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메이는 9월9일 달밤...

by 永樂 posted Sep 11, 2006
오늘 따라 밤이 참으로 밝다.
게다가 복스럽기까지 한 보름달이 우릴 내려다보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한가위가 꼭 한 달이 남았다.

변덕스런 기후에 제법 밤 기온이 싸늘하지만
이런 날 벗과 곡차 한 잔 하지 않는다면 인생에 그 무슨 운치가 있으리.

권커니 잔커니 흥이 높아지던 중 문득 걸려온 전화를 마치고
LCD창에 언뜻 비치는 시각이 9월9일 밤11시...

그 순간...
울컥 목이 메인다.

오늘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건국한 날.
수백만의 뼈를 전장에 묻게 만들고서야 반석에 선, 조선 공화국.
수백만을 숙청하고 학살하고서야 수령의 시대가 열린, 민주주의 공화국.
수백만을 굶겨죽이고서야 새로운 수령의 시대를 열게 된, 인민의 공화국.

오늘이 그 위대한 공화국의 돌잔치란다.
김옥을 옆에 끼고 핵과 미사일로 협박하며
마약 위폐로 생존하는 강성대국의 건국 기념일이란다.

이리 눈이 시리게 밝은 밤,
앞에 놓인 금존미주(金尊美酒) 옥반가효(玉盤佳肴)가 참으로 서럽다.

38선이 무엇이관대,
반만년 이어온 단군의 자손들이 단지 이북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오늘 이 시각 유민(流民)이 되어 온 천지에 유리걸식(流離乞食)하고 있다.

지난 96년 이래 그 참혹한 정경을 우리 모두 10년이 지나도록 목도함에도,
강산이 한 번 바뀐다는 옛말은 허언이 되어, 이북에는 세월조차 흐르잖고 멈춰 서 있다.

1차 북핵사태의 말미에 석연찮게 제 아비가 죽고
일촉즉발의 상황이 제네바합의로 마무리되었을 때,
김정일이 2천3백만 수령의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한 일은
오로지 수만 명을 숙청하고 학살하여 권력기반을 닦은 일밖에 없다.

그 때만 놓치지 않았더라도 수백만의 아사라는 민족사 최악의 참사는 피했을 것이다.

그 모든 죄과를 떠나 이 죄 하나만으로도 ,
민족을 제 몸과 마음이라 믿는 사람이라면 응당 불구대천의 원수로 대할 김정일은,
참으로 운이 좋아 2000년 성급하고 어설픈 기회에 탁월한 연출로 화답하여 기사회생했다.

그러나 그의 기사회생은 이북 동포들에게는 재앙의 재발이었다.
대량아사로 '순진한 사람은 다 죽고 악바리만 살아남았음에도' 견딜 수 없어,
수십 만의 유민들이 대륙을 떠돌며 집시보다 더한 들짐승의 신세가 되었다.

그럼에도 비극은 더욱더 처연하게 이어진다.
그렇게 물이 차오르는 배에서 수많은 승객이 유명을 달리하고 떠나갔음에도 배는 기울고 있다.

10여년 비록 생사를 넘나들어도 언젠가 제 집과 고향은 다시 찾았건만,
이제는 목숨 걸고 다시 돌아온 집과 고향을 마른 눈물 뿌리며 다들 떠나가고 있다.

직장에 나간들 배급은 끊긴 지 오래고 나온다던 월급도 구경조차 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집에 있으면 인민반의 명목으로 인민군과 당에 돈을 뜯기고도
우상화학습과 근로동원에 시달려야 하니 황구첨정(黃口簽丁)과 백골징포(白骨徵布)가
난무하던 갑오년이 그나마 사람이 살 만한 시대가 아니었던가.

이리 되어 결국 10여년 강산은 변했다.
그 때는 나라 안에 굶어죽은 시신이 산야를 메우고
대륙으로 기민(棄民)을 끊임없이 내보냈지만,
지금은 온 세계로 목숨 건 탈출이 끊이지 않고
나라 안은 집과 고향을 버린 유민이 넘쳐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수백 년 전 가렴주구에 시달리던 춘향이는 이몽룡의 출현으로 살아났지만,
춘향이 처지조차 생각할 수도 없는 이북의 동포들은 그 누가 구할 수 있을까.
이몽룡은 변사또 생일상에서 시 한 수로 간담을 서늘하게 했지만,
같은 형제들이 잘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그 뉘라서 변사또 면전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할까.

휘영청 밝은 달을 봐도 그저 목 메이는 밤에 읊어본다.

金尊美酒千人血(금존미주천인혈)
금동이 빛깔 좋은 술은 수천 백성의 피요
玉盤佳肴萬姓膏(옥반가효만성고)
옥소반 맛난 안주는 수만 백성의 살점이라
燭淚落時民淚落(촉루낙시민루락)
촛농이 번져날 때 백성들이 눈물 지으니
歌聲高處怨聲高(가성고처원성고)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한만 켜켜이 쌓이더라



                                                            2006년 9월9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건국 58주년을 경축하며
  • MK 2006.10.04 19:25
    2016년 9월 9일쯤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해체와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민주 복권을 기념하는 진짜 축배를 들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너무 목메이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