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4차 헌정사기행

by 寶圓 posted Aug 31, 2005
반만년 북방문명의 자부심 대신 한 많은 아리랑 겨레로 둔갑한 한민족의 자화상을 넘어, 독립전쟁 주도 세력의 지리멸렬과 민족통합을 위한 노력의 좌절, 그리고 분단과 비극으로 얼룩진 헌정사를 넘어, 성장과 민주화의 신화를 딛고 일어설 새로운 신화와 통합의 헌정사를 위한 코리아글로브의 4차 헌정사기행이 지난 8월 28일 망우리 및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서 진행되었다.

생존과 민주주의 신화의 현장을 찾아 나서는 코리아글로브의 다짐을 시험이라도 하듯 한창 모이는 시간에 쏟아지던 빗줄기는 일행이 망우리 “13도창의군탑” 앞에 도착하자 사라지고 처서를 지난 가을의 날씨로 맞아주었다. 이후 일행은 1918년 여운형, 김규식 선생 등과 함께 신한청년단을 조직하고 동아일보 주필을 지낸 설산 장덕수 선생의 묘소를 참배했다.



죽산 조봉암 선생의 묘소를 찾은 것은 거의 한 달 만이다. 지난 7월 31일 서거 46기를 맞아 죽산연구소 준비위원들과 참배했었기 때문이다. 우리시대의 화두처럼 떠오르는 통합의 리더십을 몸소 실천하고 냉전의 축을 흔든 평화통일을 주창했지만 헌정사의 비주류로, 남과 북으로부터 공히 외면받고 있는 선생의 묘소 앞에서 일행은 지난 세기 수만의 인재를 되찾아내어 외향과 자강 그리고 공존공영의 길을 찾겠다고 마음을 모아 발원했다. 그리고 일행은 바로 옆 만행 한용운 선생의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망우리에서 마석 모란공원까지 가는 길은 막힘이 없었다. 중간에 든든히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찾은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은 바람 한 점 없이 평온해 보였다. 수많은 노동, 민주열사와 진보적 지식인과 청년, 그리고 재야의 거목들이 쉬어 있는 곳. 비록 그들의 생은 피곤하고 처절했지만 더불어 계시기 때문인지 묘역 곳곳에 걸린 구호와 플랜카드에도 불구하고 일행을 편하게 맞아주었다. 먼저 민주열사추모비에서 참배와 발원을 올린 일행은 전태일, 박래전, 김경숙, 문송면, 이덕인, 김병곤, 박종철, 오경환, 김말룡, 김진균, 성완희, 계훈제 선생 등 먼저 가신 님들의 묘소를 차례로 참배하였다. 그리고 다시 추모비로 돌아와 다함께 천천히 비문을 읽었다.

만인을 위한 꿈을 하늘 아닌 땅에서 이루고자 한
청춘들 누웠나니
스스로 몸을 바쳐 더욱 푸르고 이슬처럼 살리라던
맹세는 더욱 가슴 저미누나
의로운 것이야말로 진실임을 싸우는 것이야말로
양심임을 이 비 앞에 서면 새삼 알리라
어두운 세상 밝히고자 제 자신 바쳐 해방의 등불 되었으니  
꽃 넋들은 늘 산자의 빛이요 별뉘라
지나는 이 있어 스스로 빛을 발한 이
불멸의 영혼들에게서 삼가 불씨를 구할지어니



이번 헌정사기행에는 제1회 KG아카데미의 회원들이 참가했다. 비록 세 명밖에 동참하지 못했지만 오늘의 대학생들은 지난 세기 이 땅에서 벌어졌던, 그리고 그 중심에서 세상을 품어안고자 했던 선배들의 모습을 어떻게 기억하고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할 뿐이다. 물론 대답을 듣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주 천천히 삶의 모습으로 대답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당일 기행에 참가한 회원은 강성룡, 김석규(김한백), 김현인, 박소희, 박종철, 박현선, 이강일, 이강훈, 이규승, 이왕재, 이주원, 임윤옥, 정창수, 조민(이상 15명), 그리고 1기 KG 아카데미 3명 김관태, 오은실, 황현석, 마지막으로 뒷풀이에 참석한 김태희 회원이다.
  • 永樂 2005.09.01 12:01
    반 세기 전 해방정국에서 몽양과 백범이 손을 잡지 못하고 통합주의 정치노선과 민족주의 통일노선의 결별에 이르러 끝내 남북을 극단주의 세력에 맡기고 말았다. 오늘 우리가 명심할 바다
  • MK 2005.09.28 02:34
    현인 수고 많다...소희씨두요...^^ 언제 저녁 한번 살께. 중간고사시즌 마치고 10월 중순쯤? 시간되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