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博物館)의 기원은 알 수 없다. 인간은 본래 수집하는 동물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상생활이나 종교에 기원을 두고 도구나 물건을 수집하는 것으로부터 박물관이 생겨났다고 보여 진다. 수많은 고대의 유물과 고분들에 매장자의 생활용품도 아닌 물건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박물관은 그런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본능의 형태를 바꾸어 놓은 것이다. 박물관은 도서관보다 먼저 있었을 것이다. 문자보다 물건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최초의 박물관은 기원전 3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 세워진 뮤제이온(mouseion)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뮤제(muse)라는 신에게 바쳐진 신전인데 기증품이나 상납물 또는 진기한 보물들을 모아 두는 곳이었다. 그래서 뮤지엄(museum) 즉 박물관의 어원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와 공공박물관이 생기기 전까지의 박물관은 왕족이나 부유한 개인의 취미생활에 불과했고 소유에 대한 자기 과시적인 공간일 뿐이었다. 공공박물관은 1759년 대영박물관이 문을 열고 1793년 루브르박물관이 국립으로서는 처음으로 문을 열면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신라시대에 이미 귀비고(貴妃庫)나 안압지 등 희귀물건을 저장하고 전시용 동식물을 기르는 곳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근대적인 의미의 박물관은 대한제국 시절인 1908년 순종이 창경궁 안에 제실박물관(후에 이왕가박물관)과 식물원·동물원을 발족시켰고, 이 박물관에는 삼국시대 이래의 미술품이 수집·전시되었다. 1909년 박물관·식물원·동물원을 일반에 공개한 것이 근대적 박물관의 시작이다. 이것이 바로 창경원이다.
해방 후에는 수많은 국공립 박물관이 생기고 민간 박물관도 많아 졌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많아진 것도 있고, 또 지방자치제가 시작되면서 각 지역이 너도나도 박물관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사이버박물관이 만들어져 집에서도 충분히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www.korea-museum.go.kr 참조)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이 10여년의 대역사 끝에 마침내 지난 10월 28일 문을 열어 12월 16일에는 개관 44일 만에 관람객 100만명을 돌파하는 기록을 수립했다고 한다. 그러나 규모의 거대함과 세련됨에 압도당하면서도 왠지 허전함을 느낀다. 그것은 미국의 대학 도서관보다 책도 적고 내용도 부족한 국립중앙도서관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아직까지도 우리사회가 문화를 보는 관점이 하드웨어도 아니고 케이스에 신경 쓰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건물만 지으면 박물관이라는 생각에 머물러 있다.
지금 세계의 박물관들은 개혁 중이다. 사람들은 단지 구경만하고 싶어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방된 박물관을 지향하고 시민들이 참여하고 표현하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개방은커녕 수집도 제대로 못하는 단계다. 이번에 경부고속철도의 경주구간에서 150여개의 고분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모두들 그냥 무시하고 싶어 한다. 커다란 국립박물관을 지어놓고 그곳에 채울 유물은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엄밀히 말해 경제성 논쟁도 아니다. 적자 고속철이 국가나 지역에 경제성을 보장해 줄 리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예상치도 않게 발견되는 그 유물들이 걸리적거리는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지혜와 에너지 그리고 경제력까지도 가져다 줄 수 있는 보물이라고 단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창수(유라시아분과장)
서구에서 최초의 박물관은 기원전 3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 세워진 뮤제이온(mouseion)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뮤제(muse)라는 신에게 바쳐진 신전인데 기증품이나 상납물 또는 진기한 보물들을 모아 두는 곳이었다. 그래서 뮤지엄(museum) 즉 박물관의 어원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와 공공박물관이 생기기 전까지의 박물관은 왕족이나 부유한 개인의 취미생활에 불과했고 소유에 대한 자기 과시적인 공간일 뿐이었다. 공공박물관은 1759년 대영박물관이 문을 열고 1793년 루브르박물관이 국립으로서는 처음으로 문을 열면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신라시대에 이미 귀비고(貴妃庫)나 안압지 등 희귀물건을 저장하고 전시용 동식물을 기르는 곳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근대적인 의미의 박물관은 대한제국 시절인 1908년 순종이 창경궁 안에 제실박물관(후에 이왕가박물관)과 식물원·동물원을 발족시켰고, 이 박물관에는 삼국시대 이래의 미술품이 수집·전시되었다. 1909년 박물관·식물원·동물원을 일반에 공개한 것이 근대적 박물관의 시작이다. 이것이 바로 창경원이다.
해방 후에는 수많은 국공립 박물관이 생기고 민간 박물관도 많아 졌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많아진 것도 있고, 또 지방자치제가 시작되면서 각 지역이 너도나도 박물관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사이버박물관이 만들어져 집에서도 충분히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www.korea-museum.go.kr 참조)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이 10여년의 대역사 끝에 마침내 지난 10월 28일 문을 열어 12월 16일에는 개관 44일 만에 관람객 100만명을 돌파하는 기록을 수립했다고 한다. 그러나 규모의 거대함과 세련됨에 압도당하면서도 왠지 허전함을 느낀다. 그것은 미국의 대학 도서관보다 책도 적고 내용도 부족한 국립중앙도서관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아직까지도 우리사회가 문화를 보는 관점이 하드웨어도 아니고 케이스에 신경 쓰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건물만 지으면 박물관이라는 생각에 머물러 있다.
지금 세계의 박물관들은 개혁 중이다. 사람들은 단지 구경만하고 싶어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방된 박물관을 지향하고 시민들이 참여하고 표현하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개방은커녕 수집도 제대로 못하는 단계다. 이번에 경부고속철도의 경주구간에서 150여개의 고분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모두들 그냥 무시하고 싶어 한다. 커다란 국립박물관을 지어놓고 그곳에 채울 유물은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엄밀히 말해 경제성 논쟁도 아니다. 적자 고속철이 국가나 지역에 경제성을 보장해 줄 리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예상치도 않게 발견되는 그 유물들이 걸리적거리는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지혜와 에너지 그리고 경제력까지도 가져다 줄 수 있는 보물이라고 단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창수(유라시아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