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다시 벼랑에 서는가

by 永樂 posted Oct 01, 2004
[북핵, 다시 벼랑에 서는가]
"북핵이 해결되고 나면 우리는 뭘 하지?" 일부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이 이런 행복한 고민을 한 것이 불과 지난 늦은 봄 무렵이었다. 그들의 행복한 고민을 부채질이라도 하듯 미국은 6월 세번째 6자회담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북핵 일괄타결안을 받아들일 뜻을 비추기도 했다. 일괄타결은 북한의 핵 포기와 미국의 보상을 교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몇달 새 훈풍이 얼음바람 돌변

그러나 그 뒤 몇달 사이에 북핵에 관한 훈풍은 얼음바람으로 바뀌었다. 북한과 미국이 마치 6자회담 죽이기 경쟁이라도 벌이듯 상대방을 궁지로 모는 강경책과 강경 발언을 내놓고 있다. 미국 상원은 북한인권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북한인권법은 탈북자에게 미국 망명을 허용하고, 북한 주민을 사실상 선동하는 라디오 방송을 지원하고, 북한 주민의 인권신장을 위해 활동하는 민간단체들에 지원금을 지급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 처지에서 보면 그것은 '평화적인 수단'으로 김정일 체제를 바꾸자는 법안이다.

미국 상원이 북한인권법안을 통과시키던 날 군축담당 국무차관 존 볼턴은 조지 W 부시 정부의 강경외교를 주도하는 신보수파(네오콘)들의 두뇌집단인 미국기업연구소(AEI)에서 북한이 지금의 강경자세를 고집하면 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로 가져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은 4차 6자회담이 연내에 열릴 수 없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북핵 문제에 관한 한 행정부와 의회의 빈틈없는 공조는 북한을 심리적으로 압박하기에 충분하다.

아니나 다를까. 같은 날 유엔총회에 참석한 최수헌 북한 외무부상(차관)은 서방 측 외신기자들에게 "우리는 8000개의 핵연료봉을 재처리하여 무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워싱턴의 대북 강경 분위기를 염두에 둔 계산된 발언으로 들린다. 북한은 2년 전부터 "우리는 핵무기를 만들고 있다, 우리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을 되풀이해 6자회담 참가국들의 전열(戰列)을 교란해 왔다. 양강도의 무슨 폭발실험 의혹, 10월 위기설,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설도 북한 나름의 전략적 자작극이 아닌가 싶다.

북핵 협상과 북.미 관계의 큰 폭의 후퇴는 미국 대선에 관한 북한의 오산에서 시작됐다. 북한은 11월 대선에서 부시보다 존 케리의 당선을 기대한다. 그리고 북한은 민주당의 케리가 당선되면 2000년 가을 북한 군부 실세 조명록의 워싱턴 방문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으로 상징된 북.미 최고위급 대화 분위기가 되살아나 미국으로부터 국교 정상화와 경제제재 해제 같은 최대한의 보상을 받고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케리는 떡 줄 생각이 없는데 북한은 김칫국을 마시는 꼴이다.

부시와 케리의 대북정책의 차이는 한가지다. 부시는 핵문제를 북.미 양자협상이 아니라 6자회담 같은 다자협상에서 해결하자는 입장인 반면 케리는 북.미 대화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부시의 정치신학은 북한 체제를 근본적으로 불신하는 데 반해 케리는 보다 개방적인 자세로 "현재 존재하는 그대로의 북한"을 상대한다는 페리 보고서의 정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빌 클린턴 정부의 협상파들이 케리를 보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시와 케리의 차이는 여기서 끝난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결단코 용납하지 않는다는 데서는 민주당과 공화당, 부시와 케리는 같은 미국인이다. 상원이 북한인권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거기다가 오늘 현재 케리는 선거전에서 고전을 하고 있다.

부시 강경노선 복귀할 수도

미국 의회의 북한인권법 통과로 부시는 북한을 압박하는 데 천군만마의 힘을 얻었다. 제2기 부시 정부의 대북 자세가 '악의 축' 발언을 하던 시기의 강경노선으로 복귀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핵무기 보유를 생존전략으로 삼는 이른바 파키스탄 모델로 가는 최후의 저지선(Red line)을 넘어버릴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3차 핵위기의 먹구름이 한반도 상공에 몰려오는 것 같은데 과연 우리에게 그렇게 서둘지 않을 여유가 있는지 묻고 싶다.

김영희 중앙일보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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