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7가지 '기현상'
反부자 정서가 고소득층 소비주도 막아
98년 무리한 부양책으로 경기순환 왜곡
한국경제가 침체일로에 있는 가운데, 기존의 경제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현상들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아 누르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의 경기 예측이 엉뚱하게 빗나가고 마땅한 처방도 찾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 나타난 가장 심각한 현상은 우리 경제의 경기순환주기가 급속히 짧아지고 있는 것이다. 14일 열린우리당 정덕구 의원이 작성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과거 한국경제는 경기의 상승기와 하강기를 합쳐 경기순환 기간이 4~5년 정도였다. 경기가 한번 상승국면에 접어들면 대개 34개월 정도 지속되는 등 순환주기가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이런 사이클이 완전히 깨졌다. 호경기와 불경기가 1년마다 수시로 바뀌는 ‘냉온탕 경기’가 반복되면서 경기흐름이 오리무중(五里霧中)에 빠진 것이다. 우리 경제에 이 같은 이상증세가 생긴 데는 정부의 인위적인 경기부양이 큰 몫을 했다는 분석이 많다. 한 민간연구소 임원은 “정부가 1998년 IT붐과 2001년 카드소비를 통해 억지로 경기를 띄우면서 경기순환이 왜곡돼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의 패턴대로라면 세계경제가 상승세를 탄 작년과 올해 우리나라도 호경기를 누렸어야 했다. 하지만 유독 한국은 반대로 깊은 내수침체에 빠진 것이 대표적인 부작용 사례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분배·성장 논란 등 정부정책 방향의 불확실성이 겹쳐 내수회복 시기를 점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중수 원장은 “경제주체들이 우리 경제의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느냐, 못 갖느냐에 의해 경기회복 시점이 좌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단기 금리의 역전현상도 이 같은 한국경제의 불안정성에서 비롯된 희한한 현상이다. 최근 국내 금융시장에선 안전자산인 채권으로 시중자금이 몰리면서 3년짜리 국고채 유통수익률(3.42%)이 하루짜리 콜금리(3.5%)보다 낮아진 일이 생겼다. 또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전격 인하한 지난 8월부터는 두달여에 걸쳐 한국의 대표적인 장기채권 금리인 국고채 10년물 유통수익률이 미국 국채 10년물보다 낮아지는 사상 초유의 ‘한미 금리차 역전’ 현상까지 발생했다. 서울대 민상기 교수(경영학)는 “장기금리는 한 국가의 성장잠재력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지표”라며 “한국의 장기금리가 안정적인 저성장궤도에 진입한 미국보다 낮아진 것은 경제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중앙은행이 정책 금리를 연거푸 낮춰도 경기가 꿈쩍하지 않는 것도 기현상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총 3차례에 걸쳐 콜금리 목표치를 0.75%포인트 낮췄다. 하지만 물가만 오르고 경기는 더 악화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한은이 지난 7일 시장의 기대와는 반대로 금리를 동결한 것도 이 같은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부작용 때문이었다. 소비자들이 국내에선 지갑을 닫고 해외에서 펑펑 돈을 쓰는 것도 과거에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지난 2분기(4~6월) 중 국내 거주자의 신용카드 해외사용액은 6억7500만달러로 분기별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0.3%나 증가한 것이다. 가톨릭대 곽만순 교수(경제학)는 “반(反)부자 정서라는 특이한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고소득계층이 외국에서 소비를 하는 것도 내수회복이 지연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풍토 때문에, 최근 정부가 부자들의 소비를 유도하려고 PDP TV, 골프채 등의 특소세를 폐지한 것도 전혀 먹혀들지 않고있다. 수출이 늘어도 국내소비와 투자는 감소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에게 ‘수출호황→설비투자증대→고용창출→소비증대’라는 경제의 선순환(善循環) 구조는 하나의 공식이었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부터는 이 공식이 깨졌다. 수출이 매달 200억달러를 넘는 사상 최대의 호황을 거듭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수출로 번 돈을 설비투자에 쏟아붓기보다는 회사빚을 갚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역시 정책혼선, 미래의 불확실성 등 경제외적 요인이 겹쳐 기업들이 국내에서 투자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또 금리가 내려가면 시중에 불어난 부동자금이 부동산에 몰려 주택값이 상승하는 게 과거의 기본유형이었는데 최근에는 저금리 기조 속에 오히려 집값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주택매매가격이 지난 6월 0.3% 하락한 뒤 7월 -0.4%, 8월 -0.8%로 낙폭이 커져가고 있다. 이론상 올라가야 할 부동산 가격이 반대로 떨어지는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이 “집값 안정은 직접 챙기겠다”고 발언한 후 지속되고 있는 정부규제로 거래가 얼어붙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처럼 국내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바람에 300조원이 넘는 시중의 부동자금이 해외 부동산 투기 등 나라 밖으로 새나가고 있다는 얘기다. (윤영신기자 ysyoon@chosun.com) (나지홍기자 willy@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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