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들을 둘러싼 분쟁은 독도만이 아니다

by 정창수 posted Jul 12, 2005

인류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전쟁의 원인은 약탈 아니면 영토문제가 대부분이다. 비행기의 발달로 한때 중요시되던 영공은 이제 개방의 분위기로 가고 있지만 영토 특히 영해를 확보할 수 있는 섬들에 대한 영토분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전부터 섬으로 인한 갈등은 많았겠지만 배를 통해서 이동할 능력이 부족해서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섬에 대한 분쟁은 열강의 식민지 개척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최초의 섬에 대한 영토분쟁은 아메리카를 둘러싼 문제였다.

섬 때문에 생긴 또르데실야스 조약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 각국에 신대륙 발견이라는 벤처사업에 투자를 요청하였던 콜럼버스는 에스파니아의 이사벨라 여왕으로부터 투자를 유치 받아 산타마리아호 등 3척의 배와 150여명의 승무원과 함께 히스파니올라 섬에 도착했다. 히스파니올라 섬은 현재 자메이카와 아이티가 있는 섬을 말한다.

그런데 콜럼버스는 십여 년 전인 1483년에 당시 포르투갈의 왕인 주앙2세에게 이 사업을 제안했었다. 하지만 아프리카 남단을 도는 희망봉 루트를 준비 중이던 포르투갈은 콜럼버스의 제안을 거절했다. 서쪽으로 가면 뭔가 나올 것이라고 항해를 해본 상당수의 사람들은 추측했지만, 확인되지 않은 일에 투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보다 안전하고 확실한 아프리카 코스를 선택한 것이다. 실제로 포르투갈의 배들은 희망봉에 거의 근접하고 있었다.

아무튼 콜럼버스의 항해 성공과 아메리카 발견은 포르투갈에게는 충격이었다. 그래서 콜럼버스가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포르투갈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아프리카의 모로코 해안 서쪽에 있는 자신들의 식민지인 마데이라 섬에서 가까우므로 자기들의 땅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터무니없는 주장이었지만 당시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세력을 아직 모두 축출하지 못해서 전쟁상태에 있던 에스파니아는 일단 교황 알렉산더6세에게 중재를 요청했다. 그래서 교황은 아조레스 섬과 카보베르데 섬을 종으로 그은 선을 기준으로 100리그(300마일)서쪽으로 더 기준선을 이동하여 동쪽의 땅은 포르투갈이 서쪽은 에스파니아가 차지하는 중재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교황 알렉산더6세가 스페인 출신이기 때문에 공정하지 못하다며 이의를 제기하였다. 그래서 1년을 더 협상한 결과 1494년 6월7일 또르데실야스(Tordesillas)조약이 맺어졌다. 조약의 내용은 기준 지점을 370리그(1100마일) 더 서쪽으로 이동하여 두 나라가 나눠 갖는 것이었다. 이 지점은 대략 서경 50°정도가 되고 현재 브라질의 절반 정도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원래 포르투갈의 진정한 의도는 아프리카를 포함하여 아시아 등 동쪽지역의 독점무역권을 확고히 하고 대서양의 섬 몇 개를 더 얻기 위한 의도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당시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브라질이 포르투갈의 영토가 되는 뜻밖의 횡재를 하게 된다.

당시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로 알았을 정도였고 더구나 남아메리카의 존재는 알 까닭이 없었다. 그래서 협상 당시 신대륙인 줄을 알았었다면 에스파니아가 양보할리가 없고 어떻게든 브라질은 스페인의 영토가 되었을 것이다. 여하튼 브라질은 우연한 이유로 남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를 쓰는 나라가 되었다. 그래서 또르데실야스 조약은 살던 사람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체결된 최초의 제국주의적인 조약이 되었고 포르투갈은 마데이라 섬 하나로 분쟁을 일으켜 엄청난 이익을 얻게 되었다.




섬은 분쟁을 낳고

근래에 와서는 아무 관심 없던 무인도들도 졸지에 분쟁지역이 된다. 모로코 해안에서 200m 떨어져 있고 면적이 13.5㏊(약 4만평)에 불과한 ‘페레힐’이라는 섬이 있다. 우리가 작다고 생각하는 독도가 5만4천평이니 이 섬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섬은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이고 관광객도 거의 찾아가지 않는다.

이 섬은 현재 스페인이 점령하고 있다. 따라서 양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데 2002년도에는 모로코가 군대를 상륙시켜 전 세계의 이목을 받기도 했다. 지중해와 대서양의 교차점인 지브롤터 해협에 대한 소유권 문제에 우위에 서기 위해서는 양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섬 이름도 모로코에서는 ‘레알라’라고 부른다.

이외에도 쿠릴열도 4개 섬을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의 분쟁, 댜오위타이(釣魚臺) 군도 혹은 센카쿠(尖閣) 제도, 가장 심한 중국, 베트남, 타이완,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6개국이 뒤엉켜 있는 남사군도(南沙群島)―스프래틀리 등이 있다.

그런데 섬과 관련한 가장 큰 분쟁지역은 특이하게도 내륙의 섬들이다. 중국과 소련의 분쟁지역이었던 우수리강에 있던 1500개의 섬을 둘러싼 갈등이 가장 큰 사례였다. 다행히 양측이 1988년 합의하여 일단락되었지만 이곳을 둘러싼 무력충돌은 한때 1000여명의 인명 피해를 내기까지 했다. 육지 안의 섬들이라 영토에 대한 문제가 극도로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최고의 섬 분쟁 국가 일본

가장 많은 분쟁을 진행 중인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은 한국, 중국, 러시아 등 7개국과 영토분쟁을 벌리고 있다. 일본이 이렇게 가장 많은 영토분쟁을 일으키는 나라가 된 이유는 1867년 왕정복고와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를 시작한 이후 급속히 제국주의적인 확장을 가속화하면서 갈등의 불씨들을 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879년 오키나와에 대한 실질적 병합, 홋가이도와 사할린에 대한 본격적인 통합, 1877년 대마도 합병, 1905년 독도 병합까지 당시 제국주의적인 국가성장과 함께 많은 분쟁의 소지가 될 지역들을 통합해 나갔다.

2005년 시마네현의 <독도의 날> 조례제정 문제로 독도 문제가 한일 양국의 최대 현안이 되고 있다. 1877년에야 비로소 일본 영토로 편입된 대마도도 이승만 대통령이 반환을 요구하며 반환절차를 밟으려다 한국전쟁으로 무산된 이후 계속 수면 아래에서 존재하고 있다. 한국측에 있어서는 독도보다 문서상의 근거는 더 많다고 한다. 일제시대까지도 조선인이 2만 명이나 살고 있을 정도였다. 이렇듯 인접한 나라는 항상 분쟁의 소지를 안고 있다.

누구에게도 도움 되지 않을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을 어떻게든 중단시키지 않으면 더 큰 문제로 계속 확대되는 비극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최근 발표에 의하면 울릉도 독도 주변에는 액화천연가스(LNG)인 가스 하이드레이트(Gas Hydrate)가 6억 톤 가량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가 30년을 쓸 수 있는 양이 되는데 아마도 이 사실이 엎친데 덮친 격으로 현재의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원인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더 늦지 않게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정창수 유라시아분과장 (함께하는 시민행동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