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 무는 '꼬리 리스크'의 메시지

by 최배근 posted Mar 18, 2011



‘꼬리 리스크(tail risk)’란 거대한 일회성 사건이 자산 가치에 엄청난 손실을 줄 수 있는 리스크를 말한다. 평균치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는 종 모양의 정규분포 곡선을 따를 때 바깥쪽으로 갈수록 높이가 낮아지는 꼬리 모양을 이루는데 ‘꼬리 리스크’란 리스크 발생 확률이 매우 적은 맨 꼬리 부분에 위치한 데서 비롯한다. 글로벌 금융대위기나 일본의 대지진 등이 ‘꼬리 리스크’에 해당한다. 월가에서 사용하던 투자모델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 조직 전체에 걸쳐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 경우였다.


골드만삭스가 20억달러를 투입해 운영하던 GEO(Global Equity Opportunities) 펀드가 2007년 8월 중순 5일 사이에 30% 이상 손실을 보았다. 골드만삭스의 수석재무담당이사였던 데이비드 비니아르는 이러한 손실 발생 가능성을 25 시그마 값에 해당하는 천재지변의 경우라고 합리화했다. 25 시그마는 정규분포 곡선에서 가장 끝쪽에 위치한 꼬리 부분으로 발생 가능성이 사실상 제로에 해당하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핵재앙의 우려가 고조되는 일본 대지진 역시 ‘꼬리 리스크’다. 일본 원전은 7.5~8.0 규모의 지진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는데, 이번에 발생한 지진은 그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9.0 규모였다. 7.5~8.0 규모에 맞춘 이유는 그 이상에서 지진이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원전의 내진 설계가 6.5 규모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게 돼 있다는 것도 같은 논리다.

실제로 20세기에 일본에서 발생했던 지진들은 대개 한계 규모 이내였다. 그런데 금융위기나 일본 대지진에서 보듯이 발생 확률이 아주 낮은 ‘꼬리 리스크’는 한번 발생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입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지성에 기초해 설계한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꼬리 리스크’를 외면하는 이유는 확률이 제로에 가까운 리스크에 투자를 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합리적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꼬리 리스크’가 발생할 경우 예상되는 손실이 예방 비용보다 훨씬 작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금융위기나 일본 대지진은 예상했던 손실이 얼마나 과소평가되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처럼 ‘꼬리 리스크’의 연속적인 발생은 시스템과 현대 지성의 본질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꼬리 리스크’가 야기할 예상 손실의 과소평가는 발생 가능성을 낮게 평가했거나 손실액을 과소평가했을 경우지만 현대 리스크 관리시스템은 양자 모두 해당된다. 네트워크 효과 및 전염효과를 간과하기 때문이다.

‘꼬리 리스크’는 네트워크 효과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중동 민주화도 ‘꼬리 리스크’에 해당한다. 중동 민주화의 출발점인 튀니지 벤 알리의 장기 독재를 종식시키는 데 기폭제로 작용했던 26세 대졸 과일노점상 부아지지의 분신자살의 기저에는 청년실업과 글로벌 식량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지구촌 청년실업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심화되었고, 글로벌 식량부족과 식량가격 폭등은 기후변화의 결과였다.



특히 최근의 연속적인 가뭄과 홍수는 단순한 식량공급의 타격으로 그치기보다 재앙이 될 가능성을 보이는 반면, ‘꼬리 리스크’에 대한 글로벌 정치지도자들의 인식과 대책은 초라하다. ‘꼬리 리스크’ 발생은 시스템 붕괴를 의미하기에 정부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는 반면, 새로운 시스템 구축이라는 만만치 않은 과제를 제기하기에 정치리더십은 위기에 직면한다.

한편, 구제역 재앙이 보여주었듯이 우리의 정치리더들은 ‘꼬리 리스크’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중동사태와 유럽 재정위기, 중국 긴축, 농산물과 원자재 가격폭등, 일본 대지진 등과 결합된 가계부채, 저출산, 청년실업 등은 이미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는 ‘꼬리 리스크’인데도 정치리더들은 태연할 정도로 담대(?)하기만 하다.


* 경향신문 <경제와 세상> 3월 18일자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