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미국에는 ‘페리보고서’만 있는 게 아니었다.
북한 미사일 시험발사 위기가 한풀 꺾였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인터넷판은 21일 북한의 ‘대포동 2호’ 발사 논란과 관련, 북한의 위성 보유는 자주권 행사라고 하면서, “운반로켓 백두산 2호에 의한 인공지구위성 광명성 2호의 발사는 앞으로 언제든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한 달 후일 수도 있고 1년 후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즉, 앞으로 발사할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 시험발사가 임박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로써 초읽기에 들어갔던 북한 미사일 위기 상황은 일단 진정 국면을 맞이했다.
북한은 이어 “오늘의 사태가 심각하다면 지금 이 시각 무수단리에서 탄도미사일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강변하는 측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면서, “8년 전에 실증된 것처럼 대포동 소동으로 대결을 합리화하고 압력정책을 강행해도 조선은 끄덕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사태는 헤어날 수 없는 함정에 빠져들어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와 함께 “조선은 99년 9월 미사일발사 임시중단 조치를 발표했지만 부시 행정부 집권 후 조미(북미)사이의 대화가 전면 차단됐던 2005년 3월(외무성 비망록) ‘미사일 발사 보류는 어떤 구속력도 받은 것이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고 전했다. 발사 문제와 관련, <조선신보>는 “물론 그것이 미국이 주장하듯이 탄도미사일 발사시험이 임박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고 밝혀 유예 입장을 내비쳤다.
아직 미사일은 점화되지 않았다
왜 북한은 ‘자주권 행사’인 미사일 발사를 예정대로 즉각 강행하지 않았을까? 우선 북한은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대미협상을 강조하고 나섰다.
한성렬 UN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는 20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밝혀 미국이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와 함께 미국과 대화 단절로 미사일 카드를 빼들기는 했지만 미국의 대응 여부에 따라 최종 발사 여부를 재고할 수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지 않은 데는 시위만으로 위기의식을 조성했고, 대미 압박 목적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말하자면 쇼 비즈니스(show business) 효과를 충분히 거두었다는 자체평가 결과인가? 그와 반대로 미국의 초강경 대응에 은근히 겁을 먹고 철회할 수밖에 없었는가?
어쨌든 아직 미사일은 점화되지 않았다. 이제 이 국면에서 미국이 과연 북한과의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북한의 허장성세와는 달리 중국의 회유와 압력이 먹혀들었던지, 반대로 미국의 일관된 강경의지에 확신이 서지 않아 시간벌기로 유예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최근 며칠 사이의 미국의 반응을 짚어보자.
미국의 초강경 의지만 확인하나?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에 대해 980억 달러가 투입된 지상과 해상 배치 미사일 요격시스템을 실험모드에서 실전모드로 전환했다. 미사일 발사를 ‘도발 행위’로 간주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다. 더욱이 ‘현재 2척의 미해군 이지스함이 미사일방어체제(MD) 일환으로 북한 해역을 감시하고 있으며 이들은 미국의 요격미사일 사용을 유발하게 될 첫 감지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도 잇달았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19일(현지시각)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매우 심각한 문제이며 실로 도발적인 행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99년 자신들이 서명했고, 2002년 재확인한 모라토리엄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는 분명히 지난해 6개국 사이에 서명된 (9.19)공동성명의 일부”라고 말해 모라토리엄 파기는 공동성명 파기 결과가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미사일 발사는 북한이 “타협과 평화의 길 대신 다시 무력위협(saber-rattling)을 해 고립 심화를 자초하겠다는 뜻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비해 미국은 분명히 우방들과 협의할 것임을 강조했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도 부시 대통령이 10여 개 국 정상들과 통화를 갖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 가능성에 따른 대책을 협의하는 등 이 문제에 적극 대처하고 있음을 밝혔다.
한편 미 공화당 빌 프리스트 상원 원내대표는 CBS방송에 출연, 북한이 미사일 시험을 강행할 경우 미국이 군사행동을 취할 것으로 보는지를 묻는 질문에 “가능성이 있다”며, “미사일 시험발사는 미국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도 명백한 도발행위이기 때문에 모든 대응방안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군사적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북한은 미국의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여론몰이와 더불어 단호한 대응의지를 충분히 예상하지 못했을 수 있다. 따라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김정일 위원장이 미사일 발사 점화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그의 미래는 아무도 보장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미사일 발사의 대가가 명확히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판돈을 다 걸어야 한다면 그에겐 너무나 큰 도박이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좋았던 시절’은 없다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로 북한은 쏠쏠한 재미를 봤다. 북한은 제네바 기본합의(1994.10.24)와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1998.8.31)에 따른 대미협상 결과를 김정일 시대의 위업적인 두 개의 전취물로 여긴다. 모두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얘기다. 그 결과 지금까지 북한 대미협상의 지향점은 ‘그 좋았던 시절’의 북미관계로 되돌리는 데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미국은 그때의 미국이 아니다.
북한의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는 페리보고서를 끌어냈다. 1998년 하반기부터 북한의 금창리 지하 핵의혹시설 문제가 제기되고, 마침내 8월 31일 3단계 로켓을 북한이 시험 발사함으로써 미국의 대북정책의 근본적인 재검토가 요구되었다. 그해 말 클린턴 대통령은 페리(William Perry) 전 국방장관을 대북정책 조정관으로 임명하고 대북정책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다음해 페리는 방북(1999.5.25~28)을 통해 ‘포괄적 접근방안’을 제시했다. 즉, 북한이 핵 개발과 미사일 개발 및 수출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은 대북 제재 해제, 수교, 경제적 지원 및 체제보장을 제안했다. 곧이어 페리는 베를린 북ㆍ미 고위급 회담에서 북ㆍ미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지 않기로 약속한 것을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9월 15일 대북정책 권고안 즉, 페리보고서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페리보고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자제에 따른 대북 경제제재 일부 해제를 비롯하여, 핵ㆍ미사일 문제에 협력하면 궁극적으로 북미관계 정상화까지 추진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즉, 미사일 개발 포기에 대한 대가를 약속했다. 그러나 페리보고서의 접근방식은 당시 미 의회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던 공화당으로부터 신랄한 비판과 반발을 샀다.
1999년 ‘페리보고서’만 있는 게 아니었다
페리보고서 발표 이후 하원 국제관계위 벤자민 길만 위원장은 두 차례(10.13, 10.27)에 걸쳐 대북정책 관련 청문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공화당 의원 중심의 ‘대북정책자문그룹’은 11월 3일 북한의 위협에 관한 독자적인 보고서를 발표했다. 길만 위원장은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으로 하여금 벼랑끝 전술(brinkmanship)을 동원하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믿음만을 심어준 채 북한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고, 결국 대북정책은 실패로 끝났다고 선언했다.
청문회에서 공화당은 일방적 대북지원 재고, 중유 및 식량지원의 전용가능성 문제를 제기하였으며, 북한이 제네바 합의에도 불구하고 핵 개발을 계속해오고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제네바 합의를 재검토하고 북한에 대해 보다 강력한 구속력을 가진 협정을 체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대부분의 공화당 의원들은 미사일 개발은 김정일 정권의 심리적 안전판이기 때문에 향후 북한이 미사일 개발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전망했다.
당시 공화당이 내놓은 처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동맹국들에 대한 방위력 강화 둘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대한 자금지원 중단 셋째, 경제지원을 담보로 한 북한 미사일 개발프로그램 ‘매수’(buy-off) 방안재고 등을 포함한 새로운 대북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기서 특히, 미사일 개발 억제에 대한 대가 지불을 거부한다는 분명한 입장이 주목된다. 두루 아다시피 KEDO 종결을 비롯하여 방위력 강화 제안도 부시 행정부에서 착착 실행에 옮겨졌다.
마지막으로 공화당 의원들은 북한과의 협상 시, 정책 집행에 있어서 확고한 자세를 견지하고, 북한의 호전성에 단호히 대처하며, 북한이 미국의 결연한 의지를 오판하지 않도록 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마치 1999년의 미 의회 분위기가 2006년 부시 행정부의 북한 미사일 문제에 대한 태도로 되살아난 듯하다.
교착 국면 풀어갈 ‘낮은 수준’의 테이블 마련해야
여기서 잊어서는 안 될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이 시기 유력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의 참모들은 부시의 대북정책은 “북한이 위협적으로 나오면 제공한 당근마저 철회하고 북한 고립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G. 슐츠, P. 울포위츠, R. 졸릭, C. 라이스, R. 아미티지 등 이런 사람들이 그 당시의 참모들 면면이다.
또 하나 덧붙이고 싶은 점은 페리보고서와 공화당보고서 모두 북한의 생화학무기 보유와 마약밀매 및 화폐위조 등 국제범죄행위를 지적하였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대미협상용으로 미사일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나 동북아 국제정세의 흐름과 특히, 부시 행정부 대북정책의 기본방향과 실천적 의지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보다 신중한 판단이 아쉽다.
북한과 미국 모두 미사일 위기로 인한 교착 국면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북한에게는 퇴로를 틔어주고, 미국에게는 체면을 세워주어야 한다. 비공개적이고 비공식적 형태의 ‘낮은 수준’의 협상 테이블이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 이글은 Wfocus.net 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북한 미사일 시험발사 위기가 한풀 꺾였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인터넷판은 21일 북한의 ‘대포동 2호’ 발사 논란과 관련, 북한의 위성 보유는 자주권 행사라고 하면서, “운반로켓 백두산 2호에 의한 인공지구위성 광명성 2호의 발사는 앞으로 언제든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한 달 후일 수도 있고 1년 후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즉, 앞으로 발사할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 시험발사가 임박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로써 초읽기에 들어갔던 북한 미사일 위기 상황은 일단 진정 국면을 맞이했다.
북한은 이어 “오늘의 사태가 심각하다면 지금 이 시각 무수단리에서 탄도미사일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강변하는 측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면서, “8년 전에 실증된 것처럼 대포동 소동으로 대결을 합리화하고 압력정책을 강행해도 조선은 끄덕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사태는 헤어날 수 없는 함정에 빠져들어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와 함께 “조선은 99년 9월 미사일발사 임시중단 조치를 발표했지만 부시 행정부 집권 후 조미(북미)사이의 대화가 전면 차단됐던 2005년 3월(외무성 비망록) ‘미사일 발사 보류는 어떤 구속력도 받은 것이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고 전했다. 발사 문제와 관련, <조선신보>는 “물론 그것이 미국이 주장하듯이 탄도미사일 발사시험이 임박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고 밝혀 유예 입장을 내비쳤다.
아직 미사일은 점화되지 않았다
왜 북한은 ‘자주권 행사’인 미사일 발사를 예정대로 즉각 강행하지 않았을까? 우선 북한은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대미협상을 강조하고 나섰다.
한성렬 UN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는 20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밝혀 미국이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와 함께 미국과 대화 단절로 미사일 카드를 빼들기는 했지만 미국의 대응 여부에 따라 최종 발사 여부를 재고할 수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지 않은 데는 시위만으로 위기의식을 조성했고, 대미 압박 목적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말하자면 쇼 비즈니스(show business) 효과를 충분히 거두었다는 자체평가 결과인가? 그와 반대로 미국의 초강경 대응에 은근히 겁을 먹고 철회할 수밖에 없었는가?
어쨌든 아직 미사일은 점화되지 않았다. 이제 이 국면에서 미국이 과연 북한과의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북한의 허장성세와는 달리 중국의 회유와 압력이 먹혀들었던지, 반대로 미국의 일관된 강경의지에 확신이 서지 않아 시간벌기로 유예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최근 며칠 사이의 미국의 반응을 짚어보자.
미국의 초강경 의지만 확인하나?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에 대해 980억 달러가 투입된 지상과 해상 배치 미사일 요격시스템을 실험모드에서 실전모드로 전환했다. 미사일 발사를 ‘도발 행위’로 간주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다. 더욱이 ‘현재 2척의 미해군 이지스함이 미사일방어체제(MD) 일환으로 북한 해역을 감시하고 있으며 이들은 미국의 요격미사일 사용을 유발하게 될 첫 감지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도 잇달았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19일(현지시각)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매우 심각한 문제이며 실로 도발적인 행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99년 자신들이 서명했고, 2002년 재확인한 모라토리엄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는 분명히 지난해 6개국 사이에 서명된 (9.19)공동성명의 일부”라고 말해 모라토리엄 파기는 공동성명 파기 결과가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미사일 발사는 북한이 “타협과 평화의 길 대신 다시 무력위협(saber-rattling)을 해 고립 심화를 자초하겠다는 뜻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비해 미국은 분명히 우방들과 협의할 것임을 강조했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도 부시 대통령이 10여 개 국 정상들과 통화를 갖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 가능성에 따른 대책을 협의하는 등 이 문제에 적극 대처하고 있음을 밝혔다.
한편 미 공화당 빌 프리스트 상원 원내대표는 CBS방송에 출연, 북한이 미사일 시험을 강행할 경우 미국이 군사행동을 취할 것으로 보는지를 묻는 질문에 “가능성이 있다”며, “미사일 시험발사는 미국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도 명백한 도발행위이기 때문에 모든 대응방안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군사적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북한은 미국의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여론몰이와 더불어 단호한 대응의지를 충분히 예상하지 못했을 수 있다. 따라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김정일 위원장이 미사일 발사 점화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그의 미래는 아무도 보장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미사일 발사의 대가가 명확히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판돈을 다 걸어야 한다면 그에겐 너무나 큰 도박이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좋았던 시절’은 없다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로 북한은 쏠쏠한 재미를 봤다. 북한은 제네바 기본합의(1994.10.24)와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1998.8.31)에 따른 대미협상 결과를 김정일 시대의 위업적인 두 개의 전취물로 여긴다. 모두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얘기다. 그 결과 지금까지 북한 대미협상의 지향점은 ‘그 좋았던 시절’의 북미관계로 되돌리는 데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미국은 그때의 미국이 아니다.
북한의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는 페리보고서를 끌어냈다. 1998년 하반기부터 북한의 금창리 지하 핵의혹시설 문제가 제기되고, 마침내 8월 31일 3단계 로켓을 북한이 시험 발사함으로써 미국의 대북정책의 근본적인 재검토가 요구되었다. 그해 말 클린턴 대통령은 페리(William Perry) 전 국방장관을 대북정책 조정관으로 임명하고 대북정책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다음해 페리는 방북(1999.5.25~28)을 통해 ‘포괄적 접근방안’을 제시했다. 즉, 북한이 핵 개발과 미사일 개발 및 수출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은 대북 제재 해제, 수교, 경제적 지원 및 체제보장을 제안했다. 곧이어 페리는 베를린 북ㆍ미 고위급 회담에서 북ㆍ미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지 않기로 약속한 것을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9월 15일 대북정책 권고안 즉, 페리보고서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페리보고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자제에 따른 대북 경제제재 일부 해제를 비롯하여, 핵ㆍ미사일 문제에 협력하면 궁극적으로 북미관계 정상화까지 추진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즉, 미사일 개발 포기에 대한 대가를 약속했다. 그러나 페리보고서의 접근방식은 당시 미 의회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던 공화당으로부터 신랄한 비판과 반발을 샀다.
1999년 ‘페리보고서’만 있는 게 아니었다
페리보고서 발표 이후 하원 국제관계위 벤자민 길만 위원장은 두 차례(10.13, 10.27)에 걸쳐 대북정책 관련 청문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공화당 의원 중심의 ‘대북정책자문그룹’은 11월 3일 북한의 위협에 관한 독자적인 보고서를 발표했다. 길만 위원장은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으로 하여금 벼랑끝 전술(brinkmanship)을 동원하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믿음만을 심어준 채 북한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고, 결국 대북정책은 실패로 끝났다고 선언했다.
청문회에서 공화당은 일방적 대북지원 재고, 중유 및 식량지원의 전용가능성 문제를 제기하였으며, 북한이 제네바 합의에도 불구하고 핵 개발을 계속해오고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제네바 합의를 재검토하고 북한에 대해 보다 강력한 구속력을 가진 협정을 체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대부분의 공화당 의원들은 미사일 개발은 김정일 정권의 심리적 안전판이기 때문에 향후 북한이 미사일 개발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전망했다.
당시 공화당이 내놓은 처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동맹국들에 대한 방위력 강화 둘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대한 자금지원 중단 셋째, 경제지원을 담보로 한 북한 미사일 개발프로그램 ‘매수’(buy-off) 방안재고 등을 포함한 새로운 대북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기서 특히, 미사일 개발 억제에 대한 대가 지불을 거부한다는 분명한 입장이 주목된다. 두루 아다시피 KEDO 종결을 비롯하여 방위력 강화 제안도 부시 행정부에서 착착 실행에 옮겨졌다.
마지막으로 공화당 의원들은 북한과의 협상 시, 정책 집행에 있어서 확고한 자세를 견지하고, 북한의 호전성에 단호히 대처하며, 북한이 미국의 결연한 의지를 오판하지 않도록 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마치 1999년의 미 의회 분위기가 2006년 부시 행정부의 북한 미사일 문제에 대한 태도로 되살아난 듯하다.
교착 국면 풀어갈 ‘낮은 수준’의 테이블 마련해야
여기서 잊어서는 안 될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이 시기 유력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의 참모들은 부시의 대북정책은 “북한이 위협적으로 나오면 제공한 당근마저 철회하고 북한 고립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G. 슐츠, P. 울포위츠, R. 졸릭, C. 라이스, R. 아미티지 등 이런 사람들이 그 당시의 참모들 면면이다.
또 하나 덧붙이고 싶은 점은 페리보고서와 공화당보고서 모두 북한의 생화학무기 보유와 마약밀매 및 화폐위조 등 국제범죄행위를 지적하였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대미협상용으로 미사일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나 동북아 국제정세의 흐름과 특히, 부시 행정부 대북정책의 기본방향과 실천적 의지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보다 신중한 판단이 아쉽다.
북한과 미국 모두 미사일 위기로 인한 교착 국면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북한에게는 퇴로를 틔어주고, 미국에게는 체면을 세워주어야 한다. 비공개적이고 비공식적 형태의 ‘낮은 수준’의 협상 테이블이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 이글은 Wfocus.net 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