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항우 장군도 민심의 지지를 받지 못해 진나라 멸망 이후 유방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적에 포위돼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항우는 용맹함과 적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으로 공포를 만드는데는 성공했지만 천하의 큰 뜻은 포기해야만 했다.
中國의 역사를 봐도 민심과 인명을 중시한 군주는 오래갔지만 그렇지 못한 군주는 단명했다.
중국 역사 이래 거대한 대륙을 통합한 중국공산당은 덩샤오핑의 현명한 판단과 결단력에 의해 번영을 이루고 있다. 개혁개방으로 체제를 변혁해 경제적 부흥을 이루지 않았다면 중국의 역사는 다시 써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현대 중국 역사는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경제적 기적을 이뤘지만 정치의 민주화는 20년 전이나 별 다른 변화가 없다.
결국 공산당 식 일당독재는 눈부시게 발전하는 중국 대륙을 이끌어 가는데 한계에 도달하게 될 수밖에 없다. 민중의 욕구는 높아지고 빈부의 격차는 날로 심해지는데 공산당 간부들의 부패는 이미 도를 넘은지 오래됐다. 이런 모든 문제는 정치의 민주화를 이뤄내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이런 중국의 경직성은 대외정책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이웃나라에 대한 비인도주의적인 처사로 小國보다 못한 大國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은 나라 스위스도 수십만의 난민을 수용하는데 인구 10억의 넓은 대륙에 탈북자는 공안당국의 인간사냥에 노출된 노예로 전락했다.
폭정에 시달리는 이웃나라인 북한에서 수백만이 굶어죽으면서 목숨 걸고 넘어오는 이웃동네 사람들에게 중국이 지금까지 해온 짓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화민족의 역사에 오점을 남기고도 남을 일이다.
이웃나라였다가 60년간 중국 당국에 강제 점령당해 살아온 티베트에 대한 중국 당국의 대응도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 소위 ‘인민전쟁’이라는 중국 당국의 구호다.
같은 민족이면서 민족을 해방하겠다고 벌인 6.25 전쟁도 ‘민족해방전쟁’으로 북한 당국도 비슷한 구호를 만들어 사용했다.
북한 땅에서 모든 반항은 ‘인민 심판’을 거쳐 반역자로 취급돼 처형되고 있다.
인민을 위한다는 구호는 항상 공산독재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잔악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돼오고 있다.
중국 정부가 전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을 치르고 국제사회에 책임 있는 일원으로 나서기 위해서는 힘에 의한 이웃나라들과의 관계가 아닌 관용과 덕으로 풀어야 한다.
인민을 학살하는 김정일 정권을 배척하고 그 땅에서 목숨 걸고 탈출하는 북한주민들을 중국당국이 따뜻하게 대해준다면 그에 대한 보답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으로 돌아올 것이다.
티베트에 대한 강경한 진압보다 진정으로 티베트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독립을 원한다면 순리대로 따라주는 것이 중국의 영원한 번영과도 직결되는 것이다.
‘인민전쟁’이라는 위선으로 힘에 의거한 통치력이 아닌 관용과 덕을 베푸는 것이 진정한 중국의 위상이라는 사실을 아마 중국의 지식인들도 잘 알 것이다.
항우는 용맹함과 적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으로 공포를 만드는데는 성공했지만 천하의 큰 뜻은 포기해야만 했다.
中國의 역사를 봐도 민심과 인명을 중시한 군주는 오래갔지만 그렇지 못한 군주는 단명했다.
중국 역사 이래 거대한 대륙을 통합한 중국공산당은 덩샤오핑의 현명한 판단과 결단력에 의해 번영을 이루고 있다. 개혁개방으로 체제를 변혁해 경제적 부흥을 이루지 않았다면 중국의 역사는 다시 써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현대 중국 역사는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경제적 기적을 이뤘지만 정치의 민주화는 20년 전이나 별 다른 변화가 없다.
결국 공산당 식 일당독재는 눈부시게 발전하는 중국 대륙을 이끌어 가는데 한계에 도달하게 될 수밖에 없다. 민중의 욕구는 높아지고 빈부의 격차는 날로 심해지는데 공산당 간부들의 부패는 이미 도를 넘은지 오래됐다. 이런 모든 문제는 정치의 민주화를 이뤄내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이런 중국의 경직성은 대외정책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이웃나라에 대한 비인도주의적인 처사로 小國보다 못한 大國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은 나라 스위스도 수십만의 난민을 수용하는데 인구 10억의 넓은 대륙에 탈북자는 공안당국의 인간사냥에 노출된 노예로 전락했다.
폭정에 시달리는 이웃나라인 북한에서 수백만이 굶어죽으면서 목숨 걸고 넘어오는 이웃동네 사람들에게 중국이 지금까지 해온 짓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화민족의 역사에 오점을 남기고도 남을 일이다.
이웃나라였다가 60년간 중국 당국에 강제 점령당해 살아온 티베트에 대한 중국 당국의 대응도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 소위 ‘인민전쟁’이라는 중국 당국의 구호다.
같은 민족이면서 민족을 해방하겠다고 벌인 6.25 전쟁도 ‘민족해방전쟁’으로 북한 당국도 비슷한 구호를 만들어 사용했다.
북한 땅에서 모든 반항은 ‘인민 심판’을 거쳐 반역자로 취급돼 처형되고 있다.
인민을 위한다는 구호는 항상 공산독재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잔악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돼오고 있다.
중국 정부가 전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을 치르고 국제사회에 책임 있는 일원으로 나서기 위해서는 힘에 의한 이웃나라들과의 관계가 아닌 관용과 덕으로 풀어야 한다.
인민을 학살하는 김정일 정권을 배척하고 그 땅에서 목숨 걸고 탈출하는 북한주민들을 중국당국이 따뜻하게 대해준다면 그에 대한 보답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으로 돌아올 것이다.
티베트에 대한 강경한 진압보다 진정으로 티베트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독립을 원한다면 순리대로 따라주는 것이 중국의 영원한 번영과도 직결되는 것이다.
‘인민전쟁’이라는 위선으로 힘에 의거한 통치력이 아닌 관용과 덕을 베푸는 것이 진정한 중국의 위상이라는 사실을 아마 중국의 지식인들도 잘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