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r and Away와 미국의 투기열풍

by 정창수 posted Aug 22, 2005
1893년 미국 오클라호마의 대평원 위에 말과 마차를 탄 수만명의 사람들이 출발선 앞에서 북적대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마차경주를 하려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땅을 차지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잠시 후 기병대의 나팔소리를 시작으로 먼저 달려가 깃발을 꽂는 사람이 깃발 주변 160에이커(약 20만평) 땅의 임자가 되는 것이었다.
 
1992년경 국내에도 상영된 적이 있는 론 하워드 감독의 영화 ‘파 앤드 어웨이(Far and Away)’의 한 장면이다. 어디에나 땅은 가장 중요한 삶의 요소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갈등이 여기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미국은 넓은 땅을 가지고 있으므로 쉽게 문제를 해결했으리라는 생각을 해왔다.

기회의 땅 미국

하지만 이는 상당한 오해다. 당시 미국은 엄청난 인구증가에 직면해 있었다. 남북전쟁을 전후해서 급격히 유입된 이민은 자연스러운 서부개척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영화 ‘갱스 오브 뉴욕’에 표현된 것처럼 이는 엄청난 혼란을 초래했다.
 
당연히 주택과 토지의 가격상승을 가져왔고 사회불안이 형성되었다. 거기에다 투기가 극성을 부려 도저히 낮은 임금으로는 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서부로의 이동을 유도했으나 쉽지 않았다. 땅 없는 이들에게 서부로 가라는 것은 빈털터리로 또다시 이민을 가라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골드러시 바로 직전인 1850년경에 캘리포니아 전체 인구가 10만명 정도에 불과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링컨은 1862년 홈스테드법(택지법:The Homestead Act)을 만들었다. 이 법으로 21세가 넘은 시민이거나 시민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160에이커(20만평)의 국유지를 공짜로 나눠 줬다. 조건은 5년 동안 집을 짓고 살면서 농토를 개간해야 한다는 것이다. 2백만 가구가 이 법의 혜택을 입어 2억7천만 에이커(1억9백만 헥타르)의 땅을 가져갔다.
 
남한의 12배 그리고 미국의 10분의 1이 넘는 공유지가 이들에게 분배되었다. 중산층이 형성되고 불안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혁명이 일어나지 않게 된 원인중의 하나가 아닌가 하는 주장도 있다.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중서부의 그림 같은 농촌들은 이때 만들어졌다. 마차행렬이 인디언과 싸우면서 서부의 땅을 찾아 떠나는 개척자로서의 미국인의 모습은 헐리웃에 의해 조작된 기억일지도 모른다,

투기의 역사

투기의 기록은 로마시대에서도 발견된다. 당시 로마는 이미 금융도 발달해서 ‘퍼블리카니’ 같은 지금의 주식회사 같은 것이 있을 정도였다. 당연히 땅을 중심으로 투기행위가 발생했는데 이때 투기꾼들을 ‘그리크(Greek)’라고 부르며 경멸했다. 당시 투기꾼의 상당수가 그리스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인들의 상업이 발달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보가 빨랐기 때문이다. 당시 로마의 상류층은 그리스를 동경해서 교사부터 가정부까지 그리스인으로 둘 정도였기 때문에 정보접근 면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로마 정부의 새로운 개발계획을 사전에 알아내서 땅투기를 하기도 했다.
 
근대에 들어 가장 큰 투기사건은 제국주의시대 네덜란드가 벌였던 ‘튤립 투기’ 사건이다. 1930년대 네덜란드는 절정의 국력을 구가하고 있었다. 스페인은 무력해졌고 무역은 독점되었다. 1인당 최고국민소득을 자랑하던 네덜란드는 호황을 만끽하였다. 우선 부동산가격이 급상승하고 주식 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이때 오스만투르크에서 전해져온 튤립까지 투기의 대상이 된다. 왜냐하면 튤립은 조그만 땅만 있어도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암스테르담 시내의 집한 채 값까지 올랐고  노동자 1년 수입의 20배까지 되었다. 거품은 언젠가는 꺼지는 법. 13년 후 시장은 붕괴되고 파산자가 넘쳐났다. 마침내 정부가 개입하여 혼란을 막았지만 후유증은 커서 15년 후에는 영국에게 무역의 주도권을 넘겨주게 된다.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악어와 뱀이 우글거리는 플로리다의 땅투기 사건 등 투기로 인한 부동산 폭등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황무지에 대한 투기가 잇따랐다. 대공황 직전의 광란의 주식투기는 부동산에서도 동시에 일어나 현금이 돌지 않아 대공황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는 주장도 있다.

사막도 사고파는 미국

최근 세계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방울뱀만 노니는 사막지대에도 투기 열풍이 불어 묻지마 투자가 횡행한다고 한다. 6개월 동안 무려 12배를 올랐다고 하니 우리의 투기대장 기획부동산 같은 곳은 명함을 내밀지 못할 정도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투기는 필연이다. 순진한 사람들은 수요와 공급문제로 원인을 해석하려고 하지만 그런 단순한 전제가 가능한 사회는 거의 없고 만약 그렇다면 경제문제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땅이 아무리 많아도 투기는 일어난다.
 
그런데 문제는 과거처럼 일부지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전반적이라는 데에 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부동산도 그 흐름을 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거품은 오래가지 못한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거품이 꺼진 후의 고통은 견디기 힘들다. 세계화가 가져오는 또 하나의 어둠의 그림자이다.

정창수(유라시아분과장, 함께하는 시민행동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