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핵실험 강행으로 세계에서 9번째 핵무기 보유국으로 떠올랐다. 핵은 하루아침에 약소국을 군사강대국으로 만든다. 북한은 이제 동북아에서 아무도 무시못할 군사강국의 위상을 굳혔다. 북한 핵실험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 작년 2월 10일 북한은 핵보유국임을 스스로 밝혔다. 이미 2년 전부터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이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핵실험을 통해 핵보유국으로 간다는 방침이었다.
북한의 핵보유는 세 가지 차원에서 파급효과를 낳았다. 첫째, 미국 주도의 비확산체제에 기반한 국제적 핵질서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NPT 체제의 동요를 가져왔다. 대만, 호주, 인도네시아, 미얀마, 그리고 이란, 시리아, 터키 등 핵무기 개발능력을 가진 세계 30여 개 국이 핵 정책을 재검토하도록 자극할 수도 있다. 둘째, 북한의 핵보유로 동북아 안보 지형의 구조적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한반도를 가름 축으로 하여 정치군사적 측면에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대치구도가 첨예해질 수 있다. 셋째, 북한 핵실험 이후 상황은 이전 단계의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과 안보전략이 그대로 적용될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북한의 핵보유로 국제 핵질서, 동북아 안보 지형, 그리고 남북관계 세 차원에서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이 초래되었다.
핵실험은 마지막 ‘진검승부’
북한 핵실험은 치밀하게 계산된 공세적 전략이다. 2002년 10월 제2차 핵위기 발생 후 지금까지 북한은 핵문제로 점차 위기 수준을 높여오면서 미국에 대북협상을 요구해왔는데 부시 정부가 이에 적극 응하지 않자 마지막 카드로 핵실험을 강행했다. 말하자면 미국의 의도적 무시에 북한은 되받아치기로 나왔다. 미국은 북한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의도적 무시’로 일관해왔다. 지난해 제4차 6자회담의 ‘9ㆍ19 공동선언’ 합의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미국과 북한은 각각 딴소리를 했다. 미국은 마카오 소재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대한 미국의 대북금융제재를 시발로 지금까지 북한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금융제재를 해제하면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고 북한이 수차례 밝혔는데도 미국은 오히려 금융제재를 더욱 강화했고 6자회담 미국 측 대표의 방북 초청도 거부했다.
이에 북한은 7월 4일 미국독립기념일에 맞춰 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미국 측에 협상을 강요했다. 그러나 그 결과 북한은 미국, 일본이 주도하고 중국, 러시아도 찬성한 UN 안보리 결의를 불러와 국제사회에서 고립무원의 처지를 자초하고 말았다.
이제 북한은 핵실험으로 미국에게 마지막 ‘진검승부’를 걸었다. 10월 3일 핵실험을 하겠다고 밝힌 후 엿새 만에 핵실험을 감행한 셈이다. 11월 7일 미국의 중간 선거에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실패 여론을 기대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북한은 중간 선거 이후 예상되는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제재 강화 국면을 미리 ‘되받아치기’로 대응했다.
9월 8일자 <노동신문> 정론은 전체 6면 가운데 2면에 걸쳐 “여명이 불탄다”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지금 우리나라에 강성대국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으며, 승리의 동이 터온다고 하신 김정일 장군님의 말씀이 천만의 가슴을 무한히 흥분시키고 있다”고 하여 승리의 새 역사를 크게 부각시켰다. 이것으로 비춰볼 때 북한은 핵실험 강행 방침을 굳힌 뒤, 핵실험 날짜를 잡아놓고 지난 3일 계획을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에게 핵은 '협상용'이 아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실험이 또다시 협상용이라는 말인가? 물론 미국의 대북협상을 끌어내기 위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북핵은 협상용이라기보다는 북한 김정일 정권의 체제유지를 위한 것이라는 데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 핵 없는 김정일 정권은 상상할 수 없다. 돌이켜보면 6자회담은 지지부진한 협상이라 생각되지만, 북한으로서는 6자협상이든 어떤 형태의 협상이든 충분한 수준의 핵보유로 가는데 시간을 버는 수단에 불과했다. 1991년 12월의 ‘남북기본합의서’, 1992년 1월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감동적인 이벤트가 펼쳐지던 바로 그 시간에 북한은 부지런히 핵물질을 추출하고 핵개발을 서두르고 있었다. 북한에게 남북한 간 합의문서는 애초부터 기만술의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북한은 곧 북미 핵군축협상을 제안할 것이다. 핵실험 이전부터 북한은 그동안 북한의 핵문제를 ‘조선반도의 핵문제’로 주장해오면서 미국과 북한이 다함께 보유하고 있는 핵 문제를 풀자는 논리를 내세워 왔다. 따라서 지금까지 6자회담에서 논의된 북한 핵문제가 아니라, 미국과 북한이 동등하게 핵군축을 협상하자는 논의구도로 바꾸고자 할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핵실험의 손익계산서를 따져보자. 당연히 득이 손실보다 훨씬 크다. 북한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감내할 각오가 되어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더라도 미국의 군사적 조치는 가능하지 않다. 미국은 핵보유국을 공격한 경우가 없다. 자국 혹은 해외주둔 미군에 대한 핵공격이 예상되는 상대에 대한 미국의 공격은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 첫째, 대북공격 시 북핵이 몰고 올 미군 및 한국 거주 미국인 피해는 감당하기 어렵다. 둘째, 북한의 117만의 정규군과 500만의 비정규군의 위력도 엄청나다. 셋째, 미국의 동맹국인 남한과 스커드 미사일, 노동 미사일 위협아래 놓인 일본의 대북공격에 대한 반대도 만만찮다. 넷째, 대북공격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도 무시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중동정치에 손이 묶여 있는 상황이다. 현재 2,500 여 명에 달하는 미군 전사자와 3,000억 달러의 전비를 쏟아 부은 이라크전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다. 여기에다 이란의 핵 도전,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어수선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미국으로서는 대북공격을 감행할 여력이 없다.
핵실험의 손익계산① ‘평양은 이익’
북한의 핵실험의 이득은 상당하다. 첫째, 핵보유로 김정일의 정권안보는 한층 공고해진다. 이 점이 사실 핵보유의 알파요 오메가다. 핵무기 보유국가로 등장함에 따라 군사ㆍ안보 전략적 안전판의 확보가 가능하다. 둘째, 대내 통치 기반강화와 체제이완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셋째, 핵무기 보유국가로서 미국과 핵군축 차원에서 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 핵보유로 대미 협상을 통해 정권안보, 대규모 경제지원 획득,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해체를 주장할 것이다. 네째, 남한을 북한의 대남ㆍ대외정책의 인질로 붙잡아 맬 수 있다. 그리하여 한미갈등 유도, 남남갈등 확산 및 반미분위기 고조 등을 획책함으로써 한반도 전역을 ‘주체국가’의 통제 아래 둘 수 있다는 기대도 한몫했을 수 있다.
대개 우리와 국제사회는 대북 경제제재로 인한 북한의 타격을 예상하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북한은 군사적 제재 측면뿐만 아니라 경제제재 측면에서도 대책을 수립한 것으로 보인다. '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 수백만의 아사자가 발생했는데, 당시에는 그때까지 유지되었던 국가배급제가 붕괴됨으로써 숱한 아사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배급제 혜택은 체제유지에 필요한 계층에게만 돌아가고 배급제 밖의 다른 일반 주민들은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해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중국을 비롯해 반미전선을 펼치고 있는 이란, 쿠바 등과 경제교류협력이 완전히 단절되지 않는 한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다는 판단도 있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에게 주민들의 경제적 궁핍이나 생존 문제는 아주 부차적인 사안이다. 사실 우리가 우려하는 경제제재로 인한 주민의 고통은 김정일 정권의 핵실험 강행과정에서 결코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가 아니다. 김정일 정권 입장에서 핵실험의 손실은 별로 보이지 않는데 비해, 이득은 상당하고 구체적이다. 따라서 김정일 정권이 존속되는 한 핵 포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북한 핵을 저지해야 한다는 데에 국제사회의 협력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북한이 핵을 가짐으로써 동북아 안보지형이 아주 불안정하고 불투명해진다. 여기에다 군비경쟁이 가속화되면서 핵 도미노 상황까지 우려된다. 이런 점에서 동북아 역내 국가들은 모두 북한의 핵보유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핵을 보유한 북한과 공존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면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은 나름대로의 대응논리를 개발할 수 있다.

핵실험의 손익계산② ‘미ㆍ중은 계산중’
우선 미국이다. 미국은 북한 핵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 최근 북한의 핵보유가 미국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닐 수도 있다는 논의들이 조심스럽게 개진되고 있다. 북한의 핵이 미국에게 실질적 위협이 되기에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지금 중동 문제로 여력이 없는 미국은 북한의 핵보유를 역이용하여 적절한 수준의 일본의 군사안보적 전진을 통해 안보비용 절감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한국의 대미의존이 불가피한 상황은 한국을 관리하는데도 무척 효율적이다.
중국은 북핵 문제로 일본의 재무장 상황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북한 핵이 중국에게도 부담일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UN을 통한 대북 경제제재와 함께 핵물질의 유출을 막기 위해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의 수준을 높여나가거나 금융제재국면을 유지하면서 북한 인권문제 등을 대북전략 차원에서 다룰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 한국의 대북지원 자제 요청이 예상된다.
중국의 입장은 이중적이다. 중국은 북한 핵보다 북한체제의 붕괴를 더 우려한다. 중국의 동북아전략은 두 축이다. 하나는 대만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이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아래 대만독립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와 함께 북한의 붕괴로 한반도가 미국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을 악몽의 시나리오로 여긴다. 중국은 동북아에서 미국의 힘을 대만과 북한으로 양분시켜야 한다. 북한은 미국과 중국의 완충지역으로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북한의 붕괴 위기를 결코 방관할 수 없다. 따라서 북한의 핵보유를 바라지는 않지만, 핵보유국 북한을 체제위기에 이를 만큼 미국과 일본이 강력하게 제재를 가하는 상황은 허용할 수 없다.
중국은 북한 핵실험을 비난하는 수준에는 동참하지만 북한체제의 위기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 대북제재는 반대할 것이다. 중국 외교부는 벌써부터 북한 핵실험을 협상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은 UN 안보리에서 당분간 대북 비난에는 동의하지만, 북한 핵보유에도 불구하고 대북지원의 끈을 완전히 놓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북한은 중국의 이러한 입장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러시아는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입장이다. 러시아는 재빠르게 북한을 군사적 파트너로 삼아 동북아 진출의 확고한 교두보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본도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으로 최악의 상황에 부딪히는 것만은 아니다. 아베신조(安倍晋三) 등 일본 우익 정치인들은 북한 핵위협을 계기로 그들의 오랜 숙원인 일본의 ‘보통국가’로 나아가는 길을 열 것이다. 공고한 미ㆍ일 동맹을 한 축으로 하면서 중국의 부상을 적극 견제하기 위해 북핵으로 인한 일본 국민의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정치군사적 대국화의 길을 모색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 일본은 북한 핵문제로 정치군사적 대국화로 나아가는 길에 60여년 이상 묶였던 빗장이 풀릴 순간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다. 동북아 국제정치적 좌표 위에 한국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북한 핵실험으로 한반도 문제는 최고도의 위기상황(Climax)에 처했다. 우리로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을 맞이했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동북아의 정치군사적 역학관계에서 전략적 왜소화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며, 어떠한 미래를 선택해야 하는가? 지금의 위기가 자칫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지만, 위기를 전환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우리 국민 모두의 합리적 판단과 냉철한 정치적 리더십이 요구되는 엄중한 순간이다. 천하의 흥망은 필부(匹夫)에게도 책임이 있다.
* 운영위원 /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북한의 핵보유는 세 가지 차원에서 파급효과를 낳았다. 첫째, 미국 주도의 비확산체제에 기반한 국제적 핵질서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NPT 체제의 동요를 가져왔다. 대만, 호주, 인도네시아, 미얀마, 그리고 이란, 시리아, 터키 등 핵무기 개발능력을 가진 세계 30여 개 국이 핵 정책을 재검토하도록 자극할 수도 있다. 둘째, 북한의 핵보유로 동북아 안보 지형의 구조적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한반도를 가름 축으로 하여 정치군사적 측면에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대치구도가 첨예해질 수 있다. 셋째, 북한 핵실험 이후 상황은 이전 단계의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과 안보전략이 그대로 적용될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북한의 핵보유로 국제 핵질서, 동북아 안보 지형, 그리고 남북관계 세 차원에서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이 초래되었다.
핵실험은 마지막 ‘진검승부’
북한 핵실험은 치밀하게 계산된 공세적 전략이다. 2002년 10월 제2차 핵위기 발생 후 지금까지 북한은 핵문제로 점차 위기 수준을 높여오면서 미국에 대북협상을 요구해왔는데 부시 정부가 이에 적극 응하지 않자 마지막 카드로 핵실험을 강행했다. 말하자면 미국의 의도적 무시에 북한은 되받아치기로 나왔다. 미국은 북한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의도적 무시’로 일관해왔다. 지난해 제4차 6자회담의 ‘9ㆍ19 공동선언’ 합의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미국과 북한은 각각 딴소리를 했다. 미국은 마카오 소재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대한 미국의 대북금융제재를 시발로 지금까지 북한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금융제재를 해제하면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고 북한이 수차례 밝혔는데도 미국은 오히려 금융제재를 더욱 강화했고 6자회담 미국 측 대표의 방북 초청도 거부했다.
이에 북한은 7월 4일 미국독립기념일에 맞춰 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미국 측에 협상을 강요했다. 그러나 그 결과 북한은 미국, 일본이 주도하고 중국, 러시아도 찬성한 UN 안보리 결의를 불러와 국제사회에서 고립무원의 처지를 자초하고 말았다.
이제 북한은 핵실험으로 미국에게 마지막 ‘진검승부’를 걸었다. 10월 3일 핵실험을 하겠다고 밝힌 후 엿새 만에 핵실험을 감행한 셈이다. 11월 7일 미국의 중간 선거에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실패 여론을 기대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북한은 중간 선거 이후 예상되는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제재 강화 국면을 미리 ‘되받아치기’로 대응했다.
9월 8일자 <노동신문> 정론은 전체 6면 가운데 2면에 걸쳐 “여명이 불탄다”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지금 우리나라에 강성대국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으며, 승리의 동이 터온다고 하신 김정일 장군님의 말씀이 천만의 가슴을 무한히 흥분시키고 있다”고 하여 승리의 새 역사를 크게 부각시켰다. 이것으로 비춰볼 때 북한은 핵실험 강행 방침을 굳힌 뒤, 핵실험 날짜를 잡아놓고 지난 3일 계획을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에게 핵은 '협상용'이 아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실험이 또다시 협상용이라는 말인가? 물론 미국의 대북협상을 끌어내기 위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북핵은 협상용이라기보다는 북한 김정일 정권의 체제유지를 위한 것이라는 데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 핵 없는 김정일 정권은 상상할 수 없다. 돌이켜보면 6자회담은 지지부진한 협상이라 생각되지만, 북한으로서는 6자협상이든 어떤 형태의 협상이든 충분한 수준의 핵보유로 가는데 시간을 버는 수단에 불과했다. 1991년 12월의 ‘남북기본합의서’, 1992년 1월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감동적인 이벤트가 펼쳐지던 바로 그 시간에 북한은 부지런히 핵물질을 추출하고 핵개발을 서두르고 있었다. 북한에게 남북한 간 합의문서는 애초부터 기만술의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북한은 곧 북미 핵군축협상을 제안할 것이다. 핵실험 이전부터 북한은 그동안 북한의 핵문제를 ‘조선반도의 핵문제’로 주장해오면서 미국과 북한이 다함께 보유하고 있는 핵 문제를 풀자는 논리를 내세워 왔다. 따라서 지금까지 6자회담에서 논의된 북한 핵문제가 아니라, 미국과 북한이 동등하게 핵군축을 협상하자는 논의구도로 바꾸고자 할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핵실험의 손익계산서를 따져보자. 당연히 득이 손실보다 훨씬 크다. 북한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감내할 각오가 되어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더라도 미국의 군사적 조치는 가능하지 않다. 미국은 핵보유국을 공격한 경우가 없다. 자국 혹은 해외주둔 미군에 대한 핵공격이 예상되는 상대에 대한 미국의 공격은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 첫째, 대북공격 시 북핵이 몰고 올 미군 및 한국 거주 미국인 피해는 감당하기 어렵다. 둘째, 북한의 117만의 정규군과 500만의 비정규군의 위력도 엄청나다. 셋째, 미국의 동맹국인 남한과 스커드 미사일, 노동 미사일 위협아래 놓인 일본의 대북공격에 대한 반대도 만만찮다. 넷째, 대북공격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도 무시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중동정치에 손이 묶여 있는 상황이다. 현재 2,500 여 명에 달하는 미군 전사자와 3,000억 달러의 전비를 쏟아 부은 이라크전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다. 여기에다 이란의 핵 도전,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어수선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미국으로서는 대북공격을 감행할 여력이 없다.
핵실험의 손익계산① ‘평양은 이익’
북한의 핵실험의 이득은 상당하다. 첫째, 핵보유로 김정일의 정권안보는 한층 공고해진다. 이 점이 사실 핵보유의 알파요 오메가다. 핵무기 보유국가로 등장함에 따라 군사ㆍ안보 전략적 안전판의 확보가 가능하다. 둘째, 대내 통치 기반강화와 체제이완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셋째, 핵무기 보유국가로서 미국과 핵군축 차원에서 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 핵보유로 대미 협상을 통해 정권안보, 대규모 경제지원 획득,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해체를 주장할 것이다. 네째, 남한을 북한의 대남ㆍ대외정책의 인질로 붙잡아 맬 수 있다. 그리하여 한미갈등 유도, 남남갈등 확산 및 반미분위기 고조 등을 획책함으로써 한반도 전역을 ‘주체국가’의 통제 아래 둘 수 있다는 기대도 한몫했을 수 있다.
대개 우리와 국제사회는 대북 경제제재로 인한 북한의 타격을 예상하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북한은 군사적 제재 측면뿐만 아니라 경제제재 측면에서도 대책을 수립한 것으로 보인다. '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 수백만의 아사자가 발생했는데, 당시에는 그때까지 유지되었던 국가배급제가 붕괴됨으로써 숱한 아사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배급제 혜택은 체제유지에 필요한 계층에게만 돌아가고 배급제 밖의 다른 일반 주민들은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해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중국을 비롯해 반미전선을 펼치고 있는 이란, 쿠바 등과 경제교류협력이 완전히 단절되지 않는 한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다는 판단도 있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에게 주민들의 경제적 궁핍이나 생존 문제는 아주 부차적인 사안이다. 사실 우리가 우려하는 경제제재로 인한 주민의 고통은 김정일 정권의 핵실험 강행과정에서 결코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가 아니다. 김정일 정권 입장에서 핵실험의 손실은 별로 보이지 않는데 비해, 이득은 상당하고 구체적이다. 따라서 김정일 정권이 존속되는 한 핵 포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북한 핵을 저지해야 한다는 데에 국제사회의 협력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북한이 핵을 가짐으로써 동북아 안보지형이 아주 불안정하고 불투명해진다. 여기에다 군비경쟁이 가속화되면서 핵 도미노 상황까지 우려된다. 이런 점에서 동북아 역내 국가들은 모두 북한의 핵보유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핵을 보유한 북한과 공존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면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은 나름대로의 대응논리를 개발할 수 있다.

핵실험의 손익계산② ‘미ㆍ중은 계산중’
우선 미국이다. 미국은 북한 핵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 최근 북한의 핵보유가 미국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닐 수도 있다는 논의들이 조심스럽게 개진되고 있다. 북한의 핵이 미국에게 실질적 위협이 되기에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지금 중동 문제로 여력이 없는 미국은 북한의 핵보유를 역이용하여 적절한 수준의 일본의 군사안보적 전진을 통해 안보비용 절감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한국의 대미의존이 불가피한 상황은 한국을 관리하는데도 무척 효율적이다.
중국은 북핵 문제로 일본의 재무장 상황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북한 핵이 중국에게도 부담일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UN을 통한 대북 경제제재와 함께 핵물질의 유출을 막기 위해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의 수준을 높여나가거나 금융제재국면을 유지하면서 북한 인권문제 등을 대북전략 차원에서 다룰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 한국의 대북지원 자제 요청이 예상된다.
중국의 입장은 이중적이다. 중국은 북한 핵보다 북한체제의 붕괴를 더 우려한다. 중국의 동북아전략은 두 축이다. 하나는 대만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이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아래 대만독립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와 함께 북한의 붕괴로 한반도가 미국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을 악몽의 시나리오로 여긴다. 중국은 동북아에서 미국의 힘을 대만과 북한으로 양분시켜야 한다. 북한은 미국과 중국의 완충지역으로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북한의 붕괴 위기를 결코 방관할 수 없다. 따라서 북한의 핵보유를 바라지는 않지만, 핵보유국 북한을 체제위기에 이를 만큼 미국과 일본이 강력하게 제재를 가하는 상황은 허용할 수 없다.
중국은 북한 핵실험을 비난하는 수준에는 동참하지만 북한체제의 위기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 대북제재는 반대할 것이다. 중국 외교부는 벌써부터 북한 핵실험을 협상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은 UN 안보리에서 당분간 대북 비난에는 동의하지만, 북한 핵보유에도 불구하고 대북지원의 끈을 완전히 놓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북한은 중국의 이러한 입장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러시아는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입장이다. 러시아는 재빠르게 북한을 군사적 파트너로 삼아 동북아 진출의 확고한 교두보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본도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으로 최악의 상황에 부딪히는 것만은 아니다. 아베신조(安倍晋三) 등 일본 우익 정치인들은 북한 핵위협을 계기로 그들의 오랜 숙원인 일본의 ‘보통국가’로 나아가는 길을 열 것이다. 공고한 미ㆍ일 동맹을 한 축으로 하면서 중국의 부상을 적극 견제하기 위해 북핵으로 인한 일본 국민의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정치군사적 대국화의 길을 모색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 일본은 북한 핵문제로 정치군사적 대국화로 나아가는 길에 60여년 이상 묶였던 빗장이 풀릴 순간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다. 동북아 국제정치적 좌표 위에 한국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북한 핵실험으로 한반도 문제는 최고도의 위기상황(Climax)에 처했다. 우리로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을 맞이했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동북아의 정치군사적 역학관계에서 전략적 왜소화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며, 어떠한 미래를 선택해야 하는가? 지금의 위기가 자칫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지만, 위기를 전환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우리 국민 모두의 합리적 판단과 냉철한 정치적 리더십이 요구되는 엄중한 순간이다. 천하의 흥망은 필부(匹夫)에게도 책임이 있다.
* 운영위원 /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