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역사에서 오늘의 정치를 이해해야
상하이에서 날아든 사진 한 장. 아시아 열 명의 정상이 손을 맞잡고 서 있었다. 중국의 후진타오를 축으로 러시아의 푸틴부터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즈스탄의 여섯 정상이 자리를 잡고 옵서버국인 이란의 마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을 위시하여 몽골과 파키스탄 및 아프간의 정상까지 함께 했다. 그에 더해 인도와 독립국가연합(CIS) 및 동남아국가연합(ASEAN)까지 함께 했으니 그야말로 아시아 대륙 정상회의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지경이다.
5주년을 맞는 상하이협력기구(SCO)가 튼튼히 자리를 잡았다. 6개국은 물론 옵서버국 4개국까지 15일의 오전 회의를 빼고는 모두 양자회담이다. 실질적인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반증이다.
그리고 특히 서방의 골칫거리이자 미-유럽의 공동협력사안인 이란을 포함시켰다. 이는 SCO 권역의 현안을 넘어서서 미-유럽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와 다른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반미블록을 넘어서는 큰 그림이다.
SCO, 대몽골제국의 부활인가
세계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우선 SCO 10개국의 권역만 보더라도 무언가 떠오를 것이다. 그것은 원(元)과 4개 한(Khan)국 즉, 대몽골제국의 최대 직할령이다. 그 곳이 공교롭게 SCO 10개국 권역과 겹친다.
그리고 인도와 동남아까지 함께 했으니 그야말로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세계 즉 유럽과 아랍의 중동을 제외한 아시아 전역이다. 다시 말해 탈레스 전투 이전까지 중화(中華)의 세계에서 교류는 있었으되 패권의 욕망을 품지 않던 저 멀리의 별세계를 빼고 자신들이 인지했던 세계 그 자체다.

하필이면 그 큰 그림에서 한국과 일본만 빠져있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현실에서는 누구나 아는 대척점 즉, 한국과 일본의 동맹관계 미국이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 일본을 부른다면 미국을 부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예 고려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점은 이채롭다. 무엇인가 껄끄러운 점이 분명 있을 텐데 아마 역사전쟁이 아닌가 싶다. 중화주의의 선민이자 주인(Owner)인 한족이 가장 싫어하는 치우와 연개소문의 나라, 그를 잇는 고려가 아닌가.
고려이자 한국은 베이징에서 그렇게 싫어하는 민주주의 선진국이다. 2002년 월드컵 붉은악마의 거리응원에까지 신경질의 반응을 보였던 그들인데 코리안과 마주 붙어서 도움될 것이 없다.
아시아에서 가장 기독교가 활발한 동네이며 그럼에도 온갖 종교가 잘 어울려 사는 다원주의 문명의 나라다. 여기까지 가면 참으로 중국에게는 위험한 존재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리고 철저히 배제하고픈 일본이 있다. 죽어도 중화의 질서에 편입이 불가능한 천황의 나라인 것이다.
중국이 몰려오고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중국에서 온 많은 인재들이 대한민국 곳곳을 누비고 있다. 새마을 운동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그들은 우리의 민주주의나 역사에는 관심이 없고 고도성장의 비밀을 캐기 위해 당 직할로 박정희 연구소를 9군데나 차렸던 사람들이다. 이제는 후진타오 주석까지 나서서 31개 성시(省市)의 간부들과 합숙하면서 새마을운동의 역사와 성공요인을 학습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35만명의 중국 공무원이 한국에서 새마을 연수를 받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미 고도성장의 블랙홀이 되었고 이제는 극심한 도농격차를 메울 비책을 찾아내어 사회통합을 이루어내고 그 힘을 바탕으로 조만간 눈에 확 띄는 굴기(堀起)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코리아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지금처럼 평양의 문제든 한ㆍ일 관계든 시간과 역량을 소모하며 태평세월 할 겨를이 없다. 반만 년 역사에서 그들이 패망해 요동과 만주와 한반도로 유이민이 온 경우는 많았지만, 지금처럼 이런저런 이유로 대규모로 모든 영역에서 파고든 적은 처음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조선처럼 다시 소중화(小中華)로 거듭 나야 할까. 아니다. 그 소중화의 아름다운 결론은 결국 망국노의 신세가 아니었던가. 불과 한 세기 전에 뼛속 깊숙히 새긴 교훈을 잊어버린다면 미래를 말할 자격조차 없다.
한반도를 뛰어넘는 네트워크 구축해야
방법은 하나일 지도 모른다. 네트워크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시아의 제네바 같은 역할이다. 괜히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중심이 된다고 나서다가 왕따 당하는 짓은 그만 두고, 원하는 이웃 국가들의 공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민족문제에 관한 한 낭만적인 사고를 버려야 할 때이다. 95년 전까지 동아시아 대륙을 다스린 만주족은 지금 동북3성 외에 만주라는 말도 못 쓰고 제 말과 글도 못 배우고 고작 20여 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한족을 다스리며 치발(薙髮)을 하게 하고 유조변(柳條邊)으로 만주의 출입을 엄금했음에도 결과는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13억 인구를 우습게 보다가는 한 세기 전보다 더한 천추의 후회를 남기게 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과거 역사는 오늘 정치의 틀이고 오늘의 정치는 곧 미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 이글은 Wfocus.net 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상하이에서 날아든 사진 한 장. 아시아 열 명의 정상이 손을 맞잡고 서 있었다. 중국의 후진타오를 축으로 러시아의 푸틴부터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즈스탄의 여섯 정상이 자리를 잡고 옵서버국인 이란의 마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을 위시하여 몽골과 파키스탄 및 아프간의 정상까지 함께 했다. 그에 더해 인도와 독립국가연합(CIS) 및 동남아국가연합(ASEAN)까지 함께 했으니 그야말로 아시아 대륙 정상회의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지경이다.
5주년을 맞는 상하이협력기구(SCO)가 튼튼히 자리를 잡았다. 6개국은 물론 옵서버국 4개국까지 15일의 오전 회의를 빼고는 모두 양자회담이다. 실질적인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반증이다.
그리고 특히 서방의 골칫거리이자 미-유럽의 공동협력사안인 이란을 포함시켰다. 이는 SCO 권역의 현안을 넘어서서 미-유럽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와 다른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반미블록을 넘어서는 큰 그림이다.
SCO, 대몽골제국의 부활인가
세계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우선 SCO 10개국의 권역만 보더라도 무언가 떠오를 것이다. 그것은 원(元)과 4개 한(Khan)국 즉, 대몽골제국의 최대 직할령이다. 그 곳이 공교롭게 SCO 10개국 권역과 겹친다.
그리고 인도와 동남아까지 함께 했으니 그야말로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세계 즉 유럽과 아랍의 중동을 제외한 아시아 전역이다. 다시 말해 탈레스 전투 이전까지 중화(中華)의 세계에서 교류는 있었으되 패권의 욕망을 품지 않던 저 멀리의 별세계를 빼고 자신들이 인지했던 세계 그 자체다.

하필이면 그 큰 그림에서 한국과 일본만 빠져있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현실에서는 누구나 아는 대척점 즉, 한국과 일본의 동맹관계 미국이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 일본을 부른다면 미국을 부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예 고려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점은 이채롭다. 무엇인가 껄끄러운 점이 분명 있을 텐데 아마 역사전쟁이 아닌가 싶다. 중화주의의 선민이자 주인(Owner)인 한족이 가장 싫어하는 치우와 연개소문의 나라, 그를 잇는 고려가 아닌가.
고려이자 한국은 베이징에서 그렇게 싫어하는 민주주의 선진국이다. 2002년 월드컵 붉은악마의 거리응원에까지 신경질의 반응을 보였던 그들인데 코리안과 마주 붙어서 도움될 것이 없다.
아시아에서 가장 기독교가 활발한 동네이며 그럼에도 온갖 종교가 잘 어울려 사는 다원주의 문명의 나라다. 여기까지 가면 참으로 중국에게는 위험한 존재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리고 철저히 배제하고픈 일본이 있다. 죽어도 중화의 질서에 편입이 불가능한 천황의 나라인 것이다.
중국이 몰려오고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중국에서 온 많은 인재들이 대한민국 곳곳을 누비고 있다. 새마을 운동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그들은 우리의 민주주의나 역사에는 관심이 없고 고도성장의 비밀을 캐기 위해 당 직할로 박정희 연구소를 9군데나 차렸던 사람들이다. 이제는 후진타오 주석까지 나서서 31개 성시(省市)의 간부들과 합숙하면서 새마을운동의 역사와 성공요인을 학습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35만명의 중국 공무원이 한국에서 새마을 연수를 받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미 고도성장의 블랙홀이 되었고 이제는 극심한 도농격차를 메울 비책을 찾아내어 사회통합을 이루어내고 그 힘을 바탕으로 조만간 눈에 확 띄는 굴기(堀起)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코리아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지금처럼 평양의 문제든 한ㆍ일 관계든 시간과 역량을 소모하며 태평세월 할 겨를이 없다. 반만 년 역사에서 그들이 패망해 요동과 만주와 한반도로 유이민이 온 경우는 많았지만, 지금처럼 이런저런 이유로 대규모로 모든 영역에서 파고든 적은 처음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조선처럼 다시 소중화(小中華)로 거듭 나야 할까. 아니다. 그 소중화의 아름다운 결론은 결국 망국노의 신세가 아니었던가. 불과 한 세기 전에 뼛속 깊숙히 새긴 교훈을 잊어버린다면 미래를 말할 자격조차 없다.
한반도를 뛰어넘는 네트워크 구축해야
방법은 하나일 지도 모른다. 네트워크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시아의 제네바 같은 역할이다. 괜히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중심이 된다고 나서다가 왕따 당하는 짓은 그만 두고, 원하는 이웃 국가들의 공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민족문제에 관한 한 낭만적인 사고를 버려야 할 때이다. 95년 전까지 동아시아 대륙을 다스린 만주족은 지금 동북3성 외에 만주라는 말도 못 쓰고 제 말과 글도 못 배우고 고작 20여 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한족을 다스리며 치발(薙髮)을 하게 하고 유조변(柳條邊)으로 만주의 출입을 엄금했음에도 결과는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13억 인구를 우습게 보다가는 한 세기 전보다 더한 천추의 후회를 남기게 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과거 역사는 오늘 정치의 틀이고 오늘의 정치는 곧 미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 이글은 Wfocus.net 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