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주주 자본주의의 파산

by 永樂 posted Nov 22, 2005
누가 GM을 이렇게 만들었나
                                                   최원석의 자동차 세상 cafe.chosun.com/carworld


생산대수 세계 1위의 자동차회사 GM에 관한 최근 기사들을 보면 GM의 모든 것들이 악화일로에 있다는 것을 자동차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라도 쉽게 알 수 있을겁니다. 뭐 새로울 것도 없죠. 기사를 읽어보지 않아도 내용을 예측할 수 있으니까요. 주가가 떨어졌다, 점유율이 내려갔다, 공장 문 닫는다, 종업원을 대량감원한다... 연일 보도되는 내용들이 전부 이런 식입니다. 최근 뉴스만 한번 살펴볼까요? GM은 2008년까지 3만명을 줄이고 북미 지역의 9개 자동차 조립공장과 3개 서비스 부품공장 등 12개 공장을 폐쇄한다는 계획을 21일 발표했습니다. 당초 예상보다 구조조정 규모가 훨씬 큰 것입니다. 게다가 GM이 향후 6~12개월 내에 파산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미 자동차업계에서는 나오고 있는 상황이지요. GM은 올해만 9월까지 40억달러 가까이 적자를 냈습니다. 한달에 4~5억달러씩 현금을 까먹는 기업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기업이 아니라 거의 재앙입니다.

도대체 GM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어떤 문제 때문에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일까요. 최근 GM 관련 기사들에서 가장 큰 이유로 언급되는 것은 GM에 월급을 꼬박꼬박 줘야 하는 유휴인력이 너무 많고 연금 의료보험 비용이 지나치게 과다하다는 점을 듭니다. 이른바 ‘과거유산에 대한 비용(Legacy Cost)’이 너무 많아 현재의 GM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큰 이유중 하나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게 가장 큰 이유일까요?

GM의 문제는 아주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모든 문제는 하나의 지향점에서 판가름 납니다. 바로 자동차라는 ‘제품’입니다. GM에는 제대로 된 제품이 없습니다. 제품을 들여다보면 그 회사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알 수 있는 경우가 생각보다 훨씬 많은데요. GM에서 나온 차를 잠시만 몰아봐도 GM의 사정이 왜 엉망인지가 눈에 보입니다. 디자인 주행성능 조립품질 리세일밸류 등등 모든 면에서 눈길을 끄는 차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최근 등장한 폰티액(GM의 대표브랜드 중 하나) 솔스티스 정도가 유일하게 흥미를 끌지만, 이 모델 역시 결코 수십만대 팔려줄 차는 아니지요.

그러면 GM이 제대로 된 ‘제품’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난 수십년간 GM 최고경영자들이 끊임없이 오판을 했기 때문입니다. GM의 경영자들은 단기수익에만 골몰했습니다. 자신의 재임기간에 가능한한 많은 수익을 내면 그만이고, 노사문제처럼 시끄러운 문제는 가능한한 긁어부스럼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었지요. 물론 이런 시스템이 단기간에 큰 실패는 내지 않는 장점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모든 과정이 좋은 자동차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으로 모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GM 내부에는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한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계획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겠지요. GM대우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모기업인 GM의 장기계획은 3년을 넘지않는다고 하더군요. 그 이상은 CEO의 지속여부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분기마다 수익을 내야한다는 부담감이 GM처럼 거대한 자동차기업의 장기목표 수립을 어렵게 했던 것입니다. 해당 CEO에게는 의미 없을지 모르지만, 회사에는 대단히 중요한 일인데도 말이죠.

이런 사고방식으로 사람을 자르고 원가를 절감하고 기업구조를 조정해서 단기간의 수익을 낸 경영자도 있었지요. 하지만 최근 수십년간 어느 누구도 GM 자동차의 품질과 상품성을 올려놓지는 못했습니다. 또 장기적으로 GM의 경쟁력을 갉아먹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GM의 경영자중 어느 누구도 전미자동차노조(UAW)와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주기적으로 갱신되는 GM과 노조간의 단체협약 맨 아래에는 두 곳의 서명란이 있습니다. 하나는 노조위원장 것이지만, 또 하나는 누구 것일까요? 바로 사측 최고경영자의 것입니다. 회사의 장래를 생각할 때 GM의 경영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 수십년전부터 손을 대야만 했습니다. 이 문제가 곪아터질 때까지 그대로 방치해뒀다는 건 의사가 환자의 병을 알고도 전혀 손을 쓰지 않는 것과 다름 없는 일이었던 겁니다.

GM이 장기적인 수익원 창출과 비전수립에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가는 1995년 출시됐던 EV-1이라는 GM의 전기자동차 프로젝트에서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GM은 이 차의 기반기술을 통해 도요타를 앞설만한 하이브리드카를 먼저 내놓을 수도 있었지만, GM 경영진은 고객들이 이런 차에 관심이 없을거라고 속단해버리고는 1999년 사업을 완전히 접었습니다. 시간과 돈만 낭비했다고 불평만 늘어놓은 채 말이죠. 미래수익원 창출을 통한 GM의 회생 가능성을 막아버린 결정적인 패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경영자였다면 전기차 기술을 계속 발전시켜 하이브리드카 기술로 연결시켰을테고 그랬다면 아마 도요타가 하이브리드카 시장을 지금처럼 완벽하게 선점하지는 못했을겁니다.

GM의 최고경영진은 ‘소비자가 원하는 최고의 자동차를 공급한다’는 그 옛날 GM의 전설적 경영인 알프레드 슬론의 마음가짐을 완전히 잊고 있습니다. GM의 CEO 릭 왜고너는 좋은 자동차를 만드는데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며, 지난 20~30년간 그저그런 자동차만을 만들어왔다면 그것을 만회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듯 합니다. GM 신차개발을 지휘하는 밥 루츠도 진정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차를 만들기보다는 남자들의 마초적 감성에 호소하는 ‘회심의 한방’을 만들겠다는 망상에 여전히 사로잡혀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1940~1950년대 GM은 지금 같지 않았습니다. 당시 GM 의 최고경영인들은 본능적으로 ‘좋은 자동차’라는 결과물을 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최근 작고한 피터 드러커는 1943년에 GM으로부터 ‘기업의 최고경영에 대한 GM의 정책과 구조’에 대한 연구제의를 받습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GM의 경영인들은 오늘날의 도요타나 혼다의 경영인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당시 드러커는 GM의 최고재무관리자(요즘식으로는 CFO쯤 되겠군요) 앨프레드 브래들리를 만나게 되는데, 이 사람이 자신의 경력을 숨기고 싶어한다는 사실에 놀라와 합니다. 브래들리는 미시간대학 경제학 박사 출신에 대학에서 통계학을 가르친 경험이 있었는데, 그는 이 사실을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고 실제로 부끄럽게까지 생각했습니다. 왜냐고요? 당시엔 기업의 경영인이 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아 올라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GM을 지배했었기 때문이었지요. 공부를 많이 했다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특기할만한 것은 당시 경영인들이 현장 경험과 현장과의 소통을 대단히 중시했다는 겁니다.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오늘날 많은 경영인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지요. 드러커는 또 당시 파산위기에 빠졌던 캐딜락 디비전을 멋지게 회생시키고 이후 시보레 총책임자까지 올랐던 니콜라스 드레이스타트를 언급합니다. 독일 메르세데스벤츠 경주팀에서 일했던 그는 전형적인 기계공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GM내에서 가장 유능한 젊은 경영인으로 평가받았는데, GM 내부에서는 그가 회장까지 오를것으로 내다봤지만 아깝게 암으로 요절하고 말았지요.

지금의 GM은 어떨까요. CEO 릭 왜고너는 재무전문가 출신으로 그동안 인수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에 힘써왔습니다. 또 최근 GM의 CEO 4명중 3명은 재무·금융계 출신입니다. 이들의 특성은 숫자와 문서에 강하다는 것입니다. 자동차라는 제품은 단기간의 기획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차를 만들어내기 위한 장기비전은 없다 치더라도 좋은 차를 만들어내기 위해 정말 필요한게 무엇인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려는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미시간주 랜싱에 있는 GM공장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한국인 유학생을 만난적이 있는데, 조립라인의 효율성을 개선하는 아이디어를 내도 상급자들이 책임소재를 두려워해 묵살하고, 사무실 형광등 하나 갈더라도 비싼 돈을 지불하고 전담 노조원을 시키도록 해 당혹스러웠다고 하더군요. 또 사석에서 만난 공장직원들이 “회사가 망하더라도 지금만 괜찮으면 된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요? 현장과 경영진 사이에 소통이 불가능한 곳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좋은 차를 만드는 것은 자동차회사의 가장 중요한 생존전략입니다. 소비자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매일매일 전쟁터 같은 일터에서 힘들게 번 돈을 가장 가치있게 쓰고 싶어하는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저그런 차에 누가 돈을 쓰고 싶어하겠습니까. 더구나 단단하고 멋지고 고장 안나는 차들이 그 옆에 넘쳐나는데요. 안팔리니 마구 깎아주고 깎아주지 않으면 안팔리고, 수익성이 악화되니 사람 자르고 공장문 닫고, 연구개발에 품질향상은 뒷전, 결국 계속해서  그저그런 차를 내놓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면, GM의 회생은 어려울겁니다. 그리고 그 가장 큰 책임은 지난 수십년간의 GM 경영인들에게 있습니다.