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미답의 길 들어 선 세계경제

by 최배근 posted Sep 29, 2011
[경제와 세상]전인미답의 길 들어 선 세계경제

최배근 건국대 교수·경제학



위기의 그림자가 다시 짙어지는 이유는 지난 3년간 세계경제의 체질이 더욱 약화됐기 때문이다. 금융위기가 시스템의 파산에서 비롯한 반면, 위기에 대한 대응은 기존 시스템을 만든 사고방식으로 접근한 결과다. 예를 들어 유로존 위기는 경제(단일 통화정책)와 정치(국가별 재정정책)의 비대칭성이라는 시스템 실패의 산물이다.

시스템 문제를 방치한 채 재정위기를 겪는 국가의 긴축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사태를 악화·확산시켰다. 그 결과 현 단계 유럽 재정위기의 해결은 유로 차원을 넘어 글로벌 차원의 초국가 협력과 이를 위한 글로벌 지배구조의 개혁을 요구한다. 게다가 글로벌 지배구조의 개혁 이후에도 상이한 경제체질을 가진 유로존 회원국 간 이해관계 차이의 조정을 요구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세계는 초국가 단위에서 ‘집단행동의 딜레마’ 즉 개별 국가의 ‘무임승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있지 못하다.

미국의 금융위기 역시 지난 30년간 진행된 금융, 고용, 사회보장, 주거, 혁신 등 미국 사회를 지탱해왔던 핵심 시스템들이 붕괴된 결과다. 첫째, 지난 30년간 미국의 금융시스템은 자신이 만들어낸, 그러나 자신이 관리와 통제를 할 수 없었던 ‘비공식 세계’에 의해 살해되었다. 장부외거래, 장외파생상품거래, 그림자금융 등이 그것들이다. 둘째, 1990년대 이후 침체를 겪을 때마다 ‘고용없는 성장’이 심화되고, 6개월 이상 실업 상태에 있는 장기실업자 비중이 추세적으로 상승해 유연성을 자랑하던 미국식 고용시스템은 난관에 봉착한다. 그 연장선에서 고용에 연계된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시스템과 장기 고용의 보장에 기초한 모기지 시스템 역시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 월가와 유착한 정치권의 선택이 중·저소득층에게 돈을 빌려주고 집을 사게 한 ‘신자유주의 포퓰리즘’이었고, 그 산물이 인위적 거품 생성과 붕괴였다. 최근의 침체에서는 장기 실업자의 90% 이상이 경제활동을 포기하는 등 취업자의 비중까지 하락하며 고용 구조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고용과 모기지 그리고 금융 시스템 와해의 결과를 가장 정확히 보여주는 거울이 연초 대비 주가가 50%나 하락할 정도로 위기에 처한 뱅크오브아메리카(BoA)다. 2조3000억달러의 자산과 4000억달러의 현금 및 유동성 자산, 미국 전체 주택대출의 20%, 5700개 이상의 영업점과 5800만명의 고객을 가진 BoA는 미국 경제와 샴쌍둥이다.

BoA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제조 공장’이었던 컨트리와이드 파이낸셜을 인수했다. 그 결과 수십만개의 부실 모기지로부터 현재까지 300억달러가 넘는 손실이 발생했다. 게다가 일반 투자자와 정부보증 모기지업체, 그리고 블랙록이나 핌코 등 기관투자자 등으로부터 각각 수백억달러의 손해배상 요구와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BoA에 연준(Fed)까지 비상계획 제출을 요구하며 압박하고 있다. BoA가 세계 각지에 있는 주요 자산의 매각과 지분 정리, 그리고 대규모 인원 감축 등 덩치를 줄이고 있는 이유다. 문제는 소송이 언제 끝날지 모르고, 주택시장도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90일 이상 연체하거나 차압당한 대출이 410만개나 될 정도로 연체율은 역사적 평균 수준보다 두 배나 높고, 90일 이상 연체자 중 40% 이상이 1년 이상 연체한 대출이다 보니 차압률도 역사적 평균보다 8배나 높다. 마지막으로 2000년대 초 닷컴버블 붕괴 이후 미국에서 혁신이 실종됐다. 미국의 혁신을 뒷받침한 벤처자본 모델이 클린테크 분야에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뉴 아폴로‘(New Apollo)’ 계획의 지지부진 등 그린뉴딜이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다.

이처럼 시스템의 총체적 와해로 인해 천문학적 재정과 금융 투입에도 불구하고 고용과 주택시장이 살아나지 않는 이유다. 미국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위기의 주요 원인인 소득불평등이 심화되며 사회유동성이 감소하고 기회의 불평등이 증가하는 등 미국식 사회계약까지 흔들리고 있다. 미국 신용등급의 강등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배경에 기초한다.

* 경향신문 <경제와 세상> 9월 30일자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