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13>
통일의 새벽이 동터오는가
- 통일비전과 통일담론의 확산 -
조 민 코리아글로브 이사장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
1. 통일은 무엇인가
통일은 ‘평화혁명’이다. 한반도 통일은 반드시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남북한 국가사회 전반의 구조적 변혁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통일은 ‘평화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은 ‘파괴와 건설’의 과정이다. 통일은 분단체제의 낡은 질서의 파괴 타파 위에서 8천만 한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창조적 건설’의 과정이다. 그와 함께 통일은 ‘해체와 통합’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통일은 분단질서를 해체하고, 남북한 국가 운영의 원리와 공동체적 삶의 방식을 하나로 묶는 길이기 때문이다.
통일(unification)과 통합(integration)은 다르다. 통일은 두 개의 국가가 ‘하나의 국가’로 되는 상태를 말한다. 이는 서로 다른 국가 또는 정치적 실체(political entity = polity)가 하나로 결합되는 정치적 국제법적 ‘사건(event)’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 통일로 우리는 비로소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one nation, one country)’ 상태를 달성하게 된다.
통합은 ‘하나의 국민(one people)’ 형성을 뜻한다. 통합은 두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지금 한국 사회의 균열 단층선인 지역, 이념, 계층, 세대 간 갈등의 측면에서 통합의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
‘하나의 민족, 두 개의 국가’의 분단 구조 위에 ‘하나의 국가, 두 개의 국민’의 분열 상태가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 경우 통합은 ‘분열의 극복’을 통한 국민통합을 지향하는 과제가 된다.
다른 하나는 남북관계에 적용되는 통합론이다. 통일로 가기 위해 우선 남북한 간 상호 등질적인 부문 간의 조화와 융합의 과정이 요구된다. 예컨대 경제통합, 정치통합, 사회문화통합 등이 거시적 통합이라면, 법 행정통합, 교육체계 교과내용 통합, 보건의료 통합, 과학기술분야 통합 등은 미시적 통합으로 이해할 수 있다.
통일은 둘로 나눠진 민족, 국가, 국토가 하나가 되는 ‘분단의 극복’이라면, 통합은 한국 사회 내부의 ‘분열의 극복’과 함께 남북 간 다양한 부문에서의 ‘조화와 융합’을 의미한다. 통일은 정치적 법적 차원의 가부(可否)의 문제이자 특정한 역사적 시점이 명확히 결정되는 사건이라면, 통합은 각 부문의 내적 결합의 수준과 심화의 단계를 의미한다.
통일과 통합의 관계는 어떠한가? 우리는 지금까지 ‘선(先)통합/후(後)통일’의 논리에서 한반도 통일 문제를 점진적 단계적으로 접근해왔다. 즉, ‘(낮은 수준)통합 ⇨ 통일 ⇨ (높은 수준)통합’의 차원에서 바라보았다. 이는 ‘법 제도적(de jure)’ 통일에 앞서 먼저 공동체적 삶의 방식의 통합을 통한 ‘실질적인(de facto)’ 통일을 추진하자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논리에 입각하여 남북 간 경제 부문 및 사회문화 부문의 통합을 위해 교류협력이 중시되었고, 교류협력의 확대 추진을 위해 한반도 평화 구축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다. 그럼에도 한반도 평화 구축의 과제는 북한 핵문제로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사실 비핵평화와 남북한 공동 번영의 문제는 북한체제의 진정한 변화 없이는 진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런 점에서 북한체제의 진정한 변화를 전제로, 또는 변화를 추동하기 위한 한반도 문제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2. 왜 통일을 해야 하는가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생각을 바꾸면 새로운 길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 가능성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이제 우리는 통일 문제를 한반도 문제 해결의 첫 머리에 놓을 필요가 있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첫째, 평화는 절대 가치이다. 그러나 ‘분단평화’는 더 이상 안정적이지 않다. 논리적으로 통일을 통한 평화 즉, ‘통일평화’가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를 보장한다. 따라서 분단평화에서 통일평화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통일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항구적 평화 상태를 이루는 길이다. 분단 프레임에 갇힌 상태에서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 구축은 불가능하다. 분단 프레임을 극복하지 않으면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와 번영을 보장받을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의 대북 통일정책은 분단의 평화적 관리 즉, 분단평화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그러나 한반도 안팎의 국제정세의 근본적인 변화는 그처럼 안이한 대응으로는 미래를 열어가기 힘들게 만든다.
여기에다 지금 북한 문제는 조금도 방심할 수 없는 심각한 우려 속에서 엄청난 도전으로 다가왔다. 북한체제의 미래 전망은 한층 불투명하고 불확실해졌고 언제 어떻게 들이닥칠지 모르는 위기 상황은 더 이상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북한 지배층은 북한 주민의 생존과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을 상실한 지 오래다. 북한 동포의 삶과 미래를 우리가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된다.
둘째, 동서양 간 문명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세계사적 전환 과정 속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동아시아의 역학구도는 한국의 존재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와 함께 새로운 대응 양식을 촉구하고 있다. 한반도의 두 개의 분단국가 상태로는 이 거대한 구조적 전환 과정에서 미래를 보장받기 어렵다.
‘섬 아닌 섬’에 갇혀 살아오면서 우리는 만주 벌판과 광야를 울리던 저 웅혼 장쾌한 기백을 잊고 살았다. 통일은 이 한 뼘 땅에서 왜소하고 억눌린 심성이 탁 트이면서 우리의 청년들이 대륙으로 세계로 나래를 활짝 펴고 비상(飛翔)하는 길이다.
지금 한국은 새로운 국가발전 전략의 모색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는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를 한 눈에 조망하는 ‘한반도와 동북아 경영 마인드’의 확립에서 시작된다. 한반도 동북아 경영 마인드야말로 21세기 한국의 비전과 세계전략의 초석이 된다.
셋째, 통일은 한국 근현대사의 역정(歷程)을 한꺼번에 해소하는 일이다. 우리는 다른 나라를 침략한 역사도 없고, 이웃 나라를 괴롭힌 경우도 없는 ‘평화민족’이다. 제국주의 침탈기의 근대적 국민국가 수립의 실패,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일제 강점기의 치욕, 전쟁의 참화와 폐허 위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우리가 다시 한 번 세계 속에 우뚝 서는 길이다. 남북한이 함께 손잡고 ‘대동강의 기적’을 일구는 일이다.
통일 한반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화합과 공동 번영의 장(場)이 된다. 21세기 ‘평화문화’의 산실(産室)이자 허브가 된다. 그리하여 통일 코리아는 독창적이고 고유한 ‘한반도 문명’으로 인류사에 기여하는 선도국가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3. 어떤 통일인가
한국의 ‘잘 살아보세!’의 집단열정(elan)과 북한의 ‘고르게 살자!’의 집단의지(ethos)는 이미 세계사적 승부로 판가름 났다. 그렇다고 우리가 승리의 팡파르를 울리면서 어느 한 쪽을 택해야 할 이유는 없다. 통일이 비록 지상명제(至上命題)라고 하더라도 과연 어떤 통일인가 하는 문제가 보다 중요하다. 통일이 ‘창조적 건설’이라면 이제 남북한 통일의 기본 방향은 ‘고르게 잘 살아보세!’로 나아가는데 있다. 남북한 주민 모두의 집단 열정과 의지 위에서 그야말로 ‘고르게(고루고루)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러나 통일은 장밋빛 전망으로만 접근할 수 없다. 통일국가의 형태, 사회운영 원리, 노동 문제, 그리고 북한의 소유제 해결 방식 등 어느 것 하나도 쉽지 않은 난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통일 코리아의 국가형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의 중앙집권적 국가 운영 체계를 북한 지역에 적용하는 방식을 북한 주민이 그대로 수용할까 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오랜 분단 시기 동안 형성된 북한의 독특한 정치문화와 자율성을 존중해야 함께 만드는 미래가 가능하다. 이 경우 ‘분권 자치’의 원리가 충분히 보장되는 8~13개 정도의 지역정부로 구성되는 ‘한반도 형 연방제 국가’를 구상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통일국가는 군사권, 외교권, 주요 내정권(거시경제 지표 관리, 전국 차원의 치안권 등)의 중앙(연방)정부에의 귀속을 전제로 지역정부 차원에서 분권과 자치의 원리가 구현되는 국가형태가 바람직하다.
둘째, 시장경제의 문제로, 통일 한반도에 ‘어떠한’ 시장경제를 접맥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독일 통일의 경우, 동독의 사회주의 경제와 서독의 ‘사회적 시장경제’의 친화성이 양독 주민의 통합을 이끄는데 주요한 요인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서독의 시장경제 이념보다 ‘사회적’ 시장경제의 실제와 복지 체계에 동독의 기대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는 자유시장경제의 한계와 위기에 직면한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여 시장경제의 새로운 모델을 찾아야 한다.
셋째, 통일 준비로 노동 문제에 대한 대안 모색이 매우 긴요하다. 독일 통일은 신자유주의 시대 이전에 이루어져 노동의 위기를 심각하게 겪지 않았다. 실업과 노동 문제는 사회적 안정과 통일의 성패를 가름하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통일이 블루오션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 문제 해결의 전망을 보여야 한다. 더욱이 통일이 우리 국민 대부분의 기회의 배제 속에서 개발논리에 휩싸인 소수 대자본의 향연으로 귀결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적극 불식시켜야 한다.
넷째, 북한의 소유제의 근간이 하루아침에 흔들려서는 곤란하다. 토지, 기업소 등 생산수단의 국가적 소유와 농장의 협동적 소유 등의 북한 소유제도의 해체 방식은 매우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사유화 방식이 급격히 추진된다면 엄청난 혼란과 함께 공공 자산은 대부분 재벌의 전리품이 되고 만다.
사유화 문제는 통일국가의 발전전략과 사회정의의 원리에 입각하여 특히,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 미래지향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수렴되어야 한다. 일정 기간 동안 국유화 원칙의 존중 위에서 단계적인 사유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유화 문제에 대한 독일의 실패한 방식이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열거하지 않은 숱한 문제가 통일 과정에 쌓여 있다. 우리가 통일을 말할 때 반드시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 사회의 국가운영 원리와 공동체적 삶의 방식을 되돌아보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즉, ‘성찰적 접근’이야말로 통일 문제 이해에 대한 올바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4. 어떻게 통일로 가는가
통일로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하다. 그러나 결코 멈출 수 없는 길이고,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다. 통일이 ‘평화적 합의통일’이어야 한다면, 북한 주민의 결단(합의) 없이 통일은 이루어질 수 없다. 그와 함께 남한 국민의 ‘통일의지’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통일의지를 드높이는 한편, 통일담론을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통일로 가는 길에 무엇보다 선차적인 문제는 남북 간 평화와 공동번영을 함께 모색할 수 있는 북한체제의 변화라고 하겠다. 북한정권이 스스로 변화하기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협력을 통한 변화’ 또는 ‘변화를 전제한 협력’ 어느 정책이 보다 합리적인가 하는 문제는 논쟁적인 사안이나, 북한정권의 변화가 개혁 개방정책과 통일의 전제라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북한의 ‘정권 진화(regime evolution)’를 이끌어내야 하며, 정치리더십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북한 통치층의 미래 불안을 해소하는 ‘출구(퇴로)’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
한민족은 지난 날 세계사의 피동적 존재이자 강대국 패권정치의 객체에 불과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남의 손에 맡겼던 비자주적인 역사였다.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은 우리 민족의 바람과 의지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었지만, 평화와 통일은 반드시 우리의 의지와 역량으로 이루어내야 한다.
이제는 통일을 주저하거나 회피해서는 곤란하다. 독일이 세계사적 변화 속에서 우연히 찾아온 통일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면, 우리는 통일의 기회를 스스로 찾고 만들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통일의 새벽을 여는 통일담론의 백화제방, 백가쟁명이 기대된다.
- 통일비전과 통일담론의 확산 -
조 민 코리아글로브 이사장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
1. 통일은 무엇인가
통일은 ‘평화혁명’이다. 한반도 통일은 반드시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남북한 국가사회 전반의 구조적 변혁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통일은 ‘평화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은 ‘파괴와 건설’의 과정이다. 통일은 분단체제의 낡은 질서의 파괴 타파 위에서 8천만 한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창조적 건설’의 과정이다. 그와 함께 통일은 ‘해체와 통합’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통일은 분단질서를 해체하고, 남북한 국가 운영의 원리와 공동체적 삶의 방식을 하나로 묶는 길이기 때문이다.
통일(unification)과 통합(integration)은 다르다. 통일은 두 개의 국가가 ‘하나의 국가’로 되는 상태를 말한다. 이는 서로 다른 국가 또는 정치적 실체(political entity = polity)가 하나로 결합되는 정치적 국제법적 ‘사건(event)’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 통일로 우리는 비로소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one nation, one country)’ 상태를 달성하게 된다.
통합은 ‘하나의 국민(one people)’ 형성을 뜻한다. 통합은 두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지금 한국 사회의 균열 단층선인 지역, 이념, 계층, 세대 간 갈등의 측면에서 통합의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
‘하나의 민족, 두 개의 국가’의 분단 구조 위에 ‘하나의 국가, 두 개의 국민’의 분열 상태가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 경우 통합은 ‘분열의 극복’을 통한 국민통합을 지향하는 과제가 된다.
다른 하나는 남북관계에 적용되는 통합론이다. 통일로 가기 위해 우선 남북한 간 상호 등질적인 부문 간의 조화와 융합의 과정이 요구된다. 예컨대 경제통합, 정치통합, 사회문화통합 등이 거시적 통합이라면, 법 행정통합, 교육체계 교과내용 통합, 보건의료 통합, 과학기술분야 통합 등은 미시적 통합으로 이해할 수 있다.
통일은 둘로 나눠진 민족, 국가, 국토가 하나가 되는 ‘분단의 극복’이라면, 통합은 한국 사회 내부의 ‘분열의 극복’과 함께 남북 간 다양한 부문에서의 ‘조화와 융합’을 의미한다. 통일은 정치적 법적 차원의 가부(可否)의 문제이자 특정한 역사적 시점이 명확히 결정되는 사건이라면, 통합은 각 부문의 내적 결합의 수준과 심화의 단계를 의미한다.
통일과 통합의 관계는 어떠한가? 우리는 지금까지 ‘선(先)통합/후(後)통일’의 논리에서 한반도 통일 문제를 점진적 단계적으로 접근해왔다. 즉, ‘(낮은 수준)통합 ⇨ 통일 ⇨ (높은 수준)통합’의 차원에서 바라보았다. 이는 ‘법 제도적(de jure)’ 통일에 앞서 먼저 공동체적 삶의 방식의 통합을 통한 ‘실질적인(de facto)’ 통일을 추진하자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논리에 입각하여 남북 간 경제 부문 및 사회문화 부문의 통합을 위해 교류협력이 중시되었고, 교류협력의 확대 추진을 위해 한반도 평화 구축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다. 그럼에도 한반도 평화 구축의 과제는 북한 핵문제로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사실 비핵평화와 남북한 공동 번영의 문제는 북한체제의 진정한 변화 없이는 진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런 점에서 북한체제의 진정한 변화를 전제로, 또는 변화를 추동하기 위한 한반도 문제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2. 왜 통일을 해야 하는가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생각을 바꾸면 새로운 길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 가능성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이제 우리는 통일 문제를 한반도 문제 해결의 첫 머리에 놓을 필요가 있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첫째, 평화는 절대 가치이다. 그러나 ‘분단평화’는 더 이상 안정적이지 않다. 논리적으로 통일을 통한 평화 즉, ‘통일평화’가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를 보장한다. 따라서 분단평화에서 통일평화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통일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항구적 평화 상태를 이루는 길이다. 분단 프레임에 갇힌 상태에서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 구축은 불가능하다. 분단 프레임을 극복하지 않으면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와 번영을 보장받을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의 대북 통일정책은 분단의 평화적 관리 즉, 분단평화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그러나 한반도 안팎의 국제정세의 근본적인 변화는 그처럼 안이한 대응으로는 미래를 열어가기 힘들게 만든다.
여기에다 지금 북한 문제는 조금도 방심할 수 없는 심각한 우려 속에서 엄청난 도전으로 다가왔다. 북한체제의 미래 전망은 한층 불투명하고 불확실해졌고 언제 어떻게 들이닥칠지 모르는 위기 상황은 더 이상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북한 지배층은 북한 주민의 생존과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을 상실한 지 오래다. 북한 동포의 삶과 미래를 우리가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된다.
둘째, 동서양 간 문명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세계사적 전환 과정 속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동아시아의 역학구도는 한국의 존재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와 함께 새로운 대응 양식을 촉구하고 있다. 한반도의 두 개의 분단국가 상태로는 이 거대한 구조적 전환 과정에서 미래를 보장받기 어렵다.
‘섬 아닌 섬’에 갇혀 살아오면서 우리는 만주 벌판과 광야를 울리던 저 웅혼 장쾌한 기백을 잊고 살았다. 통일은 이 한 뼘 땅에서 왜소하고 억눌린 심성이 탁 트이면서 우리의 청년들이 대륙으로 세계로 나래를 활짝 펴고 비상(飛翔)하는 길이다.
지금 한국은 새로운 국가발전 전략의 모색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는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를 한 눈에 조망하는 ‘한반도와 동북아 경영 마인드’의 확립에서 시작된다. 한반도 동북아 경영 마인드야말로 21세기 한국의 비전과 세계전략의 초석이 된다.
셋째, 통일은 한국 근현대사의 역정(歷程)을 한꺼번에 해소하는 일이다. 우리는 다른 나라를 침략한 역사도 없고, 이웃 나라를 괴롭힌 경우도 없는 ‘평화민족’이다. 제국주의 침탈기의 근대적 국민국가 수립의 실패,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일제 강점기의 치욕, 전쟁의 참화와 폐허 위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우리가 다시 한 번 세계 속에 우뚝 서는 길이다. 남북한이 함께 손잡고 ‘대동강의 기적’을 일구는 일이다.
통일 한반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화합과 공동 번영의 장(場)이 된다. 21세기 ‘평화문화’의 산실(産室)이자 허브가 된다. 그리하여 통일 코리아는 독창적이고 고유한 ‘한반도 문명’으로 인류사에 기여하는 선도국가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3. 어떤 통일인가
한국의 ‘잘 살아보세!’의 집단열정(elan)과 북한의 ‘고르게 살자!’의 집단의지(ethos)는 이미 세계사적 승부로 판가름 났다. 그렇다고 우리가 승리의 팡파르를 울리면서 어느 한 쪽을 택해야 할 이유는 없다. 통일이 비록 지상명제(至上命題)라고 하더라도 과연 어떤 통일인가 하는 문제가 보다 중요하다. 통일이 ‘창조적 건설’이라면 이제 남북한 통일의 기본 방향은 ‘고르게 잘 살아보세!’로 나아가는데 있다. 남북한 주민 모두의 집단 열정과 의지 위에서 그야말로 ‘고르게(고루고루)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러나 통일은 장밋빛 전망으로만 접근할 수 없다. 통일국가의 형태, 사회운영 원리, 노동 문제, 그리고 북한의 소유제 해결 방식 등 어느 것 하나도 쉽지 않은 난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통일 코리아의 국가형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의 중앙집권적 국가 운영 체계를 북한 지역에 적용하는 방식을 북한 주민이 그대로 수용할까 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오랜 분단 시기 동안 형성된 북한의 독특한 정치문화와 자율성을 존중해야 함께 만드는 미래가 가능하다. 이 경우 ‘분권 자치’의 원리가 충분히 보장되는 8~13개 정도의 지역정부로 구성되는 ‘한반도 형 연방제 국가’를 구상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통일국가는 군사권, 외교권, 주요 내정권(거시경제 지표 관리, 전국 차원의 치안권 등)의 중앙(연방)정부에의 귀속을 전제로 지역정부 차원에서 분권과 자치의 원리가 구현되는 국가형태가 바람직하다.
둘째, 시장경제의 문제로, 통일 한반도에 ‘어떠한’ 시장경제를 접맥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독일 통일의 경우, 동독의 사회주의 경제와 서독의 ‘사회적 시장경제’의 친화성이 양독 주민의 통합을 이끄는데 주요한 요인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서독의 시장경제 이념보다 ‘사회적’ 시장경제의 실제와 복지 체계에 동독의 기대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는 자유시장경제의 한계와 위기에 직면한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여 시장경제의 새로운 모델을 찾아야 한다.
셋째, 통일 준비로 노동 문제에 대한 대안 모색이 매우 긴요하다. 독일 통일은 신자유주의 시대 이전에 이루어져 노동의 위기를 심각하게 겪지 않았다. 실업과 노동 문제는 사회적 안정과 통일의 성패를 가름하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통일이 블루오션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 문제 해결의 전망을 보여야 한다. 더욱이 통일이 우리 국민 대부분의 기회의 배제 속에서 개발논리에 휩싸인 소수 대자본의 향연으로 귀결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적극 불식시켜야 한다.
넷째, 북한의 소유제의 근간이 하루아침에 흔들려서는 곤란하다. 토지, 기업소 등 생산수단의 국가적 소유와 농장의 협동적 소유 등의 북한 소유제도의 해체 방식은 매우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사유화 방식이 급격히 추진된다면 엄청난 혼란과 함께 공공 자산은 대부분 재벌의 전리품이 되고 만다.
사유화 문제는 통일국가의 발전전략과 사회정의의 원리에 입각하여 특히,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 미래지향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수렴되어야 한다. 일정 기간 동안 국유화 원칙의 존중 위에서 단계적인 사유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유화 문제에 대한 독일의 실패한 방식이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열거하지 않은 숱한 문제가 통일 과정에 쌓여 있다. 우리가 통일을 말할 때 반드시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 사회의 국가운영 원리와 공동체적 삶의 방식을 되돌아보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즉, ‘성찰적 접근’이야말로 통일 문제 이해에 대한 올바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4. 어떻게 통일로 가는가
통일로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하다. 그러나 결코 멈출 수 없는 길이고,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다. 통일이 ‘평화적 합의통일’이어야 한다면, 북한 주민의 결단(합의) 없이 통일은 이루어질 수 없다. 그와 함께 남한 국민의 ‘통일의지’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통일의지를 드높이는 한편, 통일담론을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통일로 가는 길에 무엇보다 선차적인 문제는 남북 간 평화와 공동번영을 함께 모색할 수 있는 북한체제의 변화라고 하겠다. 북한정권이 스스로 변화하기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협력을 통한 변화’ 또는 ‘변화를 전제한 협력’ 어느 정책이 보다 합리적인가 하는 문제는 논쟁적인 사안이나, 북한정권의 변화가 개혁 개방정책과 통일의 전제라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북한의 ‘정권 진화(regime evolution)’를 이끌어내야 하며, 정치리더십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북한 통치층의 미래 불안을 해소하는 ‘출구(퇴로)’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
한민족은 지난 날 세계사의 피동적 존재이자 강대국 패권정치의 객체에 불과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남의 손에 맡겼던 비자주적인 역사였다.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은 우리 민족의 바람과 의지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었지만, 평화와 통일은 반드시 우리의 의지와 역량으로 이루어내야 한다.
이제는 통일을 주저하거나 회피해서는 곤란하다. 독일이 세계사적 변화 속에서 우연히 찾아온 통일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면, 우리는 통일의 기회를 스스로 찾고 만들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통일의 새벽을 여는 통일담론의 백화제방, 백가쟁명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