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아일랜드, 그리고 IRA

by 정창수 posted Aug 16, 2005
지구상에서 우리나라 사람들과 가장 많이 닮은 사람들이 있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아일랜드인들이다. 이탈리아 사람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지만 노래 부르기 좋아하고 격정적인 기질이 비슷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다.

한국인과 가장 닮은 아일랜드인

반면에 아일랜드 사람들은 자기 민족이야말로 가장 순수하며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맹목적 애국심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자신들의 역사가 가장 비참하고 비극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매우 닮아 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아일랜드인’이라고 스스로 이야기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것은 영국이라는 강대국이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중국과 일본이라는 강대국사이에 있는 한국과 같이 수난의 역사를 경험했다. 그래서 두 민족에게는 기본적으로 한(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통의 정서가 있다.

기가 막힌 사실은 일본인들이 “한국은 우리의 아일랜드”라고 하면서 영국의 식민정책을 모방하여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를 했다는 것이다. 토지수탈이나 언어말살 등 식민지의 경험이 유사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러니 안 닮을 수는 없다.




감자 대기근과 잉글랜드에 대한 증오

최근의 조사에 의하면 유럽연합(EU)소속 국가 중 가장 민족적 자부심이 강한 나라는 단연 아일랜드라고 한다. 이런 나라를 7백년이나 영국이 지배했으니 그들의 상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일본을 싫어하는 것 이상으로 아일랜드인들은 영국을 증오한다.

그런데 이런 증오는 단순히 식민지였기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감자대기근이라고 하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일랜드 사람들은 감자를 주식으로 먹고 있었다. 이 감자는 미국에 이민을 가서도 계속 먹었다고 한다. 물론 그들의 채질과도 맞았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토지 때문이었다. 17세기부터 영국은 카톨릭신도의 토지소유를 금지했다. 따라서 카톨릭신도는 전인구의 4분의 3이었지만 토지소유는 14%정도에 불과했다. 그래서 대부분은 소작농이었기 때문에 소출이 많은 감자를 재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845년부터 갑자기 감자마름병이라는 전염병이 돌았다. 단일농작물을 재배할 경우 피해가 발생하면 가공할 결과가 발생한다. 그 결과 일찍이 없었던 흉년이 발생한다. 1846년부터 1850년까지 5년간의 대기근이 끝나자 850만 인구는 660만으로 감소했다. 자연성장률을 감안하더라도 240만 명이 실종되었는데 이중 110만 명은 굶어 죽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나중에는 인구시스템이 붕괴되어 결국 300만 명까지 인구가 줄게 된다. 세계역사상 유례없는 비극이었다. 최근 200년 만에 인구가 다시 400만에 도달할 정도이니 감자 대기근으로 인한 아일랜드의 상처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영국은 놀라울 정도로 냉담했다. 냉담한 이유는 멜더스의 인구론에 입각해서 과잉인구 감소는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고 자유방임 경제정책에 집착해서 개입을 꺼린 탓이다. 그래서 5년간 810만 파운드를 지원했으나 절반 이상은 되갚아야 할 차관이었고 지원총액은 5년간 영국총생산의 0.5%도 안되는 액수였다.

그런데 당시 영국은 서인도제도의 노예소유주에게 2천만 파운드의 보상금을 지불했고, 크림전쟁에는 7천만 파운드의 전쟁비용을 쏟아 붓고 있었다. 더군다나 수백만 톤의 식량이 아일랜드에서 영국으로 수출되었다. 영국인 지주들에게 식량은 상품일 뿐이었다. 또한 영국정부는 최소한의 인도주의적인 관심도 없었던 것이다.

슬픈 IRA

돕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식량을 빼앗아 가니 당연히 아일랜드인들의 분노를 넘어 증오하게 되고 수많은 봉기가 일어난다. 물론 영국은 잔인하게 진압했지만 그들은 1922년 마침내 독립을 쟁취한다. 하지만 이 독립은 인구의 60%가 신교도인 북부 얼스터지방을 뺀 불안전한 독립이었다.

그리고 독립전쟁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한 IRA(에이레 공화국군)는 독립국가의 군대가 된다. 하지만 여전히 북아일랜드는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마침내 1969년에는 폭동이 발생하고 제2의 IRA가 조직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3천여 명의 인명피해를 낸 기나긴 전쟁이 계속되었다.

최근 IRA가 무장해제를 선언했다. 정세변화와 몇 가지 불미스러운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더구나 부시의 방해로 인하여 4천만에 달하는 미국 내의 아일랜드계 사람들의 지원이 어려워지게 된 것이다. 부시는 이것도 마찬가지의 테러로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우 약해지겠지만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없다면 언제고 불씨는 되살아날 것이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테러의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들의 방식에는 공감하지 않지만 심정적으로는 이해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테러의 자양분이 된다.

더군다나 그들의 모국 아일랜드는 더 이상 가난한 유럽의 변방이 아니라 국민소득 3만달러를 돌파하여 영국을 앞지른 일류국가가 되었다. 당연히 그들의 영토로 간주하는 북아일랜드에 대해 더 발언력을 높일 수 밖에 없다. 영국은 더 이상 딜레마에 봉착하여 전전긍긍 할것이 아니라 스스로 풀어나가야 한다. 더 이상 슬픈 아일랜드인, 그리고 한을 품은 IRA가 없도록 해야 한다.

정창수(유라시아분과장, 함께하는 시민행동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