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을 내건 국정원 ‘자해행위’
장을 담그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맛을 제대로 내는 일이다. 하지만 구더기가 생기기 쉽다. 그래서 방충전문가에게 장 담그는 공장의 총책을 맡기면 어찌 될까. 역량이 뛰어나 전문가들을 잘 지휘해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지만 대개는 자신의 전문분야에 집착하기 때문에 맛은 기대하기 어려울 듯 싶다.
지난해 인권변호사로서 존경받는 고영구원장 체제의 국가정보원이 출범할 때 받은 느낌이다. 국정원이 과거 정치공작이나 용공조작으로 민주인사들을 탄압하는 등 인권유린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국가기관을 최고권력자의 정권유지조직으로 악용한 독재권력의 타락상일 뿐 정보기관의 본질적인 기능은 아니다.
인권유린의 부작용을 우려해 인권변호사를 총수로 임명한 것은 사실 납득하기 어려웠다. ‘안하면 될 일’을 막는 전문가가 ‘해야 할 일’의 책임자라니…. 더욱이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인권유린 가능성도 거의 사라졌다. 정보화시대에 국정원의 기능이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테고 전면적인 조직개편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됐다.
맞다. 세계는 지금 경제전쟁의 시대다. 시대변화에 맞춰 국정원의 기능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실제로 성과여부를 떠나 지난 정권부터 그 작업을 추진해왔다. 이미 각국의 정보기관은 해외산업정보 활동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외국의 산업과 무역, 기술동향 등에 대한 정보를 신속·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국내파트와 경찰의 업무중복 문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북한 핵문제와 관련, 지난 정권때 햇볕정책의 친위대 역할을 하느라 제기능을 상실한 대북파트 역시 이제는 정상화해야 한다. 대북관련 업무공백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대신하고 있는 문제점은 차치하더라도 최근 몇몇 사건에서 드러난 우리의 대북정보력 부재는 심각한 상황이다.
고원장체제의 국정원은 출범직후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한데 이어 지난 5월부터 개혁 프로젝트를 진행, 조만간 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어떻게 개편했는지, 신설된 부서에 인력을 얼마나 투입했는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누구나 인터넷상에서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되는 걸까.
정보기관은 안보와 국익을 위해 창설된 기관이다. 국방력과 행정력이 미칠 수 없는 외국에선 비합법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국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정보기관의 철칙이다.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 해서 지금은 원훈이 ‘정보는 국력이다’로 대체됐으나 그 기능상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는 변할 수 없는 속성이다. 상대국 정보기관이 활동내용을 파악할까봐 예산조차 공개하지 않는 것이 국제관행인데 현정부 들어선 시민단체까지 개편내용을 알고 비판하고 있다.
지난 정권 초기 국정원은 해외 경제정보 수집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가 오히려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미 세계각국에서 외교관 신분으로 활동하는 우리 정보원들이 주재국으로부터 산업스파이로 간주되는 바람에 일반적인 정보협조마저 받지 못했던 것이다. 경제정보를 전문으로 수집하는 산업자원부소속 상무관들도 함께 고초를 겪은 것은 당연하다.
정보기관의 개혁은 소리없이 진행돼야 한다. 개혁을 내건 이같은 ‘자해행위’는 전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그런데도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한술 더떠 이제는 국정원의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해 시민단체와 법조인, 종교계 인사 등을 포함한 조사단을 구성한다고 한다. 후진국 정변의 경우를 제외하고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국가정보기관이 스스로 외부인사들에게 공개하고 과거사건을 파헤치도록 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어두운 과거사 정리는 밝은 미래를 위함이다. 그러나 이미 잘못된 과거를 알고 있고, 그 주역들은 역사속에 사라지고 있다. 비공개적으로 막중한 국익을 수행하는 국가기관을 들쑤셔 역량을 약화시키는 짓은 진정 국가장래를 생각하는 국정책임자의 할 일이 아니다.
황열헌 문화일보 논설위원
장을 담그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맛을 제대로 내는 일이다. 하지만 구더기가 생기기 쉽다. 그래서 방충전문가에게 장 담그는 공장의 총책을 맡기면 어찌 될까. 역량이 뛰어나 전문가들을 잘 지휘해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지만 대개는 자신의 전문분야에 집착하기 때문에 맛은 기대하기 어려울 듯 싶다.
지난해 인권변호사로서 존경받는 고영구원장 체제의 국가정보원이 출범할 때 받은 느낌이다. 국정원이 과거 정치공작이나 용공조작으로 민주인사들을 탄압하는 등 인권유린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국가기관을 최고권력자의 정권유지조직으로 악용한 독재권력의 타락상일 뿐 정보기관의 본질적인 기능은 아니다.
인권유린의 부작용을 우려해 인권변호사를 총수로 임명한 것은 사실 납득하기 어려웠다. ‘안하면 될 일’을 막는 전문가가 ‘해야 할 일’의 책임자라니…. 더욱이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인권유린 가능성도 거의 사라졌다. 정보화시대에 국정원의 기능이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테고 전면적인 조직개편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됐다.
맞다. 세계는 지금 경제전쟁의 시대다. 시대변화에 맞춰 국정원의 기능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실제로 성과여부를 떠나 지난 정권부터 그 작업을 추진해왔다. 이미 각국의 정보기관은 해외산업정보 활동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외국의 산업과 무역, 기술동향 등에 대한 정보를 신속·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국내파트와 경찰의 업무중복 문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북한 핵문제와 관련, 지난 정권때 햇볕정책의 친위대 역할을 하느라 제기능을 상실한 대북파트 역시 이제는 정상화해야 한다. 대북관련 업무공백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대신하고 있는 문제점은 차치하더라도 최근 몇몇 사건에서 드러난 우리의 대북정보력 부재는 심각한 상황이다.
고원장체제의 국정원은 출범직후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한데 이어 지난 5월부터 개혁 프로젝트를 진행, 조만간 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어떻게 개편했는지, 신설된 부서에 인력을 얼마나 투입했는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누구나 인터넷상에서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되는 걸까.
정보기관은 안보와 국익을 위해 창설된 기관이다. 국방력과 행정력이 미칠 수 없는 외국에선 비합법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국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정보기관의 철칙이다.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 해서 지금은 원훈이 ‘정보는 국력이다’로 대체됐으나 그 기능상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는 변할 수 없는 속성이다. 상대국 정보기관이 활동내용을 파악할까봐 예산조차 공개하지 않는 것이 국제관행인데 현정부 들어선 시민단체까지 개편내용을 알고 비판하고 있다.
지난 정권 초기 국정원은 해외 경제정보 수집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가 오히려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미 세계각국에서 외교관 신분으로 활동하는 우리 정보원들이 주재국으로부터 산업스파이로 간주되는 바람에 일반적인 정보협조마저 받지 못했던 것이다. 경제정보를 전문으로 수집하는 산업자원부소속 상무관들도 함께 고초를 겪은 것은 당연하다.
정보기관의 개혁은 소리없이 진행돼야 한다. 개혁을 내건 이같은 ‘자해행위’는 전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그런데도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한술 더떠 이제는 국정원의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해 시민단체와 법조인, 종교계 인사 등을 포함한 조사단을 구성한다고 한다. 후진국 정변의 경우를 제외하고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국가정보기관이 스스로 외부인사들에게 공개하고 과거사건을 파헤치도록 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어두운 과거사 정리는 밝은 미래를 위함이다. 그러나 이미 잘못된 과거를 알고 있고, 그 주역들은 역사속에 사라지고 있다. 비공개적으로 막중한 국익을 수행하는 국가기관을 들쑤셔 역량을 약화시키는 짓은 진정 국가장래를 생각하는 국정책임자의 할 일이 아니다.
황열헌 문화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