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두 번째 여름을 맞으며 남편의 휴가일정을 묻지도 않은 채, 덜컥 길상사의 선 수련회에 등록을 하였습니다. 결혼을 통해 두 사람이 하나로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홀로 잘 설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하나로 되어가고 있는 ‘나’를 잘 돌보고 싶은 마음이 무작정 길상사로 발길을 향하게 하였습니다.
저는 천주교 신자이지만 5년 전 화계사에 수녀님과 함께 선 수련회를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새벽을 깨운다는 스님의 목탁소리로부터 시작했던 산사에서의 특별한 생활과 ‘나’를 만나는 과정이었던 하루 8시간이상의 면벽수도로 많은 깨달음과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때문에 주저없이 禪수련회를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길상사는 소문대로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서울도심에 이렇게 수려하고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길상사가 법정스님이 계신 곳이기도 하지만 어느 분의 시주로 만들어진 절이라는데 더 큰 功力이 있는 듯 하였습니다.
일요일 2시부터 시작된 수련회는 핸드폰 등 일체 외부와의 접촉이 끊어졌을 뿐 아니라 70여명의 수련생과 함께 한 생활이었음에도 묵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불자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더 많이 참가한다는 선 수련회를 위해 여러 가지 배려 깊은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새벽예불, 발우공양, 운력(청소), 참선, 요가, 죽음에 대한 명상, 다도강의, 108배, 명상음악회 등의 일정이 화요일 밤 철야로 진행되는 1,080배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첫날 했던 108배로 인해 허벅지 근육이 뭉치기 시작했고, 적어도 30분 이상 꼿꼿하게 앉아서 모든 분심과 처절히 싸우며 ‘나’를 향했던 참선, 중간중간 몸을 풀기위해 진행되었던 요가수업이 뱃가죽까지 댕기는 상황으로 몰고 갔습니다. 내 몸의 변화는 이렇게 시작되었지만각자 수련생이 마음을 돌보는 일을 온전히 할 수 있도록 애써주시는 주지스님, 무애스님, 덕암스님, 지산스님 등 각자 다른 향기를 가지고 계신 스님들의 따뜻한 마음이 조금씩 느껴지더군요. 스님뿐 아니라 길상사의 자원봉사자분들, 아니 길상사의 모든 소리와 바람까지도 철없는 수련생들이 수련에 정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을 알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드디어 1080배, 시험을 치루기 위한 수험생의 심정,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의 심정이었고, 어떻게 끝이 났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지나갔을 뿐 아니라 내 몸(무릎, 허리, 발가락 등)또한 별 탈없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아, 내가 내 몸에 대해 무척이나 집착을 하고 있었구나. 사실 스님 말씀에 의하면 몸은 空한 것인데.
‘깨어있음’은 몸을 편히 하고 싶은 마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고, 무상무념의 마음을 통해 우주의 질서를 되찾아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주교 신자의 입장으로 말한다면 하느님께 온전히, 정말 온전히 나를 맡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겠죠. 우주공동체의 일원으로 내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또한 우주공동체의 일원으로 내 생각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데 마음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집에 돌아와 제 생활을 보니, 온통 먹기 위하고, 몸 편히 쉬기 위해 내 마음이 움직이고 있음이 보이더군요. 그러다보니 게으르고, 이웃을 부처로 볼 마음이 들어올 틈도 없다는 것이 보였습니다. 앗, 내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 이렇게도 많은 아귀가 들끓고 있었구나.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길상사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온 듯 합니다.
남편과는 함께 다도를 배우며 ‘선’의 경지에 이르러 보자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마음이라는 것이 하도 요상한 것이라 지금 심정으로는 길상사에서 매월 진행하신다는 3천배 철야정진도 하고 싶은데. 설마 제 몸이 어떻게 되지는 않겠지요.
저는 천주교 신자이지만 5년 전 화계사에 수녀님과 함께 선 수련회를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새벽을 깨운다는 스님의 목탁소리로부터 시작했던 산사에서의 특별한 생활과 ‘나’를 만나는 과정이었던 하루 8시간이상의 면벽수도로 많은 깨달음과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때문에 주저없이 禪수련회를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길상사는 소문대로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서울도심에 이렇게 수려하고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길상사가 법정스님이 계신 곳이기도 하지만 어느 분의 시주로 만들어진 절이라는데 더 큰 功力이 있는 듯 하였습니다.
일요일 2시부터 시작된 수련회는 핸드폰 등 일체 외부와의 접촉이 끊어졌을 뿐 아니라 70여명의 수련생과 함께 한 생활이었음에도 묵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불자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더 많이 참가한다는 선 수련회를 위해 여러 가지 배려 깊은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새벽예불, 발우공양, 운력(청소), 참선, 요가, 죽음에 대한 명상, 다도강의, 108배, 명상음악회 등의 일정이 화요일 밤 철야로 진행되는 1,080배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첫날 했던 108배로 인해 허벅지 근육이 뭉치기 시작했고, 적어도 30분 이상 꼿꼿하게 앉아서 모든 분심과 처절히 싸우며 ‘나’를 향했던 참선, 중간중간 몸을 풀기위해 진행되었던 요가수업이 뱃가죽까지 댕기는 상황으로 몰고 갔습니다. 내 몸의 변화는 이렇게 시작되었지만각자 수련생이 마음을 돌보는 일을 온전히 할 수 있도록 애써주시는 주지스님, 무애스님, 덕암스님, 지산스님 등 각자 다른 향기를 가지고 계신 스님들의 따뜻한 마음이 조금씩 느껴지더군요. 스님뿐 아니라 길상사의 자원봉사자분들, 아니 길상사의 모든 소리와 바람까지도 철없는 수련생들이 수련에 정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을 알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드디어 1080배, 시험을 치루기 위한 수험생의 심정,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의 심정이었고, 어떻게 끝이 났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지나갔을 뿐 아니라 내 몸(무릎, 허리, 발가락 등)또한 별 탈없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아, 내가 내 몸에 대해 무척이나 집착을 하고 있었구나. 사실 스님 말씀에 의하면 몸은 空한 것인데.
‘깨어있음’은 몸을 편히 하고 싶은 마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고, 무상무념의 마음을 통해 우주의 질서를 되찾아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주교 신자의 입장으로 말한다면 하느님께 온전히, 정말 온전히 나를 맡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겠죠. 우주공동체의 일원으로 내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또한 우주공동체의 일원으로 내 생각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데 마음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집에 돌아와 제 생활을 보니, 온통 먹기 위하고, 몸 편히 쉬기 위해 내 마음이 움직이고 있음이 보이더군요. 그러다보니 게으르고, 이웃을 부처로 볼 마음이 들어올 틈도 없다는 것이 보였습니다. 앗, 내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 이렇게도 많은 아귀가 들끓고 있었구나.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길상사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온 듯 합니다.
남편과는 함께 다도를 배우며 ‘선’의 경지에 이르러 보자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마음이라는 것이 하도 요상한 것이라 지금 심정으로는 길상사에서 매월 진행하신다는 3천배 철야정진도 하고 싶은데. 설마 제 몸이 어떻게 되지는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