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에 여기에 올린 글인데 4월 3일자 경향신문 <시론>으로 실렸기에 신문 칼럼으로 다시 대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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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한국은행이 옳다
입력: 2008년 04월 02일 17:59:10
최근 경험한 것처럼 금융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수장들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은 금융시장을 거칠게 만든다. 요즘 기획재정부는 성장을 위해 금리인하를 꾀하고 환율을 상승시키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반면, 한국은행은 전반적인 물가상승 압력이 확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금리정책 운영이나 환율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기를 바라고 있다. 여기에 청와대는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서인지, 사태 해결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인지 ‘단기적 물가안정, 장기적 경제성장’이라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안정 없는 성장은 ‘사상누각’
그 결과 환율의 하루 변동 폭이 연중 평균의 2배에 이를 정도로 크게 출렁거렸고 피해는 고스란히 시장으로 전가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해외 악재들로 인해 시장 불안이 증폭된 상황에서 외환당국이 리스크를 진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킨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당국의 잦은 개입이다. 이는 정책의 신뢰도를 떨어뜨려 정책 개입이 필요한 경우 자칫 시장이 반응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온다. 시장 혼선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정책 수장들은 ‘친기업’을 외치기 이전에 ‘친시장’하는 법부터 배워야 할 것 같다.
재정부의 수장들이 성장과 경상수지 개선을 위해 환율 상승과 금리 인하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논리는 글로벌화된 한국경제의 현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첫째, 지금처럼 1차 상품가격의 폭등과 재앙이라 부를 정도의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결합된 침체 상황에서 금리 인하가 투자나 소비를 진작시킬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게다가 환율 상승은 기업의 설비투자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일부에서 미국도 물가보다 침체에 방점을 두어 금리 인하로 방향을 바꾼 점을 지적하지만 공적 자금까지 투입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금융 시스템의 근간이 흔들리고, 내수가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미국 경제와 무역액이 국민총소득의 94%를 넘어설 정도로 내수가 취약한 한국경제를 같이 비교할 수는 없다. 한은의 주장대로 금리 인상이 오히려 내수를 억제하고 수입을 감소시킴으로써 경상수지를 개선시킬 가능성이 높다. 둘째, 국제자본의 흐름에 크게 영향을 받는 우리의 경우 흔히 경제학 교과서에서 제시하는 환율 상승과 금리 인하로 경상수지 개선과 수출 증가의 효과를 보기 어렵다. 금리보다 환율 변화에 더 민감한 국제자본에 대한 환율 상승 기대는 주식 및 채권 매도로 이어져 시장 금리 상승의 압력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효과는 무색케 된다. 글로벌화된 경제에서 금리정책은 자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오히려 금리 인하로 인한 통화팽창이 물가상승과 재건축 활성화에 따른 부동산 투기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즉 안정을 해치는 성장 기조는 성장조차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지금은 물가 잡는게 최선책
물론, 금리 인하와 환율 상승에 의해 효과를 보는 경제주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모든 부문에서 양극화가 진행돼 사회통합이 크게 손상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 인하와 환율 상승으로 혜택을 입는 소수 수출대기업을 위해 물가 상승에 따른 고통을 참으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할 수 있겠는가. 생계 위협에 내몰리는 서민의 저항을 법질서 확립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떼법쓰기로 몰아붙일 수 있는가. 지금은 안정 기조로 사회통합을 복원하여 내수와 수출이 균형을 이뤄 성장을 견인하도록 기초를 다질 때다. 정권 초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적은 것을 근심하지 말고 고르지 못한 것을 근심(不患寡而患不均)하라”는 논어의 한 구절이 회자되는 이유다.
〈 최배근 /건국대 교수·경상학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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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한국은행이 옳다
입력: 2008년 04월 02일 17:59:10
최근 경험한 것처럼 금융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수장들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은 금융시장을 거칠게 만든다. 요즘 기획재정부는 성장을 위해 금리인하를 꾀하고 환율을 상승시키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반면, 한국은행은 전반적인 물가상승 압력이 확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금리정책 운영이나 환율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기를 바라고 있다. 여기에 청와대는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서인지, 사태 해결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인지 ‘단기적 물가안정, 장기적 경제성장’이라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안정 없는 성장은 ‘사상누각’
그 결과 환율의 하루 변동 폭이 연중 평균의 2배에 이를 정도로 크게 출렁거렸고 피해는 고스란히 시장으로 전가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해외 악재들로 인해 시장 불안이 증폭된 상황에서 외환당국이 리스크를 진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킨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당국의 잦은 개입이다. 이는 정책의 신뢰도를 떨어뜨려 정책 개입이 필요한 경우 자칫 시장이 반응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온다. 시장 혼선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정책 수장들은 ‘친기업’을 외치기 이전에 ‘친시장’하는 법부터 배워야 할 것 같다.
재정부의 수장들이 성장과 경상수지 개선을 위해 환율 상승과 금리 인하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논리는 글로벌화된 한국경제의 현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첫째, 지금처럼 1차 상품가격의 폭등과 재앙이라 부를 정도의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결합된 침체 상황에서 금리 인하가 투자나 소비를 진작시킬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게다가 환율 상승은 기업의 설비투자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일부에서 미국도 물가보다 침체에 방점을 두어 금리 인하로 방향을 바꾼 점을 지적하지만 공적 자금까지 투입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금융 시스템의 근간이 흔들리고, 내수가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미국 경제와 무역액이 국민총소득의 94%를 넘어설 정도로 내수가 취약한 한국경제를 같이 비교할 수는 없다. 한은의 주장대로 금리 인상이 오히려 내수를 억제하고 수입을 감소시킴으로써 경상수지를 개선시킬 가능성이 높다. 둘째, 국제자본의 흐름에 크게 영향을 받는 우리의 경우 흔히 경제학 교과서에서 제시하는 환율 상승과 금리 인하로 경상수지 개선과 수출 증가의 효과를 보기 어렵다. 금리보다 환율 변화에 더 민감한 국제자본에 대한 환율 상승 기대는 주식 및 채권 매도로 이어져 시장 금리 상승의 압력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효과는 무색케 된다. 글로벌화된 경제에서 금리정책은 자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오히려 금리 인하로 인한 통화팽창이 물가상승과 재건축 활성화에 따른 부동산 투기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즉 안정을 해치는 성장 기조는 성장조차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지금은 물가 잡는게 최선책
물론, 금리 인하와 환율 상승에 의해 효과를 보는 경제주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모든 부문에서 양극화가 진행돼 사회통합이 크게 손상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 인하와 환율 상승으로 혜택을 입는 소수 수출대기업을 위해 물가 상승에 따른 고통을 참으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할 수 있겠는가. 생계 위협에 내몰리는 서민의 저항을 법질서 확립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떼법쓰기로 몰아붙일 수 있는가. 지금은 안정 기조로 사회통합을 복원하여 내수와 수출이 균형을 이뤄 성장을 견인하도록 기초를 다질 때다. 정권 초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적은 것을 근심하지 말고 고르지 못한 것을 근심(不患寡而患不均)하라”는 논어의 한 구절이 회자되는 이유다.
〈 최배근 /건국대 교수·경상학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