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시대를 읽는다④ "마침내 꿈이 이루어지다"
1963년 워싱턴 D.C.의 링컨 기념관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유명한 연설이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루터 킹 목사
그리고 2008년 11월 4일 밤 10시 45분 시카고 그랜트공원에서 새로운 미국 대통령의 당선 연설이 있었습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100만 군중 앞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수많은 냉소와 의심을 만나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할 수 없다는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사람들의 정신을 하나로 묶는 시대를 초월하는 우리의 신조를 가지고 대답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Yes, we can.)” - 오바마, 대통령 당선연설에서
이날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꿈”이 마침내 현실로 이루어진 날이었습니다.
오바마의 당선은 단순히 미국 민주당의 재집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당선이 흑인 대통령의 출현이라는 흑인의 꿈이 실현된 것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그의 당선은 불의하고 부패한 모든 힘에 맞서서 소박하고 정의로운 민중의 꿈과 희망이 이길 수 있다는 인류의 꿈이 이루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공감의 힘
무엇이 오바마를 승리하게 했을까요? 많은 이유를 말할 수 있겠지만, 저는 오바마가 가지는 ‘공감의 힘’에 주목합니다.
오바마를 만난 사람들은 한결 같이 오바마를 신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에게서 진정성을 느끼고, 그에게 진실함을 발견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나아가 그에게 감동받았고, 그의 뜻과 함께 하겠다고 고백합니다. “Yes we can!”이라는 오바마의 연설을 힙합 노래로 만들었던 will.i.am 이라는 힙합 가수는 제작 경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연설은) 내 자신의 내면을 보고 세상을 향하도록 했다.... 내 자신이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변화하도록 했다.. 변화를 향해 도약하도록 했다...”
오바마는 사람의 ‘영혼’에 울림을 주는 정치인입니다. 그의 힘은 단순한 기교나 방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바마는 모든 연설에서 ‘나’라는 단어 대신에 ‘우리’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는 “나는 당신의 고통에 공감한다(I feel your pain)”고 말합니다. 오바마의 힘은 실은 놀라운 연설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고통의 소리를 듣고, 공감하는 자세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이 작고 튼튼한 뿌리에서 위대한 기적이 만들어졌습니다.
“지금도 나는 어머니가 강조한 간단한 원칙, 즉 "네게 그렇게 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니?"를 정치활동의 길잡이 중 하나로 삼고 있다. 만약 최고경영자가 직원들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이들의 건강보험 지원비를 삭감하면서 수백만 달러의 상여금을 챙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용자의 압박감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내가 조시 부시와 아무리 생각이 다르더라도 그의 시각에서 국제상황을 바라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공감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 오바마, “담대한 희망” 중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는 것
대학(大學)에서 “군자는 자신에게 있고 난 뒤에야 남에게도 있기를 촉구하며, 자신에게 없고 난 뒤에야 남에게 나무랄 수 있다.”며 “제 몸에 간직한 것이 ‘서’(恕)가 아니고서 남을 깨우칠 수 있는 사람은 있지 않다.”(所藏乎身不恕 而能喩諸人者 未之有也)고 했습니다. ‘서’(恕)는 ‘자신의 경우를 미루어 남에게 미치게 함’이라고 주자는 해설하고 있습니다. ‘서’(恕)자는 ‘如’와 ‘心’이 합한 글자입니다. 자신을 다루는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남을 다루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라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함석헌 선생께서는 “정기물정(正己物正, 참으로 바로 된 사람은 스스로를 바르게 하면 밖의 세계는 저절로 바르게 된다.)”을 상기시키며 “지도자로서 능력보다 더 필요한 자격은 지성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먼저 필요한 것은 덕이다. 덕은 무엇이냐? 자기 속에서 전체를 체험하는 일이다.”고 역설했습니다.
‘뜻’이 ‘힘’을 이기는 인류의 위대한 꿈은 개인 개인으로부터 그 ‘뜻’을 바르게 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정의’의 실현은 도덕 교과서의 낡은 관념이 아닙니다. ‘뜻’은 살아 움직여서 마침내 불의의 힘을 압도하는 ‘현실’입니다. 오바마의 승리는 한 개인의 작은 정의로운 뜻이 어떻게 큰 불의의 힘을 이길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입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이 암담하다고 합니다. 이 난국을 뚫고 나갈 위대한 지도자가 없다고 한탄합니다. 정치가 실종되었다고 비난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오바마의 당선을 보며 도저히 변화할 가능성이 없는 현실에서도 변화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뜻이 결국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꿈 말입니다.
김구 선생께서 가지셨던 꿈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어려운 민족일수록 사명을 자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 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 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 )가 부족하고 자비(慈悲)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 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 나라에서, 우리 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우리 국조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 김구, “나의 소원” 중에서
이왕재 (최가문화 이사, 코리아글로브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