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요리집 이야기

by 永樂 posted Jun 25, 2008
어느 청요리집 이야기다...

동네에 유서 깊은 청요리집이 하나 있다.
그 청요리집을 세운 사람은 입지전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흉악하기로 소문난 조직폭력배들에게 가산을 다 뺏기고서도
다시 가게를 일으켜세운 뒤로는 동네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단골들도 꽤나 많았고 아무튼 동네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 그 청요리집은 변신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까닭은 소비층의 변화 때문이다. 반세기 동안 호황을 구가하던 가게가
어느덧 옛 단골은 불귀의 객이 되고 입맛이 바뀐 젊은사람은 찾지 않는데다가
웰빙바람까지 불면서 10여년 전에는 존폐의 기로에까지 몰리기도 했다.

게다가 그 무렵 가게를 이끌던 젊은사장은 손이 커서
무턱대고 대출을 받고 가게확장에 무리하다가 덜컥 부도 직전에 몰렸다.
간신히 몇몇 단골의 도움을 받아 그 청요리집은 팔자에 없는 주식회사로
변신하면서 겨우 소생할 수 있었다. 그 뒤로 그 곳 사장은 수시로 바뀌었는데
작년까지 근무한 전임 사장은 무척 떠들썩하고 말이 많았다.

차분하게 장사를 할 사람은 애초 아니었고 늘 화제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 화려한 언변에 기대를 걸었던 투자자들은 크게 실망했다.
하필이면 그 무렵 너다섯 해 동안 外食 경기가 꽤나 좋아서
주변의 다른 식당들은 거저 돈 번다는 소문까지 돌던 때였다.
결국 전임 사장은 물러나고 올 초 새 사장이 들어섰다.

새 사장에 대한 투자자들과 단골들의 기대는 무척 컸다.
산전수전 다 겪어본 사람인 데다가 근처에서 구멍가게를 할 때
변변찮은 가게를 명소로 둔갑시킨 실적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모처럼 찾아본 가게의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기세좋게 출발했던 새 사장은 넋이 나간듯 줄담배만 피고 있었고
손님이 끊긴 가게 정문 앞에서 동네 사람들의 항의가 만만찮았다.
풀 죽은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사연인즉슨 이랬다.

"원래 말주변 없던 사장님이 너무 큰소리를 쳤어요.
글쎄 동네 사람들에게 최고의 청요리를 제공하겠다고 했답니다.
심지어 만한전석이 나올 거라는 풍문까지 돌았는데...
막상 신장개업일을 앞두고 몰려든 동네주민들에게 그건 불가능했어요."

"전임 사장이 죽을 쒀놔서 주방장도 달아난 데다가
막상 새 사장님이 청요리를 그렇게 깊이있게 알지 못하더라고요.
새 주방장과 보조들도 우왕좌왕 헤매기만 하고
게다가 식재료 값이 좀 올았어요. 그리 비싼 걸
그 많은 주민들에게 어떻게 다 드려요."

"결국 사장님은 주민들께 사과 드렸어요.
'죄송합니다. 최고의 청요리는 다음에... 대신에 짜장면으로...'
항의가 많았죠. 그래도 동네 어르신들이 "한번 믿어보자"
이렇게 타일러서 주민들이 짜장면이 나오길 기다렸어요."

"그런데 문제는... 짜장면이 너무 늦게 나온 겁니다.
주민들은 한 시간 넘게 엽차만 들이키고 있었고...
자연스레 모인 주민들 사이에서 온갖 이야기가 나돌았어요.
"차라리 전임 사장이 낫다. 이기 뭐하는 짓이고."
"맞다 맞다. 집에 가서 라면이나 끓여묵자 고마"
그래도 대다수 주민들은 기다려온 시간이 아까워 죽치고 있었는데..."

"결국 폭발했습니다.
두 시간을 기다려 나온 짜장면이 --;; 불어터져 있었던 겁니다.
단무지는 말라비틀어져 있었고..."

"찻잔이 날라가고 고성이 빗발치는데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새끼가 이리 만들었어. 내가 손목이 없어도 이보다 더 잘 만들겠다"
"만든 놈 이리 나오라 그래. 당장 못 나와"
그런데... 주방장도 보조들도 다 도망갔어요.
결국 사장님만... ㅜㅜ_ㅜㅜ 몰매를 맞았어요... (-_+)"

압권은 그 뒤였다.
새 사장은 사과문을 내걸고 동네주민들에게 위로금을 돌렸다 한다.
무리를 해서 청요리집에 내려오던 자산을 팔기까지 했다는데...
문제는 주민들이 많아서 결국 받은 것은 껌값이라는 거다.
주방장 실력이 없으니 차라리 그 돈으로 실력 있는 주방장 영입해라,
그 돈이면 동네 경로당 하나 짓겠다 말이 많았지만
새 사장은 제 소신대로 껌값을 돌렸고 그 뒤로 동네 사람들은 더 냉담해졌다.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아서
가슴이 아프다...



* 덧붙임

원래 중국집 중화요리 이런 말은 없었다. 청요리집이지...
반도사관에 사로잡혀 멀쩡한 후고구려 발해 놔두고 통일신라 얘기하는 것처럼
만한전석 이래 고구려인과 신라인의 복합후손 만주인 입맛대로 바뀌어버린
청요리를 두고 한족의 음식 중화요리 중국집 이리 말하는 것은 어폐가 심히 크다.
(물론 오늘 차이나 현지의 음식은 당연히 그렇겠지만...)
특히 코리아에 들어와 더더욱 코리아 음식이 되어버린 짜장면을 위시한
익숙한 음식들은 죄다 청요리임을 명심하라.
그건 그렇고...

쫓겨난 전임 사장은 고향 내려가서 새로 청요리집을 열어서
장사 잘 하고 있다 한다. 그런데 그 전 고객장부를 죄다 들고 튀었다지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