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분함의 끝, 쇼핑폭동
남의 일이 아니다.
데모도 아니고 혁명은 더더군다나 아니다.
그저 할 일이 없어 도시를 제멋대로 쑤셔놓은 발작이다.
지옥보다 더 무서운 곳이 따분한 천국이라 했다.
어른들도 감당 못할 그 따분함을 아이들이 어찌하랴.
사람을 제대로 모르는 이념가들이
교육현장을 농단하고 기어이 미래의 꿈나무들을
어찌 망쳐놓을지 참으로 걱정이 크다.
아이들은 훈육의 대상이다.
그리고 최고의 복지는 일거리다.
먹고살 걱정이 사라질 때에도 일거리가 없다면,
결코 대다수 어른들은 공공선이나 수양에 빠져들지 않는다.
사람의 머리는 하늘로 치솟았지만
발은 땅을 딛고 있음을 늘 잊어서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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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 992호 (2011.08.24) [26]
[BRITAIN RIOTS] 십대의 ‘쇼핑 폭동’
영국 청소년들, 방학 중 클럽 폐쇄되고 일자리 없어지자
허무주의에 사로잡혀 폭력적 발작 일으켰다
‘A Violent Convulsion of Kids on Holiday From High School’
SIÔN SIMON
영국에는 화려한 모자이크 장식이나 멋진 첨탑이 있는 이슬람 사원이 거의 없다. ‘무에진’이 하루 다섯 번 큰 소리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정식 사원이 아니라 근로계층 무슬림이 사는 집의 뒷방이나 2층 공간을 개조한 기도소가 대부분이다. 지난 8월 10일 수요일 버밍엄(런던에서 북서쪽으로 약 160km 떨어진 잉글랜드 중부 웨스트 미들랜즈주의 주도) 핸즈워스의 한 기도소를 찾았다. 거기서 내가 깔고 앉은 카펫은 이슬람 문양으로 짜였지만 너무 낡아 올이 드러날 정도였다.
그곳에 20명의 남자가 모였다. 모두 맨발로 가슴 앞에 손바닥을 위로 한 채 그 전날 밤의 ‘폭동’에서 희생된 두 형제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올렸다. 그들의 아버지가 비통함을 못 이겨 쓰러지자 사람들이 데리고 나갔다. 그를 대신해 고인들의 삼촌이 기도를 이끌었다.
기도 사이 사이에 남자들은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진지하게 받고 나지막이 대화를 나누거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살아남은 한 형제는 울먹이며 주변을 서성거렸다. 밖에는 젊은 카슈미르인 남자들이 몰려 들었다. 전통 복장을 한 사람도 있고 양복 정장을 입은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미국식 힙합 복장이었다.
그로부터 14시간 전인 새벽 1시, 두 형제는 다른 한 남자와 함께 다민족 거주지인 버밍엄 윈슨 그린에서 ‘동네를 보호하려고’ 나섰다. 그 전날 밤 도심과 인근 소호로에서 가게들이 약탈당했다. 사자드, 하룬, 압둘은 다음 날 밤에는 분명히 자신들의 동네로 약탈이 번지리라 판단하고 동네를 지키는 자경단에 합류했다. 혼돈의 와중에 약탈자로 의심되는 한 남자가 차를 타고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세 명 모두 즉사했다. 차를 몬 32세의 남자는 곧바로 살인 혐의로 체포됐다.
버밍엄은 나의 도시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난 이 도시를 사랑한다. 9년 동안 버밍엄 어딩턴 구역을 대표하는 하원의원으로 일했다. 그러다가 버밍엄 최초의 직선제 시장선거에 출마하려고 지난해 의원직을 사퇴했다. 난동에 휩쓸린 도시의 정치인으로서 이 글을 쓰기가 매우 조심스럽고 힘들다. 공개적으로 밝혀지면 문제가 될지 모르는 사적인 상황을 나의 도움을 바라고 내게 알려준 사람이 많다. 그들이 뉴스위크 기고문에 쓰라고 내게 알려준 건 아니지만 이 글을 통해 그런 사정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일도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고 그런 이야기를 이 글에 포함시켰다.
숨진 형제들의 가족 곁을 떠나 카리브해 출신 흑인들의 지역사회 지도자 비공개 회의에 참석했다. 버밍엄의 무슬림 하원의원 두 명 중 한 명인 할리드 마무드가 주선한 회의였다. 흑인 지도자들은 두려워했다. 살인 혐의로 체포된 그 남자는 흑인이었다. 페이스북에는 젊은 카슈미르인들이 분노를 터뜨리며 보복하겠다는 글로 가득했다. 한 노련한 지역 운동가에 따르면 “우리에게서 세 명을 앗아갔기 때문에 우리도 흑인 세 명의 목숨을 가져가겠다”는 섬뜩한 메시지가 올랐다. 그녀는 지금까지 30년을 살아오면서 가장 무서운 순간이라고 말했다.
보복의 두려움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런 협박 자체가 불량배의 부추김을 받은 흑인들의 반발을 부를지 모른다. 그럴 경우 인종 갈등으로 비화하면서 폭력이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영국 전역을 휩쓴 이번 소요는 대부분 청소년들의 행위였다. 런던을 불태우고 영국 전역의 도심을 마비시킨 약탈자 무리 중에는 어린 십대가 전례 없이 많았다. 가난한 사람이나 실업자나 특정 인종의 봉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방학 중인 고교생들의 폭력적인 발작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런던 소요 이틀째 체포된 사람 중 십대가 3분의 2에 육박했다. 13~15세가 많았다.
그들의 행동을 지켜본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8월 9일 화요일 이른 아침 버밍엄의 파손된 휴대전화 대리점 주인은 경찰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내게 “15세 안짝의 아이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날 심야에 한 가게의 약탈을 아파트 창문을 통해 목격한 마일스 위버는 “약탈자의 얼굴을 가린 스카프가 떨어졌는데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어렸다”고 말했다.
이번 난동에서는 사람을 상대로 한 폭력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대부분의 폭동보다는 가벼운 편이었다. 청소년들이 일으켰기 때문이다. 버밍엄에서 가까운 울버햄튼의 도심에서 약탈이 자행될 때 루이스 존슨은 자신이 운영하는 미용실 밖에 혼자 서서 그들을 가로막았다. 그 부근의 가게들은 약탈당했지만 어린 난동자들이 존슨에게는 무례하게 굴지 않았다. 그녀는 다음 날 아침 BBC 라디오에 “사실 그들은 아주 정중했다”고 말했다.
엄밀히 말해 어떤 면에서도 결코 시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난동 주도자들은 시위처럼 이야기했다. 가디언지가 인터뷰한 리버풀의 한 약탈자는 경찰을 적대시하는 시위대의 표현을 인용했다. “경찰은 빌어먹을 집단이다. 그들은 허구한 날 자신들의 뜻대로 법을 집행하지만 여기선 턱도 없다.” 1980년대 진정으로 정치적인 동기로 일어난 핸즈워스(버밍엄 교외 지역) 폭동의 주도자였던 앤서니 고든은 내게 이렇게 설명했다. “이건 시위가 아니다. 진짜 시위를 하면 경찰이 다친다. 이 아이들은 정치적 주장 없이 단지 휴대전화를 훔치려 한다.”
웨스트 미들랜즈주의 크리스 심스 경찰청장은 “이번 난동은 성난 군중이 아니라 탐욕스러운 무리일 뿐”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쇼핑 폭동이었다. 억제가 안 되는 탐욕에 사로잡힌 십대들의 폭력적 발작이었다. 그들은 법을 어겼는데도 처벌 받지 않자 처음엔 놀랐지만 곧 재미에 빠졌다. 공공 질서는 언제나 치안당국의 마술 같은 잔꾀로 유지되기 마련이다. 자발적으로 모인 집단은 수적으로나 힘으로 경찰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 십대들은 경찰의 한계를 시험해보고는 그들의 마술이 별것 아니라는 점을 파악했다.
물론 비인도적인 끔찍한 행위도 있었다. 가게 파괴는 당연히 용납되지 않는 폭력 행위다. 아이들을 부추기고 동원한 나이 든 불량배도 있다. 하지만 나이 어린 십대가 그냥 따르기보다 약탈을 앞서 주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을까? 아무도 모른다. 보수와 진보 진영의 분석 모두 설득력이 없다. 가장 보편화된 가설은 난동자들이 인간 쓰레기라는 설명이다. 도덕 나침반이 없는 야생 동물과 같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이 이 분석으로 기운다. 쉽고 일관되고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떻게 이 지경이 됐나?”라는 물음에 “지금까지 쓰레기 같은 인간들에게 너무 관대했다”는 답이 쉽게 나온다. “해결책이 뭔가?”라는 질문에는 “법의 한계에 이르도록 그들을 처벌하고 미래의 쓰레기 인간들이 겁을 먹고 생각을 고쳐먹도록 그 한계를 확장해야 한다”라는 답이 자동으로 나온다.
그럴 듯하지만 “쓰레기 같은 인간을 너무 관대하게 대했다는 게 사실인가? 그들을 엄벌하는 방법이 효과가 있을까? 운동화를 훔쳤다고 청소년을 처형하기를 진정 바라는가?”라는 문제가 대두되면 그런 가설은 허물어진다.
진보파의 분석 역시 설득력 없긴 매한가지다. 그들은 가난하고 억압 받는 사람들의 봉기이며 절망한 세대의 분노 표출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들은 경찰과 싸우고 싶어하지 않았고, 파괴행위에 작정하고 매달리지 않았으며, 특정 인종도 아니었다. 요구 사항도 없었다. 그들은 단지 가게에 난립해 집에 TV가 몇 대나 있는데도 TV를 훔쳐갔다. 비가 내리고 진압경찰이 대규모로 배치되자 그들은 사라졌다. 아침에 학교 수업이 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법하다.
15개월 전 선거로 정권을 잡은 보수당 정부는 그 이래 젊은층에게 크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서비스와 혜택의 삭감을 발표했다. 청소년 서비스를 대폭 줄이고, 대학 등록금을 크게 올리며, 미래일자리기금(성공적인 유급 인턴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교육유지수당(일정한 연소득 이하 가정의 학생이 의무교육이 끝나는 16세 이후에도 안정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도록 직접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을 없앤다는 내용이다.
이런 변화 중 아직 실행된 정책은 거의 없고 발효됐다고 해도 실제로 충격이 나타날 만큼 충분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한 가지 예외는 청소년 서비스다. 청소년 클럽이 이미 폐쇄됐고, 청소년 근로자들이 해고됐으며, 이전엔 긴 여름방학 동안 도시 청소년들을 바쁘게 만들었던 각종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그 결과 다수의 청소년이 ‘아무 할 일이 없는’ 개점 휴업상태다.
그들은 분노도 없고, 소외와 사회적 무질서로 고통을 받지도 않는다. 프랑스 혁명도 와츠 폭동(1965년 LA의 흑인 거주지역 와츠에서 일어난 인종 폭동)도 아니다. 윌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무인도에 고립되어 야만 상태로 돌아간 소년들의 원시적 모험담을 통해 인간 내면에 잠재해 있는 권력과 힘에 대한 욕망을 우화적으로 그려낸 작품)’에 나오는 소년들과 다름없다.
8월 10일 수요일 오후 버밍엄 애슈턴에서 카리브해 출신 흑인 지도자 회의를 마치고 서부의 로젤스로 갔다. 역사적으로 카리브해 출신 흑인의 거주지였지만 지금은 카슈미르인들이 더 많이 산다. 빈곤 수준이 매우 높고 공동체 의식이 아주 강한 곳이다. 우리 만남의 장소는 파키스탄 음식점 사키브였다. 그곳 카운터에서 흑인 청소년들은 닭고기 요리를 사갔다. 아시아계도 눈에 띄었다.
이층의 방 한쪽 끝에 할리드 마무드 하원의원이 앉았다. 그는 이 구역의 지도자 회의도 소집했다. 이번에는 지방의회 의원 두 명, 자칭 ‘지역사회 지도자’ 한 명, 그리고 불안해하는 현지 자영업자 약 40명이 참석했다. 자영업자 대다수는 아시아계였고, 흑인이 대여섯 명, 중년의 백인 여성이 두 명이었다. 한 여성은 성직자인 듯 빳빳이 세운 흰색 깃 차림이었고, 다른 여성은 치과병원 운영자였다.
나를 포함해 백인이 4명이었는데 나머지 한 명은 데이브였다. 6명으로 구성된 로젤스-이스트핸즈워스 지역치안유지 팀의 간부였다. 전 정부가 10년 전 도입한 프로그램으로 경찰, 정치인, 정부기관, 대중이 협력해 범죄가 발생하지 않을 만한 물리적 환경을 유지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와 함께 거리에 경찰도 크게 늘었다. 런던의 경우 2001~09년 2만6000명에서 3만2000명으로 늘었다. 지역 경찰보조 요원도 생겼다. 이들은 정식 경찰이 아니고 급여도 훨씬 낮지만 지역사회 치안의 최전선에서 활동한다.
그런 프로그램이 효과가 있었다.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대 이래 영국에선 범죄가 크게 늘었지만 지역치안유지 프로그램이 그 추세를 기적적으로 역전시켰다. 1997~2010년(노동당 정권 시절) 영국의 전체 범죄는 연간 1670만 건에서 960만 건으로 43%나 줄었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사실이다.
30년 전 경찰은 난폭하거나 잔인한 집단으로 시민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1993년 십대 흑인소년 스티븐 로런스의 살해를 경찰이 적절히 수사하지 못한 이유를 조사한 1999년의 맥퍼슨 보고서는 경찰이 “제도적으로 인종차별주의”라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그와 달리 지역치안유지 팀에서 나온 데이브는 지역사회의 청소년 봉사자나 교사처럼 이야기했다. 자신은 그냥 배운 것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게 아니라 그의 사고방식 자체가 그랬다. 자신은 늘 함께 어울려 사는 지역사회의 상황에 익숙하기 때문에 그 힘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디서 왜 생겨났는지 모르고, 끝없는 물욕에 가득 찬 복면의 약탈자들은 지역사회에 매우 생소한 존재다. 로젤스의 가게 주인들은 지역치안유지 프로그램 같은 점잖은 접근법을 원치 않는다. 그들은 도로의 구석구석에 경찰이 배치되고 모든 교차로에 폭동진압 차량이 대기하기를 바란다. 그들은 경찰이 폭동 초기에 방관함으로써 어린 폭도가 거리를 장악하도록 두었다고 생각하며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젊은 무슬림 남자가 회의를 훼방했다. 그는 세 명을 차로 깔아 뭉갠 범인이 정의의 심판을 받을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유죄판결을 내린다고 해도 유약한 사법제도 때문에 살인자를 합당하게 처벌하지 못하리라는 이야기였다. 큰 목소리로 경찰을 질타한 카리브해 출신 흑인 여성이 그의 표적인 듯했다. 물론 간접적인 표현이었지만 참석자 모두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챘다. 그녀가 흑인이기 때문에 그녀의 책임으로 돌려지는 듯했다. 그녀의 동족이 그 무슬림 남자의 동족을 죽였다는 이야기였다. 갑자기 목청이 높아졌다. 그녀는 충격으로 어쩔 줄 모르는 듯했다. 그런 터무니없는 설전이 벌어지면서 회의는 중단됐다.
그날의 긴 밤 동안 8월의 공기는 소문과 허풍으로 가득했다. 스코틀랜드 폭동진압 경찰의 긴 행렬이 버밍엄으로 진입했다. 영국 전역에서 인종적 색깔이 없었던 이런 사건들이 유럽 최초의 소수민족 다수 도시가 곧 될 이곳 버밍엄에서 인종 색채를 띠기 시작한다.
내 도시는 보통은 이렇지 않다. 아주 살기 좋은 곳이다. 여러 인종과 민족이 서로 융합해 살아간다. 거의 언제나 평온하다. 결국은 평화가 승리한다. 이번 폭동이 긴장이 아니라 따분함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분노가 아니라 현대 민주주의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비롯된 십대 허무주의에 의해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무슬림 젊은이 세 명이 살해당한 버스정류장은 이제 성지로 변했다. 애통해 하는 가족은 냉정을 감동적으로 호소했다. 발작적인 감정의 폭발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한다.
[필자는 2001~10년 영국 노동당 하원의원을 지냈으며 버밍엄 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번역 이원기]
남의 일이 아니다.
데모도 아니고 혁명은 더더군다나 아니다.
그저 할 일이 없어 도시를 제멋대로 쑤셔놓은 발작이다.
지옥보다 더 무서운 곳이 따분한 천국이라 했다.
어른들도 감당 못할 그 따분함을 아이들이 어찌하랴.
사람을 제대로 모르는 이념가들이
교육현장을 농단하고 기어이 미래의 꿈나무들을
어찌 망쳐놓을지 참으로 걱정이 크다.
아이들은 훈육의 대상이다.
그리고 최고의 복지는 일거리다.
먹고살 걱정이 사라질 때에도 일거리가 없다면,
결코 대다수 어른들은 공공선이나 수양에 빠져들지 않는다.
사람의 머리는 하늘로 치솟았지만
발은 땅을 딛고 있음을 늘 잊어서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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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 992호 (2011.08.24) [26]
[BRITAIN RIOTS] 십대의 ‘쇼핑 폭동’
영국 청소년들, 방학 중 클럽 폐쇄되고 일자리 없어지자
허무주의에 사로잡혀 폭력적 발작 일으켰다
‘A Violent Convulsion of Kids on Holiday From High School’
SIÔN SIMON
영국에는 화려한 모자이크 장식이나 멋진 첨탑이 있는 이슬람 사원이 거의 없다. ‘무에진’이 하루 다섯 번 큰 소리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정식 사원이 아니라 근로계층 무슬림이 사는 집의 뒷방이나 2층 공간을 개조한 기도소가 대부분이다. 지난 8월 10일 수요일 버밍엄(런던에서 북서쪽으로 약 160km 떨어진 잉글랜드 중부 웨스트 미들랜즈주의 주도) 핸즈워스의 한 기도소를 찾았다. 거기서 내가 깔고 앉은 카펫은 이슬람 문양으로 짜였지만 너무 낡아 올이 드러날 정도였다.
그곳에 20명의 남자가 모였다. 모두 맨발로 가슴 앞에 손바닥을 위로 한 채 그 전날 밤의 ‘폭동’에서 희생된 두 형제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올렸다. 그들의 아버지가 비통함을 못 이겨 쓰러지자 사람들이 데리고 나갔다. 그를 대신해 고인들의 삼촌이 기도를 이끌었다.
기도 사이 사이에 남자들은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진지하게 받고 나지막이 대화를 나누거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살아남은 한 형제는 울먹이며 주변을 서성거렸다. 밖에는 젊은 카슈미르인 남자들이 몰려 들었다. 전통 복장을 한 사람도 있고 양복 정장을 입은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미국식 힙합 복장이었다.
그로부터 14시간 전인 새벽 1시, 두 형제는 다른 한 남자와 함께 다민족 거주지인 버밍엄 윈슨 그린에서 ‘동네를 보호하려고’ 나섰다. 그 전날 밤 도심과 인근 소호로에서 가게들이 약탈당했다. 사자드, 하룬, 압둘은 다음 날 밤에는 분명히 자신들의 동네로 약탈이 번지리라 판단하고 동네를 지키는 자경단에 합류했다. 혼돈의 와중에 약탈자로 의심되는 한 남자가 차를 타고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세 명 모두 즉사했다. 차를 몬 32세의 남자는 곧바로 살인 혐의로 체포됐다.
버밍엄은 나의 도시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난 이 도시를 사랑한다. 9년 동안 버밍엄 어딩턴 구역을 대표하는 하원의원으로 일했다. 그러다가 버밍엄 최초의 직선제 시장선거에 출마하려고 지난해 의원직을 사퇴했다. 난동에 휩쓸린 도시의 정치인으로서 이 글을 쓰기가 매우 조심스럽고 힘들다. 공개적으로 밝혀지면 문제가 될지 모르는 사적인 상황을 나의 도움을 바라고 내게 알려준 사람이 많다. 그들이 뉴스위크 기고문에 쓰라고 내게 알려준 건 아니지만 이 글을 통해 그런 사정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일도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고 그런 이야기를 이 글에 포함시켰다.
숨진 형제들의 가족 곁을 떠나 카리브해 출신 흑인들의 지역사회 지도자 비공개 회의에 참석했다. 버밍엄의 무슬림 하원의원 두 명 중 한 명인 할리드 마무드가 주선한 회의였다. 흑인 지도자들은 두려워했다. 살인 혐의로 체포된 그 남자는 흑인이었다. 페이스북에는 젊은 카슈미르인들이 분노를 터뜨리며 보복하겠다는 글로 가득했다. 한 노련한 지역 운동가에 따르면 “우리에게서 세 명을 앗아갔기 때문에 우리도 흑인 세 명의 목숨을 가져가겠다”는 섬뜩한 메시지가 올랐다. 그녀는 지금까지 30년을 살아오면서 가장 무서운 순간이라고 말했다.
보복의 두려움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런 협박 자체가 불량배의 부추김을 받은 흑인들의 반발을 부를지 모른다. 그럴 경우 인종 갈등으로 비화하면서 폭력이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영국 전역을 휩쓴 이번 소요는 대부분 청소년들의 행위였다. 런던을 불태우고 영국 전역의 도심을 마비시킨 약탈자 무리 중에는 어린 십대가 전례 없이 많았다. 가난한 사람이나 실업자나 특정 인종의 봉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방학 중인 고교생들의 폭력적인 발작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런던 소요 이틀째 체포된 사람 중 십대가 3분의 2에 육박했다. 13~15세가 많았다.
그들의 행동을 지켜본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8월 9일 화요일 이른 아침 버밍엄의 파손된 휴대전화 대리점 주인은 경찰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내게 “15세 안짝의 아이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날 심야에 한 가게의 약탈을 아파트 창문을 통해 목격한 마일스 위버는 “약탈자의 얼굴을 가린 스카프가 떨어졌는데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어렸다”고 말했다.
이번 난동에서는 사람을 상대로 한 폭력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대부분의 폭동보다는 가벼운 편이었다. 청소년들이 일으켰기 때문이다. 버밍엄에서 가까운 울버햄튼의 도심에서 약탈이 자행될 때 루이스 존슨은 자신이 운영하는 미용실 밖에 혼자 서서 그들을 가로막았다. 그 부근의 가게들은 약탈당했지만 어린 난동자들이 존슨에게는 무례하게 굴지 않았다. 그녀는 다음 날 아침 BBC 라디오에 “사실 그들은 아주 정중했다”고 말했다.
엄밀히 말해 어떤 면에서도 결코 시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난동 주도자들은 시위처럼 이야기했다. 가디언지가 인터뷰한 리버풀의 한 약탈자는 경찰을 적대시하는 시위대의 표현을 인용했다. “경찰은 빌어먹을 집단이다. 그들은 허구한 날 자신들의 뜻대로 법을 집행하지만 여기선 턱도 없다.” 1980년대 진정으로 정치적인 동기로 일어난 핸즈워스(버밍엄 교외 지역) 폭동의 주도자였던 앤서니 고든은 내게 이렇게 설명했다. “이건 시위가 아니다. 진짜 시위를 하면 경찰이 다친다. 이 아이들은 정치적 주장 없이 단지 휴대전화를 훔치려 한다.”
웨스트 미들랜즈주의 크리스 심스 경찰청장은 “이번 난동은 성난 군중이 아니라 탐욕스러운 무리일 뿐”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쇼핑 폭동이었다. 억제가 안 되는 탐욕에 사로잡힌 십대들의 폭력적 발작이었다. 그들은 법을 어겼는데도 처벌 받지 않자 처음엔 놀랐지만 곧 재미에 빠졌다. 공공 질서는 언제나 치안당국의 마술 같은 잔꾀로 유지되기 마련이다. 자발적으로 모인 집단은 수적으로나 힘으로 경찰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 십대들은 경찰의 한계를 시험해보고는 그들의 마술이 별것 아니라는 점을 파악했다.
물론 비인도적인 끔찍한 행위도 있었다. 가게 파괴는 당연히 용납되지 않는 폭력 행위다. 아이들을 부추기고 동원한 나이 든 불량배도 있다. 하지만 나이 어린 십대가 그냥 따르기보다 약탈을 앞서 주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을까? 아무도 모른다. 보수와 진보 진영의 분석 모두 설득력이 없다. 가장 보편화된 가설은 난동자들이 인간 쓰레기라는 설명이다. 도덕 나침반이 없는 야생 동물과 같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이 이 분석으로 기운다. 쉽고 일관되고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떻게 이 지경이 됐나?”라는 물음에 “지금까지 쓰레기 같은 인간들에게 너무 관대했다”는 답이 쉽게 나온다. “해결책이 뭔가?”라는 질문에는 “법의 한계에 이르도록 그들을 처벌하고 미래의 쓰레기 인간들이 겁을 먹고 생각을 고쳐먹도록 그 한계를 확장해야 한다”라는 답이 자동으로 나온다.
그럴 듯하지만 “쓰레기 같은 인간을 너무 관대하게 대했다는 게 사실인가? 그들을 엄벌하는 방법이 효과가 있을까? 운동화를 훔쳤다고 청소년을 처형하기를 진정 바라는가?”라는 문제가 대두되면 그런 가설은 허물어진다.
진보파의 분석 역시 설득력 없긴 매한가지다. 그들은 가난하고 억압 받는 사람들의 봉기이며 절망한 세대의 분노 표출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들은 경찰과 싸우고 싶어하지 않았고, 파괴행위에 작정하고 매달리지 않았으며, 특정 인종도 아니었다. 요구 사항도 없었다. 그들은 단지 가게에 난립해 집에 TV가 몇 대나 있는데도 TV를 훔쳐갔다. 비가 내리고 진압경찰이 대규모로 배치되자 그들은 사라졌다. 아침에 학교 수업이 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법하다.
15개월 전 선거로 정권을 잡은 보수당 정부는 그 이래 젊은층에게 크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서비스와 혜택의 삭감을 발표했다. 청소년 서비스를 대폭 줄이고, 대학 등록금을 크게 올리며, 미래일자리기금(성공적인 유급 인턴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교육유지수당(일정한 연소득 이하 가정의 학생이 의무교육이 끝나는 16세 이후에도 안정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도록 직접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을 없앤다는 내용이다.
이런 변화 중 아직 실행된 정책은 거의 없고 발효됐다고 해도 실제로 충격이 나타날 만큼 충분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한 가지 예외는 청소년 서비스다. 청소년 클럽이 이미 폐쇄됐고, 청소년 근로자들이 해고됐으며, 이전엔 긴 여름방학 동안 도시 청소년들을 바쁘게 만들었던 각종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그 결과 다수의 청소년이 ‘아무 할 일이 없는’ 개점 휴업상태다.
그들은 분노도 없고, 소외와 사회적 무질서로 고통을 받지도 않는다. 프랑스 혁명도 와츠 폭동(1965년 LA의 흑인 거주지역 와츠에서 일어난 인종 폭동)도 아니다. 윌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무인도에 고립되어 야만 상태로 돌아간 소년들의 원시적 모험담을 통해 인간 내면에 잠재해 있는 권력과 힘에 대한 욕망을 우화적으로 그려낸 작품)’에 나오는 소년들과 다름없다.
8월 10일 수요일 오후 버밍엄 애슈턴에서 카리브해 출신 흑인 지도자 회의를 마치고 서부의 로젤스로 갔다. 역사적으로 카리브해 출신 흑인의 거주지였지만 지금은 카슈미르인들이 더 많이 산다. 빈곤 수준이 매우 높고 공동체 의식이 아주 강한 곳이다. 우리 만남의 장소는 파키스탄 음식점 사키브였다. 그곳 카운터에서 흑인 청소년들은 닭고기 요리를 사갔다. 아시아계도 눈에 띄었다.
이층의 방 한쪽 끝에 할리드 마무드 하원의원이 앉았다. 그는 이 구역의 지도자 회의도 소집했다. 이번에는 지방의회 의원 두 명, 자칭 ‘지역사회 지도자’ 한 명, 그리고 불안해하는 현지 자영업자 약 40명이 참석했다. 자영업자 대다수는 아시아계였고, 흑인이 대여섯 명, 중년의 백인 여성이 두 명이었다. 한 여성은 성직자인 듯 빳빳이 세운 흰색 깃 차림이었고, 다른 여성은 치과병원 운영자였다.
나를 포함해 백인이 4명이었는데 나머지 한 명은 데이브였다. 6명으로 구성된 로젤스-이스트핸즈워스 지역치안유지 팀의 간부였다. 전 정부가 10년 전 도입한 프로그램으로 경찰, 정치인, 정부기관, 대중이 협력해 범죄가 발생하지 않을 만한 물리적 환경을 유지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와 함께 거리에 경찰도 크게 늘었다. 런던의 경우 2001~09년 2만6000명에서 3만2000명으로 늘었다. 지역 경찰보조 요원도 생겼다. 이들은 정식 경찰이 아니고 급여도 훨씬 낮지만 지역사회 치안의 최전선에서 활동한다.
그런 프로그램이 효과가 있었다.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대 이래 영국에선 범죄가 크게 늘었지만 지역치안유지 프로그램이 그 추세를 기적적으로 역전시켰다. 1997~2010년(노동당 정권 시절) 영국의 전체 범죄는 연간 1670만 건에서 960만 건으로 43%나 줄었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사실이다.
30년 전 경찰은 난폭하거나 잔인한 집단으로 시민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1993년 십대 흑인소년 스티븐 로런스의 살해를 경찰이 적절히 수사하지 못한 이유를 조사한 1999년의 맥퍼슨 보고서는 경찰이 “제도적으로 인종차별주의”라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그와 달리 지역치안유지 팀에서 나온 데이브는 지역사회의 청소년 봉사자나 교사처럼 이야기했다. 자신은 그냥 배운 것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게 아니라 그의 사고방식 자체가 그랬다. 자신은 늘 함께 어울려 사는 지역사회의 상황에 익숙하기 때문에 그 힘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디서 왜 생겨났는지 모르고, 끝없는 물욕에 가득 찬 복면의 약탈자들은 지역사회에 매우 생소한 존재다. 로젤스의 가게 주인들은 지역치안유지 프로그램 같은 점잖은 접근법을 원치 않는다. 그들은 도로의 구석구석에 경찰이 배치되고 모든 교차로에 폭동진압 차량이 대기하기를 바란다. 그들은 경찰이 폭동 초기에 방관함으로써 어린 폭도가 거리를 장악하도록 두었다고 생각하며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젊은 무슬림 남자가 회의를 훼방했다. 그는 세 명을 차로 깔아 뭉갠 범인이 정의의 심판을 받을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유죄판결을 내린다고 해도 유약한 사법제도 때문에 살인자를 합당하게 처벌하지 못하리라는 이야기였다. 큰 목소리로 경찰을 질타한 카리브해 출신 흑인 여성이 그의 표적인 듯했다. 물론 간접적인 표현이었지만 참석자 모두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챘다. 그녀가 흑인이기 때문에 그녀의 책임으로 돌려지는 듯했다. 그녀의 동족이 그 무슬림 남자의 동족을 죽였다는 이야기였다. 갑자기 목청이 높아졌다. 그녀는 충격으로 어쩔 줄 모르는 듯했다. 그런 터무니없는 설전이 벌어지면서 회의는 중단됐다.
그날의 긴 밤 동안 8월의 공기는 소문과 허풍으로 가득했다. 스코틀랜드 폭동진압 경찰의 긴 행렬이 버밍엄으로 진입했다. 영국 전역에서 인종적 색깔이 없었던 이런 사건들이 유럽 최초의 소수민족 다수 도시가 곧 될 이곳 버밍엄에서 인종 색채를 띠기 시작한다.
내 도시는 보통은 이렇지 않다. 아주 살기 좋은 곳이다. 여러 인종과 민족이 서로 융합해 살아간다. 거의 언제나 평온하다. 결국은 평화가 승리한다. 이번 폭동이 긴장이 아니라 따분함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분노가 아니라 현대 민주주의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비롯된 십대 허무주의에 의해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무슬림 젊은이 세 명이 살해당한 버스정류장은 이제 성지로 변했다. 애통해 하는 가족은 냉정을 감동적으로 호소했다. 발작적인 감정의 폭발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한다.
[필자는 2001~10년 영국 노동당 하원의원을 지냈으며 버밍엄 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번역 이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