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주검으로 우리 곁을 떠난 고 장준하 선생은 평생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는 말을 주문처럼 하고 다녔다. 일제의 총알받이 학도병으로 끌려갈 때도, 일군을 탈출 중경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6천리 장정길에서도, 한 목숨 조국해방의 제단에 던지겠다는 각오로 OSS국내진입 작전에 참여할 때도, 그리고 이승만-박정희로 이어지는 독재와의 목숨을 건 싸움에서도 항상 선생은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 국민이 깨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사상계를 창간했을 때도, 열악한 재정난과 독재의 야비한 음모로 휴간을 거듭하면서도 그 권두언에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사상계를 발행한다고 수차례 밝히고 있다.
"상가집에 소주와 라면 사들고 가보기는 처음이었다"던 고은 시인의 말처럼, 평생 조국과 민족만을 생각했던 분이기에 한국 최고의 잡지를 발행하고,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고, 국회의원까지 지냈지만 가족과 함께 할 집 한 칸 남기지 않고 장준하 선생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리더만 있고 리더십은 없다
사회가 다양화되고 민주주의가 발전할수록 리더와 리더십의 역할은 중요하다. 역사를 들추지 않더라도 최근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2년 전 대학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는 ‘우왕좌왕(右往左往)’이었다. 그리고 작년의 사자성어는 ‘당동벌이(黨同伐異)’였다. 같은 패끼리 무리지어 다른 파를 공격한다는 의미다. 개혁입법을 둘러싼 논쟁에서, 행정수도이전, 부동산투기, 대학입시, 도청파문 등 최근 우리 사회의 모습은 불신과 대립, 불화로 얼룩졌다. 지역, 계층, 연령, 그리고 정파적 이해로 갈기갈기 찢어진 것이다.
문제는 리더십의 부재에 있다. 사회적 대타협과 투명사회를 제안하면서 정치인은 물론이고 사회 원로, 종교인, 학자, 경제인들이 모두 한마디씩 하고 있지만 '그래, 그렇게 합시다'라며 시원하게 동의하고 동참하는 분위기는 찾을 수 없다. 우리 국민 모두의 의지와 노력을 모을 방향도, 그 방향을 제시하는 집단이나 리더도 찾아볼 수 없다. 형식적인 대표로서 리더는 있지만 리더십은 없는 것이다.
혹자는 지난 YS, DJ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했다. 개혁을 외쳤던 사람들이, 그 최측근들이 모두 감옥에 다녀왔거나 지금도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개혁의 주체가 스스로 말한 개혁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온 국민이 개혁 피로증에 걸린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정치인 뿐 아니라 공무원사회, 교육계, 경제계, 문화계 등 온통 도덕불감증에 걸린 것처럼 부정과 부패에 얼룩지고 개인과 집단의 이익만을 생각하는데 과연 누가 누구의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리더십을 말하기 전에 도덕성부터 회복해야 한다.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개혁이란 문엇인가. 한자 그대로 자신의 가죽을 벗기는 것이다. 고통을 감내하며 스스로를 버리는 것이다. 자신과 집단, 정파의 이익을 모두 버리지 않는 한 결코 개혁은 이뤄질 수 없다. 리더십 역시 마찬가지다. 1967년 박정희 독재에 맞서 유진오ㆍ윤보선ㆍ이범석ㆍ백낙준 등 야권 정치지도자들의 4자회담이 가능했던 것 역시 자신을 버렸던 장준하 선생의 리더십 때문이었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시도와 일본의 독도 망언 및 역사왜곡으로 국민의 심기가 불편하기 그지없다. 민족의 생존은 상관없이 핵개발 카드로 정권의 안위만을 쫓는 북한의 모습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 조상들이 미리미리 준비하고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한 탓이다. 경제위기와 양극화도 마찬가지다. 과거 우리 선배들이 10년, 20년 후를 대비하며 눈앞의 성장 못지않게 미래의 성장을, 그리고 분배의 기초를 튼튼하게 만들었던들 오늘날의 위기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1976년 3.1 구국선언으로 투옥된 고 문익환 목사는 법정 최후진술에서 "나는 장준하를 따르기 위해 구국선언을 했다"고 말했다. 장준하의 말이라면, 믿고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8월 17일은 장준하선생의 30주기였다. 그리고 오늘 평생 못난 조상이 되지 않겠다던 장준하 선생의 말씀이 그리워지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먼 훗날, 아니 10년 쯤 후에 후배들에게 못난 조상 때문에 대한민국에 살기가 어렵게 됐다는 소릴 듣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 국민이 깨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사상계를 창간했을 때도, 열악한 재정난과 독재의 야비한 음모로 휴간을 거듭하면서도 그 권두언에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사상계를 발행한다고 수차례 밝히고 있다.
"상가집에 소주와 라면 사들고 가보기는 처음이었다"던 고은 시인의 말처럼, 평생 조국과 민족만을 생각했던 분이기에 한국 최고의 잡지를 발행하고,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고, 국회의원까지 지냈지만 가족과 함께 할 집 한 칸 남기지 않고 장준하 선생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리더만 있고 리더십은 없다

문제는 리더십의 부재에 있다. 사회적 대타협과 투명사회를 제안하면서 정치인은 물론이고 사회 원로, 종교인, 학자, 경제인들이 모두 한마디씩 하고 있지만 '그래, 그렇게 합시다'라며 시원하게 동의하고 동참하는 분위기는 찾을 수 없다. 우리 국민 모두의 의지와 노력을 모을 방향도, 그 방향을 제시하는 집단이나 리더도 찾아볼 수 없다. 형식적인 대표로서 리더는 있지만 리더십은 없는 것이다.
혹자는 지난 YS, DJ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했다. 개혁을 외쳤던 사람들이, 그 최측근들이 모두 감옥에 다녀왔거나 지금도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개혁의 주체가 스스로 말한 개혁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온 국민이 개혁 피로증에 걸린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정치인 뿐 아니라 공무원사회, 교육계, 경제계, 문화계 등 온통 도덕불감증에 걸린 것처럼 부정과 부패에 얼룩지고 개인과 집단의 이익만을 생각하는데 과연 누가 누구의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리더십을 말하기 전에 도덕성부터 회복해야 한다.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개혁이란 문엇인가. 한자 그대로 자신의 가죽을 벗기는 것이다. 고통을 감내하며 스스로를 버리는 것이다. 자신과 집단, 정파의 이익을 모두 버리지 않는 한 결코 개혁은 이뤄질 수 없다. 리더십 역시 마찬가지다. 1967년 박정희 독재에 맞서 유진오ㆍ윤보선ㆍ이범석ㆍ백낙준 등 야권 정치지도자들의 4자회담이 가능했던 것 역시 자신을 버렸던 장준하 선생의 리더십 때문이었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시도와 일본의 독도 망언 및 역사왜곡으로 국민의 심기가 불편하기 그지없다. 민족의 생존은 상관없이 핵개발 카드로 정권의 안위만을 쫓는 북한의 모습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 조상들이 미리미리 준비하고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한 탓이다. 경제위기와 양극화도 마찬가지다. 과거 우리 선배들이 10년, 20년 후를 대비하며 눈앞의 성장 못지않게 미래의 성장을, 그리고 분배의 기초를 튼튼하게 만들었던들 오늘날의 위기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1976년 3.1 구국선언으로 투옥된 고 문익환 목사는 법정 최후진술에서 "나는 장준하를 따르기 위해 구국선언을 했다"고 말했다. 장준하의 말이라면, 믿고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8월 17일은 장준하선생의 30주기였다. 그리고 오늘 평생 못난 조상이 되지 않겠다던 장준하 선생의 말씀이 그리워지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먼 훗날, 아니 10년 쯤 후에 후배들에게 못난 조상 때문에 대한민국에 살기가 어렵게 됐다는 소릴 듣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