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시대를 읽는다① “오바마 행정부의 세계전략 전망”
쇠락하는 미국 떠오르는 희망
미국은 변화를 선택했다. 미국인은 오바마에게서 구원의 메시지를 찾았다. 미국인은 성조기 아래서 “우리는 하나의 국민”이라고 외치면서 미합중국의 미래를 바라보았다. 미국인은 “진보적 전통, 평등한 기회의 가치, 민권, 일하는 가족을 위한 투쟁, 인권으로 가득 찬 외교정책, 그리고 힘 있는 자들이 힘없는 자들을 짓밟지 않는다는 것 등에 자신의 가치관이 깊이 뿌리내린” 정치인 오바마에게서 꿈과 희망을 확인했다.
미국은 쇠락하고 있다.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은 지금 미국발 금융위기와 국제질서의 혼란 속에서 ‘날개 잃은 독수리’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오바마는 이 독수리의 원기를 회복시켜 다시 한 번 비상시켜야 한다. 그러나 ‘버락’ - barack은 스와힐리어로 ‘축복받은 자’ 라는 뜻 - 이 이끌어갈 미국으로부터 ‘축복받은’ 미래를 확신하기는 쉽지 않다. 오바마의 미국 앞에는 많은 난관이 가로 놓여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미국과 세계 속에 떠오르는 희망이 될 수 있을까?
냉전 승리 후 미국은 한때 경제력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군사력 차원에서도 승승장구하면서 ‘영원한 제국’으로 우뚝 솟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 제국은 힘을 상실하고 있다. 엄청난 재정적자와 과도한 군사비 지출로 미국은 기진맥진 상태에 빠졌다. 탐욕체계의 절정을 구가한 ‘월스트리트 자본주의’를 회생시키기 위해 긴급구제금융액 7,000억 달러를 찍어내야 하고, 여기에다 내년도 연방정부 예산의 20%를 차지하는 국방비로 7,110억 달러를 지출해야 한다. 이라크·아프가니스칸 전쟁을 치른 미국은 8년 동안 무려 약 4조 3천억 달러의 전비를 쏟아 부었다. 부시의 전쟁으로 미국이 얻은 것은 국론분열과 국력쇠진이요, 잃은 것은 세계적 리더십과 미국의 도덕성이다.
오바마 행정부 시기 동안 미국의 슈퍼파워의 위상이 당장 위협받지는 않겠지만, 제국의 쇠퇴에 따라 국제질서의 다극체제로의 재편 경향은 불가역적이다. 현 상황은 2차 대전 이후 지속되어온 미국 리더십의 종언이 예고되면서 세계의 새로운 세력균형이 형성되는 역사적 변화의 순간이다. 이런 점에서 21세기 미국이 선택해야 할 길은 자명하다. 미국은 급격한 추락을 회피하면서 ‘우아한 쇠퇴(graceful decline)’의 길을 택해야 한다.
미국 세계전략의 변화 ; ‘새로운 현실주의’와 국제협력
오바마는 국제협력과 다자주의 중시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미국은 탈이념주의적인 ‘새로운 현실주의’ 노선에 입각하여 부시의 유산인 일방적이고 위선적인 ‘불량한 초강대국(rogue superpower)’의 이미지를 하루빨리 씻어내야 한다. 여기서 미국의 세계적 차원의 전략 단위인 중동, 중앙아시아,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동아시아 등의 4개 지역을 주목할 수 있다.
첫째, 미국의 대중동지역의 전략적 수정은 불가피하다. 오바마는 이미 한 달에 150억 달러를 쏟아야 하는 이라크에서 철수를 주장해왔다. 이는 물론 이라크 정부의 요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으로의 전선 이동을 제안하고 있다. 새로운 전선의 구축은 이스라엘과 군수업체의 이익을 거슬리지 않으면서도 중앙아시아를 넘어다 볼 수 있는 전략적 배후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와 함께 이 지역에서 부시의 미국이 배타적으로 독점해온 석유 자원을 비롯한 개발 이권에 관심가진 프랑스를 비롯한 EU 국가들과 손잡는 국제협력 방식으로의 전환이 예상된다.
둘째, ‘스탄’ 국가들을 아우르는 중앙아시아 지역이 최근 세계 전략의 요충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 지역은 석유·천연가스 등 각종 에너지원 보유 측면에서 세계 3위 규모의 지역 단위이다. 미국은 소련 해체 후 한때 이 지역에서 교두보를 마련했으나, 러시아의 국력 신장과 푸틴의 러시아 영향력 회복에 대한 강력한 의지로 미국은 밀려나고 말았다. 최근 베이징 올림픽에 때맞춰 전개된 러시아의 그루지아 침공은 그루지아를 발판으로 삼아 중앙아시아로 재진출을 바랬던 미국의 의도를 완전히 무산시키고 말았다. 러시아의 강공 드라이브에 속수무책으로 방관할 수밖에 없었던 미국의 힘과 개입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에피소드였다.
‘스탄’ 지역이 러시아의 수중에 떨어지려는 찰나에, 중국이 러시아의 독주를 막았다.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헤게모니 구축 전략은 중앙아시아를 가로지르는 신강(新彊)철도로 지역 국가들을 끌어들이려는 중국의 야망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와 공동 리더 관계는 최근의 금융위기 공동대처 방안과 국제질서 재편 논의를 계기로 상하이협력기구(SCO)에서 중국이 주도권을 꿰찼다. 중국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에 차관제공을 약속했고, 러시아도 국제유가 하락에 충격을 겪고 있는 국영 석유회사들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중국에 대규모 재정지원을 요청한 상황이다. 어쨌든 미국이 배제된 중앙아시아 지역에서의 새로운 전략적 블록의 형성은 미국의 세계적 위상을 위협하는 도전적 국면이 아닐 수 없다.
셋째,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의 뒷마당으로 여겼던 라틴아메리카의 중남미지역을 포용해야 한다. 남미지역의 반미연대는 남미 국가들이나 미국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군을 부추겨 광범한 민중의 지지를 받는 정통적인 정부를 전복하려는 미국의 기도는 거의 성공하지 못했고 오히려 반미연대만 한층 강화시켰다. 오바마의 미국은 중남미국가들을 존중하면서 새로운 협력체제를 모색해야 한다.
넷째,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지역이다. 동아시아 지역은 미·중 협력구도 속에서 미국의 상대적 퇴조가 예상된다. 이 경우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미국의 상대적 퇴조 ⇒ 중국의 약진 ⇒ 일본의 진출’ 시나리오의 현실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오바마의 미·중 협력 즉, 중국 중시 전략은 상대적으로 미·일 동맹의 가치를 약화시키는 한편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중국의 부상에 대한 일본의 긴장을 자극시킬 수 있다. 특히, 북한 핵문제 협상과정에서 일본의 입장과 역할이 배제·약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결과 일본의 보수우경화를 자극하여 일본의 전략적 입장을 강화시키고 다시 중국을 긴장시키는 악순환 구조가 형성되어 오히려 동아시아 지역에서 새로운 형태의 갈등 국면이 전개될 수도 있다.
오바마 행정부와 북한 핵문제
북한 핵문제는 분명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초판에 결판을 낼 것 같았던 ‘텍사스 카우보이’의 패배·퇴장 속에서 마침내 ‘풋내기 보안관’이 해결사로 등장하였다. 오바마는 이미 김정일 위원장과의 ‘직접 대화’ 의지를 표명하여 커다란 관심을 끌었다. 이처럼 오바마 행정부의 적극적인 대북협상이 예상되는 가운데, 벌써부터 초당적 대표단 파견을 권고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2009년 북핵 협상은 과연 전격적으로 타결될 수 있을까? 북한 핵문제는 결코 낙관적 전망을 허락하지 않는다. 북한은 핵 비확산을 전제로 비공식적 핵보유국의 위상 확보를 전략 목표로 삼고 있다. 북한은 ‘잃어버린 8년’을 반추하면서 오바마 행정부를 상대로 야심찬 의도를 관철시키고자 할 것이다. 오바마의 보좌진은 협상을 통해 김정일 체제를 보장하고 북한을 개방체제로 이끈다면 북한은 핵을 포기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핵보유만큼 확실한 체제보장은 없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과 함께 정전선언, 평화협정 문제, 연락사무소 설치, 평양·워싱턴 교류 러시 등 북미관계는 상당히 고무적인 분위기에 휩싸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폐기와 개방에 대한 전략적 결단이 없다면 협상은 겉돌고 화려한 수사는 공허해질 뿐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적어도 북핵 문제에 있어서는, 부시 행정부가 떠난 자리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의 정치적 타결은 양측 모두 의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는 문제다. 북한이 미국을, 미국이 북한의 실체와 본질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다지 긴 시간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환상이 깨지는 시점에서 북한 핵문제의 실질적 진전이 시작된다.
조민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장, 코리아글로브 전 운영위원)
* 이 글은 통일연구원 현안분석(11월 5일)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