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6일~9월 29일 워싱톤 DC에서 국제한민족재단 주최로 열린 국제한민족 포럼에서 법륜스님이 발표하신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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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삶과 공동체를 위한 새로운 역사관
법륜스님(좋은벗들 이사장)
요즘 우리사회는 많은 혼란을 겪고 있다. 소위 말해서 세계화라고 하는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새로운 변화가 도래해 오고 있다. 또 지금까지 인류 역사는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ꡑ이라고 해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와는 교류를 하면서 가까이 있는 나라는 침공을 하는” 외교 정책이 주류를 형성해 왔다. 그러나 이런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EU같은 지역공동체가 새롭게 나타나고, 동남아시아․북미․남미 등 지역공동체들이 새로운 주류로 부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 지역에서는 같은 민족이면서도 남․북이 적대하고 대립하고 있다. 가까이 있는 일본과 중국과의 관계를 보더라도 우리는 아직도 일본과 적대적인 감정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최근 중국은 동북공정이라고 해서 조선 고대사 특히 고구려․발해사를 중국역사의 일부로 편재시키려 하고 있고, 이런 상황들이 한국사회에 많은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우리민족은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서 한국사회는 어떤 합의점이나 어떤 방향도 잡고 있지 못하고 있다. 정권이 자주 교체되면서 민주화라고 하는 측면에서는 많은 진척이 있어왔지만 민족의 진로와 국가 발전의 장기적 계획을 세운다는 측면에서 보면 지난 20여년 간은 아무런 계획도 설계도 없이 각 정권은 그때그때 일어나는 일들에 대응하기 급급하여 우왕좌왕하면서 지내온 것 또한 사실이다. 또한 우리는 95년도 이후 나타난 북한의 경제적 붕괴와 식량난으로 300여만 명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간 민족사의 최대 참극을 맞고서도 이데 대한 어떤 해결책도 펼치지 못하였다. 과거의 적대감정에 휩싸여서 제 동족이 300만 명이나 굶주려 죽는 것을 막기는 커녕, 오히려 조장하는 측면까지 있었다. 또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와 지금 제기되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문제에 대해서도 목소리만 높지 아무런 해결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우리는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어떻게 확보하고 이웃나라 사람들과 어떻게 손을 잡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측면에서 과연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왜 역사를 알아야 하는가?
역사라고 하는 것은 시간적인 인과관계이다. 인류사의 흐름을 볼 때, 시간적으로 원인이 있고 결과가 나타난다. 결과를 보면 원인을 찾을 수 있고, 원인을 보면 결과를 예측할 수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역사를 통해서, 자기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잘 모르고 있다. 내가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지 역사를 통해서 자기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둘째,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하는 방향을 잡을 수 있다. 방향을 잡는다는 것은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는 문제이며 그리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이 미래가 예측이 되면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 즉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어떻게 우리의 요구대로 수정․보완할 것이냐 하는 측면에서 역사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의 운명을 우리손으로 결정짓기 위해서는 첫째로 역사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역사만 알면 되는가? 그렇지 않다. 역사는 우리의 현실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현실에 올바르게 대응하는데 있어서의 한 요소일 뿐이다. 우리가 좌표축으로 얘기하면 역사라는 것은 X축과 같다. 수직선과 같은 것으로, 원점을 중심으로 해서 과거가 있고 미래가 있다. 그러므로 역사만 갖고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파악하고 예측하는 것은 정확성이 떨어진다.
그럼 어떤 요소가 하나 추가되어야 하는가? 둘째로 바로 우리 주변국들과의 관계다. 소위 말해서 역사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제 관계를 알아야 한다. 민족공동체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들의 주변관계 즉, 우리나라 주위에 있는 일본.중국.러시아.미국 등 4강들의 역량을 파악함과 동시에 앞으로 이들 4강의 진로가 모두 파악되어야만 우리의 운명을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이처럼 역사와 사회는 X축.Y축과 같아서 우리의 삶을 수직선이라고 하는 단순한데서 보다 확대된 평면으로 옮겨 놓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역시 부족하다.
세 번째 우리 민족 주체 역량이 파악되어야 한다. 이 주체 역량은 마치 Z축과 같아서 우리들의 삶을 단순한 평면에서 입체 공간적인 3차원의 관점을 갖게 만든다.
여기에다가 넷째로 우리가 상황에 맞게 시기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대응전략이 마련되고 구사되어야 한다. 이것이 4차원의 세계다. 즉 시간축이 하나 첨가되어야 한다. 우리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현재.미래라고 하는 역사관, 우리들의 제 이웃 관계인 사회관, 우리들 주체의 역량, 그리고 현실에 시기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의 구사, 이런 것들이 종합될 때 우리는 우리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먼저 역사관이 올바르게 정립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주변국가의 관계가 정립되고, 주체의 역량을 형성하여 능수능란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민족의 역사관(민족공동체 문화사) 정립
이러한 여러 요소 가운데 첫째가 역사관 정립이다. 민족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민족 공동체 문화사라고도 할 수 있다. 민족이라고 하는 것은 생물학적인 것보다는 어떤 문화공동체적인 성격이 강하다. 민족의 문화사 속에는 정치.경제.사회.문화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우리 민족사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비유를 들어서 말하면 하늘에서 비가 내려서 백두산에 떨어졌지만, 그 물줄기는 각기 다른 골짜기로 나뉘어져서 흘러 하나는 압록강이 되고, 하나는 두만강이 되고, 하나는 쑹화강이 되었다. 이렇게 하나의 백두산에서 발원하더라도 서로 다른 강물이 되어 서해로, 동해로, 오오츠크해로 들어간다. 또 압록강이라고 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물이 아니다. 내려오면서 수많은 지류의 물들이 합류해서 큰 압록강이 된다. 그러므로 다른 강물이지만 발원지가 같은 것도 있고 같은 강물이지만 서로 다른 발원지를 갖는 지류들이 합해진 것도 있다. 이처럼 민족의 시원을 살펴 볼 때, 하나의 시조,부족,민족으로부터 하나의 선진문명이나 선진문화가 단일하고 일관되게 내려오는 것은 아니다. 즉 하나로부터 여럿으로 갈라지기도 하고 여럿이 모여 하나가 되기도 한다. 강물의 발원지를 따라 올라가 보면 각각의 다른 강물의 발원지가 같은 백두산 이라고 할 때 서로 백두산이 자기 강물의 원류라고 다툴 일이 아니듯이, 각 민족은 모두 자기 민족의 뿌리를 찾아 올라갔을 때, 우리민족의 역사가 일본역사와 뿌리를 하나로 할 수도 있고, 만주족과 뿌리를 하나로 할 수도 있고, 몽골족과 뿌리를 하나로 할 수도 있고, 선비족과 뿌리를 하나로 할 수가 있다. 즉 민족의 시원에 있어서 어떤 설화가 동일할 수도 있다. 그것은 긴 세월을 내려오면서 이 지역․저 지역으로 나누어져서 각각의 자기 특색을 가지고 가다보니까 별개의 민족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시원을 함께 하는 민족은 같은 문화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그 뿌리에 있어서 공통점이 있는 민족들이 있고, 또 서로 서로가 교류가 많아 매우 비슷한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전혀 다른 뿌리에서부터 출발할 때 도 있다. 우리는 중국과 가까이 있고 문화교류가 아주 많았기 때문에 우리 문화를 중국 문화의 한 지류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뿌리를 찾아가 보면 우리의 뿌리는 중국 한족의 뿌리와는 그 근원을 달리한다. 그래서 중국은 차이나․티벳 어족에 속하고, 우리는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한다. 인도와 유럽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 그런 측면에서 몽골족.만주..조선족.일본족은 민족사에 있어 어떤 근원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실한 상고사를 복원하려면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잃어버린 상고사를 복원하는데 있어서 중국의 사선만을 뒤적거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역사.만주족역사.몽골역사속에서, 또 그들의 언어속에서 어원을 찾아 추적하고 연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중국의 옛날 역사책에 기록된 편린을 중심으로 해서 우리 상고사를 재구성하기 때문에 중국의 변방사가 될 수 밖에 없다. 당연히 중국 사람들은 자기 민족을 중심으로, 자기 역사를 중심으로 우리 민족을 보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변방에 있는 나라라고 보는 것이다. 변방이라서 변방이 아니라 어느 나라든지 모두 자국을 중심으로 바라보면 이웃나라가 변방이 되는 것이다. 우리 국사에 등장하는 중국사․일본사라는 것도 우리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변방사가 된다. 「삼국지위지동이전」에는 삼국시대의 위나라의 눈으로 위나라 동쪽에 있는 오랑캐 민족이라고 그 당시 우리나라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잃어버린 우리의 옛 역사를 찾는데 귀중한 자료이면서 그 기록들은 동시에 바로 그들의 관점에서 본, 그들의 눈에 비친 역사, 그들의 눈에 비친 문화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상고사 부분의 많은 역사자료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오늘날 실증주의 학자들이 이런 중국 사서 기록속에 나타난 편린을 주워 담아 우리 역사의 옛 부분을 복원하는 것은 많은 오류와 왜곡 그리고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런 사서의 기록만 갖고 옛 역사를 논하는 큰 한계와 오류에 빠져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아무런 실증적 자료도 없이 무조건 우리 역사는 이렇다하고 주장해서도 안된다. 문화적으로 우리는 일본.만주족.몽골족 그 외 중간에 없어졌지만 선비족이라든지 이러한 많은 민족들과 소위 동아시아의 동북지역 즉 산동반도와 황하강 이북지역에서 오래전부터 독립적인 문화를 형성해 왔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역사는 중국역사의 한 아류나 지류가 아니고 그 뿌리를 달리하고 있다. 뿌리를 달리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우수하다든지 또는 중국사가 문제가 있다든지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민족사의 시원을 달리하고 있다는 객관적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민족의 시원 : 온갖 물줄기들이 결합하여 우리 역사를 만들고 있다
역사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흐름만으로 계속 단일하게 흘러가는 게 아니다. 백두산에서 출발한 두만강이지만 바다에 이르기 위한 그 과정에는 중간 중간에 수만 갈래의 강물과 강줄기가 합류되어 두만강을 형성한다. 그런 것처럼 우리민족의 시원이 한 선진문명을 가진 부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오늘날의 만주지역과 한반도에 이르면서 그 땅에 있었던 토착세력인 수많은 씨족 그리고 부족 등 이런 크고 작은 문화가 합류되어 오늘의 우리 민족사를 구성하고 있다. 우리가 단군을 말하는 것은 민족사의 시원이라는 것이지, 꼭 단군조선만이 우리 역사라고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소위 말해서 예맥이라 불리는 사람들, 동예라 불리는 사람들, 마한.진한.변한이라 불리는 사람들, 부여라 불리는 사람들, 옥저라 불리는 사람들, 수많은 지류들이 합해지고, 온갖 토작부조들이 결합하고 결합해서 오늘의 우리 민족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고구려를 이해하거나 또는 삼국시대를 이해할 때 지금과 같은 사회성격으로 그때를 이해하면 안된다. 그런데도 오늘 우리는 상고사를 이해 할 때 오늘같이 하나의 지역사회가 아주 단일하게 통합되어있는 그런 관점으로 고대사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조선에 대해서 그때 무슨 그런 왕국이 건설될 수 있었겠느냐하며 그 자체를 부정해버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고조선을 만주와 한반도를 통치한 단일한 통일국가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둘 다 오늘의 관점에서 그 때를 바라보는 것으로 옳지 않다.
이런 점에서 다시 한번 말한다면 역사의 시원이 동일하게 출발했지만 갈라져서 여러 민족을 형성하기도 하고, 또 오늘날 하나의 민족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한 부족의 단일한 성장이 아니라 각 토착세력의 만 갈래 물줄기가 결합해서 오늘을 형성하고 있다. 이 두 가지 특징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든, 만주족이든, 일본민족이든, 몽골족이든, 그 갈라지기 이전 세월로 오래 오래 전으로 올라가면, 어떤 문화적 동질성이 있고 어떤 신화의 공통도 있고, 언어적 공통점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웃민족과 다투더라도 문화적으로 볼 때는 같은 물줄기의 갈라짐에 속한다. 또한 여러 토착세력이 비록 후진적 문명이긴 하지만 그들 고유의 문화가 고조선의 문화와 결합을 하여, 즉 온갖 색깔이 여기에 섞이면서 오늘 우리 민족 문화의 색깔이 된 것이지 하나의 단일한 색깔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흘러내려온 것은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민족사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민족사 이해 : 우리민족의 뿌리
이런 관점에서 우리 민족사를 이해한다면 우리 민족의 뿌리는 중국의 아류나 지류가 아니라 중국 민족의 뿌리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은 독립성을 갖는게 이 꼭 좋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민족사의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삼국시대 이후로 오면서 우리는 중국문화와 많은 교류를 했다. 그래서 출발점은 달랐지만 같은 뿌리를 두고 갈라진 민족들보다도 이웃함으로 해서 문화적 교류가 아주 많았다. 뿌리의 바탕이 되는 오랜 문화에서는 우리가 더 선진문화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삼국이후로는 중국문화가 우리문화보다 더 높았기 때문에 그 많은 중국의 선진문화가 우리 쪽으로 흘러들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문화 속에 중국의 문화.한족의 문화가 많이 베어있다. 특히 조선조 이후에는 이 문화의 정체성.문화의 독창성이 훼손될 만큼 문화이식이 심했다. 이러다 보니 우리민족문화는 중국문화의 아류쯤으로서 이해하게 되어 중국해 대해 무의식적으로 민족의 정체성.문화의 정체성에 대해서 열등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우리문화가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중국 변방의 작은 나라로 있으면서도 독립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은 뿌리가 다른 데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남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서양문화
또 우리는 개항 이후 서양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남북이 분단된 이후, 서양문화가 남한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서양문화가 막대하게 영향을 준 나라는 아마 지구상에 찾기 어려울 정도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특히 종교는 문화중에서도 아주 핵심이기 때문에 잘 변하지 않는다. 영국은 인도를 300년 지배했는데도 종교에는 영향을 못주고, 일본도 서양문화를 일찍 받아들이고 매우 서양화했는데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일본사회에 차지하는 비율은 1%도 안된다. 그런데 왜 남한 사회에서는 50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다른 건 말할 것도 없고, 종교까지도 기독교 문화가 주류를 형성할 만큼 이렇게까지 바뀌었을까?. 우리가 조선조 500년 동안에 중국문화로 바뀐 그 변화보다도 이 50년 동안에 변한 게 더 크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민족으로서 중국에 있는 조선족이나 북한사람들이 남한에 왔을 때는 남의 나라에 온 것보다 더 어리둥절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바로 분단이후 남한사회가 문화적으로 미국의 거의 식민지와 같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문화가 미국이나 유럽 문화와 다른 것은 우리 고유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많은 물감이 타졌지만 그 본래의 색깔인 우리의 색깔을 유지하고, 그들과 다른 독립적인 문화를 형성해가고 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더라도 중국과 다른 것은 이 뿌리에 해당하는 상고사부분이 중국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늘날 중국과 많은 문화적 공통점을 갖는 것은 바로 삼국시대 이후 중국과 많은 문화적 교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서양문화와도 다른 것은 동양문화의 문화적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문화 속에 서양 문화적인 많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짧은 시간 내에 문화적 교류라기 보다는 식민지문화이식이라고 말해도 좋은 정도의 급속한 문화 이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를 맞으며
바로 이러한 모든 것을 현실적 토대로 하여 오늘 우리에게 닥친 새로운 세상.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이 새로운 시대의 핵심은 무엇인가?
경제의 세계화
오늘의 시대를 세계화시대라고 말하기도 하고 정보화시대다고 말하기도 한다. 세계화라는 것은 경제적인 관점이강하다. 국경이 없어지고 모든 것들이 하나로 유통된다. 그래서 국가경제는 점점 해체되어 가고 있다. 결국 세계자본주의 속으로 모든 경제가 종속되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고 통합되어간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이 경제성장을 조금 연착륙하겠다는 총리의 말 한 마디에 한국 주가가 폭락해버렸다. 미국에서 금리를 좀 인상하겠다. 그것도 올려봐야 0.25% 정도이고 올해말까지 많이 올려봐야 최대로 1% 아니면 0.5% 정도 올리는데, 이 며칠 사이에 블랙 먼데이니 뭐니 해서 한국주가가 완전히 폭락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경제적의 독립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국민은행은 이름이 국민은행이지 주식의 70%가 외국인이 가지고 있거, 한국이 자랑하는 삼성전자 주식의 60% 이상이 외국인이 가지고 있다.
정치의 국제화 : 지역공동체
두 번째로 정치의 국제화이다. 옛날에는 각각의 나라․각각의 민족이 독립적으로 서로 경쟁을 했고 국가권력의 행사가 자국에 의해서 이루어졌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요즘 우리가 이라크에 파병하는 것도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미국의 의사에 좌우되고, 이라크 포로학대문제로 미국의 정책도 세계여론에 영향을 받고 있다. 민족적 자부심 하나만 가지고 독립적으로 발전하겠다고 했던 쿠바.북한.리비아.이란 등 여러 나라들이 모두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발전속도가 늦어졌다.
이런데서 오늘날 국제적인 연대가 활성화되면서 지역공동체가 나타나고 있다. 철천지원수인 독일과 프랑스가 연대함으로 인해서 그것이 유럽공동체의 모태가 되었다. 이런 걸 볼 때 과거의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일본과 적대한다든지, 중국과 적대한다든지, 아니면 최근에 와서는 미국을 무조건 배격하는 반미주의 등의 방식, 소위 독립 운동하던 그 시절의 관점으로 오늘을 바라보면 이것은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인간과 인간,국가와 국가,민족과 민족이 과거를 뛰어넘어서 서로 연대해 가는 것이 바로 평화를 위해서나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위해서 유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화의 다양화
세 번째는 문화적 다양성이다. 전에는 자기 종교,자기 문화,자기 음식 이것 밖에 몰랐다. 그런데 하나의 세계 안에서는 내 종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가 있고, 내 민족만이 아니라 다른 민족이 있고, 내 음식만이 아니라 다른 민족의 음식이 있고, 온갖 것들이 천 가지 만 가지로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더 이상 어떤 것은 좋다. 어떤 것은 나쁘다. 어떤 것은 옳다. 어떤 것은 그르다고 할 수 없는 것임을 차차 이해해 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단일 민족으로, 단일 문화로, 단일 언어로, 어쩌면 단일 종교로 이렇게 몇 세기를 지내왔기 때문에 다양한 인종,다양한 종교,다양한 언어,다양한 생활양식이 한데 어우러지는 것에 대해서 아직 이해가 부족하고 적응이 안 되고 있다. 그래서 제3세계의 여러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생활하면서 그들의 말을 빌리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살기 어려운 나라라고 한다. 다른 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세계화 시대에 자기 정체성을 놓쳐버리면 결국 우리민족은 해체되어 버리게 되고, 자기 정체성을 찾는다고 고집하면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버릴 것이다.
어떻게 우리의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이웃과 공동체를 이루어 나갈 것인가?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어떻게 정체성을 가질 것인가?이다. 즉 나의 특색.나의 특징을 어떻게 가질 것인가? 동시에 다른 민족.다른 종교.다른 사람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어떻게 그들과 함께 조화를 이룰 것인가? 이것이 바로 이 시대에 있어서 최대의 과제이다. 쉽게 얘기하면 나의 정체성 없이 시류에 편승해가면 창조성이 없어지고, 자기 정체성을 고집하면 세계로부터 고립되어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여기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면서 주변 민족의 정체성도 인정하고, 그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민족 역사관을 정립하면서 다른 민족의 정체성․역사성 존중: 열린민족주의
우리는 국수적 민족주의가 되어서도 안되고 민족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되어서도 안된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역사의식을 분명히 하면서도 다른 민족의 정체성.역사성을 인정하고 함께 공존해 가는 길을 찾자는 의미에서 새로운 민족주의를 열린 민족이라고 일단은 이름을 붙였다. 폐쇄된 국수주의적인 민족사관이 아니라, 자기뿌리를 아는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는 자기특징.자기존엄성을 갖는 자기 역사관을 정립하면서 다른 민족.다른 종교계의 역사 또한 존중하고, 각각의 색깔을 가지고 함께 조화를 이루어나가는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역사의식은 없이 일본사람이 오면 일본 따라 갔다가 중국 사람이 오면 중국 따라 갔다가 미국사람이 오면 미국 따라 갔다가 하는 식으로 이렇게 몰 역사의식으로 살아가면 안 된다. 또한 앞으로 중국은 해체되어 망할 것이고 일본은 앞으로 큰 지진으로 태평양 바다에 빠질 것이고 그래서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 될 거다 하는 이런 역사의식을 가져서도 안된다.
우리의 문화를 어떻게 보존하고 세계에 내놓을 수 있을까?
지금의 추세를 살펴보면 경제적으로는 세계화 추세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소위 국제화 추세.연대 추세이다. 그리고 문화적으로는 자기정체성을 갖고 서로 공존하는 다양화 추세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날 우리의 문화를 어떻게 잘 보존하고 이것을 세계에 내놓을 수 있을까? 우리의 정체성이 없는 문화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기 독창성과 자기 정체성이 있는 독특한 문화를 오늘날 이 세계시장에 내놓아야 상품가치가 있어 관광거리가 되고, 세상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세계화의 큰 흐름 속에 있으면서도 세계화를 맹목적으로 따라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요즈음 세계화는 미국화된 것, 즉 미국 것이 모든 것의 표준이 되고 있다. 미국 것을 닮아 가는 것이 곧 세계화라고 하는 추세다. 그래서 세계의 돈도 다 미국 돈을 기준으로 해서 평가되고, 어떤 시스템도 다 미국 것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것이 하나의 흐름이기도 하지만, 이런 방향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시대의 흐름에 동참하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은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에게는 일본과의 연대 및 중국과의 연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미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있어서도 미국보다 중국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민족사관 정립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민족사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민족사관 정립에 있어서 세 가지 큰 과제가 있다.
상고사 정립: 민족사의 뿌리가 바르게 정검되어야 한다.
첫째가 상고사 부분이다. 우리의 상고사부분은 중국역사의 한 지류 및 변방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다. 반드시 상고사 부분은 바르게 정립되어야 한다. 사실 여기에 많은 노력이 들어가야 된다. 특히 고구려.발해 역사는 중국과의 갈등이 생길 소지가 있다.
근대사 정립 : 나라의 독립을 위해 어떻게 일본과 싸웠는지 정확한 평가를 해야 한다
두 번째는 근대사의 정립이다. 우리가 나라를 일제에 뺏기고 나라의 독립을 되찾기 위해서 어떻게 주체적으로 대응했는지를 살펴보면, 독립운동사가 제대로 정립이 안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라가 분단되고 좌우가 대립되면서, 남한의 역사 교과서는 민족독립을 위해 싸웠던 수많은 독립투사들 중 좌파적 사회주의적 계열에 소속된 사람들은 제외시켜버렸다. 그러다 보니 우리 독립운동사에는 나라를 위해 싸운 일이 별로 없다.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인 유관순님이 태극기 들고 만세 부른 것 정도의 수준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독립과 해방이 미국의 힘에 의해 주어졌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 선조가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서 어떻게 일제와 싸웠는지는 1/10도 모르고 있다.
또 반대로 북한에서는 항일독립운동은 모두 김일성과 김일성 가문 그리고 그 주위사람들이 했을 뿐, 다른 사람은 별로 한 게 없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의 왜곡으로 인해 북한은 지나친 민족주의로 고립주의의 길을 걷고, 남한은 민족자긍심이 너무도 없이 세계화 추세에 편중해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1800년대 후반의 민중봉기.동학민중혁명 등과 같이 민중이 변화된 시대에 어떻게 대응해왔는지? 그리고 그 운동이 어떻게 항일독립운동으로 이어져 왔는지? 그들이 나중에 왜 사회주의에 심취했는지? 당시 국제 사회주의의 원칙이 어땠는지? 등을 알아야 한다.
당시 일국일당주의였기 때문에 중국에 있는 우리 좌파 독립운동가들은 모두 중국 공산당 아래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러시아에 있는 사람은 러시아 공산당 휘하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비사회주의 계열인 소위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재평가 받아야 한다. 총괄적으로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우리 민족이 국내 및 해외 곳곳에서 어떻게 저항을 하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 이런 것들이 종합되어 정립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또 하나의 큰 문제는 이전에는 열심히 독립운동을 했었는데 나이 들어서 또는 일제의 강고한 탄압시기에 일제에 협조를 했었던 사람들에 대해서 민족 배신자라고 해서 독립운동사에서 모두 없애버리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역사에 남은 독립투사는 일찍 죽었거나 아니면 스스로 죽은 지사형 밖에 없다. 그가 젊었을 때 독립운동한 것은 독립운동으로 평가하고, 그가 노후에 친일한 것은 친일한대로 평가를 해야한다. 그렇게 되면 설령 오늘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친일했다하더라도 독립운동은 면면히 이어져 올 수 있다. 세대를 바꾸어 젊은이들이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독립운동의 도도한 물결은 이어져간다.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사실대로 평가해야 한다.
이러한 역사관을 정립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일본하고 일정한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소위 말해서 일본이 보는 당시의 조선과 조선에서 보는 일본은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사람들은 조선을 강점한 시기에 조선에 대해서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학교 하나도 없는 곳에 학교도 지워 주고, 다리가 필요한 곳은 다리도 놓아 주었고, 철도도 없었는데 철도도 놓아 주었다고 좋은 관점으로 본다. 하지만 한국사람들은 그 시기에 백만 이상의 노동자가 탄광촌에 끌려갔고, 20만 이상의 학도병이 징용으로 끌려갔고, 20만 이상의 여성이 정신대로 끌려갔다며 한국인의 고통을 강조한다. 이런 2가지 상이한 관점이 있기 때문에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없고 과거문제를 가지고 계속 한풀이 식으로 대응한다.
또 중국이 고구려.발해역사를 보는 관점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우리는 우리의 고유한 문화흐름으로 당연히 우리 역사라고 생각하는데, 중국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영토에 있었던 옛날역사는 모두 중국역사의 일부로 본다. 그런 관점에서 고구려도 발해도 중국역사의 변방사이며 소수민족사라고 본다. 우리는 단일민족사관으로 보고, 중국은 다민족사관 입장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것을 정립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상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대결이나 전쟁으로 가지 않고 대화와 토론이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역사관도 제대로 정립하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에 민족사가 왜곡되어도 정당하게 대응하지도 못하면서 다른 측면에서는 무조건 화만 내고 주장만 하는 오류를 동시에 범하고 있다.
현대사 재정립 : 남북으로 분단되는 과정에서 민족의 주류세력에 대한 재평가
우리나라 현대사를 살펴보면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남북으로 분단되는 그런 과정에서 민족의 주류세력이 누구였는지에 대한 재평가가 있어야 한다. 바로 남한이 보는 현대사와 북한이 보는 현대사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남한에서 미국은 생명의 은인이지만 북한에서 볼 때 미국은 우리민족을 분단시키고 통일을 저해한 철천지원수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사에 대한 객관적인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우리체제 존립을 위한 관점에서 역사를 볼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상태에서 역사를 보고 남북이 화해와 통일로 나아가는 관점에서 역사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와 미국과의 관계가 재정립되어야 한다. 미국에 일방적으로 경도되어 있는 우리의 현대 사관이 미국에 대한 일정한 자주권을 되찾는 쪽으로 정립되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우리 상고사를 정립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뿌리에 해당되는 문화적 독창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이고, 또한 근대사를 정립하려고 하는 것은 민족독립운동사를 정립하여 민족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현대사를 재정립하는 것은 미국으로부터 자주성을 어떻게 확보하고 한미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할 것이냐의 문제로서 이런 것들이 바로 주변에 있는 소위 3국과의 관계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분단 이후의 역사
우리 현대사인 분단 이후의 역사로 돌아와서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어진 과제가 통일이기 때문에 통일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 왔는지 크게 3가지 기점으로 분단이후의 역사를 살펴 볼 수 있다.
북한이 우위에 선 입장: 50~60년대 : 한국전쟁~7.4 남북 공동성명
한국전쟁 이후에서 7.4남북 공동성명이 있기까지 50년대~60년대까지는 북한이 한반도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오히려 남한은 북한에 대해서 수세적 국면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의 남북관계는 적대적일 뿐만 아니라 남한이 수세에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남한의 체제를 보존할 것인가 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였다. 그래서 이 시기의 교육은 북한은 공사주의자들인 빨갱이 집단으로 머리에 뿔이 나고, 눈이 빨갛고 언제나 남한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늑대나 살쾡이 같은 것으로 가르쳤다. 그러므로 이런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살펴주는 미국은 고마운 나라라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족통일”이란 얘기만 하여도 이것은 곧 북한에 동조하는 것이라 예견했고, 이 시기의 민족주의 세력 즉 남북을 떠나 민족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마저도 전부 친북인사.좌파로 몰려 사회적으로 매장되었다. 그래서 이 시기의 통일운동은 목숨을 걸고 순교적 자세로 해야 했다.
남북한 대등한 입장 : 1970년대~1980년대
그런데 1970년대를 기점으로 한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남한경제가 북한경제를 능가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70년대 이후에 남북한은 대등한 입장이 되었다. 그래서 그 당시 7.4 남북공동성명 채택은 대등한 남북한이 상호경쟁하면서 어떻게 평화적 통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였다. 비록 이전의 적대적 관계가 여전히 남아있지만 남북한이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하는 것들이 최대의 과제였다.
남한이 우위에 선 입장 : 1990년대~
그런데 1990년도 이후로 남북한 균형이 완전히 깨어져버렸다. 북한이 오히려 수세에 몰리고 남한이 이제 우위에 섰다. 그런데도 남한은 아직도 과거 수세에 몰렸던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등한 관계를 설정해야 될 시기에도 북한이 침략해온다라고 하면서 독재자는 권력을 유지해 왔다. 92년 당시 맺었던 남북 기본합의서의 남북 평화공존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시행은 안 되었다. 그러니 90년도 초에 이미 정세가 바뀌었는데도 우리는 90년대 와서야 겨우 남북이 실질적으로 평화공존하는 원리를 정치적인 차원에서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정치인들이 북한이 침략할 것이라고 위협을 하여도 이제 더 이상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남북기본합의서와 햇볕정책으로 마무리 되었다. 햇볕정책은 통일정책은 아니다. 남북이 합의 이혼을 한 것이다. 그 동안은 서로 미워하면서 별거하다가 이제는 너는 너, 나는 나로서 합의 이혼하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자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 자체는 분단 고착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우리는 이 햇볕정책의 울타리를 못 벗어나고 있다. 햇볕정책은 분단 2기 평화공존 정책의 마무리 작업이다. 이미 객관적 사실과 역사는 어떤가. 1990년도 이후로는 남북의 균형이 완전히 깨지고, 남한 주도하에 한반도 전체문제를 바라 보아야 할 시점에 왔다.
이제 햇볕정책을 넘어야 한다.
햇볕정책은 무엇인가? 이웃과 공존하고 이웃에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을 주자는 것인데, 지금은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좀더 적극적으로 한반도 전체를 봐야한다. 북한은 내 나라로서 북한민중을 살리는 것, 북한경제를 복구하는 것 바로 우리의 일이다. 북한은 경쟁하고 적대하는 위협적 존재가 아니다. 이미 북한에 대한 위협은 사라졌다. 북한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 위험한 존재일 뿐이다. 단지 언제 어떻게 사건이 터져 우리한테 많은 손실을 가져다줄지 모르는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은 북한으로부터의 이런 위험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하는 이런 관점에 서야 한다. 즉 그 위험을 막기 위해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에 대한 통제력을 가져한 한다.
한반도 전체에 대한 통제력을 가져야 된다.
그런데 지금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우리는 한반도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다. 취약해진 북한을 어떻게 할거냐를 두고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고 있다. 만약에 북한이 붕괴되어서 남한에 흡수가 된다면 한반도에 대한 통제력은 미국이 장악할 것이다. 앞으로 세계사의 최대 경쟁상대는 미국과 중국이다. 그런데 중국은 북한과 이천킬로가 넘는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국경변에 조선족까지 살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국가안위의 측면에서 북한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려고 할 수밖에 없다. 그 동안 북한은 철저한 자주독립노선을 걸었기 때문에 중국의 영향이 미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북한이 정치적으로 고립되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체제붕괴위험이 있는데다 최근에는 미국의 강경정책으로 더욱 어려워지니까 북한으로서도 기댈 곳이 중국밖에 없게 되었다. 중국으로서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되었다. 사실은 김정일 사후가 가장 위험하다. 중국이 북한 안에 친중정권을 세우면 남한에 있어서 미국의 영향력만큼이나 북한에 대한 통제력을 중국이 갖게 된다. 그러면 남북간의 평화공존은 될 수 있지만 즉, 위험성은 좀 없어질지 몰라도 한반도 통일은 정말 어려워진다. 중국은 이미 동북3성과 북한까지 포함한 중국동북지방의 경제 개발이라는 측면을 생각하고 있다. 고구려.발해사에 대한 동북공정도 크게 보면 이 일환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누구도 이것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 중국한테 부탁해서 북한을 길들일 생각만 하고 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미국은 현재 남한에 갖고 있던 통제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을 조기에 붕괴시켜서 한반도를 흡수 통일하면 결국은 남한 내의 보수 세력이 주도권을 잡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은 강화되고 오래 지속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붕괴전략으로 나갈 수 밖에 없다. 군사적 공격을 통한 강압적 붕괴전략이든, 인권문제든지, 경제적인 고립이든, 여러 다른 것들을 통해서 평화적으로 붕괴를 시키든지, 단지 방법상의 차이 정도 밖에 없다. 민주당이던 공화당이던 근본적인 것은 똑같다. 그런데도 한국은 제 민족,제 땅,제 역사를 남한테 맡겨놓고 구경만 하고 있다. 조그마한 경제적 이익에 눈이 어두워 “미국이 기침하면 우린 감기 든다” “중국하고 잘못했다가는 핸드폰 못 팔아먹는다” 이런 좁은 생각에서 지금 전전긍긍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통제력을 어떻게 우리가 가질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한반도에 대한 통제력을 갖지 못한다면 민족 진로에 있어서의 절대적 위기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북한을 즉 김정일 정권을 도와주어야 한다. 김정일 정권이 문제가 아니다. 정권이라는 것은 5년,10년…유한하다.
바로 북한에 대한 통제력을 어떻게 우리가 가질 것인가? 북한은 이미 시장경제가 되어 가고 있다. 즉 북한시장의 90% 이상이 중국 상품이다. 모든 시스템이 중국화 되어 가고 있다. 식량에 대한 곤궁함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중국의 조그마한 지원도 북한주민들이나 북한정부에게는 엄청난 고마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남한지원이 사실은 대량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시장에 있는 상품들이 한국상품으로 채워져야 한다. 설령 북한관리들이 한국사람 만나서 도움을 얻으려고 하는 것을 나쁘게만 볼 게 아니다. 김정일 정권이 붕괴되고 난 후 새로운 체제가 들어섰을 때, 새로운 정권을 잡은 사람들 대부분은 친남 인사들이 들어서야 한다.
북한 개발 및 복구는 남한정부 차원에서, 국민적인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더 이상 북한을 우리를 공격한다는 그런 관점에서만 봐서는 안된다. 요즈음 뜨거운 감자인 북한의 핵개발 문제도 공격용이라기 보다는 방어용이라고 보아야 한다. 만약 북한을 붕괴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면 우리나라 역사관 정립에 있어서 특히 현대사를 정립하는데 큰 손실이 된다. 또한 앞으로 2천만 동포가 오랜 세월 동안 열등의식에서 생활한다는 것도 큰 문제다. 현재 북한사람들의 월급이 약 3천원 정도라고 한다. 북한 돈 만원은 우리 돈 만원과 같다고 한다. 만약에 지금 북한에 산림녹화를 하기 위해서 나무를 심는다고 할 때, 지금은 한달에 만원이면 산에 나무를 심을 수 있는데 통일이 된 후 나무를 심는다면 하루에 일당 5만원 줘도 산에 나무를 심을 수가 없을 것이다. 북한 복구비용에 드는 통일비용이 엄청나게 들어 것이다. 가히 천문학적으로 들어가게 된다.
북한 스스로 붕괴되면 어쩔 수 없이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되지만, 우리가 굳이 북한을 붕괴시킬 아무런 이유가 없다. 첫째, 위험하다. 두 번째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민족사적으로 이천만 북한주민에게 열등의식만 심어준다. 북한에 대한 지원은 인도적 지원뿐만 아니라, 북한개발과 동시에 아울러 북한의 인권개선도 요구해야 된다. 더 이상 북한정권을 보고 옳으니 그르니 할 시대는 지났다.
분단 제3기를 맞은 지금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길
90년대 이후로 접어들면서, 우리가 이미 90년대 이후의 이런 변화를 편견 없이 볼 수 있었다면, 300만 북한동포를 굶어죽게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거의 적대논리에 빠져버린 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도, 결국은 북한주민 300만명이나 굶어죽는 인류역사상 유래가 없는 대 비극을 초래했다. 지금 우리가 햇볕정책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역사적인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햇볕정책을 뛰어 넘는 대북정책이 있어야 한다. 햇볕정책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햇볕정책을 뛰어 넘어야 한다.
남북의 화해와 협력
우리민족이 나아갈 길은 첫째,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다. 북한 문제를 우리 문제로 보고 적극적으로 한반도를 경영하는 관점에 서서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일본과의 한일경제공동체
두 번째, 일본하고 과거에 오랫동안 적대관계에 있었고 아직도 여러 문제가 풀리지 않았지만, 오늘날 세계의 흐름으로 볼 때 이제는 한일경제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적대감을 뛰어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우리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야 하고, 일본은 과거사에 대해서 진솔한 사죄가 필요하다. 일본 지도자들은 역사적 안목이 없는 것 같다. 일본의 장기적인 경기침체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세계적 흐름은 지역공동체로 나아가고 있다. 중화지역공동체 즉 중국.대만.홍콩.싱가포르.동남아에 있는 화교로 엮은 엄청난 큰 경제공동체이다. 일본은 국가단위로 보면 세계 제2위 경제국이지만, 이런 공동체적인 입장에서 볼 때는 이미 약소자본에 속하기 때문에 진로가 없다. 따라서 일본은 남북간의 통일,한일간의 경제공동체를 형성해야 동아시아의 안정을 가져온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거대한 중국경제의 소용돌이에 흡수되어 버릴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동시에 중국과의 경제협력,중국과의 우호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미국과의 협력
그리고 미국과의 협력 또한 중요하다. 왜냐면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자주권을 확보해야하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국과의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동아시아에 있어서의 중국.러시아.일본으로부터 우리가 독자성을 유지하는데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러시아와의 우호관계를 통해서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기초 위에서 우리는 EU와 인도를 중심으로 한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등과의 교류도 물론 증대해 나가야 된다.
한민족네트워크.한민족공동체
이와 아울러 우리가 또 하나 고려해야 될 것은 한민족 네트워크다. 한민족 네트워크.한민족 공동체라고 하면 남한 5천만,북한 2천만 이외에도 미국 250만․중국 200만,일본 60만,구소련권 50만, 그리고 기타 50만 이렇게 해서 지금 600만~700만 정도 되는 해외 교포까지도 엄청난 자원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민족정책이 중국에 있는 우리 조선족을 한국에 데리고 오는 게 목적이 되서는 안 된다. 오히려 중국 조선족들은 중국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사회적으로 진출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야 된다. 그래서 중국사회에서 중국만큼이나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즉 중국에 친한파 200만명이 있다는 것은 민족적으로 엄청난 자산이다. 그런데 중국조선족들을 중국으로부터 고립시켜 버리는 것이 좋은 민족정책일까? 그러니 백 년 전의 민족정책과 지금의 민족정책은 달라져야 한다. 중국공민으로서 중국사회에서 아주 우수한 인력으로서 조선족이 성장하도록 지원을 해야 된다. 조선족은 한국에 와서 식당에 취직해 허드렛일이나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조선족사회를 지금 붕괴시키고 있다. 남한이 있음으로 해서 중국의 조선족 사회가 성장한 것이 아니고, 남한으로 인해서 중국 조선족사회가 붕괴되어 가고 있다. 우리는 교민들에 대한 정책이 좀 더 깊이 연구되어야 한다.
글을 맺으며
결론적으로 첫째, 민족사관이 정립되어야 한다. 상고사.근대사.현대사 부분이 새로이 정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둘째, 주변국과 공존하는 열린 민족주의 입장을 가져야 한다. 셋째, 동아시아 평화를 선도하는 지역공동체 리더가 되어야 한다. 유럽공동체에 있어서 중요한 기구들은 모두 벨기에나 네덜란드에 있다. 다시 말하면 중국.한국.일본이라고 하는 이 동아시아 공동체를 우리가 만들어서 사무국을 중국에 두자고 하면 일본이 반대할 것이며, 일본에 두자고 하면 중국이 반대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 한반도가 이런 지역공동체의 중심이 될 수 있다. 그러니까 4강의 힘에 의해서 우리가 늘 분열되는 것이 아니라 4강을 화합시키고 협력시키는 그런 촉매제 역할을 우리가 함으로써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서 우리가 크게 기여하는 그런 길을 찾아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미래는 열린 민족주의가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이 되고 또 전인류적 전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문명을 선도하는 세력이 새로운 진보가 되어야 한다. 새로운 진보는 환경문제와 제3세계의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을 하며, 민족을 뛰어넘고 경제개발의 차원을 뛰어넘어 인류적이고 지구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문명․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선도하는 집단이다. 이 새로운 진보가 성장해서 열린민족주의의 보수와 함께 두개의 수레바퀴로 굴러가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 나가야 된다.
새로운 문명과 문명사 전환을 전개하는 운동으로 매진해야 한다.
사실은 나 같은 사람은 열린 민족주의라 하더라도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정말로 스님으로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인류적인 관점에서, 환경적인 관점에서, 인류평화.인류공동체 문명을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이 욕망을 중심으로 한 죽음의 문명을 어떻게 만 생명이 공존하는 문화로 전환할 것인가? 사실은 이것이 과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세속 사람들이 해야 할 민족의 진로가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이 문제를 거론을 할 뿐이다. 이것이 자리가 좀 잡히면 우리는 새로운 문명과 문명사 전환을 전개하는 운동으로 매진해야 한다. 환경문제.제3세계 빈곤문제.평화문제 등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새로운 주류로 등장할 시대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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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삶과 공동체를 위한 새로운 역사관
법륜스님(좋은벗들 이사장)
요즘 우리사회는 많은 혼란을 겪고 있다. 소위 말해서 세계화라고 하는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새로운 변화가 도래해 오고 있다. 또 지금까지 인류 역사는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ꡑ이라고 해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와는 교류를 하면서 가까이 있는 나라는 침공을 하는” 외교 정책이 주류를 형성해 왔다. 그러나 이런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EU같은 지역공동체가 새롭게 나타나고, 동남아시아․북미․남미 등 지역공동체들이 새로운 주류로 부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 지역에서는 같은 민족이면서도 남․북이 적대하고 대립하고 있다. 가까이 있는 일본과 중국과의 관계를 보더라도 우리는 아직도 일본과 적대적인 감정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최근 중국은 동북공정이라고 해서 조선 고대사 특히 고구려․발해사를 중국역사의 일부로 편재시키려 하고 있고, 이런 상황들이 한국사회에 많은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우리민족은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서 한국사회는 어떤 합의점이나 어떤 방향도 잡고 있지 못하고 있다. 정권이 자주 교체되면서 민주화라고 하는 측면에서는 많은 진척이 있어왔지만 민족의 진로와 국가 발전의 장기적 계획을 세운다는 측면에서 보면 지난 20여년 간은 아무런 계획도 설계도 없이 각 정권은 그때그때 일어나는 일들에 대응하기 급급하여 우왕좌왕하면서 지내온 것 또한 사실이다. 또한 우리는 95년도 이후 나타난 북한의 경제적 붕괴와 식량난으로 300여만 명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간 민족사의 최대 참극을 맞고서도 이데 대한 어떤 해결책도 펼치지 못하였다. 과거의 적대감정에 휩싸여서 제 동족이 300만 명이나 굶주려 죽는 것을 막기는 커녕, 오히려 조장하는 측면까지 있었다. 또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와 지금 제기되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문제에 대해서도 목소리만 높지 아무런 해결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우리는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어떻게 확보하고 이웃나라 사람들과 어떻게 손을 잡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측면에서 과연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왜 역사를 알아야 하는가?
역사라고 하는 것은 시간적인 인과관계이다. 인류사의 흐름을 볼 때, 시간적으로 원인이 있고 결과가 나타난다. 결과를 보면 원인을 찾을 수 있고, 원인을 보면 결과를 예측할 수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역사를 통해서, 자기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잘 모르고 있다. 내가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지 역사를 통해서 자기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둘째,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하는 방향을 잡을 수 있다. 방향을 잡는다는 것은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는 문제이며 그리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이 미래가 예측이 되면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 즉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어떻게 우리의 요구대로 수정․보완할 것이냐 하는 측면에서 역사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의 운명을 우리손으로 결정짓기 위해서는 첫째로 역사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역사만 알면 되는가? 그렇지 않다. 역사는 우리의 현실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현실에 올바르게 대응하는데 있어서의 한 요소일 뿐이다. 우리가 좌표축으로 얘기하면 역사라는 것은 X축과 같다. 수직선과 같은 것으로, 원점을 중심으로 해서 과거가 있고 미래가 있다. 그러므로 역사만 갖고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파악하고 예측하는 것은 정확성이 떨어진다.
그럼 어떤 요소가 하나 추가되어야 하는가? 둘째로 바로 우리 주변국들과의 관계다. 소위 말해서 역사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제 관계를 알아야 한다. 민족공동체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들의 주변관계 즉, 우리나라 주위에 있는 일본.중국.러시아.미국 등 4강들의 역량을 파악함과 동시에 앞으로 이들 4강의 진로가 모두 파악되어야만 우리의 운명을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이처럼 역사와 사회는 X축.Y축과 같아서 우리의 삶을 수직선이라고 하는 단순한데서 보다 확대된 평면으로 옮겨 놓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역시 부족하다.
세 번째 우리 민족 주체 역량이 파악되어야 한다. 이 주체 역량은 마치 Z축과 같아서 우리들의 삶을 단순한 평면에서 입체 공간적인 3차원의 관점을 갖게 만든다.
여기에다가 넷째로 우리가 상황에 맞게 시기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대응전략이 마련되고 구사되어야 한다. 이것이 4차원의 세계다. 즉 시간축이 하나 첨가되어야 한다. 우리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현재.미래라고 하는 역사관, 우리들의 제 이웃 관계인 사회관, 우리들 주체의 역량, 그리고 현실에 시기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의 구사, 이런 것들이 종합될 때 우리는 우리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먼저 역사관이 올바르게 정립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주변국가의 관계가 정립되고, 주체의 역량을 형성하여 능수능란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민족의 역사관(민족공동체 문화사) 정립
이러한 여러 요소 가운데 첫째가 역사관 정립이다. 민족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민족 공동체 문화사라고도 할 수 있다. 민족이라고 하는 것은 생물학적인 것보다는 어떤 문화공동체적인 성격이 강하다. 민족의 문화사 속에는 정치.경제.사회.문화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우리 민족사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비유를 들어서 말하면 하늘에서 비가 내려서 백두산에 떨어졌지만, 그 물줄기는 각기 다른 골짜기로 나뉘어져서 흘러 하나는 압록강이 되고, 하나는 두만강이 되고, 하나는 쑹화강이 되었다. 이렇게 하나의 백두산에서 발원하더라도 서로 다른 강물이 되어 서해로, 동해로, 오오츠크해로 들어간다. 또 압록강이라고 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물이 아니다. 내려오면서 수많은 지류의 물들이 합류해서 큰 압록강이 된다. 그러므로 다른 강물이지만 발원지가 같은 것도 있고 같은 강물이지만 서로 다른 발원지를 갖는 지류들이 합해진 것도 있다. 이처럼 민족의 시원을 살펴 볼 때, 하나의 시조,부족,민족으로부터 하나의 선진문명이나 선진문화가 단일하고 일관되게 내려오는 것은 아니다. 즉 하나로부터 여럿으로 갈라지기도 하고 여럿이 모여 하나가 되기도 한다. 강물의 발원지를 따라 올라가 보면 각각의 다른 강물의 발원지가 같은 백두산 이라고 할 때 서로 백두산이 자기 강물의 원류라고 다툴 일이 아니듯이, 각 민족은 모두 자기 민족의 뿌리를 찾아 올라갔을 때, 우리민족의 역사가 일본역사와 뿌리를 하나로 할 수도 있고, 만주족과 뿌리를 하나로 할 수도 있고, 몽골족과 뿌리를 하나로 할 수도 있고, 선비족과 뿌리를 하나로 할 수가 있다. 즉 민족의 시원에 있어서 어떤 설화가 동일할 수도 있다. 그것은 긴 세월을 내려오면서 이 지역․저 지역으로 나누어져서 각각의 자기 특색을 가지고 가다보니까 별개의 민족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시원을 함께 하는 민족은 같은 문화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그 뿌리에 있어서 공통점이 있는 민족들이 있고, 또 서로 서로가 교류가 많아 매우 비슷한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전혀 다른 뿌리에서부터 출발할 때 도 있다. 우리는 중국과 가까이 있고 문화교류가 아주 많았기 때문에 우리 문화를 중국 문화의 한 지류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뿌리를 찾아가 보면 우리의 뿌리는 중국 한족의 뿌리와는 그 근원을 달리한다. 그래서 중국은 차이나․티벳 어족에 속하고, 우리는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한다. 인도와 유럽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 그런 측면에서 몽골족.만주..조선족.일본족은 민족사에 있어 어떤 근원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실한 상고사를 복원하려면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잃어버린 상고사를 복원하는데 있어서 중국의 사선만을 뒤적거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역사.만주족역사.몽골역사속에서, 또 그들의 언어속에서 어원을 찾아 추적하고 연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중국의 옛날 역사책에 기록된 편린을 중심으로 해서 우리 상고사를 재구성하기 때문에 중국의 변방사가 될 수 밖에 없다. 당연히 중국 사람들은 자기 민족을 중심으로, 자기 역사를 중심으로 우리 민족을 보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변방에 있는 나라라고 보는 것이다. 변방이라서 변방이 아니라 어느 나라든지 모두 자국을 중심으로 바라보면 이웃나라가 변방이 되는 것이다. 우리 국사에 등장하는 중국사․일본사라는 것도 우리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변방사가 된다. 「삼국지위지동이전」에는 삼국시대의 위나라의 눈으로 위나라 동쪽에 있는 오랑캐 민족이라고 그 당시 우리나라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잃어버린 우리의 옛 역사를 찾는데 귀중한 자료이면서 그 기록들은 동시에 바로 그들의 관점에서 본, 그들의 눈에 비친 역사, 그들의 눈에 비친 문화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상고사 부분의 많은 역사자료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오늘날 실증주의 학자들이 이런 중국 사서 기록속에 나타난 편린을 주워 담아 우리 역사의 옛 부분을 복원하는 것은 많은 오류와 왜곡 그리고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런 사서의 기록만 갖고 옛 역사를 논하는 큰 한계와 오류에 빠져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아무런 실증적 자료도 없이 무조건 우리 역사는 이렇다하고 주장해서도 안된다. 문화적으로 우리는 일본.만주족.몽골족 그 외 중간에 없어졌지만 선비족이라든지 이러한 많은 민족들과 소위 동아시아의 동북지역 즉 산동반도와 황하강 이북지역에서 오래전부터 독립적인 문화를 형성해 왔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역사는 중국역사의 한 아류나 지류가 아니고 그 뿌리를 달리하고 있다. 뿌리를 달리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우수하다든지 또는 중국사가 문제가 있다든지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민족사의 시원을 달리하고 있다는 객관적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민족의 시원 : 온갖 물줄기들이 결합하여 우리 역사를 만들고 있다
역사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흐름만으로 계속 단일하게 흘러가는 게 아니다. 백두산에서 출발한 두만강이지만 바다에 이르기 위한 그 과정에는 중간 중간에 수만 갈래의 강물과 강줄기가 합류되어 두만강을 형성한다. 그런 것처럼 우리민족의 시원이 한 선진문명을 가진 부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오늘날의 만주지역과 한반도에 이르면서 그 땅에 있었던 토착세력인 수많은 씨족 그리고 부족 등 이런 크고 작은 문화가 합류되어 오늘의 우리 민족사를 구성하고 있다. 우리가 단군을 말하는 것은 민족사의 시원이라는 것이지, 꼭 단군조선만이 우리 역사라고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소위 말해서 예맥이라 불리는 사람들, 동예라 불리는 사람들, 마한.진한.변한이라 불리는 사람들, 부여라 불리는 사람들, 옥저라 불리는 사람들, 수많은 지류들이 합해지고, 온갖 토작부조들이 결합하고 결합해서 오늘의 우리 민족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고구려를 이해하거나 또는 삼국시대를 이해할 때 지금과 같은 사회성격으로 그때를 이해하면 안된다. 그런데도 오늘 우리는 상고사를 이해 할 때 오늘같이 하나의 지역사회가 아주 단일하게 통합되어있는 그런 관점으로 고대사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조선에 대해서 그때 무슨 그런 왕국이 건설될 수 있었겠느냐하며 그 자체를 부정해버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고조선을 만주와 한반도를 통치한 단일한 통일국가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둘 다 오늘의 관점에서 그 때를 바라보는 것으로 옳지 않다.
이런 점에서 다시 한번 말한다면 역사의 시원이 동일하게 출발했지만 갈라져서 여러 민족을 형성하기도 하고, 또 오늘날 하나의 민족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한 부족의 단일한 성장이 아니라 각 토착세력의 만 갈래 물줄기가 결합해서 오늘을 형성하고 있다. 이 두 가지 특징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든, 만주족이든, 일본민족이든, 몽골족이든, 그 갈라지기 이전 세월로 오래 오래 전으로 올라가면, 어떤 문화적 동질성이 있고 어떤 신화의 공통도 있고, 언어적 공통점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웃민족과 다투더라도 문화적으로 볼 때는 같은 물줄기의 갈라짐에 속한다. 또한 여러 토착세력이 비록 후진적 문명이긴 하지만 그들 고유의 문화가 고조선의 문화와 결합을 하여, 즉 온갖 색깔이 여기에 섞이면서 오늘 우리 민족 문화의 색깔이 된 것이지 하나의 단일한 색깔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흘러내려온 것은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민족사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민족사 이해 : 우리민족의 뿌리
이런 관점에서 우리 민족사를 이해한다면 우리 민족의 뿌리는 중국의 아류나 지류가 아니라 중국 민족의 뿌리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은 독립성을 갖는게 이 꼭 좋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민족사의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삼국시대 이후로 오면서 우리는 중국문화와 많은 교류를 했다. 그래서 출발점은 달랐지만 같은 뿌리를 두고 갈라진 민족들보다도 이웃함으로 해서 문화적 교류가 아주 많았다. 뿌리의 바탕이 되는 오랜 문화에서는 우리가 더 선진문화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삼국이후로는 중국문화가 우리문화보다 더 높았기 때문에 그 많은 중국의 선진문화가 우리 쪽으로 흘러들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문화 속에 중국의 문화.한족의 문화가 많이 베어있다. 특히 조선조 이후에는 이 문화의 정체성.문화의 독창성이 훼손될 만큼 문화이식이 심했다. 이러다 보니 우리민족문화는 중국문화의 아류쯤으로서 이해하게 되어 중국해 대해 무의식적으로 민족의 정체성.문화의 정체성에 대해서 열등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우리문화가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중국 변방의 작은 나라로 있으면서도 독립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은 뿌리가 다른 데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남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서양문화
또 우리는 개항 이후 서양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남북이 분단된 이후, 서양문화가 남한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서양문화가 막대하게 영향을 준 나라는 아마 지구상에 찾기 어려울 정도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특히 종교는 문화중에서도 아주 핵심이기 때문에 잘 변하지 않는다. 영국은 인도를 300년 지배했는데도 종교에는 영향을 못주고, 일본도 서양문화를 일찍 받아들이고 매우 서양화했는데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일본사회에 차지하는 비율은 1%도 안된다. 그런데 왜 남한 사회에서는 50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다른 건 말할 것도 없고, 종교까지도 기독교 문화가 주류를 형성할 만큼 이렇게까지 바뀌었을까?. 우리가 조선조 500년 동안에 중국문화로 바뀐 그 변화보다도 이 50년 동안에 변한 게 더 크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민족으로서 중국에 있는 조선족이나 북한사람들이 남한에 왔을 때는 남의 나라에 온 것보다 더 어리둥절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바로 분단이후 남한사회가 문화적으로 미국의 거의 식민지와 같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문화가 미국이나 유럽 문화와 다른 것은 우리 고유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많은 물감이 타졌지만 그 본래의 색깔인 우리의 색깔을 유지하고, 그들과 다른 독립적인 문화를 형성해가고 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더라도 중국과 다른 것은 이 뿌리에 해당하는 상고사부분이 중국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늘날 중국과 많은 문화적 공통점을 갖는 것은 바로 삼국시대 이후 중국과 많은 문화적 교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서양문화와도 다른 것은 동양문화의 문화적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문화 속에 서양 문화적인 많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짧은 시간 내에 문화적 교류라기 보다는 식민지문화이식이라고 말해도 좋은 정도의 급속한 문화 이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를 맞으며
바로 이러한 모든 것을 현실적 토대로 하여 오늘 우리에게 닥친 새로운 세상.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이 새로운 시대의 핵심은 무엇인가?
경제의 세계화
오늘의 시대를 세계화시대라고 말하기도 하고 정보화시대다고 말하기도 한다. 세계화라는 것은 경제적인 관점이강하다. 국경이 없어지고 모든 것들이 하나로 유통된다. 그래서 국가경제는 점점 해체되어 가고 있다. 결국 세계자본주의 속으로 모든 경제가 종속되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고 통합되어간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이 경제성장을 조금 연착륙하겠다는 총리의 말 한 마디에 한국 주가가 폭락해버렸다. 미국에서 금리를 좀 인상하겠다. 그것도 올려봐야 0.25% 정도이고 올해말까지 많이 올려봐야 최대로 1% 아니면 0.5% 정도 올리는데, 이 며칠 사이에 블랙 먼데이니 뭐니 해서 한국주가가 완전히 폭락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경제적의 독립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국민은행은 이름이 국민은행이지 주식의 70%가 외국인이 가지고 있거, 한국이 자랑하는 삼성전자 주식의 60% 이상이 외국인이 가지고 있다.
정치의 국제화 : 지역공동체
두 번째로 정치의 국제화이다. 옛날에는 각각의 나라․각각의 민족이 독립적으로 서로 경쟁을 했고 국가권력의 행사가 자국에 의해서 이루어졌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요즘 우리가 이라크에 파병하는 것도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미국의 의사에 좌우되고, 이라크 포로학대문제로 미국의 정책도 세계여론에 영향을 받고 있다. 민족적 자부심 하나만 가지고 독립적으로 발전하겠다고 했던 쿠바.북한.리비아.이란 등 여러 나라들이 모두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발전속도가 늦어졌다.
이런데서 오늘날 국제적인 연대가 활성화되면서 지역공동체가 나타나고 있다. 철천지원수인 독일과 프랑스가 연대함으로 인해서 그것이 유럽공동체의 모태가 되었다. 이런 걸 볼 때 과거의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일본과 적대한다든지, 중국과 적대한다든지, 아니면 최근에 와서는 미국을 무조건 배격하는 반미주의 등의 방식, 소위 독립 운동하던 그 시절의 관점으로 오늘을 바라보면 이것은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인간과 인간,국가와 국가,민족과 민족이 과거를 뛰어넘어서 서로 연대해 가는 것이 바로 평화를 위해서나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위해서 유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화의 다양화
세 번째는 문화적 다양성이다. 전에는 자기 종교,자기 문화,자기 음식 이것 밖에 몰랐다. 그런데 하나의 세계 안에서는 내 종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가 있고, 내 민족만이 아니라 다른 민족이 있고, 내 음식만이 아니라 다른 민족의 음식이 있고, 온갖 것들이 천 가지 만 가지로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더 이상 어떤 것은 좋다. 어떤 것은 나쁘다. 어떤 것은 옳다. 어떤 것은 그르다고 할 수 없는 것임을 차차 이해해 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단일 민족으로, 단일 문화로, 단일 언어로, 어쩌면 단일 종교로 이렇게 몇 세기를 지내왔기 때문에 다양한 인종,다양한 종교,다양한 언어,다양한 생활양식이 한데 어우러지는 것에 대해서 아직 이해가 부족하고 적응이 안 되고 있다. 그래서 제3세계의 여러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생활하면서 그들의 말을 빌리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살기 어려운 나라라고 한다. 다른 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세계화 시대에 자기 정체성을 놓쳐버리면 결국 우리민족은 해체되어 버리게 되고, 자기 정체성을 찾는다고 고집하면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버릴 것이다.
어떻게 우리의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이웃과 공동체를 이루어 나갈 것인가?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어떻게 정체성을 가질 것인가?이다. 즉 나의 특색.나의 특징을 어떻게 가질 것인가? 동시에 다른 민족.다른 종교.다른 사람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어떻게 그들과 함께 조화를 이룰 것인가? 이것이 바로 이 시대에 있어서 최대의 과제이다. 쉽게 얘기하면 나의 정체성 없이 시류에 편승해가면 창조성이 없어지고, 자기 정체성을 고집하면 세계로부터 고립되어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여기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면서 주변 민족의 정체성도 인정하고, 그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민족 역사관을 정립하면서 다른 민족의 정체성․역사성 존중: 열린민족주의
우리는 국수적 민족주의가 되어서도 안되고 민족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되어서도 안된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역사의식을 분명히 하면서도 다른 민족의 정체성.역사성을 인정하고 함께 공존해 가는 길을 찾자는 의미에서 새로운 민족주의를 열린 민족이라고 일단은 이름을 붙였다. 폐쇄된 국수주의적인 민족사관이 아니라, 자기뿌리를 아는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는 자기특징.자기존엄성을 갖는 자기 역사관을 정립하면서 다른 민족.다른 종교계의 역사 또한 존중하고, 각각의 색깔을 가지고 함께 조화를 이루어나가는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역사의식은 없이 일본사람이 오면 일본 따라 갔다가 중국 사람이 오면 중국 따라 갔다가 미국사람이 오면 미국 따라 갔다가 하는 식으로 이렇게 몰 역사의식으로 살아가면 안 된다. 또한 앞으로 중국은 해체되어 망할 것이고 일본은 앞으로 큰 지진으로 태평양 바다에 빠질 것이고 그래서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 될 거다 하는 이런 역사의식을 가져서도 안된다.
우리의 문화를 어떻게 보존하고 세계에 내놓을 수 있을까?
지금의 추세를 살펴보면 경제적으로는 세계화 추세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소위 국제화 추세.연대 추세이다. 그리고 문화적으로는 자기정체성을 갖고 서로 공존하는 다양화 추세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날 우리의 문화를 어떻게 잘 보존하고 이것을 세계에 내놓을 수 있을까? 우리의 정체성이 없는 문화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기 독창성과 자기 정체성이 있는 독특한 문화를 오늘날 이 세계시장에 내놓아야 상품가치가 있어 관광거리가 되고, 세상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세계화의 큰 흐름 속에 있으면서도 세계화를 맹목적으로 따라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요즈음 세계화는 미국화된 것, 즉 미국 것이 모든 것의 표준이 되고 있다. 미국 것을 닮아 가는 것이 곧 세계화라고 하는 추세다. 그래서 세계의 돈도 다 미국 돈을 기준으로 해서 평가되고, 어떤 시스템도 다 미국 것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것이 하나의 흐름이기도 하지만, 이런 방향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시대의 흐름에 동참하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은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에게는 일본과의 연대 및 중국과의 연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미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있어서도 미국보다 중국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민족사관 정립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민족사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민족사관 정립에 있어서 세 가지 큰 과제가 있다.
상고사 정립: 민족사의 뿌리가 바르게 정검되어야 한다.
첫째가 상고사 부분이다. 우리의 상고사부분은 중국역사의 한 지류 및 변방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다. 반드시 상고사 부분은 바르게 정립되어야 한다. 사실 여기에 많은 노력이 들어가야 된다. 특히 고구려.발해 역사는 중국과의 갈등이 생길 소지가 있다.
근대사 정립 : 나라의 독립을 위해 어떻게 일본과 싸웠는지 정확한 평가를 해야 한다
두 번째는 근대사의 정립이다. 우리가 나라를 일제에 뺏기고 나라의 독립을 되찾기 위해서 어떻게 주체적으로 대응했는지를 살펴보면, 독립운동사가 제대로 정립이 안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라가 분단되고 좌우가 대립되면서, 남한의 역사 교과서는 민족독립을 위해 싸웠던 수많은 독립투사들 중 좌파적 사회주의적 계열에 소속된 사람들은 제외시켜버렸다. 그러다 보니 우리 독립운동사에는 나라를 위해 싸운 일이 별로 없다.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인 유관순님이 태극기 들고 만세 부른 것 정도의 수준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독립과 해방이 미국의 힘에 의해 주어졌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 선조가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서 어떻게 일제와 싸웠는지는 1/10도 모르고 있다.
또 반대로 북한에서는 항일독립운동은 모두 김일성과 김일성 가문 그리고 그 주위사람들이 했을 뿐, 다른 사람은 별로 한 게 없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의 왜곡으로 인해 북한은 지나친 민족주의로 고립주의의 길을 걷고, 남한은 민족자긍심이 너무도 없이 세계화 추세에 편중해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1800년대 후반의 민중봉기.동학민중혁명 등과 같이 민중이 변화된 시대에 어떻게 대응해왔는지? 그리고 그 운동이 어떻게 항일독립운동으로 이어져 왔는지? 그들이 나중에 왜 사회주의에 심취했는지? 당시 국제 사회주의의 원칙이 어땠는지? 등을 알아야 한다.
당시 일국일당주의였기 때문에 중국에 있는 우리 좌파 독립운동가들은 모두 중국 공산당 아래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러시아에 있는 사람은 러시아 공산당 휘하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비사회주의 계열인 소위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재평가 받아야 한다. 총괄적으로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우리 민족이 국내 및 해외 곳곳에서 어떻게 저항을 하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 이런 것들이 종합되어 정립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또 하나의 큰 문제는 이전에는 열심히 독립운동을 했었는데 나이 들어서 또는 일제의 강고한 탄압시기에 일제에 협조를 했었던 사람들에 대해서 민족 배신자라고 해서 독립운동사에서 모두 없애버리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역사에 남은 독립투사는 일찍 죽었거나 아니면 스스로 죽은 지사형 밖에 없다. 그가 젊었을 때 독립운동한 것은 독립운동으로 평가하고, 그가 노후에 친일한 것은 친일한대로 평가를 해야한다. 그렇게 되면 설령 오늘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친일했다하더라도 독립운동은 면면히 이어져 올 수 있다. 세대를 바꾸어 젊은이들이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독립운동의 도도한 물결은 이어져간다.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사실대로 평가해야 한다.
이러한 역사관을 정립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일본하고 일정한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소위 말해서 일본이 보는 당시의 조선과 조선에서 보는 일본은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사람들은 조선을 강점한 시기에 조선에 대해서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학교 하나도 없는 곳에 학교도 지워 주고, 다리가 필요한 곳은 다리도 놓아 주었고, 철도도 없었는데 철도도 놓아 주었다고 좋은 관점으로 본다. 하지만 한국사람들은 그 시기에 백만 이상의 노동자가 탄광촌에 끌려갔고, 20만 이상의 학도병이 징용으로 끌려갔고, 20만 이상의 여성이 정신대로 끌려갔다며 한국인의 고통을 강조한다. 이런 2가지 상이한 관점이 있기 때문에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없고 과거문제를 가지고 계속 한풀이 식으로 대응한다.
또 중국이 고구려.발해역사를 보는 관점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우리는 우리의 고유한 문화흐름으로 당연히 우리 역사라고 생각하는데, 중국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영토에 있었던 옛날역사는 모두 중국역사의 일부로 본다. 그런 관점에서 고구려도 발해도 중국역사의 변방사이며 소수민족사라고 본다. 우리는 단일민족사관으로 보고, 중국은 다민족사관 입장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것을 정립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상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대결이나 전쟁으로 가지 않고 대화와 토론이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역사관도 제대로 정립하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에 민족사가 왜곡되어도 정당하게 대응하지도 못하면서 다른 측면에서는 무조건 화만 내고 주장만 하는 오류를 동시에 범하고 있다.
현대사 재정립 : 남북으로 분단되는 과정에서 민족의 주류세력에 대한 재평가
우리나라 현대사를 살펴보면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남북으로 분단되는 그런 과정에서 민족의 주류세력이 누구였는지에 대한 재평가가 있어야 한다. 바로 남한이 보는 현대사와 북한이 보는 현대사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남한에서 미국은 생명의 은인이지만 북한에서 볼 때 미국은 우리민족을 분단시키고 통일을 저해한 철천지원수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사에 대한 객관적인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우리체제 존립을 위한 관점에서 역사를 볼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상태에서 역사를 보고 남북이 화해와 통일로 나아가는 관점에서 역사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와 미국과의 관계가 재정립되어야 한다. 미국에 일방적으로 경도되어 있는 우리의 현대 사관이 미국에 대한 일정한 자주권을 되찾는 쪽으로 정립되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우리 상고사를 정립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뿌리에 해당되는 문화적 독창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이고, 또한 근대사를 정립하려고 하는 것은 민족독립운동사를 정립하여 민족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현대사를 재정립하는 것은 미국으로부터 자주성을 어떻게 확보하고 한미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할 것이냐의 문제로서 이런 것들이 바로 주변에 있는 소위 3국과의 관계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분단 이후의 역사
우리 현대사인 분단 이후의 역사로 돌아와서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어진 과제가 통일이기 때문에 통일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 왔는지 크게 3가지 기점으로 분단이후의 역사를 살펴 볼 수 있다.
북한이 우위에 선 입장: 50~60년대 : 한국전쟁~7.4 남북 공동성명
한국전쟁 이후에서 7.4남북 공동성명이 있기까지 50년대~60년대까지는 북한이 한반도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오히려 남한은 북한에 대해서 수세적 국면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의 남북관계는 적대적일 뿐만 아니라 남한이 수세에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남한의 체제를 보존할 것인가 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였다. 그래서 이 시기의 교육은 북한은 공사주의자들인 빨갱이 집단으로 머리에 뿔이 나고, 눈이 빨갛고 언제나 남한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늑대나 살쾡이 같은 것으로 가르쳤다. 그러므로 이런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살펴주는 미국은 고마운 나라라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족통일”이란 얘기만 하여도 이것은 곧 북한에 동조하는 것이라 예견했고, 이 시기의 민족주의 세력 즉 남북을 떠나 민족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마저도 전부 친북인사.좌파로 몰려 사회적으로 매장되었다. 그래서 이 시기의 통일운동은 목숨을 걸고 순교적 자세로 해야 했다.
남북한 대등한 입장 : 1970년대~1980년대
그런데 1970년대를 기점으로 한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남한경제가 북한경제를 능가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70년대 이후에 남북한은 대등한 입장이 되었다. 그래서 그 당시 7.4 남북공동성명 채택은 대등한 남북한이 상호경쟁하면서 어떻게 평화적 통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였다. 비록 이전의 적대적 관계가 여전히 남아있지만 남북한이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하는 것들이 최대의 과제였다.
남한이 우위에 선 입장 : 1990년대~
그런데 1990년도 이후로 남북한 균형이 완전히 깨어져버렸다. 북한이 오히려 수세에 몰리고 남한이 이제 우위에 섰다. 그런데도 남한은 아직도 과거 수세에 몰렸던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등한 관계를 설정해야 될 시기에도 북한이 침략해온다라고 하면서 독재자는 권력을 유지해 왔다. 92년 당시 맺었던 남북 기본합의서의 남북 평화공존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시행은 안 되었다. 그러니 90년도 초에 이미 정세가 바뀌었는데도 우리는 90년대 와서야 겨우 남북이 실질적으로 평화공존하는 원리를 정치적인 차원에서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정치인들이 북한이 침략할 것이라고 위협을 하여도 이제 더 이상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남북기본합의서와 햇볕정책으로 마무리 되었다. 햇볕정책은 통일정책은 아니다. 남북이 합의 이혼을 한 것이다. 그 동안은 서로 미워하면서 별거하다가 이제는 너는 너, 나는 나로서 합의 이혼하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자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 자체는 분단 고착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우리는 이 햇볕정책의 울타리를 못 벗어나고 있다. 햇볕정책은 분단 2기 평화공존 정책의 마무리 작업이다. 이미 객관적 사실과 역사는 어떤가. 1990년도 이후로는 남북의 균형이 완전히 깨지고, 남한 주도하에 한반도 전체문제를 바라 보아야 할 시점에 왔다.
이제 햇볕정책을 넘어야 한다.
햇볕정책은 무엇인가? 이웃과 공존하고 이웃에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을 주자는 것인데, 지금은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좀더 적극적으로 한반도 전체를 봐야한다. 북한은 내 나라로서 북한민중을 살리는 것, 북한경제를 복구하는 것 바로 우리의 일이다. 북한은 경쟁하고 적대하는 위협적 존재가 아니다. 이미 북한에 대한 위협은 사라졌다. 북한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 위험한 존재일 뿐이다. 단지 언제 어떻게 사건이 터져 우리한테 많은 손실을 가져다줄지 모르는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은 북한으로부터의 이런 위험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하는 이런 관점에 서야 한다. 즉 그 위험을 막기 위해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에 대한 통제력을 가져한 한다.
한반도 전체에 대한 통제력을 가져야 된다.
그런데 지금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우리는 한반도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다. 취약해진 북한을 어떻게 할거냐를 두고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고 있다. 만약에 북한이 붕괴되어서 남한에 흡수가 된다면 한반도에 대한 통제력은 미국이 장악할 것이다. 앞으로 세계사의 최대 경쟁상대는 미국과 중국이다. 그런데 중국은 북한과 이천킬로가 넘는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국경변에 조선족까지 살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국가안위의 측면에서 북한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려고 할 수밖에 없다. 그 동안 북한은 철저한 자주독립노선을 걸었기 때문에 중국의 영향이 미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북한이 정치적으로 고립되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체제붕괴위험이 있는데다 최근에는 미국의 강경정책으로 더욱 어려워지니까 북한으로서도 기댈 곳이 중국밖에 없게 되었다. 중국으로서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되었다. 사실은 김정일 사후가 가장 위험하다. 중국이 북한 안에 친중정권을 세우면 남한에 있어서 미국의 영향력만큼이나 북한에 대한 통제력을 중국이 갖게 된다. 그러면 남북간의 평화공존은 될 수 있지만 즉, 위험성은 좀 없어질지 몰라도 한반도 통일은 정말 어려워진다. 중국은 이미 동북3성과 북한까지 포함한 중국동북지방의 경제 개발이라는 측면을 생각하고 있다. 고구려.발해사에 대한 동북공정도 크게 보면 이 일환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누구도 이것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 중국한테 부탁해서 북한을 길들일 생각만 하고 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미국은 현재 남한에 갖고 있던 통제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을 조기에 붕괴시켜서 한반도를 흡수 통일하면 결국은 남한 내의 보수 세력이 주도권을 잡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은 강화되고 오래 지속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붕괴전략으로 나갈 수 밖에 없다. 군사적 공격을 통한 강압적 붕괴전략이든, 인권문제든지, 경제적인 고립이든, 여러 다른 것들을 통해서 평화적으로 붕괴를 시키든지, 단지 방법상의 차이 정도 밖에 없다. 민주당이던 공화당이던 근본적인 것은 똑같다. 그런데도 한국은 제 민족,제 땅,제 역사를 남한테 맡겨놓고 구경만 하고 있다. 조그마한 경제적 이익에 눈이 어두워 “미국이 기침하면 우린 감기 든다” “중국하고 잘못했다가는 핸드폰 못 팔아먹는다” 이런 좁은 생각에서 지금 전전긍긍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통제력을 어떻게 우리가 가질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한반도에 대한 통제력을 갖지 못한다면 민족 진로에 있어서의 절대적 위기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북한을 즉 김정일 정권을 도와주어야 한다. 김정일 정권이 문제가 아니다. 정권이라는 것은 5년,10년…유한하다.
바로 북한에 대한 통제력을 어떻게 우리가 가질 것인가? 북한은 이미 시장경제가 되어 가고 있다. 즉 북한시장의 90% 이상이 중국 상품이다. 모든 시스템이 중국화 되어 가고 있다. 식량에 대한 곤궁함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중국의 조그마한 지원도 북한주민들이나 북한정부에게는 엄청난 고마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남한지원이 사실은 대량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시장에 있는 상품들이 한국상품으로 채워져야 한다. 설령 북한관리들이 한국사람 만나서 도움을 얻으려고 하는 것을 나쁘게만 볼 게 아니다. 김정일 정권이 붕괴되고 난 후 새로운 체제가 들어섰을 때, 새로운 정권을 잡은 사람들 대부분은 친남 인사들이 들어서야 한다.
북한 개발 및 복구는 남한정부 차원에서, 국민적인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더 이상 북한을 우리를 공격한다는 그런 관점에서만 봐서는 안된다. 요즈음 뜨거운 감자인 북한의 핵개발 문제도 공격용이라기 보다는 방어용이라고 보아야 한다. 만약 북한을 붕괴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면 우리나라 역사관 정립에 있어서 특히 현대사를 정립하는데 큰 손실이 된다. 또한 앞으로 2천만 동포가 오랜 세월 동안 열등의식에서 생활한다는 것도 큰 문제다. 현재 북한사람들의 월급이 약 3천원 정도라고 한다. 북한 돈 만원은 우리 돈 만원과 같다고 한다. 만약에 지금 북한에 산림녹화를 하기 위해서 나무를 심는다고 할 때, 지금은 한달에 만원이면 산에 나무를 심을 수 있는데 통일이 된 후 나무를 심는다면 하루에 일당 5만원 줘도 산에 나무를 심을 수가 없을 것이다. 북한 복구비용에 드는 통일비용이 엄청나게 들어 것이다. 가히 천문학적으로 들어가게 된다.
북한 스스로 붕괴되면 어쩔 수 없이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되지만, 우리가 굳이 북한을 붕괴시킬 아무런 이유가 없다. 첫째, 위험하다. 두 번째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민족사적으로 이천만 북한주민에게 열등의식만 심어준다. 북한에 대한 지원은 인도적 지원뿐만 아니라, 북한개발과 동시에 아울러 북한의 인권개선도 요구해야 된다. 더 이상 북한정권을 보고 옳으니 그르니 할 시대는 지났다.
분단 제3기를 맞은 지금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길
90년대 이후로 접어들면서, 우리가 이미 90년대 이후의 이런 변화를 편견 없이 볼 수 있었다면, 300만 북한동포를 굶어죽게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거의 적대논리에 빠져버린 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도, 결국은 북한주민 300만명이나 굶어죽는 인류역사상 유래가 없는 대 비극을 초래했다. 지금 우리가 햇볕정책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역사적인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햇볕정책을 뛰어 넘는 대북정책이 있어야 한다. 햇볕정책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햇볕정책을 뛰어 넘어야 한다.
남북의 화해와 협력
우리민족이 나아갈 길은 첫째,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다. 북한 문제를 우리 문제로 보고 적극적으로 한반도를 경영하는 관점에 서서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일본과의 한일경제공동체
두 번째, 일본하고 과거에 오랫동안 적대관계에 있었고 아직도 여러 문제가 풀리지 않았지만, 오늘날 세계의 흐름으로 볼 때 이제는 한일경제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적대감을 뛰어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우리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야 하고, 일본은 과거사에 대해서 진솔한 사죄가 필요하다. 일본 지도자들은 역사적 안목이 없는 것 같다. 일본의 장기적인 경기침체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세계적 흐름은 지역공동체로 나아가고 있다. 중화지역공동체 즉 중국.대만.홍콩.싱가포르.동남아에 있는 화교로 엮은 엄청난 큰 경제공동체이다. 일본은 국가단위로 보면 세계 제2위 경제국이지만, 이런 공동체적인 입장에서 볼 때는 이미 약소자본에 속하기 때문에 진로가 없다. 따라서 일본은 남북간의 통일,한일간의 경제공동체를 형성해야 동아시아의 안정을 가져온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거대한 중국경제의 소용돌이에 흡수되어 버릴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동시에 중국과의 경제협력,중국과의 우호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미국과의 협력
그리고 미국과의 협력 또한 중요하다. 왜냐면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자주권을 확보해야하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국과의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동아시아에 있어서의 중국.러시아.일본으로부터 우리가 독자성을 유지하는데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러시아와의 우호관계를 통해서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기초 위에서 우리는 EU와 인도를 중심으로 한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등과의 교류도 물론 증대해 나가야 된다.
한민족네트워크.한민족공동체
이와 아울러 우리가 또 하나 고려해야 될 것은 한민족 네트워크다. 한민족 네트워크.한민족 공동체라고 하면 남한 5천만,북한 2천만 이외에도 미국 250만․중국 200만,일본 60만,구소련권 50만, 그리고 기타 50만 이렇게 해서 지금 600만~700만 정도 되는 해외 교포까지도 엄청난 자원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민족정책이 중국에 있는 우리 조선족을 한국에 데리고 오는 게 목적이 되서는 안 된다. 오히려 중국 조선족들은 중국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사회적으로 진출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야 된다. 그래서 중국사회에서 중국만큼이나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즉 중국에 친한파 200만명이 있다는 것은 민족적으로 엄청난 자산이다. 그런데 중국조선족들을 중국으로부터 고립시켜 버리는 것이 좋은 민족정책일까? 그러니 백 년 전의 민족정책과 지금의 민족정책은 달라져야 한다. 중국공민으로서 중국사회에서 아주 우수한 인력으로서 조선족이 성장하도록 지원을 해야 된다. 조선족은 한국에 와서 식당에 취직해 허드렛일이나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조선족사회를 지금 붕괴시키고 있다. 남한이 있음으로 해서 중국의 조선족 사회가 성장한 것이 아니고, 남한으로 인해서 중국 조선족사회가 붕괴되어 가고 있다. 우리는 교민들에 대한 정책이 좀 더 깊이 연구되어야 한다.
글을 맺으며
결론적으로 첫째, 민족사관이 정립되어야 한다. 상고사.근대사.현대사 부분이 새로이 정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둘째, 주변국과 공존하는 열린 민족주의 입장을 가져야 한다. 셋째, 동아시아 평화를 선도하는 지역공동체 리더가 되어야 한다. 유럽공동체에 있어서 중요한 기구들은 모두 벨기에나 네덜란드에 있다. 다시 말하면 중국.한국.일본이라고 하는 이 동아시아 공동체를 우리가 만들어서 사무국을 중국에 두자고 하면 일본이 반대할 것이며, 일본에 두자고 하면 중국이 반대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 한반도가 이런 지역공동체의 중심이 될 수 있다. 그러니까 4강의 힘에 의해서 우리가 늘 분열되는 것이 아니라 4강을 화합시키고 협력시키는 그런 촉매제 역할을 우리가 함으로써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서 우리가 크게 기여하는 그런 길을 찾아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미래는 열린 민족주의가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이 되고 또 전인류적 전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문명을 선도하는 세력이 새로운 진보가 되어야 한다. 새로운 진보는 환경문제와 제3세계의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을 하며, 민족을 뛰어넘고 경제개발의 차원을 뛰어넘어 인류적이고 지구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문명․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선도하는 집단이다. 이 새로운 진보가 성장해서 열린민족주의의 보수와 함께 두개의 수레바퀴로 굴러가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 나가야 된다.
새로운 문명과 문명사 전환을 전개하는 운동으로 매진해야 한다.
사실은 나 같은 사람은 열린 민족주의라 하더라도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정말로 스님으로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인류적인 관점에서, 환경적인 관점에서, 인류평화.인류공동체 문명을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이 욕망을 중심으로 한 죽음의 문명을 어떻게 만 생명이 공존하는 문화로 전환할 것인가? 사실은 이것이 과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세속 사람들이 해야 할 민족의 진로가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이 문제를 거론을 할 뿐이다. 이것이 자리가 좀 잡히면 우리는 새로운 문명과 문명사 전환을 전개하는 운동으로 매진해야 한다. 환경문제.제3세계 빈곤문제.평화문제 등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새로운 주류로 등장할 시대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