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반도정책 결정과정과 NGO 활동

by 손종도 posted Aug 30, 2005
미국의 대외정책은 흔히 미 국민의 여론과 더불어 씽크탱크 및 NGO 활동, 의회와의 관계, 행정부내 이견 조절 등 매우 복잡하고 중층적인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 ‘미국의 일방주의’로 요약되는 현 부시 행정부의 대외 정책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결정되는 것일까? 당초 이번 주에 재개될 예정이던 6자 회담이 다시 2~3주 연기되는 등 핵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북미간의 갈등이 지속되는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미국의 대외정책이 어떻게 결정되는 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 결정과정은 언론의 주요 관심사였다. 미국의 뉴욕타임스紙는 이와 관련해 지난해 10월 17일자 기사에서 “부시 대통령은 핵심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 ‘사실’보다는 자신의 사적인 감정이나 믿음을 근거로 삼는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부시 행정부가 전세계 곳곳을 향해 펼친 ‘신앙에 기초한 대외정책’의 가장 참혹하고도 극명한 결과가 바로 이라크라는 설명이다.

이러한 내용은 미국의 비정부기구(NGO)인 국제위기감시기구(ICG)의 동북아 사무소장으로 최근 국내에서 맹렬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피터 벡(Peter M. Beck)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지난 8월 23일 열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평화나눔 정책포럼에서 “부시 행정부에게 중요한 것은 부시와 얼마나 가까이에 있느냐는 것”이라면서 “NGO와 씽크탱크들은 아무런 힘이 없어졌고 오로지 측근들의 영향력만 우세하다”고 지적했다.

대외 정세에 대한 정보나 지식보다는 힘있는, 혹은 영향력 있는 사람과의 커넥션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그는 현 부시 행정부의 대외 정책을 판단하는 데는 공식적인 외교정책 결정 구조  보다는 인물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국민들이 기본적으로 외교 문제보다는 경제 문제에 훨씬 더 큰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에 외교정책에 대해서는 대통령이나 측근들이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부시, 신앙에 기초한 대외정책

그러면 지난 1기에 비해 외견상 변화한 것으로 보이는 최근 2기 부시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벡 소장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아태담당 차관보 등 외교 담당자들의 공이 크다고 설명한다. 이라크 전쟁과 북핵 위기 등 부시 행정부 1기에 조성된 대외정책의 난맥상이 강경보수 네오콘들을 일시적으로 침묵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 벡 소장은 이 바탕 위에서 6자회담의 미국측 대표를 맡고 있는 힐 차관보의 외교관적 직업정신이 6자회담을 이끌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벡 소장에 따르면 북한 문제와 관련해 활동하는 미국의 NGO는 북한의 식량문제에 집중하는 단체와 인권문제에 집중하는 단체 등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美 친우봉사회(AFSC)와 머시 코(Mercy Corps) 등은 북한의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반면 NED와 프리덤하우스 등은 북한 인권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미국에서는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단체들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벡 소장은 지난 7월 프리덤하우스가 워싱턴에서 주최한 북한 인권대회에 약 1,000여명의 청중이 운집했다면서 “인권문제를 무시할 수 없지만 인권에만 집중하면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데도 미국 NGO들은 인권문제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북한에 대한 미국 NGO들의 태도가 이렇게 형성된 데는 미국에 한반도 전문가가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편중된 정보만을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벡 소장은 美 워싱턴에 제대로 된 한반도 전문가가 거의 없다고 단언한다. 자칭 전문가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식당에서 음식을 제대로 주문할 수 있는 사람은 3~4명에 그치며, 이에 따라 워싱턴에서는 한반도에 대한 정보보다 의견이 훨씬 많으며 정보도 정확하지 않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한반도 거주민의 입장 적극 알려야

그에 따르면 워싱턴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대부분 보수적인 사람이다. 이들이 워싱턴에서 미국인들에게 하는 발언은 편향된 것이 많은데, 벡 소장은 “노사모 다 빨갱이다, 대학생들 다 빨갱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진짜 많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에 대해 아무리 관심이 많은 미국인이라도 일 년에 한 차례, 길어야 일주일 정도 한국을 방문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발언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미국인들은 또 영어로 기사서비스를 하고 있는 조선, 중앙, 동아 등의 신문을 통해 한반도의 상황을 접하고 있다.

벡 소장의 이러한 지적은 한반도 문제에 관여하는 국내의 많은 NGO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의 일방주의적인 한반도 정책을 비판하기는 하지만(그것도 국내에서!) 그 원인을 진단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노력들은 상대적으로 미흡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토회의 지도법사 법륜 스님의 행보는 도드라지게 눈에 띈다. 법륜 스님은 최근에도 미국을 방문, 美 의회 보수층 인사들과 만나 대북 식량 지원에 대해 논란을 벌이는 등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한반도 거주민’들의 시각을 美 정가에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 ‘한반도 거주민’들의 입장을 적극 알려내려는 이러한 노력이 더욱 절실해진다.  

몇 가지 사족

(1) 국제위기감시기구(International Crisis Group)의 사무실이 어디에 있을까요? KG 사무실 바로 옆이군요. 경희궁의 아침 3단지 오피스텔 802호 랍니다. 한 번 찾아가셔도 좋을 듯... 피터 벡 소장, 우리 말 잘합니다.

(2) http://www.crisisgroup.org/home/index.cfm?id=3170&l=1 ICG 동북아사무소가 최근까지 펴낸 연구보고서가 링크돼 있습니다. 진지한 문제의식을 담은 보고서로,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