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정치지도자 선택의 첫번째 기준

by 최배근 posted Oct 27, 2011
2012년 정치지도자 선택의 기준

최배근|건국대 교수·경제학


유로존과 미국이 ‘일본식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부채의 함정’ 앞에서 정치지도자들이 무능력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과제 해결을 둘러싼 구성원 간 이해 조정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경제위기는 정치위기다. 우리 경제 역시 ‘부채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정치지도자들의 능력과 리더십은 매우 초라하다. ‘안철수 신드롬’ 역시 낡은 틀에 갇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기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선언이다. 한마디로 국민들은 불안한 미래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미래를 덮고 있는 가장 커다란 암운은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장기불황의 가능성이다. ‘유엔의 세계인구전망’ 자료를 토대로 인구구조 변화와 고령화가 주택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들은 주요 22개국 중에서 한국이 향후 40년(2010~2050년)간 주택가격이 가장 크게 하락할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의 경우 2010년을 정점으로 비노동인구 일인당 노동인구의 규모가 하락세로 돌아섰고, 세계 최고의 고령화 속도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맞물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노동인구 일인당 노동인구의 규모가 정점을 지나면서 일본(1990년)의 자산버블, 미국(2007년)의 서브프라임 버블, 스페인과 아일랜드의 자산버블이 발생했다. 자산버블의 붕괴는 지난 20년간 일본이, 그리고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경험하고 있듯이 필연적으로 부채 축소, 이른바 ‘대차대조표의 조정’ 과정을 수반한다.



주지하듯이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위기 이후에도 저금리기조의 장기화, 부동산 경기활성화를 위한 대출규제 완화정책, 가계 생활자금 및 사업자금의 수요 증대 등이 은행들의 가계대출 확대 전략과 맞물리면서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부채가 지속적으로 확대됐다. 즉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전인 2008년 6월부터 2011년 6월까지 3년간 가계부채는 743조원에서 882조원으로 19%나 증가했다. 노동인구의 감소로 주택가격이 하락할 경우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 빚을 갚아야지만 가계는 소비를 축소할 여력이 없다.

우리나라의 가계저축률은 OECD 20개 회원국 평균 6.1%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8%에 불과할 정도로 저축 여력이 고갈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계의 대차대조표 조정은 주택자산 매각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고, 이는 주택가격을 추가 하락시킴으로써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문제는 이러한 대차대조표의 조정 과정이 고령화 및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와 맞물리기에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고령화 및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는 자산가격의 하락이나 주택가격 상승률의 저하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차대조표 조정이 90년대부터 현재까지 장기간 지속되는 이유도 자산버블 붕괴 이후가 고령화와 맞물린 시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경제는 지나치게 대외의존적이고 가계부채 구조는 글로벌 경기침체 같은 거시경제 충격에 매우 취약한 반면, 세계경제의 상황은 일본의 자산버블이 붕괴하기 시작한 90년대 초보다 나쁘다. 그리고 대차대조표 조정의 장기 지속은 금융권의 부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른바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 시나리오다. 주택시장의 장기 침체는 사회 유동성 및 유연성의 쇠퇴, 인적자본의 손실, 성장 및 투자 수익 전망의 쇠퇴, 그리고 다시 주택가격의 하락이라는 피드백 루프가 형성된다.

그리고 ‘부채 함정’은 일본과 미국과 유로존에서 보았듯이 공공부채의 누적을 수반한다. 가계와 금융권의 동반부실 속에 민간부채 압력을 해소하고 침체한 민간수요를 공공수요가 대체하면서 공공부채가 누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채의 함정’은 우리 사회 미래의 족쇄가 될 수밖에 없음에도 정부는 효과도 없는 미봉책으로 일관하며 임기 내에 버블이 터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형국이다. 부동산시장 경착륙과 부채 함정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청년층을 위한 괜찮은 일자리 만들기밖에 없다. 이를 위한 능력의 유무야말로 2012년 정치지도자 선택의 첫 번째 기준이 되어야 한다.


** 경향신문 <경제와 세상> 11월 28일자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