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임 '한국의 피터 드러커' 윤석철 서울대 교수
…“경영의 기본은 투명성이 아니라 生存"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른다. 괜한 수식어가 아니다. 윤석철 서울대 명예교수. 그는 불과 며칠 전까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였다. 지난 8월 31일 정년퇴직했기 때문이다. 워낙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정년퇴직을 했어도 그 흔한 인터뷰 기사 또한 나오지 않았다. 한두 개 신문에 짤막한 동정이 실렸을 뿐이다. 하지만 웬만한 기업인치고 그의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박사학위 2개, 학사학위 2개
이 '알 만하고 웬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한국의 피터 드러커'로 불린다. 경영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가 각종 분야를 섭렵, 종합대백과사전과 같은 폭과 깊이의 경지를 개척해오고 있는 것처럼 윤 전 교수의 그것 또한 그 못지않은 까닭이다. 경영학(박사)뿐 아니라 전기공학(박사)독문학(학사)물리학(학사) 등 4개 학위를 가진 그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경영학에 새로운 시각과 통찰력을 제시해 왔다(굳이 구분하자면 드러커가 컨설턴트적인 면이 다분한 반면, 윤 전 교수는 자연과학에 가까운 면이 돋보인다).
덕분에 자연에서 생존 원리를 발견하고, 문학과 경영의 연계성을 찾는 일은 더 이상 낯선 개념이 아니다. 그는 경영과 인생은 하나라며 "경영학은 일을 잘하기 위한 삶과 일의 학문"이라고 말한다. 김진수 CJ 총괄부사장은 "경영기법보다 기업 경영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인 경지를 개척하는 독특한 분"으로 기억했다.
그는 여느 경영학자와 다른 점이 많다. 10년에 한 권씩 책을 내는 것도 그렇다. (경력 참조). 특히 『프린시피아 매네지멘타』에서 그가 제시한 '생존부등식'은 이제 기업 경영에서 '낯익은 진리'가 됐고 제3의 10년 작 『경영학의 진리체계』에서는 자연 속의 곤충과 포유류의 생존 지혜를 기업 경영에 적용한 '생존철학'을 담았다(박스 기사 참조). 어느 경영학자도 시도하지 않은 것이다. 출판사도 일반인들이 알 만한 곳이 아니다. 대학교재 전문 출판사로 표지나 책 내부 편집 또한 요즘 흐름에 맞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인세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인기는 여전하다. 이들 세 책을 낸 경문사의 이준환 부장은 "지금도 찾는 이들이 많다"며 꾸준한 열기를 전했다.
얼마 전 이와는 완전히 다르게, 즉 '단행본답게' 출간된 『경영경제인생 강좌 45편』은 예외다. 이 책은 그가 몇 년 전 한 신문에 연재한 내용을 재일동포가 읽고 감명받아 일본의 출판사가 책으로 펴낸 것이 국내에 알려져 재간행됐다. 독자에게 떠밀려 낸 책인 셈이다.
일부 경영자들 사이에서는 "윤석철을 알고 있다는 사람은 다시 보라"는 말이 떠돈다고 한다. 철학적으로 다뤄지는 그의 경영론과 생존부등식을 알고 있다면 한 차원 높은 '내공'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를 지난 8월 24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현상과 이슈보다는 본질을 탐구하는 노교수의 풍모가 느껴지는 아담한 연구실이었다. 그는 퇴임 후에도 명예교수로 강의를 계속할 계획이다
요즘 한국 경제가 저성장 기조에 들어가면서 기업의 활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CEO들도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돌파구가 없겠습니까?
"셀프(Self) 리더십이 필요해요. 공인된 국제기구에서 발표되는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인의 능력 평가는 세계 최정상 수준입니다. 손꼽히는 민족이라는 거지요. 하지만 세계은행 기준으로 한국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49위로 삼류 국가 수준입니다. 이 갭을 메워야 해요. 저성장을 탈피할 수 있는 돌파구가 여기에 있습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지도력(셀프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면 (돌파구는) 요원해요."
"자기 지도력이라는 말이 좀 어렵게 느껴진다"고 하자 그는 '친절한 노교수님'이 되어 부연설명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유대인이 2000만 명 되는데 이들이 무서운 건 한 사람 한 사람이 리더이기 때문입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안다는 말입니다. 영어이긴 합니다만, 우선 이들에게는 '우리는 능력있는 민족'이라는 선민의식 사상, 즉 셀프 컨피던스(self confidence)가 있어요. 그들은 여기에 셀프 모티베이션(self motivation)까지 갖췄습니다. 그 옛날 노예로 팔려 가 죽을 고생을 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에 의해) 대량학살까지 당했던 민족 아닙니까. 그들은 이런 고통과 수난을 거울삼아 다시는 그런 비극을 당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계속 채찍질합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만들어 일주일에 하루를 정신을 맑게 하는 날로 삼고 있습니다.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키는 게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킨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요즘 주5일제가 확산되고 있는데 하루 정도는 한국형 안식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셀프 컨피던스는 있는데 셀프 모티베이션이 없어요."
그는 '한국형 탈무드'와 '한국형 안식일'을 몇 번씩 강조했다. "생활습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생활습관은 정신세계를 혁신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고치기 힘든 게 생활습관이 아닌가. 어떻게 해야 할까.
"정신문화원 같은 곳에서 우리나라와 민족이 어떤 업적이 있는지, 우리가 받은 설움은 뭔지 집대성해야죠. 역사적으로 우리는 중국이 통일만 되면 항상 짓밟혔어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한국형 탈무드'를 만들고 '하루는 청빈하게 살자'는 캠페인도 벌여야 해요." 조용한노교수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경영학 교수를 인터뷰하고 있는지, 애국적인 인류학자를 인터뷰하고 있는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그는 '경영의 보이지 않는 깊은 곳'을 말하고 있었다.

“한국형 탈무드를 만들자"
그는 경영학자답지 않게 항상 '국가'를 걱정한다. 그가 1958년 서울대 독문과에 입학한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 독일이 미국이나 옛 소련처럼 대국도 아니면서 강국이 되는 비결을 알고 싶어서"였다. 독문학과를 마치고 물리학과로 옮긴 것 또한 20세기 국력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눈을 떴기 때문이었다. 대학을 전체 수석으로 졸업한 뒤 전액 장학금으로 미국 유학을 한 그는 전기공학경영학 박사학위를 따냈다. 73년 베트남전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월남 다음의 전쟁터는 한국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할 무렵, 그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귀국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나처럼 혜택받은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한국의 유대인'이었던 셈이다. "(리더들은) 국가를 위해 자기 희생을 해야 합니다. 국가가 없으면 우리는 죽어요. 우리는 대국도 아닙니다."
어쨌든 빠른 세계화와 상황 변화로 많은 기업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경영자들도 많고요.
"사실 국민과 정부가 기업을 너무 견제하고 있어요. 아일랜드를 보세요. 급성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아일랜드의) 켈트족과 유대인, 한국인이 비슷하다고 봐요. 켈트족도 굶어 죽다 못해 탈출하듯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지금 아일랜드에는 400만 명도 안 되는 사람이 남아있지만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들은 4명의 (미국) 대통령을 내고 노벨문학상만 두 명을 배출했어요. 대단한 자부심이죠. 여기에 800년 동안 영국 식민지였다는 것에 기반해 셀프 모티베이션으로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내 오늘의 아일랜드를 만들었어요."
구체적으로 국민과 정부가 어떻게 기업을 견제하고 있습니까?
"해고 제도만 해도 그래요. 기업에 해고할 수 있는 자유를 줘야 해요. 그러면 노동자들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하는데 제 생각은 반대입니다. 요즘 사장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줄 알아요? '괜히 잘못 뽑았다가는골치 아프니 아예 뽑지 말자' 이러고는 아예 안 뽑아요. 계약직 쓰고 비정규직 쓰죠. 차라리 이럴 바에는 사장들이 '사정이 어려우니 이번에는 해고하지만 좋아지면 또 쓰자' 이렇게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회적국가적 차원에서 돌파구를 만들어야지요."
그는 "아일랜드는 (성장 돌파구를 만들어내는 데) 5~10년이 걸렸지만 우리는 5년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한국인은 뛰어난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국민적 인식오류'를 걱정했다. '이제 잘살게 되었으니 3D 업종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선진국들이 최소 100여 년 이상 3D 산업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고,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의식주가 대개 3D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다. 윤 명예교수는 "산업화 출발도 늦었고, 넉넉한 자원도 뛰어난 기술도 없는 우리가 선진국처럼 편안하고 적게 일하면서 무한경쟁을 하기는 어렵다"면서 "3D 업종이라도 작업방식을 개선,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면 된다"고 말했다.
"사실 가장 걱정되는 건 사유(思惟)하지 않는 풍조예요. 무사유는 나라를 망칩니다. TV에서 시어머니 뺨 때리고 하는 게 다 그런 거지요.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러겠습니까. 오늘만 생각하고 내일은 생각치 않는 것, 나만 생각하고 남은 생각하지 않는 것들이 그런 겁니다."
‘정처없는 이 발길'은 안 된다
노교수는 인터뷰 내내 귀가 솔깃한 말 대신 마음으로 곱씹을 수 있는 보따리를 풀어놨다. 그는 전날인 8월 23일 서울 한국과학기술회원 대강당에서 열린 '경영과 인생의 기본'이라는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일반인 대상 강연"에서 철학이 있는 경영과 마케팅을 강조했다(200석의 좌석이 꽉 찼다). 강연 초반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나그네 설움)이라는 노래 가사를 예로 들어 웃음을 자아낸 그는 "기업이든 개인이든 '정처없는 이 발길'은 안 된다"며 "정상에 오르려면 기본에 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영의 기본은 투명경영이 아니다"라며 "경영과 인생의 기본은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가치를 만드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투명경영을 한다고 기업이 잘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도산과 부도로 국가와 사회에 누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기본 지키기와 생존 노력을 스스로 실천한다. 기업체로부터 강연 요청을 많이 받지만 학기 중에는 응하지 않는다. 인터뷰도 마찬가지다. 학생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강연에 응해서도 강연료가 얼마인지 물어본 적도 없다. 자신의 강의 수준을 높이는 게 '기본'이라는 생각에서다. "듣는 사람이 '재미없다'고 느끼는 순간 나는 죽은 것"이라는 그에게 요즘 같은 치열한 경쟁시대에 기업이 살 길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보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하고, 끝까지 가야 합니다."
인터뷰 시간이 40분을 넘어서자 노교수는 "그만 하자"고 손을 저었다. 사진기자에게 어쩔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순간을 활용해야 했다. 짧은 질문과 대답이 카메라 셔터 소리처럼 오갔다.
"왜 경영학에 머무르십니까?"
"모두를 아우를 수 있으니까."
"왜 10년에 한 권씩만 책을 내십니까?"
"토털 오리지널(total original:완전히 새로운 것)이어야 하니까."
"그럼 2011년에 나올 다음 책의 내용은 뭡니까?"
."."
미국에 있는 피터 드러커는 "본인이 쓴 책 중에서 어떤 게 최고인가"라는 질문에 "다음에 나올 책"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한국의 피터 드러커'는 대답 대신 부드러운 미소만 지어보였다. 아직 완성이 안 됐다는 것일까, 기다려보라는 것일까.
윤석철 서울대 교수
1940년생, 대전고서울대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전기공학경영학 박사
1972년 미국 미시간대 조교수
1973년 서울대 교수
저서: 『경영학적 사고의 틀』(1982),『프린시피아 매네지멘타』(1991), 『경영학의 진리체계』(2001), 『경영경제인생 강좌 45편』(2005)
생존부등식이란…
가치 > 가격 > 코스트
지난 1991년 출간된 『프린시피아 매네지멘타』에서 그가 제시한 이론인 '생존부등식'은 이미 업계에서는 일반적이면서 낯익은 공식이 됐다. 이 공식은 간단하다. '제품의 가치>가격> 코스트’가 전부다. 소비자가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느끼는 가치는 반드시 그가 지불한 가격보다 커야 하며 가격은 비용보다 높아야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윤석철 명예교수는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보다 높은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경영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이 공식은 인생에도 적용된다. 직장은 개인에게 주는 월급(가격)보다 더 큰 가치가 있는 사람을 고용하며, 개인은 생계비(코스트)보다 월급(가격)이 높아야 근속한다는 것이다. 윤 명예교수는 "이혼당하지 않는 생존부등식이기도 하다" 며 웃었다.

박사학위 2개, 학사학위 2개
이 '알 만하고 웬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한국의 피터 드러커'로 불린다. 경영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가 각종 분야를 섭렵, 종합대백과사전과 같은 폭과 깊이의 경지를 개척해오고 있는 것처럼 윤 전 교수의 그것 또한 그 못지않은 까닭이다. 경영학(박사)뿐 아니라 전기공학(박사)독문학(학사)물리학(학사) 등 4개 학위를 가진 그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경영학에 새로운 시각과 통찰력을 제시해 왔다(굳이 구분하자면 드러커가 컨설턴트적인 면이 다분한 반면, 윤 전 교수는 자연과학에 가까운 면이 돋보인다).
덕분에 자연에서 생존 원리를 발견하고, 문학과 경영의 연계성을 찾는 일은 더 이상 낯선 개념이 아니다. 그는 경영과 인생은 하나라며 "경영학은 일을 잘하기 위한 삶과 일의 학문"이라고 말한다. 김진수 CJ 총괄부사장은 "경영기법보다 기업 경영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인 경지를 개척하는 독특한 분"으로 기억했다.
그는 여느 경영학자와 다른 점이 많다. 10년에 한 권씩 책을 내는 것도 그렇다. (경력 참조). 특히 『프린시피아 매네지멘타』에서 그가 제시한 '생존부등식'은 이제 기업 경영에서 '낯익은 진리'가 됐고 제3의 10년 작 『경영학의 진리체계』에서는 자연 속의 곤충과 포유류의 생존 지혜를 기업 경영에 적용한 '생존철학'을 담았다(박스 기사 참조). 어느 경영학자도 시도하지 않은 것이다. 출판사도 일반인들이 알 만한 곳이 아니다. 대학교재 전문 출판사로 표지나 책 내부 편집 또한 요즘 흐름에 맞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인세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인기는 여전하다. 이들 세 책을 낸 경문사의 이준환 부장은 "지금도 찾는 이들이 많다"며 꾸준한 열기를 전했다.
얼마 전 이와는 완전히 다르게, 즉 '단행본답게' 출간된 『경영경제인생 강좌 45편』은 예외다. 이 책은 그가 몇 년 전 한 신문에 연재한 내용을 재일동포가 읽고 감명받아 일본의 출판사가 책으로 펴낸 것이 국내에 알려져 재간행됐다. 독자에게 떠밀려 낸 책인 셈이다.
일부 경영자들 사이에서는 "윤석철을 알고 있다는 사람은 다시 보라"는 말이 떠돈다고 한다. 철학적으로 다뤄지는 그의 경영론과 생존부등식을 알고 있다면 한 차원 높은 '내공'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를 지난 8월 24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현상과 이슈보다는 본질을 탐구하는 노교수의 풍모가 느껴지는 아담한 연구실이었다. 그는 퇴임 후에도 명예교수로 강의를 계속할 계획이다
요즘 한국 경제가 저성장 기조에 들어가면서 기업의 활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CEO들도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돌파구가 없겠습니까?
"셀프(Self) 리더십이 필요해요. 공인된 국제기구에서 발표되는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인의 능력 평가는 세계 최정상 수준입니다. 손꼽히는 민족이라는 거지요. 하지만 세계은행 기준으로 한국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49위로 삼류 국가 수준입니다. 이 갭을 메워야 해요. 저성장을 탈피할 수 있는 돌파구가 여기에 있습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지도력(셀프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면 (돌파구는) 요원해요."
"자기 지도력이라는 말이 좀 어렵게 느껴진다"고 하자 그는 '친절한 노교수님'이 되어 부연설명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유대인이 2000만 명 되는데 이들이 무서운 건 한 사람 한 사람이 리더이기 때문입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안다는 말입니다. 영어이긴 합니다만, 우선 이들에게는 '우리는 능력있는 민족'이라는 선민의식 사상, 즉 셀프 컨피던스(self confidence)가 있어요. 그들은 여기에 셀프 모티베이션(self motivation)까지 갖췄습니다. 그 옛날 노예로 팔려 가 죽을 고생을 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에 의해) 대량학살까지 당했던 민족 아닙니까. 그들은 이런 고통과 수난을 거울삼아 다시는 그런 비극을 당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계속 채찍질합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만들어 일주일에 하루를 정신을 맑게 하는 날로 삼고 있습니다.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키는 게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킨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요즘 주5일제가 확산되고 있는데 하루 정도는 한국형 안식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셀프 컨피던스는 있는데 셀프 모티베이션이 없어요."
그는 '한국형 탈무드'와 '한국형 안식일'을 몇 번씩 강조했다. "생활습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생활습관은 정신세계를 혁신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고치기 힘든 게 생활습관이 아닌가. 어떻게 해야 할까.
"정신문화원 같은 곳에서 우리나라와 민족이 어떤 업적이 있는지, 우리가 받은 설움은 뭔지 집대성해야죠. 역사적으로 우리는 중국이 통일만 되면 항상 짓밟혔어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한국형 탈무드'를 만들고 '하루는 청빈하게 살자'는 캠페인도 벌여야 해요." 조용한노교수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경영학 교수를 인터뷰하고 있는지, 애국적인 인류학자를 인터뷰하고 있는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그는 '경영의 보이지 않는 깊은 곳'을 말하고 있었다.

“한국형 탈무드를 만들자"
그는 경영학자답지 않게 항상 '국가'를 걱정한다. 그가 1958년 서울대 독문과에 입학한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 독일이 미국이나 옛 소련처럼 대국도 아니면서 강국이 되는 비결을 알고 싶어서"였다. 독문학과를 마치고 물리학과로 옮긴 것 또한 20세기 국력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눈을 떴기 때문이었다. 대학을 전체 수석으로 졸업한 뒤 전액 장학금으로 미국 유학을 한 그는 전기공학경영학 박사학위를 따냈다. 73년 베트남전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월남 다음의 전쟁터는 한국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할 무렵, 그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귀국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나처럼 혜택받은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한국의 유대인'이었던 셈이다. "(리더들은) 국가를 위해 자기 희생을 해야 합니다. 국가가 없으면 우리는 죽어요. 우리는 대국도 아닙니다."
어쨌든 빠른 세계화와 상황 변화로 많은 기업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경영자들도 많고요.
"사실 국민과 정부가 기업을 너무 견제하고 있어요. 아일랜드를 보세요. 급성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아일랜드의) 켈트족과 유대인, 한국인이 비슷하다고 봐요. 켈트족도 굶어 죽다 못해 탈출하듯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지금 아일랜드에는 400만 명도 안 되는 사람이 남아있지만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들은 4명의 (미국) 대통령을 내고 노벨문학상만 두 명을 배출했어요. 대단한 자부심이죠. 여기에 800년 동안 영국 식민지였다는 것에 기반해 셀프 모티베이션으로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내 오늘의 아일랜드를 만들었어요."
구체적으로 국민과 정부가 어떻게 기업을 견제하고 있습니까?
"해고 제도만 해도 그래요. 기업에 해고할 수 있는 자유를 줘야 해요. 그러면 노동자들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하는데 제 생각은 반대입니다. 요즘 사장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줄 알아요? '괜히 잘못 뽑았다가는골치 아프니 아예 뽑지 말자' 이러고는 아예 안 뽑아요. 계약직 쓰고 비정규직 쓰죠. 차라리 이럴 바에는 사장들이 '사정이 어려우니 이번에는 해고하지만 좋아지면 또 쓰자' 이렇게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회적국가적 차원에서 돌파구를 만들어야지요."
그는 "아일랜드는 (성장 돌파구를 만들어내는 데) 5~10년이 걸렸지만 우리는 5년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한국인은 뛰어난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국민적 인식오류'를 걱정했다. '이제 잘살게 되었으니 3D 업종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선진국들이 최소 100여 년 이상 3D 산업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고,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의식주가 대개 3D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다. 윤 명예교수는 "산업화 출발도 늦었고, 넉넉한 자원도 뛰어난 기술도 없는 우리가 선진국처럼 편안하고 적게 일하면서 무한경쟁을 하기는 어렵다"면서 "3D 업종이라도 작업방식을 개선,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면 된다"고 말했다.
"사실 가장 걱정되는 건 사유(思惟)하지 않는 풍조예요. 무사유는 나라를 망칩니다. TV에서 시어머니 뺨 때리고 하는 게 다 그런 거지요.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러겠습니까. 오늘만 생각하고 내일은 생각치 않는 것, 나만 생각하고 남은 생각하지 않는 것들이 그런 겁니다."
‘정처없는 이 발길'은 안 된다
노교수는 인터뷰 내내 귀가 솔깃한 말 대신 마음으로 곱씹을 수 있는 보따리를 풀어놨다. 그는 전날인 8월 23일 서울 한국과학기술회원 대강당에서 열린 '경영과 인생의 기본'이라는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일반인 대상 강연"에서 철학이 있는 경영과 마케팅을 강조했다(200석의 좌석이 꽉 찼다). 강연 초반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나그네 설움)이라는 노래 가사를 예로 들어 웃음을 자아낸 그는 "기업이든 개인이든 '정처없는 이 발길'은 안 된다"며 "정상에 오르려면 기본에 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영의 기본은 투명경영이 아니다"라며 "경영과 인생의 기본은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가치를 만드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투명경영을 한다고 기업이 잘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도산과 부도로 국가와 사회에 누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기본 지키기와 생존 노력을 스스로 실천한다. 기업체로부터 강연 요청을 많이 받지만 학기 중에는 응하지 않는다. 인터뷰도 마찬가지다. 학생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강연에 응해서도 강연료가 얼마인지 물어본 적도 없다. 자신의 강의 수준을 높이는 게 '기본'이라는 생각에서다. "듣는 사람이 '재미없다'고 느끼는 순간 나는 죽은 것"이라는 그에게 요즘 같은 치열한 경쟁시대에 기업이 살 길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보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하고, 끝까지 가야 합니다."
인터뷰 시간이 40분을 넘어서자 노교수는 "그만 하자"고 손을 저었다. 사진기자에게 어쩔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순간을 활용해야 했다. 짧은 질문과 대답이 카메라 셔터 소리처럼 오갔다.
"왜 경영학에 머무르십니까?"
"모두를 아우를 수 있으니까."
"왜 10년에 한 권씩만 책을 내십니까?"
"토털 오리지널(total original:완전히 새로운 것)이어야 하니까."
"그럼 2011년에 나올 다음 책의 내용은 뭡니까?"
."."
미국에 있는 피터 드러커는 "본인이 쓴 책 중에서 어떤 게 최고인가"라는 질문에 "다음에 나올 책"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한국의 피터 드러커'는 대답 대신 부드러운 미소만 지어보였다. 아직 완성이 안 됐다는 것일까, 기다려보라는 것일까.
윤석철 서울대 교수
1940년생, 대전고서울대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전기공학경영학 박사
1972년 미국 미시간대 조교수
1973년 서울대 교수
저서: 『경영학적 사고의 틀』(1982),『프린시피아 매네지멘타』(1991), 『경영학의 진리체계』(2001), 『경영경제인생 강좌 45편』(2005)
생존부등식이란…
가치 > 가격 > 코스트
지난 1991년 출간된 『프린시피아 매네지멘타』에서 그가 제시한 이론인 '생존부등식'은 이미 업계에서는 일반적이면서 낯익은 공식이 됐다. 이 공식은 간단하다. '제품의 가치>가격> 코스트’가 전부다. 소비자가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느끼는 가치는 반드시 그가 지불한 가격보다 커야 하며 가격은 비용보다 높아야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윤석철 명예교수는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보다 높은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경영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이 공식은 인생에도 적용된다. 직장은 개인에게 주는 월급(가격)보다 더 큰 가치가 있는 사람을 고용하며, 개인은 생계비(코스트)보다 월급(가격)이 높아야 근속한다는 것이다. 윤 명예교수는 "이혼당하지 않는 생존부등식이기도 하다" 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