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국치일(8월 29일)을 전후로 잊혀진 헌정사의 주역을 찾아 나선 걸음이 어느덧 다섯 번째를 맞았다. 코리아글로브의 헌정사기행은 비주류의 이름으로 잊혀졌던 몽양 여운형, 죽산 조봉암, 그리고 장준하 세 분의 거인을 찾아 그 분들의 못다 이룬 꿈을 나누고, 작년부터는 마석 모란공원의 수많은 민주ㆍ노동열사와 진보적 지식인들을 찾아 그 가슴 뜨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장정이었다.
그 분들의 살아 생전에, 그리고 영면하신 이후에 붙여진 수많은 수식과 이야기들을 뒤로 하고 코리아글로브가 얻는 것은 하나였다. 그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민주사회, 산업화를 거쳐 디지털 신화를 이룬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8월 코리아글로브의 선택은 쉽지 않았다. 요즘처럼 갈라진, 흰색 아니면 검은색, 선 아니면 악으로 구분하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십중팔구 오해를 받을 만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네 차례에 걸친 헌정사기행을 통해서 얻는 소중한 결론을 실천하기 위해서 우리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과 마석 모란공원을 같은 날 참배키로 한 것이다.

공동체를 지켜온 민족혼의 성지, 국립현충원
헌정사기행에 나선 코리아글로브 회원들의 마음을 알았을까. 장대비가 쏟아진다던 예보를 비웃듯 한두 차례 지나가는 비를 제외하고는 참배객의 마음만큼이나 무겁게 느껴지는 일기속에서 현충원 참배를 시작되었다.
현충탑 앞에서 16만 5천여 순국선열과 호국영령께 참배한 후 현충탑 지하에 위치한 위패봉안관을 향했다. 위패봉안관은 6.25 당시 전사 사실이 확인되었으나 시신을 찾지 못한 10만 4천여 영령들을 위패로 봉안하였고 지하 납골당에는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7천여 위의 무명용사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
일행의 참배는 의병활동과 독립투쟁을 하신 선열 210분이 모셔진 애국지사묘역과 유해도 후손도 없는 131분의 선열을 모신 무후선열제단, 그리고 임시정부에서 활동하셨던 18분을 모신 임시정부요인묘역로 이어졌다.
그리고 우남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면서 현충원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역사적 평가의 아쉬움만큼이나 두 분 전직 대통령의 묘소를 둘러보는 일행의 마음은 무거웠다. 언제가 이 분들의 공과(功過)가 객관적 사실 자체로 평가되는 날이 오면 훨씬 겸허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올 수 있을 것이다.
어두운 공동체를 밝힌 등불들의 안식처, 모란공원
지난 해에 이어 두 번째로 찾는 모란공원이다. 민주열사추모비 앞에 조촐한 제상을 차리고 KG아카데미 출신의 이지성 회원이 발원문을 읽었다. “좌우를 넘어선 팬코리아의 메모리얼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발원문의 마지막 구절에 코리아글로브의 간절한 다짐이 있음을 먼저 가신 님들은 들으셨을까.
모란공원에서의 참배는 계훈제 선생, 전태일ㆍ박래전ㆍ박영진 열사, 문익환 목사, 문송면ㆍ김경숙ㆍ이덕인ㆍ박종철ㆍ김기설ㆍ김귀정 열사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오전에 참배했던 국립현충원에 비하면 그 규모나 관리가 초라하지만 모란공원은 이 땅의 민주화와 노동, 진보운동의 신화를 만들었고 지금도 그 열망을 이끌어가고 있는 공동체의 성지이자 시대의 등불로 우뚝 서있음을 알 수 있었다.

통합의 메모리얼을 위하여
지역과 세대, 계층과 이념으로 갈라진 것도 모자라 이제는 가슴 아픈 역사도 좌우로 재단하는 못난 후배들의 모습을 먼저 가신 님들은 어떻게 보고 계실까? 생존과 근대화, 민주화와 디지털의 신화를 만들었던, 지금도 우리들 핏줄기 속에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신화의 DNA를 외면하고 공동체의 에너지를 오로지 분열과 대립에 쏟고 있는 오늘의 후배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실까?
간간히 내리는 빗줄기와 늦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행된 5차 헌정사기행은 그런 의미에서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지긋지긋한 소모전이 끝나고 ‘팬코리아 모두의 메모리얼’이 만들어지는 날까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코리아글로브는 그 안내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5차 헌정사기행에 참가한 회원은 강성룡(준구), 김석규(가족), 김정철(가족), 김현인, 박현선, 이제원, 이주원, 조민, 허건 회원과 KG아카데미의 김성훈, 유병모, 윤선정, 이지성 회원, 그리고 김정철 회원의 동생 김현철 씨의 가족들이다.
그 분들의 살아 생전에, 그리고 영면하신 이후에 붙여진 수많은 수식과 이야기들을 뒤로 하고 코리아글로브가 얻는 것은 하나였다. 그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민주사회, 산업화를 거쳐 디지털 신화를 이룬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8월 코리아글로브의 선택은 쉽지 않았다. 요즘처럼 갈라진, 흰색 아니면 검은색, 선 아니면 악으로 구분하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십중팔구 오해를 받을 만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네 차례에 걸친 헌정사기행을 통해서 얻는 소중한 결론을 실천하기 위해서 우리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과 마석 모란공원을 같은 날 참배키로 한 것이다.

공동체를 지켜온 민족혼의 성지, 국립현충원
헌정사기행에 나선 코리아글로브 회원들의 마음을 알았을까. 장대비가 쏟아진다던 예보를 비웃듯 한두 차례 지나가는 비를 제외하고는 참배객의 마음만큼이나 무겁게 느껴지는 일기속에서 현충원 참배를 시작되었다.
현충탑 앞에서 16만 5천여 순국선열과 호국영령께 참배한 후 현충탑 지하에 위치한 위패봉안관을 향했다. 위패봉안관은 6.25 당시 전사 사실이 확인되었으나 시신을 찾지 못한 10만 4천여 영령들을 위패로 봉안하였고 지하 납골당에는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7천여 위의 무명용사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
일행의 참배는 의병활동과 독립투쟁을 하신 선열 210분이 모셔진 애국지사묘역과 유해도 후손도 없는 131분의 선열을 모신 무후선열제단, 그리고 임시정부에서 활동하셨던 18분을 모신 임시정부요인묘역로 이어졌다.
그리고 우남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면서 현충원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역사적 평가의 아쉬움만큼이나 두 분 전직 대통령의 묘소를 둘러보는 일행의 마음은 무거웠다. 언제가 이 분들의 공과(功過)가 객관적 사실 자체로 평가되는 날이 오면 훨씬 겸허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올 수 있을 것이다.
어두운 공동체를 밝힌 등불들의 안식처, 모란공원
지난 해에 이어 두 번째로 찾는 모란공원이다. 민주열사추모비 앞에 조촐한 제상을 차리고 KG아카데미 출신의 이지성 회원이 발원문을 읽었다. “좌우를 넘어선 팬코리아의 메모리얼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발원문의 마지막 구절에 코리아글로브의 간절한 다짐이 있음을 먼저 가신 님들은 들으셨을까.
모란공원에서의 참배는 계훈제 선생, 전태일ㆍ박래전ㆍ박영진 열사, 문익환 목사, 문송면ㆍ김경숙ㆍ이덕인ㆍ박종철ㆍ김기설ㆍ김귀정 열사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오전에 참배했던 국립현충원에 비하면 그 규모나 관리가 초라하지만 모란공원은 이 땅의 민주화와 노동, 진보운동의 신화를 만들었고 지금도 그 열망을 이끌어가고 있는 공동체의 성지이자 시대의 등불로 우뚝 서있음을 알 수 있었다.

통합의 메모리얼을 위하여
지역과 세대, 계층과 이념으로 갈라진 것도 모자라 이제는 가슴 아픈 역사도 좌우로 재단하는 못난 후배들의 모습을 먼저 가신 님들은 어떻게 보고 계실까? 생존과 근대화, 민주화와 디지털의 신화를 만들었던, 지금도 우리들 핏줄기 속에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신화의 DNA를 외면하고 공동체의 에너지를 오로지 분열과 대립에 쏟고 있는 오늘의 후배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실까?
간간히 내리는 빗줄기와 늦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행된 5차 헌정사기행은 그런 의미에서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지긋지긋한 소모전이 끝나고 ‘팬코리아 모두의 메모리얼’이 만들어지는 날까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코리아글로브는 그 안내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5차 헌정사기행에 참가한 회원은 강성룡(준구), 김석규(가족), 김정철(가족), 김현인, 박현선, 이제원, 이주원, 조민, 허건 회원과 KG아카데미의 김성훈, 유병모, 윤선정, 이지성 회원, 그리고 김정철 회원의 동생 김현철 씨의 가족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