다원화 확산에 따른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자라나는 어린 세대부터 교육을 통해, 그리고 단기적으로는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 차원보다는 작은 지역 단위부터 제도의 적응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 반면, 어느 사회는 에너지 소모적인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새로운 한반도 질서의 창출을 통해 동북아와 인류사회 전체에 기여를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우리의 시대적 과제 또한 다르지 않다. 어떤 이는 오늘의 시대를 ‘미·중 양강 시대’라 부른다.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독주를 해오던 미국이 통제력과 영향력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반면, 중국이 모두의 예상보다 빠르게 부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미국과 중국 중심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읽는데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한반도 질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주요변수인 미국과 중국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은 하나의 칼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그들을 고정된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상호작용을 주고받은 수많은 것들(국가, 사건, 시민사회, 경제, 문화 등)에 의해 그 모습이 규정된다. 즉 미국과 중국의 칼라는 외부에 의해 영향을 받기도 하고 내부에 의해 영향을 받기도 한다. 현재 미국은 새로운 ‘도전자’인 중국을 포위하고 있고, 이런 압박에 대해 중국은 고도성장을 바탕으로 아시아는 물론이고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미국이 자신의 안마당이라고 생각하는 중남미까지 자신의 관계망을 확장시키면서 미국의 외교적 포위망을 뚫고 미국에 대한 ‘역포위’ 작전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은 동북아질서의 독립변수가 될 수 있는가

이처럼 세계질서라는 복잡계는 미시적 단위에서 중요한 변화들이 빠르게 발생하고 있다. 그 변화들을 독립적으로 인식할 때는 거시적 세계질서가 안정적이고 변화 없이 반복되는 것으로 보일 것이지만, 용인될 수 없는 비평형상태가 심화되는 등 세계사의 시계는 새로운 질서의 창출을 향해 치닫고 있다. 한반도가 세계질서의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이 해외의 일반적 시각이다.

문제는 동북아 질서는 물론이고 한반도 질서에 대해 변화를 가져올 독립변수에 한국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 해외의 분위기라는 점이다. 이는 한반도 질서에 변화를 미칠 수 있는 우리의 선택이 자유롭지 못하다거나 미국과 중국을 통해 우리의 목표를 관철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의 생명을 운에 맡기고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정부 등은 당연히 동의하지 않을 것이지만 한반도의 질서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선택들의 결정과정에서 우리가 상대국들의 호의를 기대하는 것 이외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특별히 없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한반도 질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독립변수가 되기 위한 전제로서 내부의 통합이나 혹은 다른 독립변수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의 확보가 전제되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우리의 미래는 밝지 못하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자명해진다. 공동체의 비전 확보, 국가 아젠다를 추진할 시스템의 마련, 그리고 사회적 합의와 통합을 끌어낼 리더십의 확보 등이 바로 그 과제인 것이다.

최배근 운영위원장(건국대 민족통일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