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한 정동영 장관

by 永樂 posted Nov 03, 2005
"정동영 장관은 매국노 이완용이 되려는가?"

                                                                                      최삼봉·국제정치 평론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10월24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헌법의 영토조항을 언급하였다. 정장관의 발언은 헌법 제3조에 규정된 영토조항을 삭제할 필요가 있다는 게 요지였다. 필자는 여기서 정장관 언급에 찬반론을 펴기보다는 우리와 비슷한 분단 상황에서 통일을 이룬 동서독 선례로 대한민국 헌법의 영토조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겠다.

1949년에 제정된 서독 기본법(Grundgesetz)에는 대한민국 헌법 제3조 영토조항과 비슷한 항목이 있었다. 23조로 ‘기본법은 우선적으로 서독지역(독일연방공화국) 내에 유효하고 독일의 다른 지역에 대해서는 독일연방에 편입(Beitritt)한 이후에 그 효력을 발생한다’는 조항이 바로 그것이다. 통일 전 서독의 기본법(Grundgesetz)은 헌법과 다름없는 법이었지만 통일전까지 유효한 잠정적인 법이었다. 서독은 훗날 동서독이 통일국가를 완성할 때 완전한 헌법(Verfassung)을 만들기로 하고 이 기본법 23조를 제정했다.

서독 기본법 23조에서 언급한 ‘독일의 다른 지역’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동독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동독과 폴란드의 국경선인 오더(독일에서 부르는 강 이름)-나이스강(폴란드에서 부르는 강 이름)의 동쪽 지역 등 2차대전으로 독일이 연합국에 빼앗긴 영토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오더-나이스강 동쪽 지역은 원래 독일영토였으나 2차대전 과정에서 소련이 일방적으로 폴란드에게 잠정 관리하도록 한 지역이다.

그러나 1949년 서독 기본법 제정 시 동서독은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등 4개 연합국으로부터 분할 신탁관리체제에 놓여 있었다. 당시 독일 민족은 다시는 나치 같은 영토적 야심을 갖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외에 천명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오더-나이스강 동쪽 지역에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처지였다. 때문에 기본법에도 ‘오더-나이스강 동쪽지역’이란 구체적인 표현을 쓰지 못하고 막연히 ‘독일의 다른 지역’이라고 적시한 것이다.

반면 서독은 기본법 146조로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고 추가로 못박았다. 서독 기본법 146조는 ‘기본법은 독일민족이 자유로운 결정에 의해 새로운 헌법이 발표됨과 동시에 그 효력을 상실한다’ 는 조항이다. 여기서 ‘독일민족’은 동서독을 모두 포함하는 규정이고 ‘새로운 헌법’은 Verfassung을 일컫는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 제4조에 명시된 평화통일 원칙과 견줄 수 있는 조항이다.

서독 기본법은 또 116조에 ‘1937년 독일제국 당시 독일 국적 소유자 및 배우자 비속은 모두 독일 국적자로 간주한다’는 조항을 갖고 있었다. 이는 동독 주민은 물론 폴란드와 체코, 소련 등 동유럽에 흩어져 있는 독일계 이주민들도 모두 서독 주민이라는 뜻이었다. 때문에 서독은 1990년 통일 이전까지 공산 치하의 동유럽과 소련에서 탈출한 모든 독일계 난민을 서독 주민으로 영사보호하고 서독으로 이주시켰다.

서독 기본법의 영토조항격인 23조와 통일조항격인 146조, 그리고 116조는 서로 모순적이고 맞부딪칠 소지가 있는 조항이었다. 23조와 146조 중 어느 조항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통일 과정과 형태가 달라진다. 23조를 따를 경우 동독지역은 독일연방공화국에 편입되면 서독기본법(Grundgesetz)을 따라야 하지만, 146조를 적용하면 새로운 통일헌법(Verfassung)을 제정해야 한다. 이런 조항을 함께 넣은 것은 상황 변동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하겠다는 1949년 서독 제헌 당국의 의도였다.

때문에 서독에서는 23조 영토조항과 146조 통일조항을 놓고 기민당과 사민당이 맞서기도 했다. 서독 초대총리인 아데나워와 기민당의 흡수 통일노선은 23조에 기반하고 있었고, 점진적 연방을 구성해 서서히 통일한다는 빌리 브란트의 사민당 통일 노선은 146조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23조식 통일안은 구동독 전체가 한 주체가 되어 서독에 편입을 선언하는 방식이다. 또는 동독 지역에 새롭게 탄생한 신연방(5개주)이 각각 개별 주체가 되어 따로따로 서독에 편입을 선언하는 방식이다. 반면 146조식 통일안은 제헌위원회(eine Verfassungsgebende Versammelung)를 구성하고 이 위원회가 전체 독일에 적용되는 새 헌법을 제정한 뒤,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식이다. 현재 북한과 한국의 좌파들이 주장하는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통일안이 이 제헌위원회 방식과 성격과 절차가 비슷하다.

이 제헌위원회 방식은 여러 가지 장점을 갖고 있었다. 우선 제헌위원회를 활용하고 새헌법을 국민투표에 회부하는 행위는 새롭게 탄생하는 통일독일에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또 새로운 통일국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동독의 참여를 보장할 수 있다. 더구나 통일전 동서독은 서로 다른 역사적 과정을 걸었다. 동서독 주민 사이에 사회, 경제적 격차가 현격했던 터라 동서독간 이해관계가 맞설 가능성도 높았다. 때문에 제헌위원회파들은 동독을 일방적이고 단기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제23조 방안을 반대했다.

하지만 독일은 제23조의 흡수통일방식으로 하나가 되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먼저 당시 동독 주민의 절대 다수는 비록 흡수통일일지라도 즉각적인 서독 편입을 희망하고 있었다. 동독의 독재자 호네커가 1989년 실각한 뒤 동독 주민들의 시위구호는 ‘우리가 국가 주체이며 우리는 한 민족이다.(Wir sind das Volk, Wir sind ein Volk)'였다.

또 당시까지 서독기본법이 별 무리없이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고 대다수 서독 헌법학자들은 기본법을 근본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헌법학자들은 23조 통일안을 지지했다. 그리고 23조 통일안은 통일과정을 단축하고 동독 지역에서 곧바로 시장경제 체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적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자동적으로 부여했다. 통일 당시 서독 당국이 경제적 출혈을 무릅쓰고 동서독의 화폐를 1대1로 교환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진행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독은 북서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기존의 안보체제를 수정할 필요가 없었고, 주변국인 영국, 프랑스와의 신뢰를 유지할 수도 있었다.

동독의 호네커 총리가 시민들의 항거로 퇴진한 후 동독의 모드로우(Modrow) 과도정부는 ‘계약공동체(Vertragsgemeinschaft)-국가연합(Konfoederation)-연방제(Foederative strukturen)-통일국가(Staatliche Einheit)’로 이어지는 단계적 통일을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즉각 흡수통일이었다. 이 과정을 이끈 사람이 서독의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교장관과 헬무트 콜 총리였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헌법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영토조항을 삽입한 역사적 배경과 의도는 무엇일까? 이는 대한민국이 상해임시정부를 계승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상해임시정부는 일본의 식민지로 빼앗긴 조선 영토를 되찾는 것이 기본 목표였다. 국제적으로 조선의 고유영토를 인정 받기 위해서는 조선 영토를 헌법에 명기하여 외교적 승인을 받아야 했다. 상해 임정은 이런 이유로 헌법에 영토조항을 갖고 있었다.

헌법의 영토조항은 북한과는 달리 대한민국이 상해임시정부 영토조항을 이어받은 적통임을 담보하는 법적 근거다. 한 국가의 주권 보장은 타국으로부터 영토 주권을 받는 것이 1차적 과제다. 쿠르드족,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등이 오랫동안 한 민족이라는 동질성을 갖고 동일한 지역에 살고 있었지만 국가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는 그 영토의 고유한 주권을 타국으로부터 승인받지 못한 것이 1차적 원인이었다. 만약 한국이 북한 영토를 포기하고 주권을 한번 인정하면 그 이후부터는 한국이 북한에 대해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게 된다.

물론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같은 국가는 영토조항이 없다. 하지만 이 나라들이 헌법을 제정할 무렵에는 영토확장에 열을 올리는 제국주의가 판을 치고 있었다. 굳이 헌법에 영토를 제한해서 명시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북한도 헌법에 영토조항이 없다. 북한은 1948년 헌법을 만들 때 소련식 사회주의헌법 전범을 따랐기 때문에 이 조항이 없다. 그러나 헌법보다 상위 개념인 조선노동당 규약은 ‘노동당의 당면 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의 혁명 과업을 완수하는데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한반도 전체에 대한 적화통일노선을 규정한 것이며 남한과 똑같이 한반도 전체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토라고 못박은 것이다. 때문에 조선노동당 규약의 적화통일 노선을 포기할 기미가 없는 상태에서 남한만 일방적으로 영토조항을 수정한다면 국가 주권을 포기하는 행위가 된다.

그렇다면 영토조항을 수정할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측해보자. 먼저 한국은 탈북자 문제에 간섭할 수 없게 된다. 영토조항을 삭제하고 탈북자 문제에 개입하면 명백히 북한에 대한 주권 침입 및 내정 간섭행위가 된다. 북한에 어떤 돌발 사태가 생기더라도 탈북자를 바로 대한민국 국민으로 편입할 수 없게 된다. 이 경우 탈북자는 정치경제적으로 난민으로 분류되어 국제 고아가 된다. 유엔도 탈북자를 난민 신분으로 처리한다. 세계적 인권 보호 흐름에 역행하는 반인륜적 행위이며, 반민족적 행위이나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

1편에서 언급한 대로 서독은 1972년 동서독기본조약으로 동독과 동시에 유엔에 가입해서 대외적으로 동독을 주권국가로 인정했지만 기본법 116조에 의거하여 모든 독일민족에게 서독국적을 부여할 근거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동독 주민을 자국민으로 인정하는 서독기본법 116조는 제23조 영토조항으로 뒷받침되는 것이었다. 때문에 동독을 탈출한 동독주민 뿐만 아니라 동유럽에 흩어진 모든 독일민족들은 스스로 서독으로 이주하길 희망한다면 기본법 23조의 ‘편입 조항’으로 자동적으로 서독 주민이 될 수 있었다. 이 탈주민들은 해당국 서독대사관에서 인신 및 영사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두 번째 북한 붕괴 및 급변사태 발생, 난민 대량 탈출시 한국이 개입할 근거도 사라진다. 현재 한국의 ‘대법원 판례 1996.11.12.96누 1221’는 ‘북한은 대한민국의 일부’라고 판결한 바 있다. 또 정부는 1996년 12월에 북한 대량 탈출에 대비해서 ‘북한 탈출 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런 법률들도 헌법의 영토조항이 삭제될 경우 무력화된다.

이어서 북한이 중국 등 제3국에 국가연합이나 연방형식으로 병합되거나 제3국에 영토 일부를 매각하더라도 영토조항이 없다면 개입할 수 없게 된다. 현재 중국은 고구려사 왜곡을 통해 역사적으로 북한 지역을 자국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을 중국의 조선족 자치주 형태나 홍콩모델로 편입 내지 병합하기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중국은 그 정당성을 국제사회로부터 얻기 위해 사전포석으로 고구려사를 왜곡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뿐만 아니라 영토조항이 삭제된다면 미래 한국이 통일을 할 때 중국으로부터 통일국가 승인을 받을 수 있는 협상카드가 없어진다. 북한과 중국의 현 국경선은 통일한국이 되면 무효가 되고 새로 국경조약을 체결해야 하는 사안이다. 현재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은 과거 일본이 대한제국을 대신해서 청일간에 체결한 간도조약에 근거하고 있다. 1945년 일본의 무조건 항복 이후 1905년 이후 일본이 조선을 대신해서 체결한 모든 국제조약은 무효가 된 바 있다. 북한은 한반도의 적통이 아닌 반국가단체로서 백두산 등 중국과의 국경선을 불법적으로 체결한 것이기에 통일한국이 성사되면 중국과 국경선을 재협상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영토조항은 중국과 북한간에 체결된 국경선을 통일한국이 인정하는 대신 중국으로부터 북한과 맺은 반한국적 조약을 무효화할 수 있는 협상카드로 활용할 수도 있다.

그 실례가 간도다. 현재 중국령인 간도는 통일한국이 출범한다면 영토조항 때문에 재협상 대상이 될 수 있다. 한국으로서는 되찾거나 유리한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서독도 앞서 언급한 오더-나이스 동쪽 지역을 소련과의 비밀 협상에서 유리한 카드로 활용했다. 동방정책을 밀어붙인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소련을 방문했을 때 오더-나이스강 동쪽 땅을 포기하는 대신 독일 통일 과정에서 더 큰 정치적 이득을 따낼 수 있었다. 소련에 대한 독일의 오더-나이스 카드는 중국에 대한 한국의 간도 카드나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이 영토조항이 살아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영토조항이 없어질 경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조항을 삭제해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한다면 통일이 될 경우 북한이 타국과 맺은 모든 조약과 협약, 채무를 통일한국이 이어받아야 한다. 이럴 경우 국제법적으로 대단히 복잡한 소송에 휘말려 통일국가로서 기능을 상실할 수도 있다. 더욱이 영토조항이 삭제되면 통일과정이 장기화되고 타국으로부터도 통일국가 승인을 받기가 힘들어진다.

또 국가보안법 존립의 헌법적 근거가 바로 영토조항에 있다. 따라서 현재의 영토조항이 있는 상태에서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은 위헌이다. 영토조항이 있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국보법을 개정하더라도 북한이 반국가단체라는 정언적 규정은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1953년 정전협정 체제도 해체된다. 뿐만 아니라 한미상호방위조약도 수정하거나 없애야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골격은 북한이 현실적으로 ‘공동의 적’이라는 공동 인식에 있다. 영토조항이 없어진다면 북한이 더 이상 적성국이 아니기에 조약 수정은 불가피하다. 주한미군의 상주 근거 또한 사라진다.

영토조항이 없다면 미국과 북한이 상호방위조약을 맺더라도 한국이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북한이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등 어느 나라와 반한국적인 군사 및 경제협력 조약을 맺더라도 한국은 개입할 수 없다. 북한이 미국과 한국의 ‘공동의 적’이었기에 미국의 일방적인 대북 관계 개선에도 한국이 일정하게 간섭하고 조정할 수 있는데 그럴 근거가 사라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영토조항이 삭제될 경우 정치적 지지 여부를 떠나서 국익에 미치는 악영향이 매우 심각하다. 필자는 정동영 장관이 이런 경우의 수를 내다보지 못하고 국회에서 실언한 것으로 보고 싶다. 만약 정장관이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도 영토조항 삭제를 거론했다면 친김정일 세력이라고 비난 받을 정도가 아니다. 알고도 이런 일을 추진한다면 한일 병탄을 부른 매국노 이완용과 다를 바 없다. 이는 국가 반역 행위다. 영토조항 발언이 무지한 정동영 장관의 실언이기를 간곡히 바란다.

※위 글은 시사웹진 뉴라이트(www.new-right.com)의 양해를 구해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