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7월 드라마'와 김정은 체제의 향방

by 조 민 posted Jul 27, 2012


평양의 '7월 드라마'와 김정은 체제의 향방
- 북한, 어디로 가는가? -


                               조 민 (사)코리아글로브 이사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평양의 '7월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7월 15일 북한 신군부의 실세였던 리영호 총참모장의 전격 실각으로 평양은 즉각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이날 진행된 조선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리영호는 조선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겸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모든 직무에서 해임되었다. 이튿날 16일 공석이 된 자리에 현영철 대장이 차수 승진과 함께 군 총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18일 오전 11시께 평양은 '중대보도'를 예고했다. 12시의 중대보도는 그 전 날 17일 김정은의 '공화국 원수' 칭호 수여에 대한 아주 짤막한 보도였다. 김정은 '원수' 칭호가 평양 발 깜짝 드라마의 하이라이트였다. 후속행사로 18일 군부의 김정은 원수 칭호 수여 축하 결의대회, 19일 평양시 경축대회가 이어졌다. 이처럼 7월 15일에서 17일 사이, 사흘간의 거사는 그야말로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진행되었다. 미리 잘 짜여진 각본대로 연출된 한 편의 드라마였다.

김정은 공화국 원수, '견장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을까?

김정일 사후 7개월 만에 김정은 제1위원장은 '공화국 원수'의 지위에 올랐다. 이는 군부에 대한 사전 정지작업의 마무리 단계를 뜻할 수도 있고, 그와 달리 군부 장악에 대한 결의의 메시지일 수도 있다. 김일성 주석은 1953년 39살 나이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2년 50세에(오진우 인민무력부장과 함께) 원수 칭호(김일성 '대원수')를 수여받았는데, 김정은 제1위원장은 28세의 나이에 원수 칭호를 수여받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3대 세습후계자 김정은 공화국 원수가 과연 '견장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된다. 장기적 전망을 일단 유보한다면, 현 단계에서 김정은 체제에 대한 도전이 나타나 권력 갈등이나 권력 투쟁이 발생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이는 북한 군부의 횡적ㆍ종적 연계가 철저히 차단된 구조 속에서 군부 스스로 시대의 변화를 거스를 명분도 대안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먼저 북한체제의 권력 핵심의 성격을 짚어보자. 지금 김정은 제1위원장을 중심으로 김경희, 장성택, 최룡해 세 사람의 트로이카는 김정은과 더불어 '함께 살고, 함께 죽는' 운명공동체를 이룬 '로열패밀리'라고 할 수 있다. 고모 김경희와 고모부 장성택 부부의 역할, 위상, 역량, 개성 등은 충분히 알려져 있다. 비교적 덜 알려진 최룡해(1950년생, 인민군 총정치국장,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국방위원회 위원, 인민군 차수)는 최현의 둘째 아들로, 김정일 위원장에게는 8살 아래로 형제와 거의 다름없는 인물이다. 김일성과 함께 빨치산 활동을 했던 최현은 1970년대 초 김정일을 적극 지지하여 후계체제 구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그 결과 김일성이 가장 아끼고 신뢰하는 인물이 되면서 최룡해의 평생 출세가 보장되었다.

김일성은 회고록『세기와더불어(4)』에서 특별히 '백전로장 최현'의 장을 할애하여 그와의 추억과 예찬을 늘어놓으면서, 말미에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준비위원장을 맡았던 최룡해를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최룡해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총애 아래 권세를 누리다가 2006년 황해북도 책임비서로 좌천되었다. 그 후 2010년 9월 인민군 대장 칭호 부여와 함께 당 권력에 진입하여 김정은 후계체제의 핵심 동반자이자 로열패밀리의 한 사람이 되었다. 공안ㆍ보안기관을 장악한 장성택과 더불어 고급 장교를 통제하는 정보체계와 인사권을 장악한 총정치국장 최룡해는 조만간 군 장성(장령)을 친위세력으로 물갈이하는 후속조치를 단행할 것이다.

로열패밀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의 운명과 스스로를 일체화시키는 사람들이다. 로열패밀리 네 사람에게 국가는 곧 가문의 유산=유업이자, 자기의 실존적 근거가 된다. 왜냐하면 세습후계는 혁명전통의 계승이 아닌 혈통 계승이기에 본능적으로 핏줄 중심의 의식이 서로 믿고 의지하는 신뢰의 척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만경대 가문의 핏줄인 김경희의 유고는 북한의 권력지형을 매우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어쨌든 현재 이들은 당과 내각 등 국가기구와 제도적 차원을 넘어 북한체제의 구심적 존재이자 권력 실체라고 할 수 있다. 로열패밀리가 기획하고 연출한 최근의 사흘간의 거사로 이들이 일단 군부를 제압한 상태라고 하겠다. 지금 상황에서 군의 저항이나 조직적인 움직임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제 김정은 정권의 향방이 실질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게 된다.

선군(先軍)에서 선당(先黨)으로!

총대에서 권력이 나온다! 이러한 총대 중시 사상은 김정일의 선군정치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김정은의 시대는 다르다. 총구에서 쌀이 나오지 않는다! 이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인식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총과 총알은 당과 국가가 만들어주겠으니 군은 이제 싸움터로 돌아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선군정치는 김정일 위원장의 유산이다. 김정은 정권에 이 유산은 자산이라기보다는 부담이다. 선군정치의 유산 즉, 부담을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는 없으며 자칫 선군정치의 복병에 걸려 위태로운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선군정치 시대를 거치면서 북한 군부는 '과대성장' 했으며 특히, 국가 자원의 독점과 특혜로 경제회복을 위한 국정의 정상적인 작동을 어렵게 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군부가 뒷선으로 물러나고 당이 앞에 나서서 내각을 이끌어 나라를 정상화시켜야 할 때이다. 이는 곧 선군(先軍)에서 선당(先黨)으로 가는 길이다.

당 재건 즉, '당으로의 축 이동'(pivot to the Party)'은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자기 시대의 선군정치의 한계를 인식하고 당 중심 체계 구축을 서둘렀다. 그는 버렸던 당을 말년에 되찾는 작업을 추진하면서, 후계자가 당 중심의 권력 기반을 다지고 '당-국가' 체제의 복원을 통해 사회주의국가의 정상화를 추구하도록 했다. 당 중심 체제 확립은 대내외 정책에서 군부의 퇴조를 의미하며, 그와 더불어 국가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군부 경제의 기반을 당-국가(내각)로 이전시켜야 가능하다. 이에 당 체계 안에서 후계자가 군을 장악할 수 있도록 군사 부문과 무관한 김정은의 후원그룹에게 대거 대장 지위를 부여했다. 그러한 기반 위에서 새 지도부는 국정의 정상화를 위해 선군정치에서 당의 지도와 우위가 보장되는 선당정치로의 전환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선군정치로 자만심에 가득찬 군부는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했으며, 당 재건을 서두르는 김정일 위원장과 후계그룹의 의도를 간취하지 못했다. 지난 4월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이었던 우동측의 숙청을 계기로 김정은 로열패밀리의 권력 장악을 위한 물밑 작업이 드러났음에도 신군부 실세는 그러한 동향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고, 리영호의 경우 제4차 당대표자회를 전후하여 일련의 정책 추진 방향에 대해 비난하거나 로열패밀리의 권력 구심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스스로 몰락의 길을 재촉했다.

내각, 북한 경제재건의 총사령부

군부에 대한 통제 속에서 당권을 장악한 로열패밀리는 당장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 회복의 전망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김정은 권력은 총대가 아닌, 쌀과 최소한의 경제회복의 성과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가야 할 길은 멀고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입장은 4월 19일자 <로동신문>에 게재된 김정은과 당 중앙위 일꾼들의 담화 내용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이 담화는 제4차 당 대표자회를 앞둔 4월 6일에 "위대한 김정일 동지를 우리 당의 영원한 총비서로 높이 모시고 주체혁명위업을 빛나게 완성해가자"는 제하의 담화로, 북한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문건이다. 전문은 16쪽으로 상당히 긴 담화인데, 핵심적인 내용은 당 위상의 강화로 당적 유일적 영도체계 수립을 강조하면서, '인민들의 먹는 문제, 식량문제 해결'을 선결과제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농업생산에 대한 국가적 투자 계획과 함께 경공업 발전에 힘을 쏟아 인민소비품 생산을 늘린다는 방침을 밝혔다.

'4ㆍ6 담화'는 "경제사업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각의 통일적인 지휘"를 강조하면서, 내각을 나라의 경제를 책임진 '경제사령부'로 규정하였다. 나아가 모든 경제 문제를 내각과 합의하고 내각의 결정, 지시를 집행하는 한편 각급 당은 내각책임제, 내각중심제를 강화하는 데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국가의 모든 경제 문제를 내각 중심으로 추진하겠다는 원칙을 천명한 점이 주목된다.

그런데 북한의 경제정책의 방향과 관련하여 항상 '시장' 문제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데, 시장이 북한의 개혁ㆍ개방의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지난 김정일 시대는 어느 면에서 '시장과 체제(계획경제체제)'와의 관계조정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다. 김정일 시대 전반기에는 공식배급체계의 급작스런 붕괴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장마당이 우후죽순 나타났는데 장마당이 점차 커지면서 시장화 현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상당 기간 당국은 시장과의 '불편한 동거'를 감수해야 했다. 그 후 김정일 시대 후반기인 2005~6년 무렵 시장화 수준을 체제 위협으로 파악한 당국은 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통제 정책을 수행했다.

이 시기 북한 체제의 보수화 경향이 두드러졌으며, 마침내 2009년 11월 말 화폐개혁의 단행으로 시장을 통해 자립하거나 성장하고 있던 세력은 거의 몰락하고 말았다. 이처럼 김정일 시대 후반기 한편으로는 '체제와 시장'과의 대결 국면이자, 주민의 일상생활 차원에서는 '완장과 장바구니'와의 갈등의 시기였다. 시장 문제에 대한 북한 당국의 두려움과 대응 방식은 청진 수남시장 사례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2008년 3월 4일 청진시, 오후 1시 무렵부터 수남시장을 비롯해 청진시 곳곳의 시장에는 약속이나 한 듯이 수많은 여성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장사를 못하게 한다면 배급을 달라", "이러다간 다 죽게 됐다. 줄 쌀이 없으면 장사를 하게 해 달라", "죽을 바엔 너 죽고 나 죽고 해보자" 이런 집단 항의사태에 보안원들이 강제로 해산시키려 했다간 당장 험악한 일이라도 벌어질 분위기였다... 그 후 당국은 얼마동안 장사를 허용했지만... 2009년 6월 북한 당국은 평남 평성시장 폐쇄에 이어 2010년 초 마침내 '공화국 도매시장'으로 이름난 수남시장 폐쇄 조치를 내렸다(「좋은 벗들」'오늘의 북한 소식', 115호(2008.03.14), 116호(2008.03.20), 322호(2010.01.06), 참고). 그 후 수남시장이 몇 개의 작은 규모로 나눠져 개장되고 있다는 말도 전해진다.

북한 당국의 이러한 입장을 감안하면 북한의 내각 중심의 경제정책 추진 의도가 결코 시장화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체제 경제정책의 방향 : 국가의 '선(先)투자'를 통한 경제재건

최근 '4ㆍ6 담화'와 관련하여 매우 흥미로운 북한 내부 문건이 소개되었다. 북한 내부 소식통에 의하면 북한은 지난 6월 말 '우리식의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6ㆍ28 방침'을 공표했다고 한다(<데일리NK> 2012.07.10). 이 방침은 김정은체제에서 처음으로 제시된 경제조치로 협동농장, 공장, 기업소에 시장가격이 반영된 생산비용을 먼저 지급하는 방식의 경제관리체계를 밝혔다. 협동농장의 경우 현재의 작업분조 단위(10~20명)를 4~6명 단위로 줄이고 작업분조에 따라 토지와 생산비용을 할당한 후 국가와 작업분조가 생산물을 일정 비율로 나눈다는 것인데, 새로운 점은 국가가 생산비용을 선지급 한다는 사실이다. 공장기업소의 경우도 최초 생산비를 국가가 '투자'하고 기업이 원자재를 구입하여 생산ㆍ판매 후 국가와 해당 기업소가 일정 비율로 나눈다는 정책이다. 협동농장의 기초 생산 단위의 축소는 생산 의욕을 한층 높일 수 있고, 협동농장이나 공장과 기업소에 대한 국가의 선(先)투자는 종자나 원자재 구입 등을 통해 생산을 가능케 할 수 있는 방식이다.

김정은체제가 추구하고 있는 경제재건의 본질은 계획경제의 근간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시장 없는 개혁'을 추구하고 있는 셈인데, 이는 시장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의 반영으로 이해된다. 국가의 '선투자'는 생산 부문에서의 계획 메커니즘의 복원을 추구하는 전략으로, 선투자를 통해 생산을 추동하고 판매와 소비를 활성화시켜 다시 생산 부문의 선순환을 기대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한계로, 우선 당장 막대한 초기 재원 확보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집단영농 방식의 고수로는 농업개혁이 성공할 수 없으며 시장 논리를 거부하면서도 '수매가격 현실화'를 추구한다는 논리는 모순적이다. 오히려 농업개혁을 위해 최소 단위 수준에서 어느 정도 개인농을 수용하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금번 북한 경제정책의 핵심은 국가의 선투자에 있는데, 선투자는 농장이나 공장기업소에 생산을 위한 '종자돈'을 마련해주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국가가 이 종자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물론 엄청난 국가재정이 투입되는 선투자를 전국적으로 모든 생산 단위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협동농장이나 공장기업소에 대한 선투자는 시범구역을 지정하거나 선별적인 방식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국가예산 소요는 만만치 않을 것이며, 당장 필요한 재정을 어떻게 확보 하느냐에 따라 경제정책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하겠다. 생산 동기 유발을 위해 마른 수건을 짜듯 내부자원을 동원해야 하는데, 순탄하게 진행될 것 같지 않다.

경제재건을 위한 국가재정 확보 방안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외부로부터 대대적인 경제지원을 얻어내는 방안이다. 그러나 외부로부터의 수혈 즉, 경제지원은 대남 및 대미관계의 새로운 조정 국면을 전제로 2013년 이후에나 가능하다(금년 가을 이산가족 상봉 대가로 우리 정부의 대북지원을 기대할 수도 있다). 다른 하나는 내부 자원의 동원을 통한 재정확보 방식이 있다. 이는 여러 기관 단위에 분산되어 있는 국가자원 관리권이나 외화벌이기관 등을 당의 통제아래 두어 국가재정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내부자원 동원의 경우 특히, 군부 산하에 있는 탄광, 지하자원, 농장ㆍ어장ㆍ목장, 무역회사 등 다양한 외화벌이기관들을 회수하여 당의 통제아래 두지 않으면 안 된다. '4ㆍ6 담화'는 이런 취지에서 "전군에 당의 령도체계, 최고사령관의 령군체계와 혁명적 군풍을 철저히 세워 인민군대를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 최고사령관의 군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군에 대한 당적 우위와 통제 권능을 분명히 하였다. 이는 군부의 양보를 의미하며, 실제로는 군부 산하의 모든 경제적 이권을 당으로 이전시키는 작업을 예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당ㆍ군 간 마찰과 갈등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권력 갈등의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어쨌든 북한의 권력 핵심인 로열패밀리가 이 과제를 순조롭게 풀어나가면서 군부의 경제적 특권구조를 약화시키고 당을 중심에 올려 세워야 경제재건을 위한 가닥을 잡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4ㆍ6 담화'는 당적 지도의 관철과 내각에 힘을 실어준다는 방침만 강조되었지 개혁ㆍ개방에 대한 어떠한 암시도 없었으며, 경제회복을 위한 새로운 비전과 전략적 구상의 단초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요컨대 개혁ㆍ개방 없는 경제재건 정책 구상이야말로 이 담화의 본질적 한계라 할 수 있다.

'경제재건' 정책을 넘어 개혁ㆍ개방 비전을 제시해야

내각 총리 최영림(1930년생)은 북한 최고의 경제통이자 당ㆍ정ㆍ군 두루 존경받는 인물로 북한 경제재건의 키를 잡고 있다. 당 중앙위 경공업 부장인 박봉주(1940년생)는 2003년 9월 내각 총리를 맡아 경제개혁을 추진했으나 '자본주의 도입'으로 매도당해 쫓겨났다. 2010년 8월 당시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 보좌 역할로 중앙당에 복귀하였고 최근 김경희의 자리를 이어받아 인민소비품 문제를 풀어야 하는 과업을 떠맡았다. 내각 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장인 로두철(1944년생)은 내각 경제 부문을 실질적으로 관장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내각이 '나라의 경제를 책임진 경제사령부'로서 노심초사하더라도 '빈 곳간' 앞에서 경제재건 사업이 안착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물론 이는 북한 최고의 경제통 세 사람의 책임은 전혀 아니다. 말하자면 경제개혁 없이 경제재건 임무만 부여받은 조건 속에서 경제 테크노크래트의 참다운 역할을 발견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북한의 미래는 권력을 누가 장악하느냐 하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결국 집권세력이 어떤 노선, 어떤 정책을 추진하느냐 하는 데에 달려 있다. 그런 점에서 당ㆍ군 간 갈등 문제가 핵심적인 관측 포인터로 부각될 필요는 없다. 권력을 장악한 측이 과연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회복의 전망을 제시하면서 북한의 미래를 열어갈 비전과 전략을 보여줄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최대의 관심사라 하겠다. 피폐해진 북한 경제 현실에서 개혁ㆍ개방에 대한 뚜렷한 전략 없이 '경제재건'은 공허한 얘기일 뿐이다. 대미 유화적 제스처에 불과한 미키마우스 분장을 곁들인 평양 모란봉 악단 공연의 대외공개를 개방을 위한 메시지로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북한 노동당과 로열패밀리의 미래를 향한 보다 전향적이고 과감한 결단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