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개정 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

by 박원길 posted Dec 15, 2008
박원길 - 역사교과서와 이념 논란

역사학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인식하고 또 그 바탕에서 미래의 비전을 가지게 만드는 역할을 제공하는 학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민족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들은 그 민족의 비전과 의식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특히 근대국가에 들어와 국민교육을 위해 만든 역사교과서는 그 필요성과 중요성이 민족의 미래를 좌우할 만큼 매우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역사교과서는 학문과 달리 교육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그 시대의 이념에 맞는 방향으로 집필되고 또 관리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교과서에 특정한 역사이념이 들어갈 경우 20세기 후반의 역사학자인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의 경고처럼 역사학이 폭탄공장으로 변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 세대에게 사회공동체의 합의와 공유를 이끌어 내지 못한 왜곡된 역사이념을 교육이란 이름으로 강요할 경우 그 파장은 상상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역사교육의 무서움이다. 구성원 간의 분열과 증오, 주변 민족과의 갈등을 야기하는 역사교육은 역사를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악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 이러한 우려가 최근 우리나라에서 뜨거운 이슈로 등장했다. 그것이 바로 한국 근현대사에 관련된 좌편향 교과서 논쟁이다. 그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시장점유율이 50%가 넘고 또 소위 진보적 성향의 역사학자들이 집필자로 참가한 금성출판사 역사교과서이다. 이 교과서에는 "일장기가 걸려 있던 자리에 펄럭이는 것은 이제 성조기였다. 광복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역사적 순간은 자주 독립을 위한 시련의 출발점이기도 했다."라는 역사기술이 실려 있다. 이 같은 기술은 사실과 의견을 철저히 구분하는 역사학에서는 사용불가의 금기어이다.

감수성이 강한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역사교육은 세계 역사의 흐름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그 흐름 안에서 그 시대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판단을 주는 데 주안점이 두어져야 한다. 사고정지(思考停止)나 사고후퇴를 가져오는 역사관으로는 나라의 미래에 희망이 없다. 역사학자는 역사적 사실을 책임져야 하며, 역사를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악용하는 일을 비판할 책임도 있다. 따라서 일각에서 이러한 역사관에 반발을 나타내는 것도 당연하다.

필자는 이러한 역사논쟁이 전 국민의 주목을 끌며 전개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논쟁은 이후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역사관이 무엇인지 정립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오늘날의 동서양의 역사흐름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사교과서는 시대의 역사흐름을 담아야 한다

근대 민족국가의 출현 이전 등장했던 세계 제국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기보존의 논리보다 공존이라는 개방의 논리를 추구했다. 즉 다민족 사회의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이 조화와 융합의 사상이라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문화에는 우열이 없으며 다만 다를 뿐이라는 것, 내가 살기 위하여 네가 죽어야 한다는 배타적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어떤 문화든 그 나름의 논리와 까닭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근대 민족국가의 건설과 함께 시대의 역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배타적이고 편협한 민족주의적 역사관들이 세계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순혈적 민족주의 역사관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시대이념은 강한 민족에게는 제국주의, 약한 민족에게는 민족해방운동 논리로 자리 잡아 한 시대를 풍미했다. 억압과 저항으로 대표되는 이 시대이념은 어느 특정 민족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판단기준이 절대적이 아니라는 교훈을 남기며 막을 내렸다.

최근의 동서양 역사학계의 연구흐름은 다원주의적 역사관을 반영하고 있다. 즉 한쪽의 논리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역사를 동등한 위치에 두고 바라보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지구촌 시대를 맞아 조화와 융합의 사상이 새로운 시대이념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이로 인해 최근의 학문논저나 역사교과서들은 편향되지 않고 균형을 갖춘 내용의 역사기술을 선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과는 반대로 현재 우리나라 주변에서는 동북공정이나 황국사관 등 심히 우려를 낳는 역사관들이 등장하고 있다. 역사가 주변을 왜곡하고 얕잡아 보는 기술을 하면 안 된다. 시대흐름에 어긋난 역사기술은 주변민족은 물론 내부 구성원 모두에게 고통만을 가중시킬 뿐이다. 어울려 살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지구촌 식구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것과 같다.

개정될 역사교과서는 개방적인 시각이 강조되어야 한다

교류와 무역을 통해 망한 나라는 없다는 역사교훈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역사를 되돌아보면 무엇이 보일까. 우리 역사에서 고구려나 백제, 신라, 발해, 고려시대까지는 비교적 개방적 민족주의를 가지고 주변과 교류를 하고 있음이 나타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주자학이라는 사상적 외통수에 빠져 소중화를 자처하며 교류를 거부하는 시대가 등장했다. 이념존중의 역사가 한쪽으로 치우치면 주변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그 시대의 대가를 외부세력의 개방 압력을 통해 혹독히 치렀다. 그리고 그 유산이 지금까지 남아 역사교과서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래의 가치를 정립하기 위해 논쟁은 많을수록 좋은 법이다. 땅이 좁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 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보는 눈이다. 그 눈을 키워주기 위한 것이 바로 역사교과서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역사교과서 중 근현대사라는 일부분만 가지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세계를 멀리 바라보는 시각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느 특정시대가 아닌 지나온 전 과정을 균형 있게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후 개정되는 역사교과서는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집필되어야 할 것이다. 또 집필방향이나 기술도 지금보다 개방적인 시각이 강조돼야 한다. 그래야만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 세대가 객관적이고 공정하며 관용적인 태도로 주변역사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박원길 (칭기스칸연구센터 소장) ; 이 글은 미래전략연구원 '이슈와대안' 12월 4일자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