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경주회의, 비전 실종의 전시장

by 최배근 posted Oct 29, 2010
[경제와 세상]G20경주회의, 비전 실종의 전시장


술에 만취한 사람이 술값 계산을 둘러싸고 술집 주인과 다투고 있다. 자기를 만취하게 만든 것은 술집 주인이니 술값은 술집 주인이 부담하든지 아니면 자신이 술값을 적어놓은 종이를 받든지 선택하라고 한다. 미국의 억지와 주요 20개국(G20)에 세계가 기대한 비전이 실종된 경주회의의 풍경과 닮았다. 흔히 통화전쟁의 원인으로 중국의 위안화 절상 거부,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찍어대는 선진국 특히 미국의 통화정책, 브라질 등 개도국의 자본유입 규제 등을 얘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나열은 통화전쟁이나 불균형 모두 미국경제의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본질을 호도한다.

통화전쟁 미국 경제문제서 비롯

지난 9월27일 ‘국제 통화전쟁’을 처음 언급한 브라질 재무장관 기두 만테가(Guido Mantega)의 지적대로 최근 각국이 보였던 경쟁적 통화가치 절하는 기본적으로 미국경제에 대한 우려와 달러화 약세를 방치하는 미국의 통화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기부양 효과가 소진되며 경기 재후퇴의 우려가 제기되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지난 8월10일 추가 양적완화정책 시행(달러화 약세)을 발표하며 신흥시장으로의 자본유입이 급증했다.

그 결과 신흥국 통화가치의 하락과 수출 감소 우려 등 불안정이 증대하면서 환율에 개입하고 자본유입 규제를 강화하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IMF 수석 부총재와 미국 MIT 경제학 교수를 지낸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 피셔(Fisher)조차 “선진국이 자신이 만든 쓰레기(불량자산)를 치우기 위해 마구잡이로 찍어낸 돈이 신흥시장으로 유입되어 통화가치를 절상시키는 것을 왜 용인해야 하는가”라고 불평할 정도다. 2002년 약 1조달러에 불과했던 개도국의 외환보유액은 현재 6조달러를 넘어섰고, 내년까지 약 7조달러에 달할 것으로 IMF는 전망하고 있다. 이처럼 통화전쟁은 금융위기에서 국가부채 위기로 그리고 다시 통화위기로 진화한 결과이다.

따라서 통화전쟁의 원인을 불균형과 연결시키는 것은 난센스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기본적으로 달러본위제와 미국 산업 경쟁력 약화가 결합된 산물이다.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을 상실한 미국은 그 책임을 세계에 떠넘기며 그 총대를 한국이 메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얻어낸 시장결정적인 환율제도로의 이행과 경상수지 관리 목표의 설정은 ‘선언적’ 성과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이 IMF 지분 5%에서 6% 이상 상향 조정과 IMF 이사회에서 유럽의 이사 2명을 축소하고 신흥국 이사 몫의 증대라는 ‘실질적’ 성과를 거두었다. ‘시장결정적인 환율제도’로의 이행 선언으로 통화전쟁을 종식시킬 수는 없다. 제로금리에서 통화정책은 환율정책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불균형 해소가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회복하기 위한 것인데 경기재후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양적통화확대를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 중국 역시 환율의 급격한 조정은 절대 수용할 수 없는 입장이다. 불균형 해소 역시 모든 정책수단을 열어놓음으로써 실질적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자본유출입 통제장치 강화를

이미 2007년에 IMF가 다자간 협상을 통해 흑자국인 중국과 일본, 독일 등에 통화절상과 내수 조정, 그리고 적자국인 미국에 저축률 제고와 재정적자 축소라는 합의안을 도출했지만 각국의 구조적 문제로 실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통화전쟁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기에 환율변동성이 높은 한국의 경우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본유출입 통제 장치의 강화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 금리 인상 후 시장금리가 오히려 하락하고 있듯이 자본자유화가 자본시장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국민의 물가 고통이 급증하는 속에서 환율 때문에 금리를 동결하였다. 경제주권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면 이런 상황을 방치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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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0월 29일자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