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종욱 박사, 홍익인간의 꿈이 되어 돌아오다

by KG posted May 29, 2006
코리안의 DNA 실현할 제2의 이종욱 탄생을 기대하며

故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급서 소식에 코피아난 UN 사무총장은 “인류는 오늘 위대한 한 인간을 잃었다"고 애도했다. WHO 192개 회원국을 대표해 65억 인류의 건강을 책임졌던 한국의 슈바이처 故 이종욱 박사. 지난 20일 WHO 연례총회을 앞두고 집무수행 중 갑자기 쓰러져 뇌혈전 제거수술을 받았지만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난 고인이 한줌의 재가 되어 조국으로 돌아왔다.



고인을 잃은 세계의 반응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세계 최고의 보건 책임자로서 폐결핵, 에이즈에서 소아마비 근절에 이르기까지 수백만 명의 건강을 개선시키기 위해 지칠 줄 모르게 노력해왔다"며 서거 소식을 듣고 슬픔에 잠겼다고 말했다.

사스로 홍역을 치른 중국 역시 “고인은 국제 보건 교류와 협력을 위해 훌륭한 역할을 했으며 중국과 WHO의 관계 발전 및 중국의 보건사업에도 크게 이바지했다"면서 중국도 진실한 벗을 읽게 되어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23일 류젠차오 외교부 대변인이 밝혔다.

홍익인간 실천한 위대한 인간

고인의 삶은 한마디로 봉사였다. 서울대 공대 졸업 후 다시 의대에 입학 의사 길을 택했다. 재학시절에는 안양시 라자로마을에서 나병환자를 돌봤다. 졸업 후에도 개업을 하지 않고 봉사활동에서 만나 결혼한 일본인 레이코 여사와 함께 태평양 사모아 섬으로 봉사를 떠났다.

1983년 남태평양의 피지에서 나병 관리책임자로 근무를 시작하면서 WHO와 인연을 맺은 고인은 그 후 WHO 서태평양지역 사무처 질병관리국장(1993∼94)을 거쳐 94년부터는 WHO 본부 예방백신사업국장 및 세계아동백신운동 사무국장을 역임했다.백신국장 시절 소아마비 유병률을 세계인구 1만 명당 1명 이하로 떨어뜨려 '백신의 황제'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2000년에는 결핵국장으로 자리를 옮겨 북한에 결핵치료제를 공급하는 등 19개 국가를 대상으로 결핵퇴치사업을 추진했다.

2003년 WHO 사무총장에 취임한 이후 3년 동안 고인은 긴급한 의료지원을 필요로 하는 60개국 이상을 방문했고, 에이즈를 비롯한 각종 질병의 퇴치기금 마련을 위해 각국 정부 지도자와 기업인, 유명인사들의 관심을 촉구하고 협력을 구하는데 헌신했다. 또 조류독감 등 위급한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국제적 협력시스템의 구축에 전력했다. 고인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초청으로 7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G8(선진7개국+러시아) 정상회담에서 연설할 예정이었다.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연례총회 연설을 준비하던 고인은 직원들에게 자신의 비전을 이렇게 밝혔다. “세계적인 노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약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병원이 없어서 검사와 진단,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23년 동안 WHO 활동을 통해 보여준 고인이 삶은 국경과 언어를 초월해 가난하고 병든 인류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즉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천하는 것 자체였다.

코리안 DNA 발현할 제2의 이종욱은 어디에

고인의 갑작스런 죽음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가 한국인 최초의 UN기구 수장이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 국민은 이 총장이 국제보건 협력의 강화와 전 세계인의 건강 증진에 크게 기여한 점을 오래 기억할 것”이라며 애도했다.

북한 역시 제네바 대표부를 통해 깊은 애도를 표시하고 “이종욱 총국장 선생이 사람들의 건강과 복지에 바친 공적은 우리 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오늘은 물론 내일에도 길이 남아 찬양을 받을 것"이라며 고인의 생애와 업적을 기렸다.

그러나 고인을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드높이 위대한 한국인 정도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고인의 뜻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어쩌면 제2, 제3의 이종욱의 탄생을 막는 길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고인은 한국의 이익을 국제기구에서 실현한 인물이 아니었다. 오로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천하는 인간으로서 국가와 국경을 초월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어찌 보면 고인에게 있어서 조국 대한민국은 아쉬운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경제규모 세계 11위 대한민국의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는 수준 이하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GDP 대비 정부개발원조의 비율은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하고 국제적인 기여와 지원에는 언제나 정치, 경제적 수지의 계산이 앞서기 때문이다. 수백만 동포의 아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제적 위험지역으로 경계를 받고 있는 북한이 모습은 또 어떠한가.

한 줌의 재가 되어 돌아온 故 이종욱 WHO 사무총장에게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의 DNA에는 틀림없이 홍익인간의 정신이 살아있다는 것이며, 8천만 Pan코리안의 DNA 역시 그와 같다는 사실이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장례식을 치른 고인의 시신은 화장된 뒤 28일 서울로 운구되었으며, 29일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 이글은 Wfocus.net 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