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키아의 백향목
고대 이집트인들은 파피루스를 만들어 종이처럼 사용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팔줄은 몰랐다. 이것을 한사람들이 바로 페니키아인들이다.
당시 페니키아의 중심항구는 베이루트 북쪽의 비블로스인데 그들은 이집트로부터 파피루스를 수입하고 대신 자기네 특산물인 백향목(cedar)을 수출했다. 당시 백향목은 아주 단단한 최고급 목재로 페니키아 지방에서만 자라고 있었는데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무덤을 만들때 주로 사용했다. 그리고 솔로몬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세울때 사용했는데 지금의 예루살렘에 있는 통곡의 벽의 축대도 이것으로 만들 정도였다.
재미있는 일화는 당시 솔로몬왕이 성전과 궁전공사때문에 이스라엘의 국고가 바닥나서 공사 대금을 현물로 다 갚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빚 대신 페니키아와 인접한 갈릴리 산악지대 20여개의 이스라엘 촌락을 통째로 넘겨주었고 이스라엘 역사에 오점으로 기억되어 성경에까지 표현되어 있다.
아무튼 비블로스를 통해 팔려나간 파피루스는 당연히 대부분 책을 만드는데 쓰여졌는데 그러다 보니 책이란 뜻으로 바이블이란 말이 생겨났다.
이들 비블로스 사람들은 또 그곳의 해산물인 뱃고둥으로 옷에 물을 들일 때 사용하는 청색 염료를 만들어 팔아 큰돈을 벌었다. 이 염료를 그리스인들이 ‘포에니’라고 불렀는데, 그게 굳어져서 페니키아라고 불리우게 된것이다. 훗날 로마가 카르타고와 전쟁한 것을 포에니전쟁라고 한 것은 바로 카르타고가 지중해를 장악한 페니키아의 핵심적인 도시국가였기 때문이었다.
페니키아는 이때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고 불리우는 지블롤터해협을 지나 대서양연안에 카데스라는 식민지를 건설하고 헤로도토스에 역사에 의하면 아프리카 대륙을 한바뀌 돌았다고 한다. 알파벳의 시작이 페니키아 문자가 된 것은 이러한 상업민족으로서의 페니키아의 영향력 때문이다.
이 페니키아의 후예들이 지금의 레바논이다. 최근 백향목 깃발을 흔들고 시위하는 레바논 사람들의 모습에서 과거의 영광스런 페니키아인들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마치 이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상징하듯 백향목 나무도 지금은 1200여구루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의 네트워크를 가능하게 했던 다양한 구성은 분노와 전쟁만을 불러오는 차별성만이 부각된다. 서구 식민지시대부터 시작된 갈등은 20여년의 내전을 거치면서 피폐해 졌다. 이제 비로소 해결점을 찾고 있던 이들이 다시금 대규모 혼란에 빠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부의 시각대로 ‘백향목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성급한 진단이다. 그들의 고유한 역사는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도 가능한 한 레바논인의 눈 그마져도 안되면 우리의 눈으로라도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126회-정창수(시민행동 전문위원)
고대 이집트인들은 파피루스를 만들어 종이처럼 사용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팔줄은 몰랐다. 이것을 한사람들이 바로 페니키아인들이다.
당시 페니키아의 중심항구는 베이루트 북쪽의 비블로스인데 그들은 이집트로부터 파피루스를 수입하고 대신 자기네 특산물인 백향목(cedar)을 수출했다. 당시 백향목은 아주 단단한 최고급 목재로 페니키아 지방에서만 자라고 있었는데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무덤을 만들때 주로 사용했다. 그리고 솔로몬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세울때 사용했는데 지금의 예루살렘에 있는 통곡의 벽의 축대도 이것으로 만들 정도였다.
재미있는 일화는 당시 솔로몬왕이 성전과 궁전공사때문에 이스라엘의 국고가 바닥나서 공사 대금을 현물로 다 갚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빚 대신 페니키아와 인접한 갈릴리 산악지대 20여개의 이스라엘 촌락을 통째로 넘겨주었고 이스라엘 역사에 오점으로 기억되어 성경에까지 표현되어 있다.
아무튼 비블로스를 통해 팔려나간 파피루스는 당연히 대부분 책을 만드는데 쓰여졌는데 그러다 보니 책이란 뜻으로 바이블이란 말이 생겨났다.
이들 비블로스 사람들은 또 그곳의 해산물인 뱃고둥으로 옷에 물을 들일 때 사용하는 청색 염료를 만들어 팔아 큰돈을 벌었다. 이 염료를 그리스인들이 ‘포에니’라고 불렀는데, 그게 굳어져서 페니키아라고 불리우게 된것이다. 훗날 로마가 카르타고와 전쟁한 것을 포에니전쟁라고 한 것은 바로 카르타고가 지중해를 장악한 페니키아의 핵심적인 도시국가였기 때문이었다.
페니키아는 이때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고 불리우는 지블롤터해협을 지나 대서양연안에 카데스라는 식민지를 건설하고 헤로도토스에 역사에 의하면 아프리카 대륙을 한바뀌 돌았다고 한다. 알파벳의 시작이 페니키아 문자가 된 것은 이러한 상업민족으로서의 페니키아의 영향력 때문이다.
이 페니키아의 후예들이 지금의 레바논이다. 최근 백향목 깃발을 흔들고 시위하는 레바논 사람들의 모습에서 과거의 영광스런 페니키아인들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마치 이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상징하듯 백향목 나무도 지금은 1200여구루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의 네트워크를 가능하게 했던 다양한 구성은 분노와 전쟁만을 불러오는 차별성만이 부각된다. 서구 식민지시대부터 시작된 갈등은 20여년의 내전을 거치면서 피폐해 졌다. 이제 비로소 해결점을 찾고 있던 이들이 다시금 대규모 혼란에 빠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부의 시각대로 ‘백향목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성급한 진단이다. 그들의 고유한 역사는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도 가능한 한 레바논인의 눈 그마져도 안되면 우리의 눈으로라도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126회-정창수(시민행동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