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공동선언; 한반도 평화와 경제의 이중주
“필요하다면 평화를 사라!”(if necessary, buy peace!). 전쟁의 시대에 평화를 고뇌한 16세기 서구 최초의 평화 사상가 에라스무스의 경구다. 전쟁을 군주의 통치술의 일환으로 보고, 힘에 의한 평화만을 인정한 마키아벨리와는 분명 다르다. 평화를 돈으로 산다는 명제는 경제를 통한 평화의 추구로, 오늘날 ‘평화경제론’의 사상적 단초를 제시한 논리라 하겠다.
2007 남북정상회담은 실무형 정상회담이었다. 제1차 정상회담이 통일방안 등에 합의한 정치적·선언적 성격의 정상회담이었다면, 금번 회담은 평화와 경제의 현안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적 접근에 초점을 맞추었다. 정상회담에서 도출된<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 공동선언」)의 8개항 합의문은 크게 평화정착, 공동번영, 화해·통일의 세 바스켓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실
제적으로는 경협에 무게중심이 놓여 있다. 국내외적 관심이 집중되었던 비핵화와 관련된 평화는 6자회담의 ‘2·13합의’ 이행협력의 원칙적 입장을 재확인하는 수준에서 봉합되었다. 여기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 하는 데에 합의함으로써, 현안인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당사자 문제를 크게 부각시켰다.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한반도 평화와 남북경제공동체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사안이다. 10.4 공동선언은 6자회담의 진전 상황에 따라 한반도 평화구축의 보조를 맞추면서도 남북경협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한층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평양에서 남북한 정상이 이마를 맞대고 있던 시간에 연말까지 영변 핵시설 불능화와 핵 프로그램 신고 문제를 해결한 6자회담의 ‘10·3합의’는 핵문제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면서 남북경협 중심의 합의도출을 가능하게 했다. 앞으로 어느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한 남북경협의 합의 사
항을 실천적 과제로 삼아야 한다.

이제“평화를 위한 경제, 경제를 위한 평화”야말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평화경제는 평화와 경제의 이중주(二重奏)다. 평화는 남북한 정치·군사적 긴장완화의 전제이자 결실이다. 경제는 남북한 공동번영의 추구를 뜻한다. 남북한 공동번영은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평화경제는 평화와 경제의 상호작용 또는 상승작용을 추구하며,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을 지향한다.
평화경제론은 전혀 새로운 개념이다. 남북관계는 경협을 통한 남북한 공동발전의 추구에도 불구하고 핵문제를 비롯한 정치·군사적 사안에 의해 기대한 만큼의 진전을 이루지 못하였다. 정치·군사적 문제로 인해 남북관계의 발전이 정체되거나 지연되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따른 정치·군사 중심적 대북정책과 북한의 체제생존전략이 맞물리면서 한반도의 긴장과 위기국면이 주기적으로 발생하였고, 그에 따라 남북관계의 안정적 발전의 지속적인 추진이 힘들었다. 이 과정에서 최근 다시 한 번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을 통해 정치·군사적 난관을 극복하려는 문제의식이 태동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남북한 간 공고한 경제적 유대 또는 경제공동체 형성을 통해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는 입장의 발로다. 이는 사실 오래된 발상이면서도, 새로운 형태의 발상의 전환을 함축하고 있다.
“민주주의국가끼리는 싸우지 않는다”는 명제는 한때 커다란 호응을 받았지만, 한반도 평화와 관련하여 그러한 ‘민주평화론’적 시각의 접근방식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으며, 종종 강대국에 의한 정권교체의 도구로 활용되는 논리로 전락하기도 했다. 미국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서 참담하게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은‘민주주의와 자유’ 이념을 강제적으로 이식시키려는 그릇된 사고방식의 결과라 하겠다. 그와 반대로, 경제적 자유와 공동번영을 통한 시장경제의 확산이 평화를 가져온다는 ‘시장경제평화론’이 한반도의 평화구축에 더욱 적합한 평화론이라 할 수 있다.
지금 한반도의 평화와 비핵화 문제는 상당히 급박하게 진전되고 있다. 변화의 폭과 템포가 무척 빠르다. 그러나 이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는 자는 역사 속에서 영원히 도태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비핵화는 핵시설 불능화, 신고, 폐기의 세 단계를 거친다. 현재 연말까지 불능화와 신고에 합의했으며, 미국 행정부는 의회와의 협의를 통해 테러지원국리스트 해제 검토작업에 들어간 상태이다. 미국은 북한이“신뢰할 만한” 수준의 비핵화 조치를 단행한다면 북·미관계 정상화 문제는 놀라울 정도로 급진전될 수 있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북한에게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그야말로 물실호기(勿失好機)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북한 당국은 부시 행정부의 정치 스케줄을 감안하여 적극적이고 전향적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평화협정에 앞서 종전선언 문제는 이미 가시권에 들어와 있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당사자 문제에서 중국의 입장이 정리될 필요가 있다. 협상 테이블에 의자 수가 적을수록 협상은 진솔하고 효율적으로 성과를 도출하기 쉬운 법이다. 종전선언의 경우 휴전(정전)협정 당사자로 중국의 참여를 고려할 수 있으나, 평화협정의 경우 중국의 참여는 바람직하지 않다. 종전선언은 일회성이나, 평화협정은 상설적 기구를 창설하는 협정으로 중국의 역할은 뚜렷하지 않다. 더욱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중국의 불필요한 정치적 위상을 보장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곤란하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당사자 문제에 대한 남북한의 합의는 앞으로보다 세심하게 조율되어야 할 사안이지만, 이번 합의는 남북한 당사자를 원칙으로 한 미래지향적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당사자 문제에 대한 중국의 합리적인 자제와 이해가 기대되며, 미국도 남북한의 입장에 동의할 필요가 있다.
조민 / 운영위원,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위 원고는 평화재단의 평화논평에 게재된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평화를 사라!”(if necessary, buy peace!). 전쟁의 시대에 평화를 고뇌한 16세기 서구 최초의 평화 사상가 에라스무스의 경구다. 전쟁을 군주의 통치술의 일환으로 보고, 힘에 의한 평화만을 인정한 마키아벨리와는 분명 다르다. 평화를 돈으로 산다는 명제는 경제를 통한 평화의 추구로, 오늘날 ‘평화경제론’의 사상적 단초를 제시한 논리라 하겠다.
2007 남북정상회담은 실무형 정상회담이었다. 제1차 정상회담이 통일방안 등에 합의한 정치적·선언적 성격의 정상회담이었다면, 금번 회담은 평화와 경제의 현안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적 접근에 초점을 맞추었다. 정상회담에서 도출된<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 공동선언」)의 8개항 합의문은 크게 평화정착, 공동번영, 화해·통일의 세 바스켓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실
제적으로는 경협에 무게중심이 놓여 있다. 국내외적 관심이 집중되었던 비핵화와 관련된 평화는 6자회담의 ‘2·13합의’ 이행협력의 원칙적 입장을 재확인하는 수준에서 봉합되었다. 여기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 하는 데에 합의함으로써, 현안인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당사자 문제를 크게 부각시켰다.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한반도 평화와 남북경제공동체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사안이다. 10.4 공동선언은 6자회담의 진전 상황에 따라 한반도 평화구축의 보조를 맞추면서도 남북경협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한층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평양에서 남북한 정상이 이마를 맞대고 있던 시간에 연말까지 영변 핵시설 불능화와 핵 프로그램 신고 문제를 해결한 6자회담의 ‘10·3합의’는 핵문제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면서 남북경협 중심의 합의도출을 가능하게 했다. 앞으로 어느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한 남북경협의 합의 사
항을 실천적 과제로 삼아야 한다.

이제“평화를 위한 경제, 경제를 위한 평화”야말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평화경제는 평화와 경제의 이중주(二重奏)다. 평화는 남북한 정치·군사적 긴장완화의 전제이자 결실이다. 경제는 남북한 공동번영의 추구를 뜻한다. 남북한 공동번영은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평화경제는 평화와 경제의 상호작용 또는 상승작용을 추구하며,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을 지향한다.
평화경제론은 전혀 새로운 개념이다. 남북관계는 경협을 통한 남북한 공동발전의 추구에도 불구하고 핵문제를 비롯한 정치·군사적 사안에 의해 기대한 만큼의 진전을 이루지 못하였다. 정치·군사적 문제로 인해 남북관계의 발전이 정체되거나 지연되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따른 정치·군사 중심적 대북정책과 북한의 체제생존전략이 맞물리면서 한반도의 긴장과 위기국면이 주기적으로 발생하였고, 그에 따라 남북관계의 안정적 발전의 지속적인 추진이 힘들었다. 이 과정에서 최근 다시 한 번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을 통해 정치·군사적 난관을 극복하려는 문제의식이 태동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남북한 간 공고한 경제적 유대 또는 경제공동체 형성을 통해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는 입장의 발로다. 이는 사실 오래된 발상이면서도, 새로운 형태의 발상의 전환을 함축하고 있다.
“민주주의국가끼리는 싸우지 않는다”는 명제는 한때 커다란 호응을 받았지만, 한반도 평화와 관련하여 그러한 ‘민주평화론’적 시각의 접근방식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으며, 종종 강대국에 의한 정권교체의 도구로 활용되는 논리로 전락하기도 했다. 미국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서 참담하게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은‘민주주의와 자유’ 이념을 강제적으로 이식시키려는 그릇된 사고방식의 결과라 하겠다. 그와 반대로, 경제적 자유와 공동번영을 통한 시장경제의 확산이 평화를 가져온다는 ‘시장경제평화론’이 한반도의 평화구축에 더욱 적합한 평화론이라 할 수 있다.
지금 한반도의 평화와 비핵화 문제는 상당히 급박하게 진전되고 있다. 변화의 폭과 템포가 무척 빠르다. 그러나 이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는 자는 역사 속에서 영원히 도태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비핵화는 핵시설 불능화, 신고, 폐기의 세 단계를 거친다. 현재 연말까지 불능화와 신고에 합의했으며, 미국 행정부는 의회와의 협의를 통해 테러지원국리스트 해제 검토작업에 들어간 상태이다. 미국은 북한이“신뢰할 만한” 수준의 비핵화 조치를 단행한다면 북·미관계 정상화 문제는 놀라울 정도로 급진전될 수 있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북한에게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그야말로 물실호기(勿失好機)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북한 당국은 부시 행정부의 정치 스케줄을 감안하여 적극적이고 전향적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평화협정에 앞서 종전선언 문제는 이미 가시권에 들어와 있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당사자 문제에서 중국의 입장이 정리될 필요가 있다. 협상 테이블에 의자 수가 적을수록 협상은 진솔하고 효율적으로 성과를 도출하기 쉬운 법이다. 종전선언의 경우 휴전(정전)협정 당사자로 중국의 참여를 고려할 수 있으나, 평화협정의 경우 중국의 참여는 바람직하지 않다. 종전선언은 일회성이나, 평화협정은 상설적 기구를 창설하는 협정으로 중국의 역할은 뚜렷하지 않다. 더욱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중국의 불필요한 정치적 위상을 보장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곤란하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당사자 문제에 대한 남북한의 합의는 앞으로보다 세심하게 조율되어야 할 사안이지만, 이번 합의는 남북한 당사자를 원칙으로 한 미래지향적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당사자 문제에 대한 중국의 합리적인 자제와 이해가 기대되며, 미국도 남북한의 입장에 동의할 필요가 있다.
조민 / 운영위원,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위 원고는 평화재단의 평화논평에 게재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