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다양성과 인간 생존

by 정창수 posted Sep 16, 2005
지구에서 생존하는 다양한 생물들은 서로 긴밀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 인간은 보통 먹이사슬로 그 연결고리를 이해하고 있는데, 그것은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연결고리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반대로 서로를 살리는 연결고리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코끼리이다. 코끼리는 야자나무를 쓰러트린 다음, 그 둥치 위에 서서 기다린다. 가끔 만화나 동물의 왕국 같은 곳에서 보면 코끼리의 이 기이한 행동을 우수꽝스럽게 묘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기이한 행동이나 귀엽게 보이려는 행위가 아니다.

그런 행동은 코끼리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생활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유를 알아보자. 그 나무둥치 위에 코끼리가 한참을 서 있다가 내려오면 무게로 인해 발자국 모양의 웅덩이가 파이고 그곳에는 달콤한 수액이 고인다. 이렇게 고인 수액을 살살 몸을 흔들어 가며 취할 만큼 섞어 마신다.

이 수액은 코끼리가 먹는 다양한 약 중의 하나인데, 코끼리는 필요한 나무를 먹기 위해 45Km정도를 이동하기도 한다고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수액은 코끼리의 출산과 관련이 있다. 수액을 마시고 산통을 시작하고는 건강하게 새끼를 낳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코끼리가 먹는 나무는 케냐의 여성들이 먹는 분만촉진제와 똑같다고 한다.

동물들을 위한 식물

이외에도 많은 동물들이 식물을 분만촉진제로 사용한다. 또한 인도에 사는 멧돼지는 회충의 침입을 통제하기 위해 구충성분이 풍부하게 들어있는 ‘털비름(pigweed)’의 뿌리를 캐 먹는다. 이것은 멕시코의 멧돼지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특정한 시기에 개가 풀, 그중에서도 ‘개밀’을 일부러 먹는 것도 내장의 점막을 건강하게 만들어 신장 기능을 촉진하고 항박테리아와 항미생물 효과가 있게 하려는 것이라 한다.

초봄에 오랜 동면에서 깨어난 곰이 가장 먼저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긴 발톱으로 오샤(osha)라는 식물을 먹는 일이다. 그리고 남은 것은 씹어서 반죽으로 만든 후 몸에 바른다. 오샤의 뿌리는 회충을 물리치는 효능이 강하기 때문에 겨울이 끝난 후 장청소를 하는 것이다.

사람들도 동물의 일종인 만큼 식물을 약으로 쓴다. 6만 년 전의 네안데르탈인의 무덤 안에서도 약초가 발견되었고 지난 6천 년간의 문자기록에서도 8만 가지 이상의 식물을 일상적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인류는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식물을 먹거나 달여 먹고 차로 마시거나 피부에 바르고 살아온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들만의 약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연결고리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과학에 대한 맹신이 생물들과의 상호의존관계를 무시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많은 식물이 생존할 수 없게 되거나 대규모 단일경작으로 연결고리를 끊어버린다. 그 결과 생물종 다양성이 급격히 파괴되기 시작한다.

연결고리를 파괴하는 사람

지구상에서 가장 척박한 속에 사는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들은 75가지도 넘는 식물을 일상적으로 섭취하고 암이란 병은 없다고 한다. 현대 미국인들의 평균 표준 권장량보다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여흥을 위해 할애한다.

이런 다소 극단적인 상황이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1만~8만 가지 식물을 일상적으로 섭취했다. 물론 대다수는 야생식물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농업이 급격히 산업화 되면서 시스템은 파괴된다. 1900년경의 미국인은 100가지 정도의 사과와 50가지의 채소, 30종의 육류를 시장에서 구입했다. 그러나 또다시 백여 년이 지난 지금은 일상적으로 열 가지도 안되는 채소를 먹고 대다수는 그나마 다섯가지도 안되는 식물을 먹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이 만든 과학을 맹신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때 가서 걱정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많은 사람들은 문명의 방향을 거스를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급격한 변화는 위험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도 많은 생물들이 사라지고 있으며 그것은 결국 인간에게도 돌이키기 힘든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새로운 과제는 새롭게 연구해하겠지만 인간의 경험은 자연스러운 진실을 체화시켜 왔다. 자본의 이익, 문명의 편안함을 잠시 접고 한번 생각해보자. 결국 어떤 것이 사는 길이고, 어떤 것이 죽는 길인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