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복의 중강국’ 이상과 대한민국 국가이성의 문제

by 양승태 posted Feb 15, 2013


‘국민행복의 중강국’ 이상과 대한민국 국가이성의 문제

(강연본)


                                                       양 승 태 코리아글로브 고문 / 이화여대

“Fatigue is the antithesis of Reason." -A. N. Whitehead



I.

  이화여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는 양승태입니다.
  먼저 <미래학회>에 오늘 여러 선생님들 앞에서 <‘국민행복의 중강국’ 이상과 대한민국의 국가이성>을 제목으로 말씀을 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미래학회>가 저에게 요청한 강연 주제 및 목적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0여 년 전 덕산 이한빈 선생이 국가경영의 목표로 제시했던 ‘중강국 대한민국’은 이제 현실화되었다. 그런데 그 ‘중강국’ 대한민국은 새롭게 ‘국민행복시대’를 열려는 역사적 시점에 있으며, 그러한 역사적 시점에서 대한민국이 갖추거나 추구해야 할 국가이성의 내용이나 성격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일반 국민들에 대한 계몽적 차원에서라도 그 실체를 역사적 맥락에서 점검하고 해명할 필요가 있다”

(이 강연 기획의 기본 취지와 더불어 오늘 논의할 주제의 의미를 간략히 설명하기 위해 보낸 미래학회가 제게 보낸 e메일의 일부를 직접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총 7회로 기획된 이번 대중강연 시리즈는 저희 학회 창립자이신 덕산 이한빈 선생(전 경제기획원 부총리/서울대 행정대학원장)의 10주기를 기리기 위해 선생의 평소 지론인 중강국론의 현재적 의미를 되새겨보고 그 유지를 사회지도층 및 일반대중에게 널리 알리고자 하는 의도로 마련되었습니다. 중강국론과 관련하여 덕산 선생의 1965년 간행 소책자 <작은 나라가 사는 길-스위스의 경우>를 첨부문서로 보내 드리오니 부디 강연준비에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 . 덕산미래강좌의 서두를 장식할 이번 첫 번째 강연은 크게 "중강국 대한민국의 국가이성과 국민행복"으로 주제설정을 해 보았습니다. 국가이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경하게 다가오는 소위 국민행복시대에 대한민국 국가이성의 과거, 현재, 미래를 중강국이 된 작금의 입장에서 재점검해보는 의도로 기획해 보았습니다만, … .”)

  물론 제가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는 위에 제시된 대한민국의 역사적 위상에 대한 시각, 이 강연기획의 취지, 오늘 발표 주제의 학문적 중요성 및 그 현실적 적실성 등에 기본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덕산 선생의 선견이 아니라도, 비록 영토상 대국은 아니지만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소망은 영토 확장만을 국가의 이상으로 무조건 맹신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중강국’의 이상은 실제로 덕산 선생 이후 일부 정치인들이나 대중매체들에 의해 ‘강소국’의 어휘로 표현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중강국’의 이상은 일단 외형상으로라도 지난해 정부의 발표를 통해 일단 현실화 된 것으로 보입니다. 즉, 대한민국은 ‘국민소득 2만 달러와 인구 5천만’에 도달함으로써 영토상 대국은 아니지만 적어도 경제력이나 인구 규모로 볼 때 ‘강한 나라’ 또는 ‘엘리트 국가’의 반열에 올랐다는 자부심이 공식적으로 표명된 것입니다.

  그런데 ‘국민소득 2만 달러, 인구 5천만’이라는 지표에의 도달이 덕산 선생이 표방했던 ‘중강국’의 이상 모두의 실현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국가정체성의 위기가 운위될 정도로 정파들 사이의 극심한 대립과 반목, 빈부격차의 심화,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자살률과 가장 낮은 출산율, 공교육의 황폐화, 반인륜적 범죄의 빈발, 희망과 패기를 잃어버린 2030세대 등도 그러한 반증을 확인하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일상화된 언어들입니다. 그러한 언어들이란 일단 국민들이 실제적인 국가생활에서 체험하고 느끼는 불만, 불안, 위기감, 절망감 등 다양한 감정의 표출일 것입니다. 또한 그것들은 또한 명시적 자각의 형태이든 또는 묵시적 직관의 형태이든, 또는 어떠한 지적 또는 정신적 수준이나 내용의 것이든, 외형상의 ‘중강국’이 진정으로 강한 나라를 의미하지도 않고, 행복한 국가생활을 의미하지도 않는다는 인식의 공감대가 국민들 사이에 나름대로 형성되어 있음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부국강병은 물론 국가의 존립과 번영을 위한 필수적인 외적 요건입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국가생활을 통해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국가관 자체가 흔들려 자신의 존재와 국가와의 일체감이 약화되어 국가생활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을 때, 부국강병은 오히려 국가적 재앙의 원천으로도 작동할 수 있습니다. 한 때 세계사를 주도했던 국가들의 쇠망은 바로 부국강병의 번영 속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물론 북한과 같이 강병의 필수조건인 부국 없이 군사강국을 유지하려는 시도는 국가생활의 비극적인 희화화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생활에 대한 그러한 자각 때문인지 최근 들어 일부 학자들도 ‘매력국가’, ‘지식국가’ 등의 개념으로 새로운 국가생활의 목표를 설정하려는 노력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한 개념들의 체계성 및 면밀성 문제를 떠나, 그러한 노력들은 적어도 외형적 부국강병이 국가생활에서 추구될 이상의 전부는 아님에 대해서 나름대로 인식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근본적으로 국가생활의 이상이 무엇인가라는 정치철학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을 먼저 요구합니다. 그러한 수준의 성찰까지는 아니라도, 그것은 적어도 한국의 역사 및 정신사적 흐름 속에서 어떠한 학문적 검토나 토의 또는 정치⁃사회적 담론형성을 거쳐 그러한 이상이 국가적으로 정립되고, 그와 같이 정립된 이상이 어떠한 변화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는지 등과 관련된 광범위하면서도 치밀한 탐구를 요구합니다. 그러한 탐구가 없을 경우, 그러한 노력은 정작 새로운 국가적 목표의 정립이 아니라 국가생활의 지엽적인 문제들에 대한 제기나 논란에 그칠 우려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미래학회가 오늘의 모임을 위해 제시된 주제의 학문적 및 현실적 의의가 있습니다. ‘국민행복시대’의 실체를 국가이성의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시도는 적어도 그러한 탐구에 대한 지향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주제는 다음과 같이 새롭게 정립될 필요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의미에서 ‘중강국’이 되기 위해 요청되는 시대적 과제인 ‘국민행복’이라는 이상의 실체는 무엇이고 그것의 실현 방안과 국가이성의 관계가 무엇인가의 주제로 변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간단히 이 강연의 제목으로 설정된 바와 같이 ‘국민행복의 중강국 이상과 대한민국 국가이성의 문제’로 축약하여 기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변형되어야 하는지 간단하게나마 설명이 필요할 것입니다.

  저는 ‘국민행복시대’라는 구호를 작성한 분의 의도나 그것을 통해 표방하려는 이념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릅니다. 하지만 그 의도 여부를 떠나 그 말 자체에는 이 시대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이상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없고, 행복을 떠난 삶이란 무의미 할 것이므로, 그 구호는 국가생활의 보편적인 목표로 적합니다. 그것은 특히 이 시대에 복지라는 말이 대체로 국가재정으로 국민들에게 일방적으로 물질적 시혜를 베푸는 정책 정도의 의미로 통용되고 있기 때문에, ‘보편적 복지’라는 구호보다 의미상 좀 더 포괄적이고 바로 좀 더 보편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국민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이냐에 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부국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생활에 새로운 변혁이 요구되는 새로운 역사적 전환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국민행복시대’라는 구호는 그 지향으로 해석할 수는 있습니다. 단순히 외형적인 부국이나 국민들의 욕구에 대한 일방적인 순응으로서의 복지가 국민행복을 진정으로 이룰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행복’이 무엇인가는 사실 정치철학의 소위 ‘영속적인 질문들(the perennial questions)’에 속하는 방대한 논제입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국가란 무엇이고, 국가생활의 이상 또는 목적은 무엇이고, 국가와 개인의 관계는 무엇인지 등 정치철학의 가장 근원적인 논제에 대한 논의를 요구하며, 그러한 논의는 진정한 의미에서 국가이익이란 무엇인가의 질문을 필연적으로 제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질문들 속에서 국가이성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따라서 ‘국민행복 중강국의 이상과 대한민국 국가이성의 문제’란 오늘 강연의 주제는 국가 이성을 정립하고 국가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하면서 미래의 새로운 국가상을 창조한다는 거대 기획의 일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거대기획의 기초이자 수행의 출발점은 국가이성의 문제를 대한민국의 역사 및 정신사적 맥락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설명하면서 현재 대한민국이 당면한 문제들을 그 근원에서 파악하는데 있습니다. 저는 오늘 강연의 목표를 그러한 기초와 출발점 자체에 대한 ‘윤곽그리기’로 잡았습니다. 그 ‘윤곽그리기’의 핵심은 바로 국가이성 개념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근⁃현대 역사 및 정신사를 개관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관은 덕산 선생에게 ‘중강국’ 이상의 모델이었던 스위스라는 국가의 성격을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스위스의 사례에 대한 국가이성 차원의 접근은 이 시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갖추고 발전시켜야 할 ‘이성’의 성격 및 내용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시하여 줍니다. 또한 그러한 방향 제시는 ‘국민행복’의 실현이라는 시대적 과제의 근본 성격과 내용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도 조명해 줄 것입니다. 그러한 ‘윤곽그리기’의 차원에서 먼저 설명할 것은 국가이성이란 개념 자체입니다.


II.
  
  현재 한국에서 사용되는 국가이성이란 말은 한국정신사 고유의 전통이나 동양사상의 전통에서 유래 또는 발전한 개념어가 아닙니다. 그것은 서구 언어의 어휘인 ‘reason of state’, ‘ragion di stato’, ‘raison d'etat’, ‘Staatsräson’ 등의 번역어이자 서구정치학에서 수입한 개념입니다. 그 학문적 수입의 원천은 독일이므로, 이 강연에서는 편의상 그 독일어를 사용하기로 합니다.

  중국정치사상의 전통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Staatsräson’과 비슷한 개념이 춘추시대 법가(法家)의 전통, 특히 韓非子의 君主 및 法⁃勢⁃術의 개념체계를 통하여 정립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것은 중국의 전국시대나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와 같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국가나 공국들 사이에 사생결단의 투쟁이 벌어지는 혼란기에는 어디서나 나타날 수 있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그와 같이 혼란스럽고 살벌한 상황에서는 조그만 잘못된 정책이라도 국가나 공국을 멸망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에, 어설프고 형식화된 도덕 이념이나 고착된 관념 등의 ‘겉멋’에 집착하는 방식으로는 통치의 목표가 제대로 성취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절박한 현실 인식의 표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계는 서양학문의 수입을 통해서 그 개념과 관련된 역사 및 현실에 대한 인식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학문은 우리 스스로의 역사 및 정신사적 유산과 체험을 독자적으로 이론화하는 작업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와 같은 지성사적 상황 자체가 대한민국 국가이성의 문제와도 실제로 연관되며, 이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논급될 것입니다. 어쨌든 서양학계에서 정립된 ‘Staatsräson’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순수하게 역사적 맥락을 고려할 경우 ‘Staatsräson’은 국가이성이 아니라 ‘국가방략’ 또는 ‘국가책략’으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근대사에서는 ‘국가책략’에 상응하는 말이 외교 무대에서 실제로 나타난 사례가 있으므로 이 강연에서는 그 용어를 사용하고자 합니다.
(일본 주재 청나라 공사관의 참사관으로 있던 청국인 黃遵憲이 수신사 金弘集에게 써주어 1880년 고종에게 받쳤다는《朝鮮策略; 원제는 私擬朝鮮策略》이 그 개념과 연관된다는 것이다. 이 책이 당시 보수파와 개화파 사이에 국론분열을 촉발했다는 사실도 이 강연의 주제와 관련하여 의미가 깊습니다.)

본디 르네상스 시대 이태리의 마키아벨리 정치사상을 통해서 발생한 그 용어는 이성이란 말에 함축된 의미, 즉 인간에게 부여된 최고의 정신적 기능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국가나 공국의 통치자가 자신의 지위나 영지를 보존하기 위한 계산, 술수, 책략 등을 지칭합니다. 그러한 계산과 책략과 연계된 온갖 교활하고 잔인하고 음흉한 정략 등이 그 말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이성’이란 번역어는 그 본래의 역사적 의미를 왜곡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국가이성이란 번역어는 실제로 그 어휘 및 개념을 학문적으로 부활시키고 부각시킨 마이네케(Friedrich Meinecke)의 기념비적 저작 의 저술 배경과 의도를 살펴볼 때 타당한 번역일 수도 있습니다.

  1차 대전 종전 후 얼마 되지 않은 1924년 출간된 위 저작에서 마이네케는 ‘Staatsräson’ 개념을 중심으로 마키아벨리 정치사상을 재해석하면서 서구 근대의 역사 및 정치 사상사를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는 19세기 서구 국제정치를 지배했던 ‘현실주의 정치(Realpolitik)’ 또는 ‘권력정치(Machtpolitik)’, 곧 ‘국가이익(Staatsinteresse)’을 위한 국가 간의 무한 투쟁 양상의 이념적 원천을 마키아벨리에서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 저술의 직접적인 계기란 그 ‘Staatsräson’이란 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가 된 역설적인 정치적 상황의 전개입니다. 다시 말하여 르네상스시대에서 발전한 서구 근대정치사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는 ‘Staatsräson’이란 말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정도로 국가 간의 패권 다툼과 이익추구의 무한 각축장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역사적 및 정신사적 상황의 귀결이 바로 1차 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이 처한 국가적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 역사적 상황의 실체는 외형적인 국가이익 및 국력의 일방적 추구와 행사가 초래한 국가생활의 파탄입니다. 그리고 그 파탄의 근원은 국가생활의 두 필수적인 요소를 높은 차원에서 중재해야 할 국가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러한 기능의 주체가 서양 근대 정치사상사를 지배했던 ‘Staatsräson’을 넘어 국가를 통해 작동하고 실현되어야 할 최고의 정신적 기능으로서의 ‘국가이성(die Vernunft des Staates)’입니다. 그의 표현을 직접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국가생활의 높은 곳에는 힘(Kratos)과 도덕(Ethos), 권력충동(Machttrieb)에 따른 행동과 윤리적 책임에 의거한 행동을 매개하는 하나의 다리, 바로 ‘Staatsräson’이 있으며, 그것은 합목적적인 것, 유익한 것, 신성한(heiligvoll) 것, 그리고 국가가 국가란 존재의 최고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그때그때(jeweils) 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탐색(Erwägung)이다.” 따라서 마이네케에게 국가이성이란 결국 보편적 도덕률인 자연법과 실제적인 역사적⁃정치적 삶 사이에서 언제나 발생하는 불가피한 긴장과 대립을 대승적으로 극복하는 주체이며, 그러한 주체란 곧 키케로(Cicero)가 집약하여 표현한 고대정치의 이상인 ‘정치이성(ratio di politica)’과 근대적 ‘국가책략(Staatsräson)’의 변증법적 종합이라고 할 것입니다.

  유럽 근⁃현대사의 비극은 궁극적으로 ‘국가책략’이 ‘국가이성’으로 승화되지 못한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이네케로 하여금 상기 저작을 저술하게 만든 일차대전 패전국 독일이 처한 역사 및 정신사적 상황의 근원이기도 하지만, 패전국과 승전국의 차이를 넘어 이차대전을 통해 세계사적으로 확산된 비극의 근원인 것입니다. 그와 같이 승화되지 못할 때 부국강병이란 국가 통치의 한 목표가 국가 목적 자체로 전도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전도된 상황의 존속을 국가의 존속 자체와 동일시 할 때, 국가의 이름으로 비이성적 책략을 넘어 온갖 추악하고 부도덕한 행위가 정당화되는 상황이 전개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차대전 이후 전개된 국제정치사의 흐름이 ‘어느 정도는’ 경험적으로 반증하듯이, 그러한 상황이 모든 국가가 벗어날 수 없는 절대적인 숙명은 아닙니다. ‘국가책략’으로부터 ‘국가이성’으로 승화 가능성 자체가 그와 같이 전도된 상황의 극복 가능성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이네케의 ‘묵시적’ 진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소업을 역사학자의 역할에 국한시켰기 때문인지 그 이유는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마이네케 스스로는 국가이성 개념의 발전에 대한 역사적 성찰에 집중한 나머지 도덕과 힘 또는 보편적 윤리와 현실 사이의 궁극적 조화라는 그와 같은 이상의 개념적 실체, 그것의 실현과 관련된 법이나 제도 또는 정책 등 실천적 방안 등을 더 이상 깊이 탐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새롭게 설정한 국가이성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합목적적이고 유익하고 신성한 것에 대한 탐색’ 또한 아직 구체성이 결여된 추상적인 제안에 머무른 것입니다. 그것의 실체 및 구체적인 작동 그리고 그것에 의해 설정된 이상들의 구체적인 실현 방안에 대한 탐구란 정치철학이란 학문적 소업 전체입니다. 다만 이 강연의 목적상 국가이성에 대한 작업적 정의는 필요하므로, 저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규정합니다. ‘국가이성이란 제한적 합리성과 더불어 비합리적 충동이나 탐욕이 지배하는 현실의 국가생활을 좀 더 보편적인 합리성 및 윤리적 이상에 접근하려는 국가 총체적인 능동적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적 차원에서 이성이란 스스로의 자아를 규정하고, 행위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따라 계산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게 하는 정신적 능력입니다. 마찬가지로 국가이성은 국가라는 인간집단의 성격 즉 국가정체성을 규정하고, 국가목표를 설정하고, 그러한 목표에 조화롭게 국가의 행동을 계산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다시 말하여 국가책략을 결정하고 수행하는 집합적 정신 능력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여 그것은 국가주권 행사의 총체적인 성격과 방향을 결정하는 최고의 집합적인 정신적 능력입니다. 따라서 한 국가에서 사회의 여러 부분은 그 부분이 지향하는 최고의 합리성을 구현할 수 있으나 국가 전체로는 지극히 비합리적인 상태에 머무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이성 능력의 성격, 지향하는 목표, 실제적 기능의 질적 수준 또한 국가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한 국가가 공식적으로 표방한 국가종교나 이데올로기의 내용과 성격에서부터, 그 이데올로기를 지적으로 뒷받침하는 지식인 집단의 지적 수준, 지식인 집단과 권력집단 및 일반국민과 관계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국제법상 동등한 주권 국가라도 그 주권행사의 내용이나 성격 또는 그 질적 수준에는 수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국가이성을 그와 같이 규정할 때 한국 근⁃현대의 역사 및 정신사의 역동적인 흐름 전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그러한 흐름과 국가이성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국민행복’이라는 이상의 실체도 해명할 수 있고, 나아가 덕산 선생이 제안한 중강국 이념의 의미도 좀 더 명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마이네케가 서양 근대 정치사 및 정신사의 발전 맥락에서 성찰한 국가책략 및 국가이성의 문제는 한국인들에게는 학문적 이해 대상이나 쟁점이기 이전에 근⁃현대에서 실제로 겪은 역사적 체험의 근원입니다. 그 역사적 체험의 핵심은 일본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국제정치 무대에서 국가이익을 위한 무한 경쟁이라는 국가책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한국은 일방적인 희생물이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러한 체험과정은 한편으로 쓰라리면서도 한심하고도 안타깝기 때문에 희⁃비극적입니다. 동시에 그러한 역사적 체험 속에서 ‘근대화’라는 국가생활의 새로운 역사적 변환이 시작되었고, 그러한 역사적 변환 속에서 한국은 이차대전 후 60여년 사이에 전개된 세계사의 무대에서 소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하고 피 원조국에서 원조국으로 변환하는데 성공한 유일한 국가’라는 국제적 위상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 점에서 한국의 근⁃현대사는 국가이성의 차원에서도 가장 극적인 역사적 아이러니의 예이기도 합니다. 그 아이러니의 핵심에 바로 근대화라는 이념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근대화는 제 3공화국 정부가 설정한 국가목표였습니다. 그것은 근대화 추진세력 나름의 국가생활에 대한 가치관, 판단, 지식 등이 국가이성 또는 국가책략의 형태로 작동한 예입니다. 또한 여러 가지 역사적 우여곡절과 명암이 있었지만, 제3공화국 정부가 근대화의 이름으로 추진한 산업화가 오늘 대한민국이 달성한 국가적 위상의 바탕이었음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추진 과정에서 민주화를 국가목표의 우선순위로 내세운 야당과 일부 사회세력의 반대를 억누른 것도 사실입니다. 그 세력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 한국정치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보수와 진보 대립의 근원이자 국가정체성 위기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비롯하여 어느 국가에서나 역사적 변환의 시기에는 상호 다른 가치관, 판단, 지식이나 정치⁃사회적 배경이 다른 집단들 사이에 그 변환의 성격과 방향과 관련된 정치⁃사회적 갈등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특정한 국가목표에 확고한 소신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다소간 무리가 있더라도 그러한 갈등을 극복하고 추진할 수 있는 기백과 강기가 있어야만 그것이 실현될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강연에서는 특히 제 3~5공화국에서 표출된 그 갈등의 구체적 양상이나 극복 방식에 대해서는 논의나 평가를 유보하고, 그것에 함축된 국가이성의 문제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기로 하겠습니다. 그 갈등의 주체는 흔히 말하듯이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인데, 후자 또한 근대화라는 국가목표의 타당성을 부인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그 근대화라는 이념의 실체가 무엇이고, 각 정파가 어느 정도의 지적 심도나 체계성을 가지고 그것을 이해하면서 국가 통치나 정치활동을 추구했느냐가 문제의 핵심입니다. 다시 말해서 근대화가 현대 한국사에서 국가이성 또는 국가책략이 작동한 예라면, 바로 그 이성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의 문제가 깊이 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검토를 위해서는 마이네케가 서구 근대사에 대해서 한 것과 같이 한국 근⁃현대의 역사 및 정신사에 대한 별도의 개관이 필요합니다.


III.  

  조선 후기에 이르러 국가생활의 대외환경은 급변하고 대내적 상황은 구조적으로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노론 중심의 지배층 및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守 朱子主義’의 성리학은 성리학적 사유 자체를 고착화시키면서 전통적인 유교적 국가 이성 및 정체성에 집착하게 만들었으며, 그것에 대한 근본적인 새로운 재정립을 통한 국가생활의 획기적 변화⁃발전을 추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잘 알려져 있듯이 ‘明治維新’이라는 이름의 변혁으로 나름대로 새로운 국가 이성 및 정체성의 확립을 기초로 국가쇄신과 부국강병에 성공한 일본에 의한 국권피탈입니다. 그리고 비록 여러 가지 역사적 우여곡절의 결과이긴 하지만, 당시의 대내외적 상황을 고려할 때 국권피탈은 역사적 필연에 해당합니다.

  당시 조선의 국가운영 상태나 국가적 역량과 국민정신은 일본의 그것과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일단 그것은 역사적 필연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힘의 정치’ 및 부국강병을 위한 국가책략의 무한 경쟁이 당연한 국제질서로 간주되었던 당시의 세계사적 상황, 특히 노일 전쟁 직후 전개된 동아시아의 국제정치 상황 등을 고려할 때도 그러합니다. 당시 조선은 부국강병과는 전혀 상반되는 총체적으로 빈곤하고 무능한 국가였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조선은 스스로 표방한 국가이성이며 국가정체성에 해당하는 주자학이념과 ‘예(禮)의 질서’가 실제로는 가문이기주의와 국가권력의 사당화(私黨化)에 의한 착취와 비인간적 무례, 비합리성과 부패의 이념적 원천으로 작동했던 국가였습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숭배 대상인 孔子의 仁의 이념이나 정명(正名)사상과도 배치되는 위선적인 국가였습니다. 그러한 국가가 국력이 욱일승천하는 인접한 신흥강국 일본에 강점당하고 병합되게 된 것은 적어도 당시의 세계사적 상황에서는 필연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국가이성의 문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점이자, 현재까지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의 역사 및 정신사 흐름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점은 그러한 국망의 역사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기본적인 시각입니다. 저는 그러한 해석 및 시각의 차이에 현재 국가정체성 위기 논란의 원천인 보수와 진보 대립의 근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식민통치와 관련된 학계의 근대화 논쟁을 떠나서, 한국에서 일본의 식민통치를 바라보는 대체적인 시각은 그것을 타국의 주권에 대한 비윤리적 침탈행위 정도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심하게 말하여 ‘나쁜 놈들이 착한 우리를 괴롭히고 못살게 굴었다’는 식의 어린이 투정과 같은 관점입니다. 물론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패배 시 그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승자를 존중할 줄 알며, 자신의 약점과 승자의 강점을 철저히 파악하면서 뒷날의 승리를 도모할 줄 아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이 만일 조선 조 후기에 나름대로 싹트기 시작한 ‘자생적이고 내재적인’ 근대화 역량이 발전할 수 있도록 호혜평등과 선린우호의 차원에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도와주었다면, 그것은 한국과 일본의 관계문제를 떠나 국가 관계의 이상을 구현한 세계사적 사건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시의 상황에서는 물론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지금도 요원한 이상일 뿐입니다. 그리고 설사 개개인들은 착할지라도 조선이라는 국가는 착하지 않았고, 착함이 못남을 정당화하지는 못합니다.

  조선조 후기에는 분명히 자생적 근대화 또는 근대 자본주의의 맹아로 간주될 수 있는 사회⁃경제적 변화가 있었고, 기존체제의 변화를 통해 국가생활의 발전을 모색한 지식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수준이나 성격을 갖는 변화의 맹아는 역사적 변화의 요구에 직면한 모든 지배체제에서 언제나 존재합니다. 문제는 그러한 변화가 개인들이나 일부 사회세력의 차원을 넘어 국가 전체 차원에서 모색되고 추구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19세기 조선의 통치세력은 분명히 그와 같은 모색과 추구에 실패한 정권입니다. 자생적인 근대화의 맹아는 당시의 지배체제와 구조적으로 상충되었을 뿐더러, 후기 조선조의 실제적인 통치행태는 바로 스스로 표방한 성리학 이념 자체와도 괴리가 극심한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였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설사 내재적이고 자생적인 변화의 단초가 있더라도, 그것이 실제로 국가전반의 변화와 개혁으로 이어지려면 지배층 전반 자체에 새로운 변화의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하고, 그것을 주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이념과 실천력을 갖춘 정치세력이 형성되어 있어야 합니다. 조선조의 개혁 세력은 그와 같은 정치역량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결론적으로 19세기말의 세계사적 상황에서 한국은 국가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있는 ‘이성’과 ‘책략’을 구비하지 못한 국가였습니다. 그리고 갑신정변과 만민공동회의 실패가 증언하듯이, 쿠데타나 혁명을 통해서 그러한 국가체제를 붕궤시키고 기존의 통치세력을 대체하면서 새롭게 국가를 변혁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정치세력도 부재한 국가였습니다. 개개인이나 집단들의 행위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떠나, 시대적 상황이 요구하는 변혁을 통해 스스로를 존속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역량이 없이 총체적으로 부패한 국가는 일단 무너지는 것이 역사적 필연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국가의 역사적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할 수 있습니다. 국가가 무너졌을 때 민족정체성 마저 잃어버리고 자신을 지배한 국가에 쉽게 동화되어 사라질 민족이라면, 처음부터 국가생활을 영위할 자격도 없는 민족이기 때문에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국권상실의 과정이나 타국에 예속된 사회적 삶 속에서는 바로 스스로의 사회적 삶 자체를 주체적으로 영위할 수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치욕스럽고 비극적 상황들이 연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의 과정 속에서 역사적 현실을 직시하고 자기변혁을 통해 새로운 국가건설을 준비할 수 있는 민족만이 세계사에서 존속할 수 있고 존속할 만한 가치가 있는 민족인 것입니다.

  비록 민족사적 과오에 해당하는 분단이 수반되었고, 여러 가지 복잡한 역사적 우연 및 필연과 함께 운명까지도 작동한 결과이지만, 한국 민족은 식민통치를 벗어나 국제법상 공인된 새로운 국가로 탄생했다는 점만으로도 일단 세계사에서 존속할 만한 민족이라는 점을 ‘공식적으로는’ 입증했습니다. 문제는 ‘공식적 입증’의 실상입니다. 다시 말하여 대한민국의 출현은 단순히 국제법상 주권을 되찾았다는 소극적 의미의 국권회복을 넘어 스스로의 국가생활의 이상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추구할 수 있다는 적극적 차원의 국권회복도 의미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제기되는 국가이성 문제의 핵심입니다.

  국망 이후 국가이성의 문제와 관련하여 한민족 전체에 부여된 지성사적 과제는 다음 네 가지로 정리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국망의 원인에 대한 깊은 역사적 및 정신사적 성찰입니다. 그것에는 통치 이데올로기로서 성리학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조선조 통치체제의 문제, 사회⁃경제적 구조 등에 대한 연구가 포함될 것입니다. 특히 성리학 자체에 오류가 있는지 또는 그것에 대한 조선 주류 학자들의 이해에 해석상의 오류가 있는지, 아니면 조선 후기의 지배층이 성리학은 내세우되 실제적으로는 그 이념과는 무관하게 국가를 운영했는지 여부에 대한 철저한 반성적 성찰이 요구될 것입니다. 둘째, 당시 한민족이 직면한 대내외적 현실에 대한 철저한 이해입니다. 이것에는 한민족을 지배하고 있는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한 체계적인 탐구에서부터 세계사의 흐름 및 당시의 국제정세에 대한 탐구가 주요 과제일 것입니다. 셋째, 이미 구한말부터 황제주권론에 대한 대안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공화나 민주 등의 이념을 비롯하여, 국가 및 주권 개념 자체, 정의, 인권, 자유, 평등, 행복 등 국가생활의 근거, 목표 또는 이상과 관련된 이념들의 실체에 대한 학문적 탐색입니다. 넷째, 그러한 학문적 탐색을 토대로 바로 국가책략의 차원에서 국권회복 전략의 수립입니다. 그것에는 물론 국권 회복 이후 새롭게 추구하고 영위할 국가생활의 이상과 가치들을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법과 제도 및 정책들에 대한 모색입니다. 그것이 바로 근대화라는 국가책략의 본질적인 요소일 것입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의 역사와 정신사 또는 지성사의 흐름을 개관할 경우, 그러한 성찰과 탐색과 모색이 과연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여부의 의문에 대한 답은 부정적입니다. 왜 그러한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물론 별도의 방대한 작업을 요구합니다. 다만 왜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지 단정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는 한 가지 역설은 있습니다. 저는 바로 그 역설에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한 국가정체성 위기의 핵심이 있으며, 또한 그것이 대한민국이 정립하여야 할 국가이성의 핵심적인 내용을 구성하고, 아울러 덕산 선생이 주장한 ‘중강국’ 이념의 정치철학적 의미가 무엇인지도 설명하여 준다고 믿습니다.

              
IV.

  위에서 언급된 역설은 이것입니다. 만일 그와 같은 과제들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지적 역량이 국망 후의 한민족에게 이미 구비되어 있었다면, 한국은 국망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근대국가로 성장하여 동아시아의 중추적인 위치에서 국제정세를 주도하고 있었으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국가이성 자체의 빈곤이 국망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었고, 성숙된 새로운 국가이성의 형성은 역사적으로 상당한 기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과제들을 제대로 수행하기는 실제적으로 불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마치 조선조의 학문 전체를 부정하는 듯 하는 인상을 줄 수 있으므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부연설명이 필요할 것입니다.

  유학의 성리학은 위대한 사유체계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유체계의 위대함은 그것 자체를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인간의 사유 활동을 통해서만 유지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것은 오히려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를 억압하는 고정 관념의 틀이 됩니다. 여러 가지 지극히 복잡한 역사 및 정신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만, 간단히 말하여 조선조 후기의 통치 질서를 지배했던 주자중심주의는 ‘소중화주의(小中華主義)’라는 유치한 자기도취의 허위의식과 결합하여 이성의 자기발전에 필수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배제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조선 후기 주자학은 새로운 사상, 지식, 세계관을 자체 내에 흡수하여 주자학의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더욱 보편적인 이념이 되는 길을 스스로 차단시켰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자학이 사상으로서 독단적이 되고 고착화됨을 의미합니다.

  사고의 그러한 독단화 및 고착화는 조선 중기 이후 새로 유입되기 시작한 서학은 물론이고 근본적으로 동일한 유학의 지류인 양명학마저 배척하는 지성적 외양의 반지성적 학문풍토가 지속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지식인 국가인 조선시대의 당쟁은 언제나 학문적 논쟁이라는 외양으로 나타났는데, 권력투쟁과 직접 연결된 학문적 논쟁은 당쟁의 심화에 따라 공적 담론행위 자체의 지적 진지성을 극도로 약화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학문적 또는 이념적 논쟁이 대화를 통한 학문이나 이념 자체의 발전을 위한 계기로 작동하지 못하고 대체로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밖에 작동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학문풍토의 지속은 학문적 발전 역량을 소진시키고, 그러한 지적역량의 빈곤 상태는 국가이성의 빈곤상태를 지속시킨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조선의 지배층이자 교양인 집단인 양반층은 국민적 존경과 신뢰를 잃고 위선과 탐욕의 집단으로서 비아냥거림과 혐오의 대상으로까지 전락하였으며, 이에 따라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국론을 결집하면서 그것을 타개할 수 있는 국가책략 추진의 주체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학문적 빈곤은 국가이성의 빈곤으로 나타났고, 국가이성의 빈곤이 결국은 국망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 차원의 이성 능력의 빈곤은 어느 날 갑자기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의 학문적 온축과 그에 기반을 둔 지성계의 형성을 통해서만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구한말과 국망 후 비록 서구의 새로운 학문이나 사조나 이념들이 소개되고 유입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의 실체를 제대로 깊이 파악하면서 새로운 국가생활의 이념을 독자적으로 정립하기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 시기에 신채호, 조소항, 안재홍 등 나름대로 깊은 식견과 통찰력을 가지고 국가생활의 미래를 독자적으로 구상한 인물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상이 조선왕조체제의 부활을 도모하는 소위 복벽(復辟)주의와 더불어 당시 서구에서 유입된 온갖 이념들에 따라 중구난방으로 제기되었던 주장들을 대승적으로 종합한 새로운 국가이념을 창출하기에는 세계관적 포괄성이나 개념체계의 엄밀성과 체계성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한 창출이 이루어지려면 무엇보다도 위에서 언급된 국가 및 주권 개념 자체를 비롯하여 공화나 민주 등의 이념, 주권, 정의, 인권, 자유, 평등, 행복 등의 이념들 자체에 대한 철저한 정치철학적 분석과 더불어 그 정치사상사적 배경에 대한 깊은 탐구와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당시의 지성사적 상황에서 그러한 수준의 지적 능력이 발휘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설사 당시 그러한 이념적 종합을 창출할 수 있는 위대한 사상가가 존재했더라도,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조선시대에 ‘체화된’ 공적 담론행위의 비 진지성은 그를 외면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공개적으로 바보로 만들었을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비 진지성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내부에서도 잡다한 파벌을 양산하였고, 이에 따라 독립을 위한 민족적 역량을 결집시키지 못한 근본 원인이기도 합니다. 외세에 의한 분단 이전에 민족 내부에서 먼저 분단되었음은 이제 학계의 정설이기도 합니다. 저는 중국의 毛澤東이나 일본의 福澤諭吉이 위대한 정치사상가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성격이든지 각각 역사적 전환기의 중국과 일본에서 국가이성 및 정체성의 형성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임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만일 그와 같은 인물이 만일 한국에 출현했을 경우 과연 중국과 일본의 경우처럼 국가적 인물로 부각되었을지 의문이 듭니다.  

  어쨌든 분단 등 역사의 우여곡절을 거쳐 대한민국은 탄생했고, 그것이 표방한 국가생활의 이상은 헌법을 통해 ‘민주공화’로 규정되었고, 현실 정치 속에서 그것은 대체로 ‘자유민주주의’로 동일시되었습니다. 문제는 헌법제정 과정에서도 정작 그 헌법의 근본 토대인 공화나 민주 또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의 실체에 대한 진지한 학문적 검토나 치열한 논쟁이 있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주목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결국 국가의 새로운 탄생을 준비하거나 직접 그 탄생 과정에서 그 국가의 존재성 및 그 체제의 성격과 내용을 결정하는 이념들의 의미가 마치 자명한 것처럼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은 건국 당시의 정치학 수준을 고려할 때 당연히 예상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태도가 중요한 점은 단순히 국가통치와 관련된 가치나 이념의 실체에 대해 당시 정치인들이 비 반성적으로 이해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회의 역사 전체적으로 볼 때 지적 소양이나 교양 수준면에서 제헌국회의 의원들은 이후 어느 대의 국회의원들보다 가장 높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조차 국가 통치와 관련된 보편적인 가치나 이념의 실체에 대한 이해도가 그 정도였다는 사실이 중요하며, 그러한 이해 수준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 속에 현재 대한민국이 당면한 국가이성 및 국가정체성 문제의 근원을 찾으면서 그것을 새롭게 정립하는 방향이 모색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그러한 이념들의 실체는 일생을 탐구해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환기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실체에 대한 이해는 현실 정치인들로서는 어렵고 기본적으로 정치철학자의 소업입니다. 하지만 어떠한 법이나 정책이라도 그 윤리적 정당성이나 타당성은 물론이고 그 궁극적인 효율성도 그러한 보편적 이념에 비추어 탐색되지 않을 경우, 그것들은 스스로의 국가생활이 직면한 현실에 대한 능동적이고 독자적인 탐색과 이해의 산물이 아니라 타국의 그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모방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할 경우 국가는 장기적으로 추구할 목표를 정립하지 못하게 되고, 이에 따라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대증요법 수준의 정책대응이 주류를 이루어, 결국은 국가정책이 일관성을 잃은 채 표류하는 파퓰리즘의 정치가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국가생활의 이상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할 때, 국민들이 물질적 향락이나 명품소비를 삶의 주요 가치로 믿는 가치전도 현상이 나타남은 필연이고, 그러한 상황에서 국가생활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이 요구되는 교육이 표류하게 됨 또한 필연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정파들의 차이란 진정한 의미의 이념적 차이가 아니라 오직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구호의 차이일 뿐이며, 오직 세속적 권력다툼을 위한 무한투쟁이 정치를 지배하게 되고, 이에 따라 국가정체성의 위기가 출현하게 된 것입니다.

  이상이 바로 현재 한국정치를 지배하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의 역사 및 정신사적 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국가생활의 이상과 그 구현 방안에 대한 진지한 모색의 결과에 의한 이념적 분화나 차별화가 아니라 각 정파의 이념적 정체성 자체가 제대로 확립되지 못한데 따른 국가생활 차원에서는 본질적으로 무의미한 -권력획득이라는 개인적 및 집단적 이익 차원에서는 나름대로 유위미하지만- 분열일 뿐입니다. 산업화 세력은 국가생활의 근대화란 진정으로 무엇인지 깊은 성찰이 없이 산업화라는 수단적 가치의 실현에만 몰두했고, 민주화 세력은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근대 민주주의의 제도에 대한 교과서적 지식에 집착하여 정치투쟁에 몰입한 것입니다. 여기서 앞에서 인용된 마이네케의 진술을 다시 인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이성이란 바로 “국가가 국가란 존재의 최고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그때그때(jeweils) 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탐색(Erwägung)”이라는 것입니다. 그 탐색의 궁극적 기준이 바로 그와 같은 앞서 제시한 보편적 이념들입니다. 문제는 보편적인 이념들이란 그 의미가 자명하다거나 또는 현실과는 무관한 추상적 또는 형이상학적 어휘들에 불과하다는 수준의 비 반성적 사고가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는 실용주의라는 이름으로- 현재 한국의 국가통치 및 정신적 상황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그것은 설사 국가생활 여러 각 부분에서는 탁월한 이성 능력이 발휘되고 있더라도 그 부분 부분을 국가 전체 차원에서 합리적으로 총괄하고 조정하는 이성능력은 불구상태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정신적 상황이 극복 불가능한 운명은 아닙니다. 다만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여 국가이성을 새롭게 정립하려면 먼저 한국 학계부터 비상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노력의 핵심은 위에서 적시한 바와 같이 국망 이후 국가이성의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 근⁃현대 지성사에 부여되었지만 그 수행이 방기된 과제들을 철저하게 수행하는데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덕산 선생의 ‘중강국’ 이념은 그러한 과제 수행 시작의 훌륭한 출발점이 되므로, 이 강연을 그것과 국가이성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면서 끝맺기로 하겠습니다.


V.        

  덕산 선생의 저서 <작은 나라가 사는 길- 스위스의 경우>에는 저자가 스위스라는 국가의 역사를 이해하면서 그 나름으로 느낀 경이로움이 책 전체에 스며있습니다. 그 경이로움의 핵심은 말 그대로 어떻게 스위스라는 조그만 나라가 경제적 번영을 누리면서 동시에 확고한 국가안보를 이룩하게 되었는지, 다시 말해서 스위스가 중강국의 위상의 확립에 성공한 그 결코 순탄하지 않았던 그 역사적 도정에 있습니다. 물론 스위스의 그러한 역사적 성공 사례를 한국도 구현할 수 있다는 희망의 피력이 그 저작의 저술 의도일 것입니다.

  덕산 선생의 저작 내용 속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스위스의 중강국 등장 과정은 역사적 우연과 필연이 뒤섞인 드라마 속에서 국민적 고통이 수반한 과정이며, 결코 편안하게 자동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실 이외에 스위스라는 국가는 저 자신에게도 또 다른 정치학적 호기심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제국의 해체와 민족주의의 등장 및 민족국가의 성립과정으로 이해되는 서양 근대정치사의 흐름에서, 다언어 다민족의 스위스의 국민들은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연방 국가로 발전하면서 새로운 통합된 국가체제를 확립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호기심은 스위스가 단순히 서구 근대정치사 흐름의 예외적 현상이라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근대정치사를 민족국가의 형성과정으로 일률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정치현상의 표면적인 흐름을 일반화한 것일 뿐, 민족국가의 등장으로 해체과정을 겪게 된 각 제국질서 특유의 역사성, 문화 및 종교적 특수성, 지배체제의 특수성, 제국질서 외부의 환경의 차이 등에 따른 역사적 변화의 세밀한 의미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그 다민족 다언어의 인간들을 통합의 방향으로 이끈 원초적인 힘이 과연 무엇이고, 그것을 기반으로 나름대로 형성되어 국가통치의 방향을 결정하고 국가생활에 대한 자신감과 더불어 국가 통합과 정체성 형성의 원천으로 작동하는 스위스 나름의 국가이성의 핵심이 무엇인지가 호기심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저로서는 그러한 호기심을 풀어줄만한 기존 연구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외람되지만 저는 스위스의 역사 및 민족주의 문제와 관련된 몇 가지 문헌들을 기초로 저 나름의 견해를 피력하면서 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26개의 독립된 칸톤(Canton)들로 구성된 연방 국가이자 다 민족 및 신⁃구교 종파가 혼재한 인간들로 구성된 스위스가 국가통합을 이룩하고 유지할 수 있는 정신적 기반으로는 대체로 개인적 자유의 보장 및 외세로 부터의 자유에 대한 열망, 곧 독립의지가 일반적으로 지적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견해는 이미 형성된 국민적 일체감의 존재를 전제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공통된 정신적 지향은 표현하지만, 그 일체감 자체의 근원을 제대로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만일 개인적 자유의 핵심이 단일한 종파의 유지를 통한 통일된 종교생활의 영위에 있다면, 자유를 위한 투쟁은 당연히 종파에 따라 별도로 분열된 국가체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나타났을 것입니다. 외세로 부터의 독립 또한 외세라는 타자성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스위스의 여러 칸톤들은 스스로를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에 자발적으로 병합함이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견해로는 일부 가톨릭계 칸톤들의 분리주의 운동에서 촉발된 소위 ‘Sonderbundskrieg’로 불리는 1847년의 내전이 역사의 에피소드처럼 100명도 안 되는 사상자들 남기면서 한 달도 지속되지 않고 쉽게 종식된 역사적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저는 스위스가 국민통합을 이룩한 기본적인 요인은 일단 알프스 산록이라는 비슷한 공간적 환경이 주는 정서적 일체감과 더불어 바로 그 비슷한 환경 때문에 공통적으로 겪었던 비슷한 역사적 체험에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러한 정서적 일체감이나 역사적 유대감은 국민통합의 소극적 바탕은 되어도 구체적 내용을 갖는 국가정체성 확립이나 국가통치의 일관된 방향을 제시하는 국가이성의 형성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스위스의 경우 국가통합 및 국가이성 형성의 적극적인 요소를 스위스 시계로 표상되는 스위스 특유의 장인정신에서 찾습니다. 그들의 삶 속에서 체현되는 장인정신과 프로정신이 그들에게 삶의 공통된 가치 및 이상과 정신적 일체감 및 자부심을 형성하게 만들고, 그러한 장인정신이 생산과 기술의 영역을 넘어 학문과 예술의 장인정신으로 승화되어 나타나 것이 그들의 학문과 문화이며, 스위스 국민의 국민적 자부심이자 국민통합의 원천이기도 한 페스탈로찌(Pestalozzi)의 위대한 교육철학,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의 거대한 인문학, 아인슈타인의 혁명적인 물리학은 그것의 대표적인 표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학문적 자부심과 문화적 일체감이 스위스 국가 이성 작동의 원천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장인정신의 형성 자체가 유럽의 종교분쟁 시 각 지역에서 종교적 자유를 찾아 스위스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주로 장인들이었다는 역사적 체험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위스는 그것이 단순히 역사적 체험에 그치지 않고 국가정체성의 근간을 형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스위스 인들은 생산 및 교육⁃문화의 각 분야에서 추구하는 적극적 삶의 가치인 장인정신과 그것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적 분업체계의 운영에서 타국의 국가생활과 구분되는 자신 만의 국가생활의 이상과 가치를 발견한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차원의 국가이성의 정립이 특히 유럽의 다른 국가들이 바로 ‘Staatsräson’의 이름으로 제국주의적 팽창과 전쟁 형태의 국가 이익과 영광을 추구하는 ‘비이성적’이고 ‘우매한’ 상황을 여유롭게 지켜볼 수 있었던 배경이며, 그러한 국가적 우매함에 빠지지 않으려는 국가책략이 바로 중립노선의 외교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중립노선은 모든 국가가 일률적으로 추구하야 하는 또는 일방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국가책략은 아닙니다. 국가책략은 마이네케의 표현대로 ‘국가가 높은 존재성을 구현하기 위해 상황에 따라 국가이성이 그때그때’ 요구하는, 다시 말하여 국가의 존재성 차원에서 ‘시중(時中)’의 정책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국가이성을 장인정신의 승화 차원에서 정립한 스위스의 사례는 현재 대한민국이 정립해야 할 국가이성의 근본 내용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보여 줍니다.

  장인정신의 핵심은 자신의 소업과 관련하여 철저하게 앎을 추구하면서 그것의 완벽한 성취를 위해 성실하고 진지하게 노력하는 진지성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성실성과 진지성의 완벽주의는 개인적 차원에서는 자신의 한계에 대한 자각을 의미하고, 사회적으로는 자신이 종사하는 기예의 한계에 대한 자각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면서 겸허하게 타인의 견해를 경청할 줄 알고 자유롭고 진지하게 소통하면서 타인으로부터 배울 줄 아는 정신적 태도와 능력을 배양시킵니다. 그러한 정신적 태도와 능력으로부터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양, 즉 겉치레 수준의 예의나 객체화된 지식들을 많이 말고 있다는 의미의 교양과 구분되며 고대 희랍인들이 ‘paideia’로 부른 교양문화가 형성됩니다. 그와 같은 교양문화의 형성이 국가이성이 지향해야 할 보편적인 이념들에 대한 이해의 전제조건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각 분야에는 프로정신과 장인정신에 입각하여 자신의 소업을 성실하고 치열하게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그러한 사람들의 존재를 통해 사회적으로 새로운 정신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정신적 분위기는 국가이성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형성되게 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인 교양문화 및 교양시민집단의 형성에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인적 자원의 존재가 국가생활에서 보편적 이념들을이 실제로 작동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그러한 이념들은 결코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특히 그것들을 오직 정치적 구호로만 생각하고 권력쟁취나 정치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정신적 성향에서는 그것들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영원히 불가능합니다. 스스로는 그러한 보편적 이념에 입각하여 창의적인 정책을 입안할 수는 없더라도, 입안된 정책을 보편적 이념의 차원에서 평가할 수 있는 지적 능력과 소양을 갖춘 교양시민 집단의 형성이 바람직한 국가이성 형성 및 작동의 전제입니다. 그들의 정신적 영향이 정치사회적으로 확산되고, 그들의 판단에 일반 국민들이 신뢰를 가질 때 자생적이고 능동적인 국가이성의 작동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국가이성이 작동할 때, 국가 차원에서 국가생활의 보편적인 이상들에 대해 성찰이 가능하고, 그러한 성찰을 통해서 ‘그때그때’ 국가적 문제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때그때’ 최적의 국가책략을 제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새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국민행복’을 시대적 과제로 내걸었습니다. 물론 서구 복지국가들의 실패 사례는 당연히 참고 되어야 합니다. 최근에 보도된 바와 같이, 그들의 체험을 축약한 ‘착한 성장, 똑똑한 복지’의 구호에 함축된 의미를 당연히 깊이 참고하고 검토해야 합니다. 그것은 일단 국가재정의 일방적 지출을 복지와 동일시 할 때 초래한 국가적 폐해에 대한 경험적 사례들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복지는 바로 국민 전체 차원에서의 행복일 것입니다. 그 행복이 무엇인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위대한 정치철학자들이 일생에 걸친 성찰을 통해 해명을 추구한 학문적 과제였습니다. 인류 지성사에서 백년에 한 번 나타날 정도의 지성세계를 갖춘 그들이 일상적 의미의 행복을 몰랐기 때문에 그러한 과제에 대해 일생동안 고심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한 과제는 삶의 목적이 무엇이고, 그것과 개인의 행복과는 어떠한 관계가 있으며, 통치력의 행사에 언제나 기준이 되는 정의와의 조화 문제, 교육이나 국방 등 국가생활의 다른 부분과의 우선순위 문제, 장⁃단기 국가발전의 전략 등 국가생활 전반과 연관된 문제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상과 현실을 ‘그때그때’ 적절히 융합한 총체적인 국가이성 능력의 발휘가 요청되는 과제인 것입니다.

  개인의 삶에서도 그러하지만, 국가생활에 있어서 한 문제에는 언제나 다른 심각한 문제들이 상존합니다. 그러한 문제들의 존재를 외면하고 하나의 문제에 대한 일시적인 해결 방안의 제시로 그것이 해결되었다고 만족할 때 개인에게는 어리석은 삶이, 국가생활에는 이성이 아니라 합리성을 빙자한 비이성이 지배하게 됩니다. ‘우물 안 개구리’는 국제정세의 변화에 눈을 감고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조선 후기 우리의 선조들을 비하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고가 기존 사고체계의 한계를 넘지 못하게 하는 사고의 피로감 속에 정체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한국사회는 약삭빠른 계산속에 안주하면서 생각하기 자체를 싫어하고, 기존의 사고체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사고의 피로감에 젖어 스스로 이성의 자기발전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할 때입니다. 현재의 한국사회가 스스로의 고정된 관념과 특정한 사고의 테두리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그 테두리 또한 또 다른 형태의 ‘우물 안’은 아닌지 한번 스스로의 정신적 자화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오랜 시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