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의 ‘스파르타 전사’론과 ‘가계부채 불황’

by 최배근 posted Jun 09, 2011

박재완의 ‘스파르타 전사’론과 ‘가계부채 불황’




‘가계부채 불황’이라는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 ‘디레버리지(부채 축소) 불황’은 한국의 외환위기나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서 보았듯이 후유증이 심각하다. 금융위기 이후 모르핀(달러 찍어내기)으로 지탱하는 미국 역시 ‘부채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리를 바닥까지 내리고, 수조 달러를 찍어내도 주택 압류 증가와 주택가격 하락은 5년 넘게 지속되고 있고, 고용은 회복되지 않고 있다.
 
경제학자들과 IMF는 금융위기라는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나서야 소득 불평등이 레버리지(부채 증대)를 통해 위기로 연결되는 전달 채널의 열쇠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즉 소득불평등이 확대될수록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DTI) 및 GDP 대비 은행신용(민간대출) 비율이 증가하는 공진화 현상이 위기 직전에 나타난다.


중·저소득층은 소비 제약을 빚을 내 해결하는 반면, 실물경제에 필요한 만큼의 신용 공급보다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은행은 대출 경쟁을 하며 그 대출을 담보로 만든 금융상품을 고소득층에게 투자 대상으로 공급하기 때문이다. 중·저소득층의 실질소득이 개선되지 않는 한 가계부채 증가는 지속되고, 결국 위기를 야기하는 금융취약성으로 이어진다. 주지하듯이 그동안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 노동자의 교섭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특히, 노동시장의 탈규제와 감세는 실질임금 상승의 억제, 고용 불안정 및 고용의 질의 악화, 사회안전망의 약화, 최상위 고소득층에 유리한 조세체계의 개편을 통해 중·저소득층의 교섭력을 약화시켰다.

그 결과 오늘날 미국의 최상위층은 소득, 배당, 부동산 등에 대한 세금이 역사상 가장 낮은 시기에 살고 있다. 게다가 0.0003%도 안 되는 초상류층(400명)의 실효소득세율(17%)이 상위 1%(140만명)의 세율(23%)보다 낮을 정도로 조세체계는 소득재분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그런데 유럽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유럽병’이라 비난하던 미국은 90년대 초부터 ‘고용 없는 경기회복’에 직면하면서 ‘고용에 연계’한 사회보장 시스템은 위기를 맞는다. 이를 정치권과 월가는 저소득층에 대한 주택신용 확대(‘신자유주의식 포퓰리즘’), 즉 가계부채 확대로 대응하였고 그 결과가 금융위기와 ‘부채 불황’이다.

이처럼 ‘부채 불황’의 원인과 결과를 보면 MB노믹스야말로 ‘가계부채 불황’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맞춤형 처방’임을 알 수 있다. 물가를 희생시키면서 일자리 창출에는 효과도 없는 ‘성장률 높이기’에 집착한 결과 서민과 중산층의 실질소득은 후퇴하고 고용 불안정은 심화되었다. 여기에 최상위 소득층에 유리한 조세체계의 개편과 빚을 내 주택을 구입하라는 ‘신자유주의식 포퓰리즘’ 등이 가계부채를 이 지경으로 악화시킨 것이다. 그 결과 금리 왜곡과 부동산 시장의 침체 등 모든 것이 가계부채에 발목 잡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물가는 포기한 채 ‘스파르타 전사’가 되어 감세와 ‘고용 연계형’ 복지 등 MB노믹스를 사수하겠다는 신임 박재완 장관의 아집은 ‘가계부채 불황’을 앞당길 수밖에 없다. ‘부채 불황’의 경험적 결과를 볼 때 사후 처방보다는 사전 예방이 비용 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다. ‘부채 불황’은 공적자금 투입 등 납세자 부담을 증가시키고, 고용과 투자수요와 기술개발을 위축시키고, 가정과 사회를 뿌리째 흔들기 때문이다.

가계부채의 완화는 중·저소득층의 부채 상환 능력을 개선하는 것이고 이는 고용 창출과 실질소득 개선에 의해 가능하다. 특히, 단기간 내 효과를 보려면 성장률보다는 물가안정과 고용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소득재분배 효과가 있도록 조세체계를 개편하고, 비정규직의 남용을 근절해 중·저소득층의의 교섭력을 개선시켜야 한다. 이러한 처방들의 사회 비용과 ‘부채 불황’에 따른 사후 처방의 비용 중 무엇이 사회 이익에 부합하는지는 자명하다. 그럼에도 정부가 추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도덕성의 문제다.

설계자로 알려진 박장관에게 MB노믹스의 폐기가 고통스러울 수 있겠지만 국가경영은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결단을 간절히 부탁한다.


* 경향신문 [경제와 세상] 6월 10일자 칼럼입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6091951525&code=99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