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글> 故노무현대통령 서거1주기 토론회

by 永樂 posted May 27, 2010
어제(2010년 5월26일) 저녁 조계사 국제회의장에서
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1주기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주최는 "서로-함께 시민마당" http://blog.daum.net/siminmadang_to/ 인데
대표가 코리아글로브 창립인사인 윤여진 회원입니다.

선거가 코앞인 데다가 안타깝게도 안보위기가 정치쟁점이 되는 판국이라
재삼 고사했지만 이왕재 이사와 윤여진 회원의 거듭 된 요청에
어쩔 수 없이 토론자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이왕 참가한 바에,
고인을 추모함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 爲政의 평가가 일방통행이 되면
곤란하겠기에 쓴소리를 하기로 사전 담합하고 그래도 염려가 되어
윤여진 대표께 미리 사전검열 ^^ 까지 받고 형식은 토론이지만
내용은 발표나 진배 없는 글을 토론장에서 내지르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참가자들의 배포가 컸습니다.
듣기 곤혹스러울 수도 있을 텐데 발언의 핵심을 포용하려는 충심에
저도 한 수 배우고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막판에는 너무 분위기가 좋아져
결국 또 새벽 이슬 밟게 되었지만... --;;

발표자는 조기숙 교수(전 청와대 홍보수석) 김대호 소장(사회디자인 연구소)
김윤길 운영위원(서로-함께 시민마당) 세 분이었고
토론자는 윤남진 소장(NGO리서치)과 저였습니다.

조교수는 촛불시위를 분석하며 철 지난 운동권 배후설이 아니라
개인주의와 탈물질주의의 정체성을 지닌 새로운 시민이 등장한
역사의 마당으로 봐야 된다는 분석하였으며
그로 인해 보편복지를 주장하는 운동권은 외려 그 마당에서
시민주권을 내세운 이들에 의해 들러리가 되었다 하였습니다.

그 무렵 기륭전자나 용산사태에는 막상 무관심하면서도
개인의 먹거리 문제에 그토록 집착했던 것을 보나,
친노세력의 부활까지 점치는 마당에 막상 정통을 자처하는
민노당-진보신당은 소수정파로 지리멸렬하는 것을 볼 때
나름대로 그 분석은 설득력을 가졌다 봅니다.

김소장은 조교수가 지적한 "먹고살 만하나 견디지는 못하는 사람들" 말고
실제 생존의 벼랑에 서있는 이들을 누가 어떻게 살릴 것인가
숙제를 냈습니다. 정치는 물론 노동에서도 소외되어 있는
영세자영업자와 실직자들 그리고 그와 진배없는 이들이
천만이 훌쩍 넘는데 이를 가슴에 담고 몸부림치지 않으면
그는 혁신도 아니고 좌우를 막론하고 진보도 아니라 일갈하였습니다.

어쨌거나 그 날 가장 튀었던 제 글을 아래에 전재하니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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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26 노무현 대통령 1주기 토론회 토론자용 글 / 永樂

말씀 잘 들었습니다. 꽤 무거운 자리인데 저 같은 문외한을 불러주셔서 고맙습니다.
토론자 참가요청을 받고 많이 망설였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궁싯거리다 보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있는 (사)코리아글로브는 칸막이와 편 가름이 없는 지구촌 사랑방을 꿈꾸는, 작은 역사공동체입니다. 그러다보니 좌우를 막론한 각계인사들과 늘 만나게 되는데 어느 순간 심각한 온도차를 느꼈습니다. 다들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거나 또는 벗겨지거나 아랫배가 원만히 나오고 간혹 나오는 여성들은 아줌마 티가 완연한데 그럼에도 별 다를 바 없는 외모와는 달리 그 마음자리가 머무는 곳은 확연히 다릅디다.

한 쪽은 저 지옥에 묻혀있는 동포를 어찌 구할까 노심초사하고 그와 관련된 북경이나 워싱턴의 움직임에 일희일비하는데 반해 한 쪽은 왜 이 정부가 시민사회를 이토록 옥죄이는지 법치를 빌미로 얼어붙은 윗목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게 아닌지 언짢아합니다. 한 쪽은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이룬 성취가 평가절하 되는 것에 관해 분노하고 또 한 쪽은 여전히 대한민국은 부조리와 편법이 횡행해서 사람 사는 세상이 되기는 멀었다고 절규합니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당연히 코리아글로브와 무관한 사견입니다.)
저는 이토록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시간대에 살지만 전혀 다른 우선순위를 갖고 있는 인재들 간에 쌓인 반목을 풀기를 바랐습니다. 제 우선순위에 관한 집착을 버리면 다 절실하고 반드시 풀어야 할 공동체의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마침 시운도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두 번의 대선 패배로 한나라당도 무기력해져 있었고 게다가 세계는 본격 호황의 국면이었습니다. 햇볕정책으로 지나치게 기울었던 안보의 우려를 해소하고 신성장동력 육성에 매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사회 구석구석의 부조리를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성과물을 만들어 브라질의 룰라 못지않은 사회통합의 바탕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러나 전임 대통령 시절은 안타깝게도 룰라보다 에스트라다의 등장 초기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가장 큰 권력인 대통령께서 늘 갈등의 전면에 등장하셨고 그 갈등의 대다수는 민생과 직결되지 않는 큰 범주의 이야기였습니다. 세간에 나돈 얘기 중 하나는 이렇습니다. 오랜 여행을 마치고 들어온 엄마가 자식들 배고프다고 우는데 밥 줄 생각은 않고 집안 청소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아냥입니다. 물론 쥐가 나올 것 같은 집구석에서 어떻게 자식들 밥을 먹이냐는 엄마의 항변도 옳습니다. 그러나 일단 밥부터 먹이고 나면 자식들도 알아서 청소를 거들 것입니다. 그러나 끝내 엄마는 자식들 억지로 참게 만들고 혼자서 너무나 힘들고 고집스럽게 청소를 해나갔답니다.

환란의 충격 이후 대한민국은 너나 할 것 없이 멍들고 가슴앓이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 무렵은 공동체를 따뜻이 품어 안는 엄마 같은 지도자의 역할이 절실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리 급해서 취임연설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늘 초조하고 강퍅하게 지냈는지 돌이켜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또 하나 중요한 초점은 이념을 초월하는 안보입니다. 전대미문의 국가테러집단과 마주 한 대한민국, 국가 차원의 동북공정으로 코리아의 뿌리마저 내놓고 부정하는 욱일승천의 차이나를 염두에 둔다면, 한미동맹의 근간을 허물어뜨리는 자주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시도였습니다. 그 때문에 고심 끝에 FTA 결단을 내렸음에도 빛이 적잖게 바랬던 것이 아닙니까. 안보는 국가사회가 지닌 역량의 총체입니다. 수백만 동포를 굶겨죽이고 2천만을 개인의 노예로 만든 김정일 하나 손보지 못하면서 동아시아 질서의 축이 되겠다는 수사는 허황의 극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 와중에 수구우파는 물론 수구좌파까지 바꾸려는 전방위 개혁을 시도하셨습니다. 수단까지 가서 기자들 모아놓고 “대한민국 선생님들 문제 많다.” 말씀에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도대체 이 분께서 무슨 배짱으로 이 모든 걸 감당하려 하시나 듣는 입장에서도 숨이 찼습니다. 세상이 충정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정치란 상대가 있는 경기인데 매번 사생결단으로 붙고 그나마 주변의 모두를 적으로 만드니 천하장사라도 이겨낼 재간이 없습니다.

이 대목 가서는 슬슬 시중에서 환멸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충정에 관한 응원은 점차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느낌을 주는 계몽주의자에 대한 반감으로, 격투기 팬도 아닌데 늘 강대강으로 전방위로 몰아가는 격한 경기에 지쳐 갔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바입니다. 현 정부의 등장보다 실은 더 참혹한 재보선 40:0의 성적이 그것입니다.

퇴임 이후도 그리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지금 여권의 두나라당 되어있는 까닭을 다들 아시듯이 안타깝지만 아직 한국정치는 퇴임 이후 어느 정도는 치도곤을 당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당대를 풍미한 전방위 개혁의 주자들이 설마 그 정도도 각오하지 못한 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데 퇴임 직후부터 청와대 국가기록물 관련 대립부터 시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끝내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그 분의 고통을 저 같은 필부가 어찌 짐작이나 하겠습니까만 그래도 그 분은 전직 국가원수로서 대한민국의 얼굴입니다. 차라리 힘드시면 옥스퍼드 다녀오신 전직 대통령처럼 하셔도 될 것을, 너무 큰 비극을 낳고 말았습니다.

어쨌거나 한때 폐족까지 운위했던 그 분의 동지들께서 지금은 부활하셨습니다. 외람되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분의 유지를 잇기 이전에 그 분의 실패에서 다시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태종의 역할을 자처했던 시대인식은 너무 과했습니다. 정암 조광조처럼 잠시 등용되었던 것뿐인데 일조일석에 조선을 다 바꾸려 했다가 사화를 거듭 겪지 않았습니까. 선조 대에 비로소 조선을 장악한 사림은 길게는 150여 년을 절치부심만 한 게 아니라 실제 향촌사회와 지식인집단을 바꾸어나가면서 제 실력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정암 조광조를 보지 마시고 사림 전체를 보셨으면 합니다.

늘 한국사회의 천민성에 괴로워하고 길게는 조선조 노론 이래의 문제까지 파헤치며 넓게는 세계 전체의 숙제까지 고민하는 집단이라면 일조일석에 무얼 이루겠다는 조급증을 내려놓는 것이 대업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또 그 길만이 진임 대통령을 그저 풍운아가 아니라 정암 조광조처럼 청사에 아름다이 새기는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뜻 깊은 자리에 분위기 맞추지 못하고 오로지 껄끄러운 이야기만 쏟아놓은 협량함을 너그러이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