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으로 풀어야할 서민 경제

by 최배근 posted Jan 04, 2008
[시론]‘실력’으로 풀어야할 서민 경제
입력: 2008년 01월 03일 18:24:17
경향신문 칼럼

이명박정부의 3대 화두가 ‘경제·서민·기업’이라 하지만 경제활성화와 기업 투자 여건 조성의 성패 역시 서민들이 혜택을 직접 누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방점은 ‘서민’에 있다. 그래서 이명박정부는 ‘실용’과 ‘실천’에 무게중심을 둔다. 대표적 공약이 서민생활비 30% 인하이고, 이를 위해 인수위는 새 정부 출범 전에 휴대폰 요금 20%와 유류세 10% 인하 추진을 발표했다. 휴대폰 요금과 기름값을 내린다는 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 두 사안은 단순한 요금 인하를 넘어 통신산업의 구조 변경, 그리고 경제 시스템 및 국민의 의식 전환에까지 연계돼 있기 때문에 이명박정부의 실력을 검증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휴대폰 요금 인하에 대해 업계의 반발과 관치행정이라는 비판에 직면하여 내부에서부터 제동이 걸리고 있다. 이동통신 요금의 결정은 정보통신부가 지배적 사업자의 요금에 대한 인가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후발사업자를 배려한 부분이 있듯이 한정되고 지배적 사업자가 존재하는 통신산업은 지금까지 정부 규제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휴대폰 요금 인하는 기본적으로 경쟁 활성화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공감대가 있다. 따라서 휴대폰 요금 20%를 포함한 통신비 30% 절감은 규제와 설비기반 중심의 성장 정책에 기반했던 통신산업의 구조를 유효경쟁과 서비스 확대 정책으로 바꾸는 일로서 이와 관련된 이해관계와 난제를 풀어내야 비로소 가능하다.

유류세 인하의 경우 역시 미봉책이지 근본대책은 될 수 없다. 기름값을 낮춰준다면 그 자체로는 반가운 일이지만 유류세 인하로 인한 세수 감소를 벌충하기 위해 다른 세금을 더 내야 하거나 대중교통비가 인상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또한 석유 가격 결정은 정유사에 맡겨져 있는데다 복잡한 유류세제와 가격구조로 인해 가격 결정 과정에 대한 모니터링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 유류세 인하로 국민들이 원하는 수준의 기름값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괜한 걱정이 아니다. 무엇보다 새해 벽두부터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섰고, 이런 고유가 행진이 향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 환경 문제의 중요성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에너지 소비증가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소비는 가장 비효율적인 나라 중 하나인 우리로서는 에너지 사용과 수급에 대한 지속가능성도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따라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경제 시스템을 갖추고 대안 에너지를 개발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국민의식 변화를 유도하는 일들은 시급한 과제다. 유류세 인하로 이들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거리가 있지 않은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사회 전반에 활기와 기대감을 불어넣고 짧은 시간 내에 국민에게 이명박정부의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이를 바탕으로 대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4월 총선에서 승리해 추진력을 확보하려는 인수위의 의욕을 비난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단기적 목표를 장기적 관점에 일치시키지 못하는 경우 이명박정부의 ‘실용’과 ‘실천’은 그들이 노무현정부를 비판할 때 사용하였던 ‘포퓰리즘’이나 ‘아마추어리즘’의 논리와 다를 바 없게 된다는 점이다. 서민생활비 30% 인하 공약의 실천은 의지가 아니라 실력의 문제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