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에 올라선 박근혜

by 永樂 posted Apr 10, 2008
시험대에 올라선 박근혜

                                                       080409 / 김석규 코리아글로브 운영위원


말 많고 탈 많았던 18대 총선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이번 총선의 주연은 누구였을까. 한나라당 아니면 민주당? 둘 다 아니다. 명계남(공천에서 이명박 계보만 살아남았다는 비아냥) 한나라당은 과반에 턱걸이했지만 실은 패배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독자 개헌선 2백의 의석을 내심 기대했던 그들이 아닌가. 혹시나 했던 민주당은 넉 달 전의 악몽(우리는 도로 열린당이 아니다 인정받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여전히 유권자의 냉대를 이겨내지 못했다. 신임대통령과 여당의 지지도가 내내 춤을 추었건만 민주당의 지지도는 대못을 박은 양 꿈쩍을 않았다.

18대 총선의 주역, 박근혜

‘살아서 돌아오라’는 단 한마디에 매달렸던 박근혜의 사람들은 대부분 생환했다. 하나의 대오도 아닌 한나라당 후보, 친박연대 후보, 선진당 후보, 무소속 후보 이렇게 네 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생존가능성이 대체로 희박해지는 單騎匹馬의 백병전을 벌였음에도 말이다. 외려 박근혜는 본인 지역구에만 머물렀음에도 朴風은 대구는 물론 부산과 경상도 전역 그리고 이회창이 대리한 충청도를 넘어 인천과 경기까지 강타했다. 강창희와 차 한 잔 하러갔을 때 소속을 불문하고 몰려온 후보들을 보라. 서울조차도 소리 소문 없이 박풍은 번졌다. 그 결과가 정당지지도 3위의 성적표다.

강기갑의 패러디. “나도 놀라고 국민들도 놀랐다”고 한 말은 박근혜의 “나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는 말을 그대로 빼어 닮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인정하기는 싫겠지만) 강기갑의 辛勝은 박풍을 빼고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두 거물인 손학규와 정동영이 서울에서 맥없이 나가떨어지는 판에 어떻게 문국현과 강기갑은 연고도 없는 은평에서, 한나라당 텃밭 사천에서 이길 수 있었을까. 이는 문국현의 승리도 강기갑의 승리도 아니다. 이재오와 이방호를 좋잖게 보는 유권자들의 표심이 그 대리인으로 문국현과 강기갑을 선택했을 뿐이다. 운 좋은 그들에 반해 명계남 공천파동과 무관한 박진과 정몽준을 만난 손학규와 정동영은 참으로 불운한 이들일 뿐이다. (물론 잔꾀를 쓴 정동영은 자업자득이지만)

때 이른 레임덕의 그림자

46% 최악의 투표율은 무엇을 말하는가. 취임한 지 달포 밖에 아니 된 이명박 정부에게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대선 때 이명박의 지지자들은 골수 한나라당 지지자들보다 평소의 부동층과 16대 대선 때 노무현에 환호했던 이들 일부, 그들의 수가 훨씬 더 많았다. 그 때문에 530만 표 차이라는 헌정사의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 대다수가 투표불참이라는 저항을 선택했다. 그리고 투표한 지지자들조차도 박근혜가 한나라당에 있음에도 친박연대에 한나라당 정당 지지율의 35%에 해당하는 지지를 보냈다. 이를 입증하듯 이번 총선에서 60%대 이상의 높은 투표율을 보인 대다수 선거구가 박풍이 휩쓴 경상도 지역이었다.

하기야 뿌리가 같은 범여권을 모으면 2백 석이 넘기는 넘었다. 한나라당 153석에 선진당 19석과 친박연대 14석을 더하고 무소속 25석의 대다수를 모으면 말이다. 그런데 청와대의 기대와는 달리 이미 그 주도권은 박근혜에게 가 있다. 朴세력은 친박연대와 무소속만으로도 교섭단체 구성이 얼마든지 가능하고 (이회창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 영향권의 선진당과 한나라당내 세력까지 포함하면 제1 야당인 민주당 의석수에 근접한다. 다시 말해 유권자들에게 버림받았고 한동안 재기가 매우 힘들 민주당 말고 실제 이명박 정권의 제1야당은 박근혜세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작 중요한 점은 한나라당 153석 중 박근혜계라 불리는 이들을 뺀 120여 석조차도 이명박 입장에서는 이제 친위부대라 믿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4년 전 탄핵의 폭풍우 속에서 국회로 들어온 대다수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어떻게든 박근혜의 은덕을 입었다. 그러나 그들 중 대다수는 지난 대선 경선에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박근혜와 갈라섰다. 그 때만 하더라도 그들은 다시는 2004년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18대 총선에서는 지원유세는커녕 지역구에 눌러앉은 박근혜의 그림자만으로도 적잖은 이들의 생사가 엇갈리고 비례대표 당선권이 정해졌다. 이제 한나라당의 120여 국회의원들에게 박근혜는 외경의 대상이거나 가슴 속 깊이 자리 잡은 공포의 대상이다. 이를 취임 달포 만에 지지율을 다 까먹은 이명박이 무슨 수로 뒤집을 수 있을까.

게다가 이명박의 측근들이 대거 탈락했다. 하필이면 이명박의 측근 중 그나마 정치를 아는 현역의원 출신들은 대거 떨어지고 서울시 출신의 인물들만 대다수 당선되었다. 그 전에 산전수전 다 겪은 원로그룹들까지 공천과정에서 형님만 빼고 다 뒷방 신세로 만들어버렸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미안한 말이지만, 정치9단은커녕 정치3단도 되지 않는다고 지지자들부터 외면한 이명박에게 앞날이 험난하다는 것이다. 도대체 누구의 도움을 받아 ‘통합의 정치’를 펼칠 것인가. 아니 그도 한가한 이야기다. 무엇보다도 不俱戴天의 사이가 되어버린 정적들의 틈새에서 무슨 수로 ‘생존의 정치’를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인가. 친박연대는 “그들이 무릎 꿇고 복당과 협조를 빌 날이 올 것”이라 예언했다. 이명박이 自招한, 때 이른 레임덕이 눈에 선하다.

박근혜, 김대중을 넘어설 수 있을까

87體制라 부르는 민주화세력의 주도권이 관철되었던 지난 20년 동안에도 민주화세력과 인연이 있는 세 대통령 중 독자세력만으로 집권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들 볼 멘 소리를 하겠지만, 김영삼은 거대보수정당 민자당의 등을 업었고 김대중은 이인제와 함께 IMF라는 勿失好機의 행운을 만났으며 노무현은 정몽준 덕에 당선된 측면이 크다. 그만큼 거부(Veto)세력의 존재는 컸다. 그리 보면 박근혜는 김대중과 많이 닮았다. 경상도에서 김대중을 싫어하는 만큼 민주화세력 출신 중에서는 박근혜에게 강한 거부정서를 지닌 이들이 많다. 심지어 경선 때 이명박에게 줄 선 이들 중에서도 민주화세력 출신들이 많을 정도로 그는 박근혜 스스로 천륜이라 괴로워했던, 거부할 수 없는 업보였다.

그러나 이제 박근혜는 그 강력한 거부정서와 거부세력을 어떻게든 넘어서야 한다. 그는 더 이상 이회창이 만만하게 봤던 2000년의 박근혜도 아니고 한나라당 대신에 매 맞는 2004년의 박근혜도 아니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로 선거판 전체를 뒤흔들고 총선결과까지 뒤바꾸어버린 최고의 정치실력자이자 범여권의 최대 주주로서, 때로는 청와대를 견제하고 때로는 당분간 역할을 못 할 야당을 대신해 제1야당의 역할까지 맡게 될 가장 유력한 차기주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 지금은 박근혜 정치인생에 최대의 고비다. 이토록 엄청난 국민의 지지에도 그에게는 아직도 따라붙는 우려가 매우 크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국정운영능력이다. 그 선친인 박정희 때로부터 30여년 내공을 쌓은 양김 씨나 80년대 민주화세력의 막강한 지원을 업은 노무현과 달리 그를 따르는 세력은 이렇다 내세울 정체성이 없다. 오죽했으면 친박연대라 작명을 다 했을까. 그런데 한나라당 안팎에 걸쳐있는 그 지지세력을 어떻게 공론의 집단으로 엮어내어 경제살리기든 교육혁명이든 온 국민이 바라는 숙원 해결에 역할을 하고 실적을 쌓을 것인가. 더 이상 야당 지도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명박 정부가 하는 일을 속 편하게 지켜만 봐도 되는 시절은 다 지나가버렸는데 말이다.

만약 평양에 급변사태가 벌어지면 어떻게 이북 동포의 생명을 구하고 헌법상의 영토를 4강과의 마찰 없이 수복할 것인가. 나아가 해양세력은 물론 대륙세력까지 망라해서 어떻게 대한민국의 글로벌 생존전략을 세우고 그 실행계획을 마련할 것이며 누구를 그 동반자로 삼을 것인가. 과묵한 그가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지 않더라도 최소한 그를 따르는 집단이 私黨이 아니라면 그 전망과 철학 하에 재구성이 되어야 비로소 그는 만년 구원투수가 아닌 국가지도자의 반열에 제 스스로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위기관리와 창업은 본질에서 다르다. 새로이 시험대에 올라선 박근혜의 도전을 국민들은 이전과는 달리 매우 냉정하게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