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정치지도자 선택의 기준
미국 경제가 대수축기에 진입했다. ‘제2의 일본’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의 시대를 만들었던 주요 시스템들이 작동하지 않는 반면, 미국 지도자들의 대응은 위기를 부른 사고 수준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난 3년 넘게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위기 이전보다 상황은 더 악화됐고, 국가부채를 늘려도 GDP 증가 효과를 내기 어려운 이른바 ‘케인지언 종착역(Keynesian Endpoint)’에 접근하고 있다.
세계경제에서 미국 경제력의 상대적 비중 축소는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근본적 변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세계질서는 미국의 절대적 군사력 및 경제력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 경제의 대수축과 지속 불가능할 정도로 증가한 국가부채로 미국의 세계안보 전략은 수정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미국 경제력에 기초했던 국제통화체제(달러체제)도 다원통화체제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미국 경제력의 축소로 달러 준비자산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통화시스템의 역사가 통화가치의 하락 위험을 피하기 위한 끝없는 안전자산 추구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국제통화시스템은 국제금융시스템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달러체제의 약화는 국제금융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이는 미국의 금융시스템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국제금융시스템과 선진국 경제력에 대한 신뢰 상실을 의미한다. 국제통화체제 및 국제금융시스템을 시급히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이처럼 미국 중심의 질서에서 다극체제로의 전환이 불가피한 반면, 초국가 협력의 지혜 및 리더십의 결여로 ‘다극체제의 불안정성 리스크’가 국제사회의 주요 문제로 부상했다. 그리고 불안정성 리스크의 최전선이 바로 한반도다. 문제는 미국 사회의 많은 엘리트들조차 미국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고 다극체제로의 전환이 불가피함을 인식하고 있는 반면, 우리 사회의 많은 지도자와 지식인들은 여전히 미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미국 지도력의 회복을 막연히 낙관하고 있다.
GDP와 무역액과 자본의 순수출 등으로 구성된 경제력을 기준으로 미국과 중국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각각 13.3%와 12.3%였는데 올해는 역전될 가능성이 높다. 미·중 간 패권 경쟁의 현 주소는 ‘타국의 주권 존중과 내정불간섭’을 내세우는 ‘베이징 컨센서스’에 잘 드러난다. 1차 대전 후 당시 새로이 부상하던 미국이 영국 등 ‘과거 패권들’에 대한 역할 축소 요구가 자결주의였듯이 ‘베이징 컨센서스’는 미국 패권의 축소를 요구하는 ‘중국판 자결주의’다.
특히 아시아에서 미국을 분리시키는 것은 중국의 최우선 과제다. 중국이 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제 관계를 강화해온 이유다. 현재 동아시아 국가들의 무역에서 중국 비중은 40%가 넘을 정도로 중국경제에 대한 의존이 높다. 대만과 한국의 경우는 사실상 중국 경제권에 들어간 상태다. 반면 동아시아 국가들의 수출에서 미국의 비중은 크게 축소됐다.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주의’와 미국 중심의 ‘아시아·태평양주의’가 한반도에서 충돌하고 있다.
아세안+한·중·일FTA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한 예다. 한국은 미·중 갈등 속에서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반면, 한국의 미·중 전략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수용한 이명박 정부의 한·미 FTA와 한·미 동맹 강화가 그것이다. 현재의 한·미 관계 속에는 중국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한국 활용은 있지만,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과 한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은 확보되고 있지 않다.
미·중 갈등을 지혜롭게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너무 선언적이다. 미·중에 의해 줄서기를 강요당하는 가운데 한국의 선택을 관철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다극체제의 불안정성 리스크’를 해소시킬 비전과 능력의 유무가 2012년 정치지도자 선택의 또 다른 기준이 돼야 하는 이유다.
* 경향신문 [경제와 세상] 11월 17일자 칼럼입니다.
미국 경제가 대수축기에 진입했다. ‘제2의 일본’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의 시대를 만들었던 주요 시스템들이 작동하지 않는 반면, 미국 지도자들의 대응은 위기를 부른 사고 수준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난 3년 넘게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위기 이전보다 상황은 더 악화됐고, 국가부채를 늘려도 GDP 증가 효과를 내기 어려운 이른바 ‘케인지언 종착역(Keynesian Endpoint)’에 접근하고 있다.
세계경제에서 미국 경제력의 상대적 비중 축소는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근본적 변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세계질서는 미국의 절대적 군사력 및 경제력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 경제의 대수축과 지속 불가능할 정도로 증가한 국가부채로 미국의 세계안보 전략은 수정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미국 경제력에 기초했던 국제통화체제(달러체제)도 다원통화체제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미국 경제력의 축소로 달러 준비자산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통화시스템의 역사가 통화가치의 하락 위험을 피하기 위한 끝없는 안전자산 추구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국제통화시스템은 국제금융시스템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달러체제의 약화는 국제금융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이는 미국의 금융시스템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국제금융시스템과 선진국 경제력에 대한 신뢰 상실을 의미한다. 국제통화체제 및 국제금융시스템을 시급히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이처럼 미국 중심의 질서에서 다극체제로의 전환이 불가피한 반면, 초국가 협력의 지혜 및 리더십의 결여로 ‘다극체제의 불안정성 리스크’가 국제사회의 주요 문제로 부상했다. 그리고 불안정성 리스크의 최전선이 바로 한반도다. 문제는 미국 사회의 많은 엘리트들조차 미국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고 다극체제로의 전환이 불가피함을 인식하고 있는 반면, 우리 사회의 많은 지도자와 지식인들은 여전히 미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미국 지도력의 회복을 막연히 낙관하고 있다.
GDP와 무역액과 자본의 순수출 등으로 구성된 경제력을 기준으로 미국과 중국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각각 13.3%와 12.3%였는데 올해는 역전될 가능성이 높다. 미·중 간 패권 경쟁의 현 주소는 ‘타국의 주권 존중과 내정불간섭’을 내세우는 ‘베이징 컨센서스’에 잘 드러난다. 1차 대전 후 당시 새로이 부상하던 미국이 영국 등 ‘과거 패권들’에 대한 역할 축소 요구가 자결주의였듯이 ‘베이징 컨센서스’는 미국 패권의 축소를 요구하는 ‘중국판 자결주의’다.
특히 아시아에서 미국을 분리시키는 것은 중국의 최우선 과제다. 중국이 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제 관계를 강화해온 이유다. 현재 동아시아 국가들의 무역에서 중국 비중은 40%가 넘을 정도로 중국경제에 대한 의존이 높다. 대만과 한국의 경우는 사실상 중국 경제권에 들어간 상태다. 반면 동아시아 국가들의 수출에서 미국의 비중은 크게 축소됐다.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주의’와 미국 중심의 ‘아시아·태평양주의’가 한반도에서 충돌하고 있다.
아세안+한·중·일FTA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한 예다. 한국은 미·중 갈등 속에서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반면, 한국의 미·중 전략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수용한 이명박 정부의 한·미 FTA와 한·미 동맹 강화가 그것이다. 현재의 한·미 관계 속에는 중국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한국 활용은 있지만,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과 한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은 확보되고 있지 않다.
미·중 갈등을 지혜롭게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너무 선언적이다. 미·중에 의해 줄서기를 강요당하는 가운데 한국의 선택을 관철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다극체제의 불안정성 리스크’를 해소시킬 비전과 능력의 유무가 2012년 정치지도자 선택의 또 다른 기준이 돼야 하는 이유다.
* 경향신문 [경제와 세상] 11월 17일자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